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인물통찰 -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 TV사극이 인기를 끌면서 전에 없던 우려할 만한 경향이 생겼습니다. 상상력이란 이름으로 겁없는 역사왜곡이 이루어지는 현실 말입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야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만 명백한 사실관계마저 뒤집거나 꼬아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 매우 개탄스럽습니다. 좀 심하게 애기하면 최근 사극의 역사왜곡은 거의 범죄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극을 보고 있는 많은 시청자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사기를 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했을 때 "사극"은 그 존재가치를 가집니다. "사극"을 쓴다면서 사실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 쓸 바엔 차라리 판타지를 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사극 혹은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허용된 '상상력'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사실관계에 기초한 것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왜곡을 일삼는 사극작가들에게 꼭 보여주고픈 책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어떤 식으로 역사에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사극이 늘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역사"라는 학문이 일반인들에게 접근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분야여서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역사"란 일반인들이 공부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사료가 대중적으로 공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공개돼 있는 사료도 접근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1차 사료인 기본역사서 한 권 사려고 해도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웬만한 도서관엔 책이 없는 경우도 많고요. 설령 그런 사료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 역사해석을 해야할 지 막막합니다. 자연 일반인들은 역사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아쉬움을 역사소설이나 사극으로 달래는 정도죠. 그런데 그 역사소설이나 사극이 왜곡되었다면 이게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인물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색다른 평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상식"을 깨트립니다. 물론 나름대로 근거가 있습니다. 18명이라는 많은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논거가 치밀하진 않습니다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엔 충분합니다. 철저하게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재미있고 유익한 책입니다. 역사에 대한 흥미를 갖고 더 나아가 역사를 직접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에 딱 좋은 책입니다. 역사는 사실왜곡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쉽고 재미있으며 참신한 책이지만 상식을 깨트리고자 하는 의도가 너무 지나쳐 무리한 해석을 시도하는 부분은 옥의 티입니다. 이성계가 여진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겠지만 고려인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부분을 거의 여진족인 것처럼 결론짓는 대목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강감찬이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세력균형을 가져오긴 했지만 자신의 의지로 그런 구도를 의도한 건 아니라는 점에서 강감찬을 한류스타로까지 끌어올리자는 주장도 좀 많이 나간 대목입니다. 이황이나 김상헌에 대한 해석은 그들이 처한 정치구도를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상당히 객관성을 잃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퇴계가 정치를 거부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퇴계가 관계를 들락날락거린 게 당시 소외된 영남사림이었기 때문임을 슬쩍 넘어가는 부분은 다소 감정적으로 보입니다. 김상헌에 대한 평가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더 잘 나와있죠. 아무튼 상식을 깨트리는 다양한 시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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