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밀린 일들을 미처 끝마치지 못하고 오늘 유럽으로 공연 투어를 떠난다.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독일 뒤셀도르프(Tanzhuas nrw, 11월 7일 공연)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Mousonturm, 11월 26일 공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Melkweg, 11월 10일 공연), 스페인 엘 페롤(Jofre Theater, 11월 21일 공연)과 마드리드(Madrid Dance Festival, 11월 23/24일 공연), 포르투갈 파로(Devir Capa Black Box, 11월 13일 공연), 아일랜드 더블린(Pavilion, 11월 18일 공연) 등의 도시들을 돌며, 내가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무용 <몇 개의 질문>의 순회 공연을 하기 위함이다(뉴욕 공연과 싱가포르 공연에 이어 세 번째 해외 공연을 하게 되는 <몇 개의 질문>은 '공연 복'이 많은 무용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마쳐야 할 일들을 다 끝내지 못한 관계로, 나는 공연을 위해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영락없이 글을 쓰고 다듬고 고치고 있을 운명이다. 하지만, 10시간이 넘는 지루한 비행 시간 동안, 그것도 지극히 '경제적인'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에 꼼짝없이 '경제적으로' 앉아, 그렇게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게 그리 나쁠 것 같지만은 않다, 그렇게 나쁠 것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해 본다. 편치 않은 마음을 애써 편하게 갖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나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한 변태적인 방식인 것.

 
<몇 개의 질문>(안무: 장은정/ 출연: 이소영, 이윤정, 최진한, 한승훈/ 작곡, 연주: 람혼)
2007년 10월 21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초연 공연 영상:
http://blog.naver.com/sinthome/40044551630

 

2) 지난 11월 1일에는 프랑스 문화원에서 프랑스의 젊은 철학자 엘리 뒤링(Élie During)과 독대하여 대담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이 인터뷰는 『자음과모음』 2011년 봄호 지면을 통해 엘리 뒤링의 다른 글 한 편의 번역과 함께 소개될 예정인데, 나로서는 재작년에 가졌던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와의 인터뷰(http://blog.aladin.co.kr/sinthome/2476931) 이후 오랜만에 어떤 한 '정신(esprit)'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알차고 소중한 자리였다. 엘리 뒤링은 그 '멋진 외모'만큼이나 성실한 자세로 대담에 임해 주었다. 지극히 일반적인 철학적 주제들을 통한 평범한 대담을 예상했던 엘리 뒤링은, 그 자신의 모든 저작과 개념들에 기초한 질문들을 제시한 내게 매우 고마워했다. 나 또한 그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엘리 뒤링은—베르그손(Bergson) 등의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연구와 푸앵카레(Poincaré), 아인슈타인(Einstein), 스티글레르(Stiegler) 등의 과학철학/기술철학에 대한 그의 천착 등을 통해내게 개인적으로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하는 철학자이기에, 앞으로의 이론적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의 독립적인 저작을 번역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 프랑스 문화원에서, 람혼과 엘리 뒤링과의 대담. 

 

 

엘리 뒤링이 내가 갖고 있는 자신의 책들 중 한 권에 해 준 사인:
"정우에게, 서울에서의 감동적인 토론의 추억, 엘리 뒤링"

 

3) 사막의 우물 '두리반'의 어려움이 여전히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기 공급 문제에 관해서 마포구청은 아직도 묵묵부답이며, 한때 두리반 문제 해결의 실낱같은 희망처럼 여겨졌던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미 '인권'이 아니라 '국가'를 강조하는 집단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그런 두리반에는 '정치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의 만남이 있다. 그래서 두리반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특수하며 또한 그러한 '특수성'을 통해 어떤 하나의 '보편성'을 현시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편안한' 느낌 속에서, 또한 우리는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저 익숙한 '불편함'을 직시하게 된다. 이 불편함의 느낌을 확장해 보자면, G20 포스터에 대한 하나의 위대한 도발인 저 유명한 '쥐 그림'이 한껏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그림에 대해 "정부 행사를 방해하려는 음모"라고 말하는 공안 검찰은 그 스스로 지니고 있는 치졸하고 야비한 '쥐'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에, 국민을 계몽의 볼모로 업신여기는 G20의 진정한 본색을 생각해 볼 때이다. 정부가 'G20의 성공적 개최'라는 헛된 미명 아래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희화화한다면, 국민 역시 그런 정부를 마음껏 비웃을 권리가 있다. 정부가 '국격(國格)'이라는 번지르르한 허명 아래 국민을 개조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국민은 그런 정부에게 '국격' 이전에 먼저 '인격'이나 갖추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우리는 'G20'이라는 허상 아래, 그러한 요구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비웃어야 할 때 제대로 비웃어 주고 있는가,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화려한 홍대의 어두운 한쪽 구석, 하나의 상징적 공간이 된 두리반에서, 'G20'이라는 거대한 환상을 다시 생각하게끔 되는 이유이다. 

