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극장 문 앞에서 작곡가로 소개 받고 사카테 요지(坂手洋二)와 첫인사를 나누었다. 2회 공연이 있는 2008년 2월 20일 수요일의 저녁 공연, <블라인드 터치>가 상연되고 있는 산울림 소극장의 객석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공연 내내 그 관객들이 뿜어내는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열기가 극장 안을 훈훈하게 메우고 또한 데웠다. 연극이 끝나고 바로 시작된 사카테와의 대화, 관객들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묻는 보편적인 질문에서부터 연극 속의 구체적인 대사들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관극의 열기를 그대로 대화로 이어갔다. 오랜만에 목격하는, 여유로우면서도 밀도 있는 광경이었다.

▷ 사카테 요지(坂手洋二), 도쿄(東京)에서의 한 인터뷰.

2) 사실 내가 사카테에게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따라서 당연하게도, 던지지 못했던 것인데, 무엇보다도 관객과 작가와의 저 만남이 지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는' 일이 싫었고,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작가의 말'을 옮기면서도 확인했던 바 있듯이(http://blog.aladin.co.kr/sinthome/1914196), 사카테 요지는 일본 사회에 대한 철저한 '자기 비판'으로 무장하고 있는 작가이다. 반면 동시에 사카테는 자신의 작품이 일본 내에서의 공연보다 오히려 외국 공연을 통해서 더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두 입장은 내게는 일종의 '발전적 모순'이다. 그렇다면 사카테 자신이 말하는 이 연극의 의미, 곧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혹은 어려움'이라는 일종의 보편적인 주제는, 예를 들어 전공투, 천황제, 전향 등 지극히 일본적인 문맥에서 이루어진 여러 운동들과 제도들과 정세들의 세부적인 사항에 무지한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곧, 공통의 구체적인 특수성 혹은 역사성을 결여하고 있는ㅡ그리고 사실 어쩌면 이렇듯 결여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ㅡ'외국' 관객에게 보여지고 느껴지는 저 주제의 '보편성'이란, 이러한 특수성과 역사성을 결여하고서도, 과연 여전히 '연극적 보편성'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러한 질문은, 이미 말한 것처럼, 벌써부터 그 대답이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정답'이 미리 정해진 물음이라고 할까(각자 자신이 외국 관객 앞에 선 작가라고 상정하고 대답해보라, 모두 '정답'을 도출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무엇보다도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어쩌면, 이러한 질문이 과연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기는 한 걸까, 그렇게 묻는 질문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 이른바 '전공투(全共鬪)' 세대, <블라인드 터치>의 주인공들은 '사실' 이 세대에 속한 인물들이다.

