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포핀스 - Mary Popp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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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달을 맞아 생각난 영화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날이면 TV에서 항상 줄리 앤드류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어린이날 단골 영화 메뉴였거든요.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도 좋지만 "메리 포핀스"도 줄리 앤드류스의 매력이 돋보이는 가족영화로 손색이 없는 걸작 뮤지컬입니다. 아이들은 메리 포핀스를 더 좋아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디오 가게에 가면 어린이 영화로 나와 있으니 어린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온 가족이 함께 보길 권해 봅니다.

 이야기는 1900년대 초, 영국의 런런이 무대입니다. 은행가인 아빠 뱅크스씨(데이비드 톰린스)와 여권운동가 뱅크스 부인(글리니스 존스)의 개구장이 아이들 마이클(매튜 가버)과 제인(카렌 도트리스)은 아빠.엄마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아빠.엄마가 자신의 일로 바빠서 함께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모가 올 때 마다 심통을 부려 쫓아내 버립니다.

 뱅크스씨는 새로운 보모를 구해주기로 하고, 광고를 내는데, 아이들은 '약간의 친절함'과 '상상력'을 가진 보모를 구한다는 문구를 첨가합니다. 어쨌든 동풍 속에서 박쥐우산을 들고 하늘을 날아온 메리 포핀스(줄리 앤드류스)는 그 신비로움으로 단번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뱅크스가의 보모로 취직합니다.

 새로 온 보모 메리 포핀스는 아이들이 바라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어떤 일이든지 신비한 마술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휴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가서 남자친구 버트(딕 반 다이크)의 그림 속에 모두 함께 들어가 즐거운 한때를 보냅니다.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의 1964년작인 이 영화는 당시로선 최첨단의 특수촬영 기법을 보여준 디즈니의 가족용 영화였습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영화로 동화적인 영화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줄리 앤드류스의 헐리우드 데뷔작으로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햅번을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주옥 같은 음악들 중 "침침체리"는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줄리 앤드류스와 딕 반 다이크의 만화같은 표정과 춤은 언제 봐도 즐겁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보고 즐기기에 이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없지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메리 포핀스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주문 같은 단어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가 나옵니다.

 어떤 뜻이 있는 단어가 아니고 기분이 우울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이 단어를 외우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일이 잘 풀리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동안 아이들과 외우고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들도 기분이 우울하고 일이 잘 안 풀려 괴로울 때, 세상사는 재미가 없을 때, 몸이나 마음에 활기가 없을 때 큰 소리로 빠르게 몇 번 따라해 보십시오.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

