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속의 세상, 세상속의 교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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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평점 :
대학교 신입생 때였습니다. 캠퍼스 벤치에 앉아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데 웬 남학생 두 명이 제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옆구리에 낀 두꺼운 성경책과 고지식해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촌스런 옷차림. 딱 봐도 광적인 한 기독교 써클 회원들이 분명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불쌍한 영혼을 위해 말씀을 전하고자 했겠지요. 평소 같으면 대꾸 없이 그 자리를 피해버렸겠지만 그날 따라 움직이기 싫어서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신이 난 두 사람, 그 중 나이 많은 학생이 성경 여기저기를 펼쳐 보이며 한 명의 비신도를 교회로 이끌기 위해 성심을 다하더군요. 나이 어린 쪽은 그런 선배의 전도를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고요.
그런데 그들이 보여 준 성경의 구절들-형광펜으로 그어 놨습디다-은 하나 같이 예수님이 보여 준 믿기 어려운 기적들과 하나님 믿지 않으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협박성(?) 복음들이었습니다. 그 때라도 피했으면 그만일 걸. 괜한 객기가 발동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서 어째 예수님 말씀은 한 구절도 전하지 않고 믿기 어려운 일들과 공감하기 어려운 주장들만 늘어놓느냐? 이래 가지고 날 설득할 수 있겠느냐? 나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또 예수님의 사랑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서 세상의 아픈 곳 어두운 곳을 밝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느냐? 제대로 다시 한 번 해봐라. 당황한 두 사람,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역시 더 신기한 기적과 더 무시무시한 협박들만 늘어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오히려 성경 구절들을 찾아가며 낮은 곳으로 임하여 몸소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지적하기 시작하자 곧 주객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마치 그런 구절을 처음 본다는 듯, 이런 사탄은 처음 본다는 듯, 성경과 제 얼굴을 번갈아 보며 대꾸를 못하던 두 사람, 나이 많은 쪽이 어린 쪽을 어딘가로 급히 보냈습니다. 곧 더 나이 많아 보이는 한 여성이 그 어린 학생을 따라 헐레벌떡 달려오더군요. 자신들로는 감당이 안 되자 선배를 데려 온 거죠. 그제야 저의 객기를 탓하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마치 그날의 토론과 같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좀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정말 한국의 교회들은 이런 식이구나!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내가 봐도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써서 일일이 지적해야 할 상황이구나! 그 때 그 녀석들이 꼭 광신적인 별종기독교도들은 아니었구나! 한편으론 그 때 못다한 토론을 마무리짓는 듯한 느낌에 읽으며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기독교 내부의 준열한 내부고발을 통해 제대로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기분이 씁쓸합니다. 만약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그것도 한국에. 아마 아니, 분명 한국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낙인 찍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실 겁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그들, 그들이 곧 적그리스도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이 책의 저자가 아직도 기독교 신자인 게 여전히 이해가 안 갑니다. 이렇게 논리적이고 멀쩡한(?) 양반이 아직 기독교도라는 사실이 더 이상합니다. 저자는 교회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무망한 일입니다. 종교의 본질 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없애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진화과정에서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는데 유리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그토록 싫어하는 종교가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이기적인 유전자가 만들어낸 밈(meme)입니다. 아주 생명력 강한 밈이죠. 그러니 그 본질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이 이기적인데 어떻게 그 속에서 사랑과 평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예수님의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방법은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다 옳은 얘기지만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만은 틀렸습니다. 원래 교회는 지금 같은 교회가 교회다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