 

 

▷ 레나타 수이사이드, 두리반에서.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 <깊은 베개>(람혼: 보컬, 기타/ 반시: 베이스/ 파랑: 드럼),
2010년 10월 30일 두리반 공연 영상:
http://www.vimeo.com/16348589

 

4)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 나의 음악은 내가 없는 곳에서도 조용히 울릴 예정인데, 올해 초 내가 음악을 작곡했던 화제의 연극 <루시드 드림>이 두 번째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11월 4일부터 21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상연되는 이번 공연에 아직 이 연극을 보지 않은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기를 고대해 본다. 내가 한국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연주하고 있을 때 동시에 한국에서 내 음악이 극장 안을 울리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건 기이한 동시성의 경험이다. 나는 이곳에 없고 저곳에 있지만, 동시에 나는 또한 이곳에 있고 저곳에 없기도 하다. 

 

 

▷ 세 번째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 연극 <루시드 드림>.

 

5) 지난 10월에는 두 개의 공연을 위한 음악들을 작곡했다. 정유정 소설가의 원작 연극 <내 심장을 쏴라>(남산 드라마 센터)를 위한 음악, 그리고 세 명의 젊은 안무가/무용가 공영선, 박성현, 허효선의 신작 무용 <내일의 어제(The Day after Yesterday)>(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서강대 메리홀)를 위한 음악이 바로 그것이었다. 두 공연 모두, 작곡 과정은 참으로 어려웠지만, 돌이켜 보면 너무 소중한 작업이었다. 특히 <내일의 어제>를 위한 음악 작업을 통해서 나는 지금까지의 내 작곡 어법들을 총결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앞으로 나의 음악은 또 다시 어떤 방향을 향해 나갈까, 나조차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암중모색의 불편한 느낌이 그리 불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나만의 '혼란'을 유지하고 소화하고 즐기는 또 다른 변태적인 방식일 것. 나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돌아왔다가, 다시, 떠날, 것이다. 처음에 떠나지 않았던 장소로, 마지막에 돌아올 수 없었던 공간으로, 그렇게. 그러기를 바란다.

—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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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1-05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저는 그동안에 루시드 드림을 보고 있겠습니다.

람혼 2010-11-17 21:18   좋아요 0 | URL
<루시드 드림>은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현재 아일랜드 더블린에 와 있습니다. 거센 비바람이 위협하는 숙소 창가에서 글을 남깁니다. 그 비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러 아일랜드 작가들의 면면이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그들이 왜 '그런' 글들을 남길 수 있었는지 [지극히 '환경결정론적'인 관점에서] 이해가 되고 있는 중입니다.

blanca 2010-11-05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를 창조하고 그것을 들어줄 사람들을 지닌 람혼님이 진심으로 부럽군요. 요즘은 데모할 거리가 없으니 데모를 안 한다던 어른들 앞에서 대꾸하기도 귀찮았던 심정이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잘 다녀오세요.

람혼 2010-11-17 12:22   좋아요 0 | URL
응원 감사합니다. 저는 독일과 네덜란드, 포르투갈을 거쳐 현재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와 있답니다. 매번 새로운 관객과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유럽 순회 공연 일정입니다. 좋은 에너지 많이 받고 축적해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2010-11-06 0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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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7 1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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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2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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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7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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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5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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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6 0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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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6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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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7 0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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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7 0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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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8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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