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
윌리엄 알렉산더 지음, 황정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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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타샤의 집"이란 책을 읽었다. 동화를 그리는 타샤 튜더 할머니가 고풍스러운 집에서 정원도 가꾸고 바구니도 만들고, 옛날식으로 음식도 만들어 먹고 하는 내용이었는데, 타샤 할머니는 모든 일에 어찌나 능숙하신지, 타샤 할머니가 하는 모든 일들은 너무 쉬워 보이고,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에,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의 윌리엄은 작은 토마토 밭을 가꾼 경험밖에 없지만, 멋진 정원을 갖고 싶은게 꿈인 사람이다. 우연히 경사가 진 넓은 공터를 갖고 있는 집을 사게 된 윌리엄은 이 넓은 공터를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 (내가 보기에는 가축만 없다 뿐이지 농장 같다.) 동분서주 하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 아니다.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데다, 전형적인 사무직인 윌리엄은 약속을 제때 지키지 못하는 정원사와 티격태격하고, 척박한 토양과 몸싸움을 벌이며, 수확물을 탐내는 사슴, 우드척, 다람쥐와 사투에 가까운 싸움을 벌인다.

 단지 마트에서 파는 정체불명의 방법으로 가꾼 야채나 과일보단 믿음가고 안전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겠다는 열망하나로 시작한 일이 보기보다 녹녹치 않다는것을 깨달아간다. 

  윌리엄이 겪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들 자체도 참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윌리엄의 여유있는 유머도 내게 웃음을 안겨주었던 유쾌한 책이었다. 

  하긴 어떤 일을 하든 쉬운 일은 세상에 없다는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 힘든 일들을 중단 없이 계속 해 나갈 수 있는것은 그 일에대한 애정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는 죽어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벗어나고 싶다, 얘기해도 우리는 그런 일, 또는 직업을 한 두개는 갖고 있지 않나, 싶다. 정원 가꾸기 또한 윌리엄에겐 그런 일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흙을 갈아엎고, 퇴비를 주고 잡초를 뽑고, 씨앗을 심고, 약을 뿌리고, 수확물을 거두어 들여 그걸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행위. 그 자체의 모든 행동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지 정원을 가꾼다는 행위가 표면적으로는 고상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힘들다라는 얘기를 한다기 보다는, 나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정원가꾸기지만, 이 일을 사랑한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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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집 - 손으로 만드는 따뜻한 세상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리처드 브라운 사진 / 윌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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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예쁘고 자그마한 책을 생각할때면, 애정이 샘솟아서 어찌해야 될 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은 현실이 아니고, 동화속이나 마찬가지다.

 집은 아주 어린시절 동경하며 읽었던 예쁜 서양 동화책 속의 그림같은 오두막집이고, 빨강머리 앤이 입고 다녔을 법한 드레스를 입은 타샤 할머니가 머리에 예쁘게 수놓인 머릿수건을 둘러쓰고, 역시나 톡톡하게 잘 짜인 앞치마를 두르고선, 어느날은 나무를 잘라다 얇고 가늘게 켜서 바구니를 짜고, 허브를 말리고, 염소젖을 짜고, 비누와 양초를 만들고 천을 짜고, 장작 스토브에 요리를 하고, 병조림을 만들고, 레이스를 만들어 드레스에 달고, 인형과 장난감을 만들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고, 그 돈을 사용해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 사용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노동으로 바로 필요한 물품을 얻었지만, 지금은 돈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필요한 물품을 얻는데는 시간이 개입하고, 그만큼 비용은 더 올라가는것 같다. 물론 이점도 많을 것이다. 반대로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이 더 저렴해지고, 좀 더 복잡한 과정이 드는 물건들도 쉽게 획득할 수 있고, 그로인해 특정한 기술들은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과잉이나 집적은 장점이고 단점이고를 살필 여유를 갖지 못하고 반대편에 있는 것들을 버리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잃어 버리고, 어느 정도의 생활의 여유를 회복한 후에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갖게 되는것 같다.