 분명 기분이 좋아지셨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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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오르페 - Orfeu Negr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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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는 유달리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립니다. 오르페우스는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남자죠. 그가 노래 부르면 독사도 치켜 들었던 머리를 숙이고 맺혀있던 봉오리는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아버지 태양의 신 아폴론에게서 수금(竪琴) 타는 법을 배웠는데 그의 아름다운 수금 연주와 목소리는 짐승들과 숲속의 나무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이아손의 아르고선 원정 때 오르페우스는 마녀 세이렌의 유혹을 수금과 노래로 뿌리쳤으며, 또한 콜키스의 용을 잠들게 하고 성난 파도를 진정시켰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산책 도중에 목부(牧夫) 아리스타이우스에게 쫓기다 독사에게 물려 죽자,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는데 그가 음악으로 지옥을 지키는 개 케르베루스를 비롯하여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키자, 지옥의 신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지상으로 나갈 때까지 절대로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뻐하며 아내를 데리고 지상을 향해 서둘러 가던 오르페우스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고 유혹에 못이겨 뒤를 돌아다보았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아내를 너무나 그리워한 오르페우스는 그 뒤 모든 여자들의 구애를 계속 거절하다가, 트라키아 여자들에게 원한을 사게 되어 여덟 갈래로 찢겨 헤브루스강에 내던져졌다고 합니다. 그의 머리와 수금은 강을 떠내려가다 레스보스섬에 닿았고, 섬주민들은 이것을 정중하게 장사지냈다고 하지요. 오르페우스의 묘에서는 종종 수금연주가 들렸다고 하며, 레스보스섬은 이 전설에서 유래하여 서정시로 유명해졌습니다. 뒤에 오르페우스의 수금은 아폴론과 뮤즈들의 요청으로 다시 하늘로 옮겨져 별자리가 되었고, 오르페우스의 혼은 영원한 낙원으로 인도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 마르셀 카뮈의 "흑인 오르페"는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를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 되살려 낸 걸작입니다. 카니발이 한창인 리우 데 자네이루에 시골처녀 유리디스(에우리디케:마르페사 도운)가 사촌인 세라피나를 찾아 옵니다. 유리디스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끌려 언덕을 오르는데 그 노래는 마을의 잘 생긴 전차운전사 오르페(브레노 멜로)가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르페에겐 이미 약혼녀 미라가 있습니다. 한편 유리디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신 가면을 쓴 사람에게 쫓기는데 사촌 세라피나의 옷을 대신 입고 삼바 축제에 참가 합니다. 오르페와 유리디스는 정열적인 삼바에 흠뻑 젖어드는데 질투에 불타는 미라가 둘 사이에 끼어 듭니다. 그 사이 오르페가 잠시 한 눈을 판 순간 가면을 쓴 사내는 유리디스를 쫓습니다. 두려움에 도망치던 유리디스는 전차차고의 막다른 곳으로 몰리고 담을 뛰어 넘기 위해 전기선을 잡는 순간 마침 오르페가 전기를 넣어 유리디스는 죽고 맙니다.
 오르페는 유리디스의 시체를 병원에 누이고 무당을 찾아 갑니다. 거기서 오르페는 노파의 무술(巫術)을 빌어 유리디스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제정신이 아닌 오르페는 감격합니다. 날이 새자 연모의 정에 못이겨 오르페는 그녀의 시체를 안고 마을로 돌아옵니다. 그 모습을 본 미라가 걷잡을 수 없는 질투로 이성을 잃고 오르페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무녀들과 함께 그에게 돌팔매질을 합니다.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 오르페. 결국 그는 유리디스를 안은 채 벼랑으로 떨어집니다. 바닷가 열대 식물 위에 시든 꽃처럼 포개진 두 개의 시체. 그 아름답고도 슬픈 화면에 아침 놀이 타는 듯 합니다. 다음 날 소년들은 지난 일은 까마득히 잊은 듯이 오르페가 두고 간 기타 반주에 맞춰 천진스레 춤을 춥니다. 오르페는 갔지만 리우의 태양은 여전히 바닷가 가난한 흑인 마을에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로선 비교적 생소한 브라질을 배경으로 신화 속 사랑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이 영화는 "보사노바"라는 음악을 전세계에 알린 것으로도 유명하죠. 그 해 칸느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석권했던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토속적인 화면 속에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제가 지식이 짧아 그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떠나 그냥 보아도 애절하고 아름다운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화면도 아름답고 카메라는 역동적입니다. 음악도 매우 유명한데 찾아서 올릴려고 했더니 잘 안 되네요. 아쉽지만 영화를 꼭 구해 보시라고 권할 수 밖에 없네요. 오래 된 영화지만 지금 보아도 그 감동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좋은 영화이니 꼭 기억했다가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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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 - Porco Ross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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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저를 가끔 R.P 라고 부릅니다. Red Pig의 약자입니다. 집에 있을 때 소매가 늘어진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밖에서는 입고 다니기 창피한데 그냥 편해서 집에서 잘 입는 옷이 있습니다. 그걸 입고 낮잠 자다 얻은 별명입니다. 빨간돼지가 자고 있는 줄 알았다나요.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 제목을 보는 순간 '아, 이거 나를 위한 영화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때는 내용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나니 정말 나를 위한 영화 맞더군요. 혹시라도 "똘이장군"에 나왔던 그 돼지를 연상하신 분들은 오해를 푸시기 바랍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과 같은 "산소결핍의 중년남성"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유쾌한 작품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과 달리 "환경" 이나 "인간"에 대한 무거운 주제의식 없이 오로지 상쾌한 자연과 낭만적인 남성판타지를 위해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제작에 들어 가기 전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음과 같은 결심을 적어놓고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상과 업무에 지칠 대로 지친 비즈니스맨들... 산소 결핍으로 인해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 그것이 바로 <붉은 돼지>가 되어야 한다. 소년과 소녀는 물론, 주부까지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지쳐 뇌세포가 두부가 되어버린 중년 남성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인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즐겁고 유쾌하지만 야단법석은 아니며 다이내믹하지만 파괴적이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가득하지만 육체의 욕망은 쓸데없다. 긍지와 자유로 가득 차 있지만 스토리는 단순하게, 등장 인물들의 동기는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남성들은 모두 즐겁고 명랑하고 유쾌하다. 여성들은 매력이 넘치고, 인생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지극히 밝고 명랑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으로 그려져야 한다. 이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한다."

