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막이


바람막이가
갑옷 같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그래서
열심히 모았었지
딱지와 구슬
모으듯

더워지는 지구
바람막이를 입을
봄날은 며칠 되지도
않아 열 벌이 넘는
바람막이는
옷장에서
스러지는 중이지

입지도 못할
바람막이
써먹지도 못한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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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아주 오래전
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어

욕설에 반말에
사회의 밑바닥
거지 같은 것들이
몰려들더군

지들이 괴롭고
힘든 걸
분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야

콜센터는
우리 사회의
하수종말처리장이지

생쥐의 꼬리를
늘어뜨린
예의 없는 것들
존중이 어디 있어

아직도 그때 들은
욕이 기억나
실실 처웃으면서
그놈은 밥이나
먹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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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白日場)의 시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백일장에서
시를 써서
은상을 탔다
63빌딩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그래서 63빌딩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백일장 같은 시를
쓰는군

그게 무슨 뜻이야?

널 조롱하는 거지

그러는 넌
백일장에
당선이나 되어봤니?
백일장의 시가
뭔지나 알아?

오래전 기억 속
백일장의 시는
남루한 연인이지
두 눈을 잃은
그렇지만
버릴 수 없는

시간의 물음표
불운을 견뎌낸
두 눈을 다시
뜨게 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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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식 김치


외가에서 보내온
남도식 김치는
너무 맵다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
가끔 생각날 때
먹는다 그리고
쓰린속을 부여잡으며
후회한다
왜 먹었을까

번번이 어긋나버린
젊은 날의 연애담
철벽의 매운맛
빤히 끝이 보이는
밤의 가로등
제 몸을 태우며
달려드는
머저리 모기들
나방들

냉장고에서 졸다가
살짝 맛이 가버린
우유를 한잔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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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야


매일 머리를 감는데도
머리가 가려워
어디서 들으니
그건 머리가 빠지려고
그런 거래

온몸이 중력을 느껴
피부도 잇몸도 땅을
향해 천천히 늘어지지
늘어진 게 편한 건
옷뿐이야

주말 저녁에는
여행 프로그램을
틀어놔
거길 가보고 싶지 않아
그걸로 충분해
아픈 몸은 진통제에
절여졌지

구멍 난 흰색 양말을
초록색 실로 꿰매었어
흰색 실은 오래전부터
없었거든 반짇고리엔
검은색 실과
초록색 실만

초록색으로 꿰맨 양말을
신고 천천히 걸어봐
놀이터에서 소리를
지르는 계집애들
저린 왼쪽 팔로
불안이 타올라
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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