과소평가된 1970년대의 범죄 스릴러 영화 두 편;

'Charley Varrick(1973)'과 'Straight Time(1978)'


1. 지적 액션 스릴러의 모범, Charley Varrick(1973)

  은행 강도가 은행을 털었다. 정신없이 돈뭉치를 담아왔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훔친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하다. 너무 좋아서 환장하겠는 동료 하먼과는 달리, 영화의 주인공 찰리 베릭은 근심한다. 자신들이 턴 시골 은행에 그렇게 큰 돈이 있는 것이 수상쩍다. 분명히 구린 냄새가 나는 돈이고, 그 돈 때문에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돈 시겔(Don Siegel) 감독의 1973년작 'Charley Varrick'은 그렇게 훔친 돈 76만 달러를 두고 마피아와 늙은 강도가 벌이는 한 판 승부를 그린다. 주인공 찰리 베릭 역은 월터 매쏘(Walter Matthau)가 맡았는데, 그가 누구냐 하면 1993년작 '개구쟁이 데니스(Dennis the Menace)'에서 꼬마 데니스에게 번번이 골탕먹는 영감님으로 나왔더랬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에 '찰리 베릭'과 같은 월척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역을 거절하자 매쏘에게 돌아간 행운인 셈인데, 정작 매쏘는 내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큰둥하기는 이스트우드의 캐스팅을 원했던 돈 시겔 감독도 마찬가지. 감독과 배우의 삐그덕거림에도 이 영화는 꽤 좋은 만듦새를 갖고 있다.

  이제, 어떻게든 자기들 돈을 되찾으려는 마피아 일당과 그 돈을 필사적으로 빼돌리려는 강도들과의 싸움은 불가피하다. 원래 4명이었던 일당은 1명이 현장에서 죽고, 베릭의 아내가 도주 중에 총격으로 죽어서 이제 두 명이 남았다. 베릭은 몇 년 동안 돈을 쓰지 않고 은신해야만 마피아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고 하먼에게 말하지만, 하먼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혈기에 넘치는 경솔한 하먼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베릭은 이때부터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마피아가 보낸 암살범 몰리(조 돈 베이커 분)의 그림자가 가까이에 드리워진다.

  자, 여러분이 속시원한 범죄 스릴러 액션물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기대한 총격전이나 추격전은 별로 나오지 않고, 주인공은 어디론가 쏘다니며 뭘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성미 급한 사람은 이런 영화를 보다가 영화관을 박차고 나올지도 모른다. 개봉 당시에 '찰리 베릭'을 보던 관객들도 그랬던 모양이다. 비평적으로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왜 좋은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는가? 그런가 하면 작품성이 떨어지는 어떤 영화들은 큰 수익을 내기도 한다. 내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는데 '7번방의 선물(2013)'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된 것에 대해서이다(덧붙여 2006년작 '미녀는 괴로워'도 함께).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에 비해서 '찰리 베릭'의 흥행 실패 이유를 찾는 것은 간단하다. 관객에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거의 정보를 주지 않고 답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찰리 베릭은 자신의 완벽한 도주극을 실현하기 위해 계획에 따라 착착 움직인다. 치과에 잠입해서 자신과 아내의 치아 사진을 빼내온다든지, 하먼의 운전면허증으로 위조 여권을 만든다든지 하는 행동들이 그렇다. 그런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베릭의 행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찰리 베릭'이 보여주는 느리고 치밀한 지적 액션 스릴러는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에 한계가 있다. 아마도 요즘과 같이 OTT(over-the-top media service)가 활성화된 시대라면, 영화관 상영을 짧게 하고 나중에 OTT로 풀어서 추가 수익을 노려보기에 알맞은 작품일 것이다. 불운하게도 VHS 보급 초창기 시대에 '찰리 베릭'은 쉽게 잊혀졌고, 과소평가되었다. 그럼에도 '찰리 베릭'의 내러티브는 잘 짜여져 있으며, 초반부 차량 도주 장면을 비롯해 경비행기를 이용한 액션 장면은 매우 볼만하다. 벽돌을 쌓아가듯 결말에 이르기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찰리 베릭이라는 인물이 가진 캐릭터적 특성을 극대화시킨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명불허전의 더스틴 호프만, Straight Time(1978)