 이 영화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자연이 나오고 시원한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 다니는 비행기가 나오고 착한 악당들과 사랑스런 여성들이 나옵니다. 물론 히사이시 조의 아름다운 음악도 빼놓을 수 없죠.

 내용은 단순합니다만 흰구름이 둥실 뜬 하늘을 배경으로 통쾌하다 할 만큼 시원하게 날아 다니는 비행기들을 보노라면 스트레스가 확 풀립니다. 주인공 "붉은돼지"가 하도 멋있게 나와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난 다음부턴 아내가 더 이상 저를 R.P라고 놀리지 않습니다.

 돼지의 모습을 한 주인공 포르코는 모습은 비록 배가 나오고 귀가 처진 돼지일망정 매력 넘치는 남자로 나옵니다. 중년남성의 매력은 육체적인 것에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만약 자신이 아내나 자식들에게 볼품없는 몸매와 무기력한 모습으로 놀림감이 되고 있는 중년남성이라고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이 애니메이션을 보시고 산소결핍의 삶에 산소를 한껏 충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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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울의 여름 - Season in the Su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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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많이 더워졌습니다. 나뭇잎들이 짓푸르고 무성해졌습니다.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자녀들 두고 어른들끼리만 한 잔 하는 건 좋지 않죠.

 그래서 오늘은 시원한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애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영화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보리울의 여름"은 시원한 녹색빛 영화입니다. 화면 속에서 선선한 산들바람도 불어 오고 시원한 소나기도 내립니다. 이 영화는 요즘 세상에 보기 어려운 예쁘고 착한 영화입니다. 블록버스터나 코믹, 액션 등 짜릿한 자극을 기대하신 분은 여기까지 읽고 그만 읽으셔도 좋습니다.

 한적한 시골마을 보리울에 6년전 스님이 돼 버린 아빠를 찾아 온 초등학교 6학년 형우(곽정욱)와 갓 서품을 받고 보리울성당 주임신부로 온 김신부(차인표)가 함께 버스를 타고 옵니다.

 형우는 스님 같지 않은 스님아빠 우남(박영규)을 만나 반갑기 보다는 서먹하기만 합니다. 6년만에 본 아들에게 미안한 우남은 차마 부자간 상봉의 정을 제대로 나누지 못합니다.

 김신부는 의욕에 가득 차 있지만 하는 일마다 서툴러서 깐깐한 원장수녀(장미희)와 부딪히기도 하고 반항적인 성당아이들(고아)에게 얕보이기도 합니다. 젊은 수녀인 바실라 수녀(신애)만이 김신부를 위로합니다.

 자칭 땡초인 우남의 넉살 좋은 인사로 김신부와 우남은 친해지고 가끔 막걸리도 한 사발씩 나눠 마시는 사이가 됩니다.

 보리울의 여자 축구귀신 동숙(배종은)은 남자애들에게도 지지 않는 실력과 자존심을 가진 아이지만 보리울 아이들을 모아 읍내 축구부애들에 도전한 축구시합에서 번번이 지고 화가 나 있습니다. 동숙은 다방면에 아는 것이 많은 우남이 축구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는 것을 보고 감독이 돼 줄 것을 요청합니다. 흔쾌히 받아 들인 우남의 지도로 아이들의 실력은 날로 발전합니다.

