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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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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남들이 여행에 대해서 환상과 동경을 가지는데 반해, 난 그다지 여행을 동경하지 않는다. 기묘한 풍물을 보고,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는것이 신기하고 흥미롭지 않을리 없지마는, 몸이 게으른 탓인지 아니면 성격자체의 이상인지 여행은 나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일인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던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서 여행에대한 동경을 열렬히 갖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것은 아니다. 분명, 사람손에 길들여지지 않는(엄밀히 얘기하면 이런것도 아니지만) 자연속을 걷는다는것은, 쉽진 않은 일일것이고, 새로운것과도 많이 조우할 수 있을것이며, 알지못하기에 더욱 두려울 테지만, 그 모든 일을 겪고 난 후에는 정말 가슴 뿌듯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책은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듯하다. 충동적으로 이유를 만들어가며, 애팔레치아트레일 종주를 결심하는 작가의 모습. 막상 떠나기 며칠전 이런저런 어려움을 깨닫고 두려워하는 모습.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의 어리숙한 모습.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며 떠나는 험난한 여정. 중간중간 보상처럼 주어지는 행운들. 여행의 후유증.

아마, 이 여행이 잘 끝나고, 그걸 회고하는 내용이었다면, 그 감동은 덜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더욱더 맘에 와 닿았던 것은 결국은 트레일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에서였던거 같다. 완벽하지 못함이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날 생각도 갖지 못하고, 책을 붙잡고 앉아있던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일까??

어떤 이유였던간에, 완성되는 것만이 여행의 묘미는 아니라는 것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그들은 종주를 완성하진 못했지만, 트레일을 걷는 동안 너무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으로 충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빌의 친구 카츠에 대한 이야기. 어리석어 보이고,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것 같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도 정감이 가던 캐릭터.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난 여전히 길을 잃을지도, 야생동물로부터 위협을 받을지도 모르는 숲길을 내 몸의 절반만한 배낭을 지고 걷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이 느꼈다던 자연의 거대함과, 신비함과 아름다움, 그가 흘렸던 땀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한다면, 정말 어이없는 욕심이겠지,싶다. (하~ 생각해보니 이게 여행에 대한 동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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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별 기대없이 읽었는데 흥미롭고 좋더군요..
 
인연 - 반양장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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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은지 만 하루가 지난후에, 다시한번 서문을 읽는다. 그는 산호(珊瑚)와 진주(眞珠)를 소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산호와 진주는 너무나 깊은 바닷속에 있다. 파도는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그는 고작 조가비와 조약돌을 줍는다. 그가 직접 찾은 것들이기에 가엾기도 하고 가끔은 고운것 같기도 하다. 그는 산호와 진주를 소원하고 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단지 그는 그가 모은 조가비와 조약돌에게 '산호와 진주'란 이름을 지어준다.

난 무엇보다도 이 서문이 참 좋다.(그냥, 좋다가 아니고 '참 좋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의 수필들을 읽는 내내 '참 좋다'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어린아이 같은 철 없는 마음. 때론 성인군자같은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 때론 삶의 무게에 괴로워하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 그 모든게 여기 한권에 다 들어 있었던 듯하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는 마음속의 모진 마음들이 눈 녹듯이 다 녹는게 느껴졌다. 내가 느끼던 일상에서의 번뇌들이 한없이 보잘것 없게만 느껴졌다. 이런 마음만 가지고 산다면, 세상에 악독한 일이 일어날 틈이나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못된 마음을 오히려 우대하려 애썼던 위악적이고자 한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산호와 진주를 꿈꾸던 그는, 산호와 진주를 얻는거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주워 모은 조가비와 조약돌에게 산호와 진주란 이름을 지어준다 했다.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난 내가 주워 모은 조가비와 조약돌을 얼마나 무시하고, 부끄러워 했던가? 없으면, 아쉬워 하면서도 산호와 진주처럼 대해줄 생각은 못했다. 어차피 산호와 진주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인데도.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분명 잘생기진 않았을지라도, 아름다운 얼굴일 거라 상상이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들을 썼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만 하루가 지나면, 힘들기만 한 세상살이를 또 하루 겪고 나면, 혼탁한 마음을 비우기 위해, 난 이 책의 서문을 읽고 또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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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
리처드 부스 지음, 이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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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헌책방이란 곳을 가 본 적이 없는듯하다. 예전에는 흔한 곳이었을텐데, 나에게는 그런 곳을 들락거릴 기회가 없었다. 주변에 헌척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날 헌책방으로 인도해줄 지기도 없었다. 어느 순간, 헌책방이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알게 되었지만, 그러고서도 헌책방이란 곳을 가 볼 기회는 없었다. 그렇게 내게 별 고려 대상도 되지 않았던 헌책방에 대한 생각을 이 책은 새삼스레 환기시켜 주었다.

