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 인류는 태양계 곳곳을 탐사하며 활발히 지구 밖으로 진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달의 뒷면에서 온 지구를 발칵 뒤집어놓는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우주복을 입고 있던 그 시체는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 즉 우리 인류와 같은 종이다. 문제는 이 사람이 5만 년 전에 죽었다는데 있다. 조사 결과 지구에서 우주로 나간 사람은 아니며 방사선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 5만 년 전에 죽은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지구의 각 분야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 이 수수께끼의 인물이 과연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규명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찰리라 이름 붙여진 그 사람은 5만 년 전에 죽었지만 그 종족은 최소한 현재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정교한 우주복과 알 수 없는 문자로 써진 수첩 등을 보면 고도의 문명을 지닌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그렇다면 그는 외계인인가? 논리적으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 지구 상 어떤 곳에서도 5만 년 이전에 그토록 발달한 문명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외계인인 찰리가 호모 사피엔스와 꼭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진화의 우연성을 고려해볼 때 다른 행성에서 같은 진화가 일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이 소설은 요즘은 보기 드문 하드(Hard) SF 소설이다. 하드 SF란 철저하게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을 말한다. 말 그대로 황당무계한 공상(空想)과학 소설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과학수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을 말한다.내용은 주로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 의문을 풀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협력하는 이야기로 별 다른 갈등이나 드라마는 없다. 거의 학문적인 수준의 토론이 오가며 스토리는 음모론적으로 거창한 내용이다. 그렇다고 지루하진 않다. 오히려 초반 몇 십 장을 넘기면 끝까지 안 읽고는 못 배기게 박진감이 넘친다.1977년에 처음 출간되어 나왔으니 40년이나 흘렀는데도 전혀 촌스럽거나 낡은 느낌이 없는 소설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지막의 반전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도 있는데 반전 속의 작은 반전은 예상하기 어렵다. 내용이 정교하다. 하나하나 증거를 토대로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태양계 전체를 무대로 삼은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작품이다.요즘 국내외적으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어떨 땐 어지러운 세상 속에 수동적으로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 같아 무기력한 생각이 든다. 근시안적인 욕망에만 사로잡혀 옹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든다.“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커지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하게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밤하늘에 가득한 찬란한 별과, 내 마음속에 도덕률이 그것이다.” -임마누엘 칸트가슴이 답답할 땐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싶다. 그런데 미세먼지도 많고 밤이 밝아 별이 잘 안 보인다. 할 수 없다. 별 대신 별 사이를 오가는 꿈을 꾸는 소설이라도 읽어야지. 그런 심정으로 큰 기대 없이 집어든 소설인데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사고의 틀이 온 태양계와 지구의 역사라는 거대한 시공간으로 확장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멋진 SF 소설 한 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