 타샤 할머니의 삶이 어느순간 부각되어 각광받는 이유가 여기 있는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비록 그렇게 산다는게 불가능하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겠지만, 타샤 할머니의 삶을 보고선 분명 무한한 향수를 느낄 것이다. 더구나, 서양 동화속에 푹 빠져 살았던 우리 세대들은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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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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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이라든지, "정상"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 말고도 적절하고,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균형잡힌 상태를 표현하는 여러가지 단어가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단어들이 저 정도 뿐이지. 그러니까 여기 나온 얘기들은 모두 저 단어들과 반대쪽에 있는 상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과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네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설명되어진다. 첫째는 능력이나 감각의 상실, 다른 또 하나는 과잉, 그리고 이행(전이) 마지막으로 단순함. 각각의 분류에 속하는 얘기들은 내게는 이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낯 선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과는 별도의 이야기 같지만, 사람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방식은 최대한 자신이 알고있는 범위 안에서, 그 모든 지식들을 활용해서 자기 나름대로 조직화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이야기가 있고, 또 내가 아는 한에서는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 각 개인을 구별해 내지 못한다는 P라는 음악선생의 얘기를 듣고는 처음 외국인의 얼굴을 봤을때,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했던 내 어릴적 경험이 떠 올랐다. 하지만, 그 밖에 내 몸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라던지, 내 왼쪽 다리에 붙어 있는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시체의 다리 같다는 기분, 또는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들, 내가 개처럼 갑자기 세상 모든 냄새들이 뚜렷해지는 느낌, 단 하나만 드러나는 특출난 재능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들은 단순한 신경이상에 의한 정신이상 증세 이상의 어떤것을 내겐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두뇌의 신비에 대한 경이로움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영혼의 존재에 대한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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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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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이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작가의 즉흥적인 감흥의 산물일 수도 있고, 오랜시간 고민해 온 구상의 하나일 수도 있다. 나는 우연챦게 다른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아주 유명한(?) "고래"라는 장편소설 덕분에 이 책을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심지어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까지도 이 책이 단편집이라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도 못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단편을 잘 읽지 않는 나는, 이 책이 단편집이란것을 알았다면 이 책을 팔에 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연유로 인하여 나는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게 되었다.

[프랭크와 나]는 익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 진다. 소설처럼(소설 맞긴 하지만) 어이없이 거대해지는 사건이 전화통화로만 전달되어지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소식을 전해듣는 이가, 가까스로 수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하며 전전긍긍하며 사는 아줌마라는 것도 그렇고, 갈수록 스토리가 복잡하고 거대하게 얽혀 가는 것도 웃기다. 책 끝장에 평론가분이 표현한대로 부조리하다는 느낌.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책 제목인 탓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은 복선을 깨닫고 마지막 반전을 미리 눈치 챘다고는 하지만, 둔감한 나는 전혀 몰랐다가 마지막 반전을 보고선 그야말로 무릎을 탁 쳤다.

[세일링]과 [자동차 없는 인생], 그리고 [농장의 일요일]은 잘 모르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또는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그저 내겐 어떤 이름 모를 상실감을 줘서, 왠지 쓸쓸해지게 만든다.

[13홀]은 성장 소설과 같은 이야기 같으면서, 어린시절의 인상깊은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것 같다.

[더 멋진 인생을 위하여]는 "더 멋진 인생을 위하여" 버렸던 과거가 어느 순간 기시감처럼 나타나고, 그 과거에 자신이 했던 선택들에 대한 후회를 보여준다. 정말 과거에 단골로 드나들었던 어느 모텔과 똑 같은 모텔에 묵게 되면서.

[숟가락아, 구부러져라]는 왠지 허무하다. 주인공은 숟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서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숟가락이 구부러졌어도 자신의 인생은 현재처럼 별 볼일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숟가락 구부리기 기술을 사람 많은 곳에서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갖는 것은 그 목표마저 버린다면 그 사람에게는 삶의 이유가 전혀 없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있으나마나한 것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니까.

[비행기]에서의 이야기들은 마구 뒤섞인다. 방송작가인 주인공의 기억과 타인들의 기억은 엇갈린다.  "-그건 엄마가 쓴 드라마에 나오는 가정부잖아. 엄만 이제 드라마하고 현실도 구별 못하는 거 아냐?"하는 딸의 말처럼, 기억들은 엇갈린다. 그리고 주인공의 젊은 시절과 너무나도 똑같은 삶을 산 영문학과 동기의 자살은 주인공의 삶처럼 느껴져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십세]는 젊은 시절의 무위와 어설픈 사랑이 오롯이 느껴진다.