  '찰리 베릭'과 같이 저평가된 1970년대의 범죄 스릴러 영화로는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Straight Time(1978)'을 들 수가 있다. 원래 이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의 감독 데뷔작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되고 단 하루만에 호프만은 현장에서 배우와 감독직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타 감독으로 들어온 이가 호프만과 친분 관계가 있었던 Ulu Grosbard였다. 

  맥스 뎀보(더스틴 호프만 분)는 6년 동안 지냈던 감옥에서 이제 막 출소했다. 맘 잡고 착실하게 살아보려는 맥스, 그는 직업 소개소에서 캔 제조 공장 취업 제의를 받는다. 직업 소개소 직원 제니(테레사 러셀 분)와 데이트도 시작하면서 맥스에게도 보통 사람의 삶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만하고 비열한 가석방 담당 공무원 프랭크는 맥스의 발목을 붙잡는다. 친구 윌리가 맥스의 모텔 방에서 마약 투약을 한 흔적이 프랭크에게 발견된 것. 구치소에 갔다가 겨우 풀려나온 맥스는 이전에 익숙했던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 간다. 결국 동네 잡화점 강도를 시작으로 옛 동료와 함께 보석상 털기에 나서는데...

  'Straight Time'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범죄자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강력범이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일반인으로의 갱생을 포기하고 다시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는 맥스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 몸에 딱 맞는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걸림이 없다. 맥스는 범죄에 최적화된 사람처럼 보인다. 전당포에 침입해 총기를 탈취하는 장면을 비롯해 보석상 강도 장면에서의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용의주도함 속에 수반되는 폭력성은 스크린 너머의 관객을 마비시킨다. 더스틴 호프만은 배우로서의 타고난 재능을 그 자체로 입증해 보인다.

  그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1979)'에서 메릴 스트립에게 군기 잡는다고 물컵 던지고 뺨 때린 일(두 가지 모두 대본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생각하면 비호감이긴 하다. 신인이나 다름없었던 메릴 스트립은 그런 수모를 감수해야 했고, 시간이 한참 지난 나중에서야 호프만의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씁쓸하게도, 재능의 세계란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더러운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더스틴 호프만의 천부적인 연기는 'Straight Time'의 주요한 뼈대를 이룬다. 이 영화에서 호프만과 짝을 이루는 여배우 테레사 러셀의 감성적인 연기도 아주 좋다.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지만 극의 조화로운 흐름에 기여하는 러셀의 연기는 '저런 여배우가 있었나'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찌 생각해 보면 'Straight Time'의 내러티브는 다소 단조롭고 진부하기도 하다. 범죄자에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사회적 편견과 가석방 시스템에 좌절해서 다시 범죄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가석방 담당 공무원은 맥스를 돕는 것이 아니라, 모욕을 주고 재활의 의지를 꺾는다. 구치소에서 나온 맥스는 분을 이기지 못해 그를 폭행하고 도로에서 바지를 벗겨 망신을 준다. 공권력은 길바닥에 나뒹굴며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맥스는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맥스의 현재에서 과거에 이르는 머그샷들이 차례로 제시된다. 그에게 숨쉬는 것처럼 범죄가 익숙했던 데에는 그토록 오랜 기원이 있었다. 자신의 계획을 완수하고 마침내 어디론가 떠나는 '찰리 베릭'처럼 '맥스 뎀보'도 길 위에 서있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과소평가된 이 두 편의 범죄 스릴러 영화에는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감지된다.    
  

*영화 '미저리(Misery, 1990)'의 캐시 베이츠가 맥스의 친구 윌리의 아내로 나온다. 젊은 날의 날씬하고 수수한 외모의 베이츠를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radiotimes.com


***사진 출처: theplaylis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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