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꽤나 단조롭고 지루하다. 그러나 영화가 마침내 끝났을 때 어떤 감정의 파고가 밀려왔다. 그것은 흥분도, 감동도 아니었다. 약간의 충격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 몬티 헬먼(Monte Hellman)도 그 점에 동의했다. '자유의 이차선(Two-Lane Blacktop, 1971)'은 '이지 라이더'의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영화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이지 라이더'의 아류작인가 하면 그건 분명히 아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도 처음엔 '이지 라이더'의 마일드한 버전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자신만의 차선(lane)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의 시작은 어두운 밤, 시의 외곽에서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 장면에서부터이다. 1955년형 쉐보레를 경주용 엔진으로 개조한 차를 몰고 다니는 드라이버(제임스 테일러 분)와 정비공(데니스 윌슨 분)은 자동차 경주에 미쳐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66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는 여정을 이어간다. 들르는 곳마다 자동차 경주장을 찾아 경주를 하고, 그렇게 딴 돈으로 길거리 생활을 이어간다. 그들은 우연히 만난 GTO를 모는 운전자(워렌 오티스 분)와 워싱턴 D.C.까지 경주 내기를 하게 된다. 여기에 히치 하이커 걸(로리 버드 분)이 동행한다. 가는 도중에 GTO의 차는 엔진에 문제가 생기고, 드라이버와 정비공은 돈이 떨어져 곤란을 겪는다. 이들은 가기로 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이 영화 속 인물들에는 이름이 없다. 그들은 또한 대화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거의 나누지 않는다. GTO의 경우는 예외다. 히치 하이커들에게 관대한 그는 자신의 차를 기꺼이 제공하며,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게이, 히피, 묘지를 찾아가는 할머니와 손녀,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공허하며 아무 의미도 없다. '자유의 이차선'의 인물들은 결코 소통하지 못한다. GTO가 드라이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자, 드라이버는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드라이버와 정비공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묻는 이들에게 '동쪽'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적지는 수시로 바뀐다. GTO는 히치 하이커 걸에게 원하는 어디든지 데려가 주겠다며 허세를 부린다. 멕시코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사실 가야할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성도 상실한 사람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도 없고, 삶의 목적도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길 위에 서있다는 것 뿐이다. 되는대로 살아가는 방랑의 삶.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의 196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민권 운동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것이 1960년대 말에 이르면 가중된 피로와 침체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민들은 대외적으로는 패색이 짙어가는 베트남전을 보며 실망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었다. 1971년에 이른바 '닉슨 쇼크(Nixon Shock)'라고 불리는 경제조치가 이루어진다. 금-달러 태환을 가능하게 했던 금본위제의 폐지는 달러 부도에 대한 선언이었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로소 미국은 달러를 무제한 찍어낼 수 있는 양적 완화를 취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그러한 경제적인 혼란과 침체는 세계 경제까지 뒤흔들었다. 미국민들의 삶의 질과 안정성은 떨어졌고, 그것은 공동체적 이상 보다는 '개인'에 대한 극명한 자각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언론인 톰 울프는 1970년대를 'Me' Decade로 규정하기도 했다.

  '자유의 이차선'에 나오는 인물들은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개인'을 보여준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거대 공동체적 구심점에서 이탈한 파편화된 개인들이었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무수히 많은 개인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위로를 찾았다. 1970년대의 미국에서는 명상과 요가와 같은 종교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영화 속의 드라이버와 정비공에게 종교는 자동차였고 그것이 주는 위로는 속도였다. 거기에는 즉각적인 만족과 위험이 수반된다. 그러므로 GTO는 이런 말로 드라이버에게 경고한다.

  "언젠가 그 속도에 잡아먹히게 될 거야."

  그것은 드라이버가 도로에서 목격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그는 가다가 차 사고 현장을 보게 되는데, 거기에는 목이 부러져 죽은 시신이 있었다. 과속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길 위의 삶의 댓가는 그렇게 참혹했다. 언젠가 드라이버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미래이기도 한 그 현장은 소멸과 망각을 상징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맞닿아 있다. 감독 몬티 헬먼은 매우 건조한 로드 무비 속에서 자신의 시대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보여준다. 중심에서 이탈한 개인들의 방랑과 끝없이 침잠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1970년대 미국의 불안하고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된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사진 출처: paris-la.com 히치 하이커 걸을 연기한 로리 버드. 영화를 찍을 당시의 나이는 18살이었다. 로리 버드는 26살의 나이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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