이 책의 마지막 자을 덮으며, 알알이 꽉 찬 이 이야기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 하나하나의 느낌은 쓸쓸했지만, 그 이야기의 끝맺음은 왠지 발을 헛딧은 것처럼 휘청거렸다. 잘 나가다가 마지막 단추구멍만 크기가 작아 마지막은 잠글 수 없다거나, 모두 동일한데 마지막 하나만 전혀 다른 모양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장에 글을 썼던 평론가가 천명관 작가에게 "이단아"란 명칭을 갖다 붙인건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쨋든, 이 이야기들을 읽고, 무엇인가 의미를 찾아내려 하기 이전에 이 이야기들은 무척 재미있다는것만은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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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의 세계 - 게으름뱅이와 카우치포테이토로 살아가기
이본느 하우브리히 지음, 이영희 옮김 / 넥서스BOOKS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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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되면 나와 신랑은 새벽녘에 잠 들어, 다음날이면 오전은 모두 넘기고 일어나기 일쑤이다. 이 생활은 결혼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습관인데, 시어머님은 이게 무척이나 못 마땅하신 모양이다. 젊은얘들이 주말이면 좋은거 보러, 좋은거 먹으러 갈 생각도 할 줄 모르신다고 거듭 핀잔을 주신다. 하지만 우리 둘은 쉬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 떨며 어딘가로 가거나 무엇을 하는것보단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무언가가 하고 싶으면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고 싶은대로 하는게 좋은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그런 핀잔이 듣기는 싫지만 그 생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핀잔을 들을때마다 주눅이 드는 심리 상태는 어쩔 수가 없다. 우리가 너무 게으른가? 이러다가 베짱이마냥 발전도 없이 어느 순가 정리 해고 당하고 불우한 노후를 보내는게 아닌가? 하는 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 가기도 한다.

지금은 주위의 강건한 권유와, 자발적인 선택으로 전업 주부가 된지 2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이 시점에 이 책을 만난건 절묘한 우연이 아닌가 싶어 가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2년여간을(그 전 회사까지 포함하면 8년여간) 밤 낮없이, 또 평일 주말 구분없이 일해 왔던 나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처음 쉬게 된 한 달은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아무 생각 없이 잠도 많이 자고, 뒹굴 거리기도 많이 하고, 간간히 친구들, 가족들과 놀러도 많이 가고, 잘 지냈지만, 두달째 접어들자 일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라도 열심히 해야 되지 않나 싶은 불안감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이 나타난 것이다. 게으른 생활을, 아니 느긋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라고. 절대 죄책감 느낄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더 삶의 질을 좋게 해 주는 습관이라고 말하는 책이.

물론,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저자의 의도는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있는 일도 던져 버리고 소파 위에서 뒹굴 거리자는 것은 노숙자가 되라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얘기일테다. 그것보다는 너무 아둥 바둥 거리며 살지 말고, 여유가 생길땐 여유를 즐길 줄 알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갖고, 유행에 휩쓸려 원치도 않고 각자의 성향에도 맞지 않은 여행이나 운동등으로 소중한 여가시간을 날려 버리지 말자라고 하는게 저자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게 소파위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고 내 깜냥으로는 짐작된다.

다른 얘기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전 "월-E"라는 영화에서, 인류는 모든 편의를 봐 주는 로봇의 덕분으로 카우치 비슷하게 생긴 이동수단에 드러누워 이동도 하고, 수영장도 가고, 대화도 하고 했던 장면들이 생각난다. 절대 일어날 일이 없는 인류의 몸매는 두리뭉실하고 팔과 다리는 지극히 짧았다. 우습긴 하지만, 그렇게 드러누워서 지내는게 아마 보편적인 사람들의 궁극적인 바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짧게 했었다.

이 책을 읽고 현재 내 생활에 조바심을 느끼던 난 조금은 여유 있는 마음을 되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일 단위로 세웠던 계획을 난 조금씩 미루고 있다. 급하지 않은 일이면, 하루 건너, 하루는 쉬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항상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배워왔던 내게 게으른 생활이 책 한 권으로 완전 유쾌해 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무위에 대한 죄책감은 마음 한구석에 얌전히 잠 들어 있다.

하지만, 조바심까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고 할까. 내 마음이 편안함을 원할때 푹 쉬며 게으름을 부리고, 어느 순간 열정적이 삶이 필요할때, 다시 열정을 꺼내 들면 돼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여유 있는 마음이 생겨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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