 한편, 고아라는 처지 때문에 매사 반항적인 태수(김봉주)는 내심 동숙을 인정하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함께 축구를 하자는 동숙의 제의를 거절합니다. 결국 동숙은 태수의 자존심을 자극해 보리울 아이들과 성당 아이들의 축구시합을 가집니다. 축구 공 하나 없이 시합에 나갔던 성당 아이들은 비참하게 패하고 축구공을 사기 위해 빈병을 모읍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남의 빈병박스를 훔쳐 파출소에 잡혀 가고 맙니다.

 평소 태수의 반항에 곤혹스러워 하던 김신부는 축구공을 사서 주고 직접 아이들의 코치가 됩니다. 사실 김신부도 한 때 공깨나 찼던 사람입니다. 마침내 보리울 아이들과 성당 아이들의 재시합이 열립니다. 빗속에 치러진 수중전에서 놀랄 만큼 발전한 성당팀의 분전으로 경기를 비기게 되고 두 팀은 더 큰 적인 읍내 축구부 타도를 목표로 한 팀을 만듭니다. 우남이 감독이 되고 김신부는 코치가 되어 온 마을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축구 연습을 합니다.

 마침내 보리울 소년 축구단과 읍내 초등학교 축구부의 시합이 열립니다. 평소 깐깐하던 원장수녀님까지 참가한 응원단과 함께 경운기를 타고 행진하는 보리울 소년축구단, 과연 도내 4강에도 들었다는 축구부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이 영화, 참 특이한 영화입니다. 이른바 상업적인 공식은 다 피해 갔습니다. 이런 영화가 제작된 사실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진한 갈등도 반전도 없이 말 그대로 착하고 예쁘게만 갔습니다. 그렇다고 유치하고 저급하다는 건 아닙니다. 뻔한 이야기라 밋밋한 듯 하지만 섬세한 삶의 묘사가 보는 내내 마음을 유쾌하게 합니다.

 어깨 힘을 뺀 배우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다른 영화와 달리 시종 웃는 얼굴로 편하게 다가오는 차인표의 연기도 좋고 땡초 같지만 깨달음의 경지를 언듯언듯 보여주는 박영규의 연기도 좋습니다. 겉으론 깐깐해도 드라마를 보며 눈물짓는 소녀 같은 마음의 소유자인 원장수녀역의 장미희도 보기 좋았고 맑고 깨끗한 바실라 수녀의 신애도 예뻤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지에서 바로 섭외해 출연 시켰다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이 좋았습니다.

 이 영화는 마당에 모기불 피워 놓고 평상에 앉아 이웃들과 수박이라도 깨 먹으며 보면 더할나위 없을 영화입니다. 아, 어른들을 위해서 파전에 시원한 막걸리도 잊으면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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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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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서 반값 세일을 하더군요. 전부터 광고를 많이 봐 온데다 아름다운 사진에 마음이 끌려 덥석 샀습니다. 결과적으로 완전 속았습니다. 한마디로 이 할머니 강박증 환자입니다. 뭐 자연 속에서 동화처럼 살고 싶은 한 사람의 일생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자 자유겠지요. 하지만 이런 사람의 삶에 대중이 열광할 정도인지는 의문입니다.
 타샤라는 분은 제가 보기에 약간 정신병자 같습니다. 그냥 자연이 좋아 자연 속에 사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특정 시대의 의식주 이미지에 집착하는 경우거든요. 헬렌.스콧 니어링처럼 나름의 철학을 갖고 현대인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분은 그저 마음이 동화 속에 갇혀 있어서 실제 삶도 동화처럼 살고 있는 괴짜일 뿐입니다. 그의 삶이 현대인에게 별로 위로가 되지도 않으며 그런 삶을 살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정 시대의 이미지에 빠져 시대를 망각하고 산 인생이 성공적인지도 의문스럽습니다. 물론 자신은 만족하고 살았겠지만 가족들에겐 고통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 남편이 타샤의 삶의 방식에 견디다 못해 이혼하고 떠나 버렸다고 하죠. 자식들이야 어쩔 수 없이 엄마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사진이 아름답다고 해서 꼭 그 삶의 내용이 아름다운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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