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의 세계 - 게으름뱅이와 카우치포테이토로 살아가기
이본느 하우브리히 지음, 이영희 옮김 / 넥서스BOOKS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주말이 되면 나와 신랑은 새벽녘에 잠 들어, 다음날이면 오전은 모두 넘기고 일어나기 일쑤이다. 이 생활은 결혼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습관인데, 시어머님은 이게 무척이나 못 마땅하신 모양이다. 젊은얘들이 주말이면 좋은거 보러, 좋은거 먹으러 갈 생각도 할 줄 모르신다고 거듭 핀잔을 주신다. 하지만 우리 둘은 쉬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 떨며 어딘가로 가거나 무엇을 하는것보단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무언가가 하고 싶으면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고 싶은대로 하는게 좋은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그런 핀잔이 듣기는 싫지만 그 생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핀잔을 들을때마다 주눅이 드는 심리 상태는 어쩔 수가 없다. 우리가 너무 게으른가? 이러다가 베짱이마냥 발전도 없이 어느 순가 정리 해고 당하고 불우한 노후를 보내는게 아닌가? 하는 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 가기도 한다.

지금은 주위의 강건한 권유와, 자발적인 선택으로 전업 주부가 된지 2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이 시점에 이 책을 만난건 절묘한 우연이 아닌가 싶어 가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2년여간을(그 전 회사까지 포함하면 8년여간) 밤 낮없이, 또 평일 주말 구분없이 일해 왔던 나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처음 쉬게 된 한 달은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아무 생각 없이 잠도 많이 자고, 뒹굴 거리기도 많이 하고, 간간히 친구들, 가족들과 놀러도 많이 가고, 잘 지냈지만, 두달째 접어들자 일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라도 열심히 해야 되지 않나 싶은 불안감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이 나타난 것이다. 게으른 생활을, 아니 느긋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라고. 절대 죄책감 느낄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더 삶의 질을 좋게 해 주는 습관이라고 말하는 책이.

물론,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저자의 의도는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있는 일도 던져 버리고 소파 위에서 뒹굴 거리자는 것은 노숙자가 되라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얘기일테다. 그것보다는 너무 아둥 바둥 거리며 살지 말고, 여유가 생길땐 여유를 즐길 줄 알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갖고, 유행에 휩쓸려 원치도 않고 각자의 성향에도 맞지 않은 여행이나 운동등으로 소중한 여가시간을 날려 버리지 말자라고 하는게 저자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게 소파위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고 내 깜냥으로는 짐작된다.

다른 얘기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전 "월-E"라는 영화에서, 인류는 모든 편의를 봐 주는 로봇의 덕분으로 카우치 비슷하게 생긴 이동수단에 드러누워 이동도 하고, 수영장도 가고, 대화도 하고 했던 장면들이 생각난다. 절대 일어날 일이 없는 인류의 몸매는 두리뭉실하고 팔과 다리는 지극히 짧았다. 우습긴 하지만, 그렇게 드러누워서 지내는게 아마 보편적인 사람들의 궁극적인 바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짧게 했었다.

이 책을 읽고 현재 내 생활에 조바심을 느끼던 난 조금은 여유 있는 마음을 되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일 단위로 세웠던 계획을 난 조금씩 미루고 있다. 급하지 않은 일이면, 하루 건너, 하루는 쉬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항상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배워왔던 내게 게으른 생활이 책 한 권으로 완전 유쾌해 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무위에 대한 죄책감은 마음 한구석에 얌전히 잠 들어 있다.

하지만, 조바심까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고 할까. 내 마음이 편안함을 원할때 푹 쉬며 게으름을 부리고, 어느 순간 열정적이 삶이 필요할때, 다시 열정을 꺼내 들면 돼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여유 있는 마음이 생겨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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