3) 이러한 질문으로써 내가 겨냥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보편성에 대한 일종의 '신화'에 다름 아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외국인'으로서의 한국 관객에게는 하나의 보편적 '연극 예술'로 다가갈 수 있을 <블라인드 터치>는, 어쩌면 일본 국내에서는 '예술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정치적 사건'일 수 있다(정치적 사건은, 때론 주목을 받기도, 때론 무시되기도 한다). 번역극을 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내 개인적인 딜레마 내지는 아포리아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번역극이 자신의 본래 '국적' 안에서 지니고 있는 '정치성'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의 '예술성'으로서만 느끼고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 바로 그것. 우리는 '당연히' 하나의 연극 속에서 보편성을 바라고 기대하며 보편성을 구하려고 시도하며 또한 보편성을 필요로 하고 요청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하나의 연극이 지닌 '국적' 또는 그러한 '국적'에서 오는 역사성이 이해되지 못하고 추상되어버린 보편성이란, 일종의 '감정이입의 번안' 내지는 단순한 '구조의 대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얄궂은 것은, '소통'이란 여기에서도 또한 존재한다는 것, 아니, 보다 적극적으로 말해서, 어쩌면 가장 넓은 의미에서 [외국어의] '소통'이란 바로 이러한 간극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보편성의 획득이란 어쩌면 구체성과 특수성을 추상하고 사장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이 지극히 '외국적'이고 '이국적'인 어떤 상황에 대한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것. 노파심에서 부연 설명을 하자면,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구체성과 특수성을 추상한 결과가 바로 보편성이라고 말하는 저 지극히 '보편적인'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보편성이란 개념 자체가 '외부'의 존재를 상정할 때에만, 곧 '이국'과 '외국'이라는 타자, 그리고 그러한 '외국[어]들 사이의 소통과 간극'이라고 하는 실로 '번역적인' 상황을 전제할 때에만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일본 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나의 연극이 더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카테의 말은, 사실 바로 저 일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특수성'과 '구체성'을 외국인인 한국 관객이 더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의 한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찬사임과 동시에 하나의 저주이다. 왜 찬사인가? 그것은 표면적으로 한국 관객의 '예술적 이해력'에 대한 상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 왜 저주인가? 그것은 '정치적 몰이해'를 '예술적 감동'으로 손쉽게 치환할 수도 있는 은폐된 무지를 상찬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이해하고 내재화하려는 나의 이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실천은, 아니 오히려 언제나 바로 이 '실천'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나의 이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현기증'은, 내게 이렇듯 언제나 저 착종된 '역사성'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 우리가 우리의 '근대'를 생각할 때, 그리고 그 '근대'를 생각하며ㅡ나로서는, 언제나ㅡ일본과 한국을 서로 연결시키게 될 때, 내가 느끼게 되는 이러한 '위화감'이 나만의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실로 간절하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역설적으로 이러한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나의 저 질문과 의문과 잡설들은, 오히려 '관객과의 대화'라는 형식에는 여전히 부적절한, 어쩌면 '산통을 깨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을 것. 소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런 잡설들을 계속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닌가?

▷ <블라인드 터치> 한국 공연의 한 장면, 배우 윤소정(右)과 이남희.

4) 2월 22일 금요일 저녁 공연 이후, 사카테는 한 번 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나는 거의 언제나 이러한 대화와 만남의 순간이, 단순한 '이벤트'로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 두 번째 대화에는 개인적으로 다른 공연이 있어 참석하지 못할 테지만,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이전에, 어제는 특히 두 배우에게 많은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는 심정을 고백하고 싶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연극이 '배우의 연극'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물론 연극은 또한 '연출의 연극'이기도 하고, 특히 내게는 '음악의 연극'이기도 하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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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8-02-2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편성은 외부성을 바탕으로 성립할수도 있다는 이야기 공감이 가네요. 다만 보편성이란 구체성과 특수성을 추상했을때에만 성립하기도 하지만 보편성 속에서 발견되는 특이성/단독성singularity란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변종적 특이성들을 많이 생산하게하는 작품들을 이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와같은 타자간의 번역적 소통 상황들이 람혼님으로 하여금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나 봅니다. 비록 님은 괴로우시겠지만 저처럼 무덤덤한 사람들에게는 람혼님처럼 현기증일으키는 예민한 해설가분들이 필요하답니다.^^

그나저나 이 연극 한번 보고싶어지네요. 람혼님 음악도 감상하러 갈 겸 말이죠..

람혼 2008-02-22 15:22   좋아요 0 | URL
yoonta님이 '적확하게' 지적해주신 대로, 제 질문의 출발점 역시 저 보편성의 '단독성' 문제에 놓여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 '현기증'에는 약도 없는 것일 텐데, 아마도 '독으로 약을 삼아야 하는' 전형적인 상황 또는 증상이 아닐까 혼자 몰래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관극하신다면 큰 기쁨이자 영광이죠.^^

khagne_editeur 2008-02-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흘러들어 왔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즐겨찾기를 해놓고 보고 있습니다.
자주 들리지는 않아도, 올때마다 힘이 되는 글이 많아서 즐겁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람혼 2008-02-22 15:25   좋아요 0 | URL
문득 개인적으로 그 '어떻게 흘러들어 왔는지도 모르는' 많은 우연의 만남들이 여러 소중한 인연들을 낳아왔다는 기억에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힘이 되는 글이라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