사실 이책은 헌책방마을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리처드 부스의 자서전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란 제목이 붙은 것은, 리처드 부스의 삶이 책(헌책방 마을)을 제외하고선 전혀 고려되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거다. 사실 '리처드 부스'란 인물은 그다지 평범한 경향의 사람은 아니었던거 같다. 제도권 안에서 어느정도 규칙을 준수하며, 몰개성적으로 별 특징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흔히들 아웃사이더 라고 말하는 사람의 종류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워낙에 생각하는 자체가 특이했기 때문에,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웨일스의 헤이온와이라는 시골 마을에 헌책방을 낼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아마도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면, 전혀 생각지도, 시도하지도 못 할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보기엔, 그의 시도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의 발로였던듯하지만, 그 시도는 또한 뜻하지 않았던 성과를 거두어 들였다. 그의 무모한듯해 보이는 시도를 시작으로 헤이온와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마을로 거듭 태어났으며, 대자본을 가지고 들어서는 대형마트들에 의해 점차 침식되어 시골마을의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을 헌책이라는 아이템을 가지고서 돌파해 나갈 수 있다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게 되었다.

'헌책의 새로운 정의를 아십니까? 대형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 물건, 그렇기 때문에 작은 마을의 희망이 되는 물건, 그게 바로 헌책입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겠다고 섣불리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이 책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나의 책읽기 성향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제목에서조차 '책'이 들어가는 책들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 책 또한 리뷰를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비록 읽는 시점이 그리 이르진 않았지만, 어쨋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조금은 씁쓸한 기분을 금할 수 없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 헌책방을 낼 생각을 하는 리처드 부스의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못해 무모해 보이기 까지 하고, 책 페이지 마다 가득한 그의 생각들은 정말 유머러스 하긴 하지만,(특히나 그가 헤이온와이의 왕으로 등극하면서, 만든 왕관이라던가, 망토 지휘봉등은 정말 우스꽝스러웠다. --; 더 황당했던건, 나중에 그걸 사람들이 인정한다는거. 세상은 정말 넓고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생각을 가졌다는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이 책 자체의 전체적인 느낌은 굉장히 질서없이 혼란스러웠던것 같다. 책의 내용 내용은, 그가 만났던 에피소드만을 잔뜩 나열만 해 놓은채, 일관성 없는 서술만이 계속 이어졌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지루했었던게 사실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영월에 책마을에 대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게 시도로만 끝날지,책마을이 생긴다면, 그건 분명 아름다운 마을이 되겠지만, 그 시도가 우리나라라는 장소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어느 모 프로그램에서 캠페인을 벌이듯이 독서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책 마을 아닌 책나라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비교적 책을 좋아하는 편인 사람으로서, 해본다.

'결국 세계는 한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말라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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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밀란 쿤데라 지음 / 청년사 / 199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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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책을 상당히 여러권 읽었던 듯 한데, 생각해 보면 각 책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질 않는다. 하지만, 느낌만은 항상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참 좋았었다.'라는 느낌. 그건 잊혀지지 않고 항상 남아서,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의 책이라면, 안심하고 집어들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나는 그 중에서도 <불멸>이라는 이 책을, 내가 그 동안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느날 우연히 한 노부인의 몸짓으로부터, 주인공 아녜스를 탄생시킨 화자의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가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하는 단계를 보여주려고 하는 듯 하다. 하지만 쿤데라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책장을 덮으면서 느낄 수 있다.

처음 아녜스를 연상시켰던 그 몸짓은, 마지막 아녜스의 동생 로라로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 몸짓은 또 로라를 떠나 또 그 누군가에게서 머물며, 쿤데라 같은 작가에게 아녜스 같은 인물을 상상해 내게 만들것이다.

난 이 곳에서 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돌고 도는 몸짓의 순환을 느낀다. 그리고 인간은 어째서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는가를 생각한다.(아마, 그 이유로 인해서 인간이 불멸을 더욱 바라는 것일는지도 모르지만.)

이 이야기는 어떻게든 끝을 맺지만, 난 이 이야기가 끝없이 순환하는 이야기인 것 처럼만 느껴진다. 산수 수업시간에 만들었던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점에서 시작해 그은 선이 반대편 방향으로 넘어가 버린듯하지만, 다시 시작한 선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몇 개의 에피소드 들이 등장한다. 불멸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

사실 이 소설에서 줄거리라는 것은 부수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것 같다. 쿤데라는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불멸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쓰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자칫 지루해 지기만 할 그 얘기를 흥미롭고 더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스토리라는 수단을 빌린게 아닌가 싶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이라는 이 소설 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했다. 사실 미숙한 나는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다 소화해 내지 못한것만 같다. 나의 지적 능력에 한계를 느끼며, 이 책을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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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체험 상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윤대석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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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접해본 적이 있었나?-하고 곰곰히 생각해 봤다. 그다지 내 삶에 크게 흔적을 남긴 기억이 없었던 듯 싶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본 적이 없는게 아니다.초등학생쯤이었을때,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몇일을 사이에 두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비교적 귀여워하던 강아지가 어느날 땅바닥에 나동그라져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기억들이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 않았던듯 하다. 별 감흥없이 기억만 나는걸 보면 말이다.

누구나 죽음에 대해서는 얼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죽고 싶다고 수없이 되뇌이는 사람들도 있을거고, 주변에 죽은 사람이 있어 그게 항상 신경쓰이는 일인 사람도 있을테고, 죽음이 궁금한 사람도 있을테고, 종교적인 이유로 죽음을 숭고히 여기는 사람도 있을테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어느 누구도 죽음이 어떤것인지 알지 못한다.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은 죽음은 숨이 멎어서 사람이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고....어쩌구 저쩌구 이런걸 말하려고 하는게 아니다.

죽음이란게 어떤 의미를 갖는건지, 죽은후 사람의 마음-지금도 그리고도 당분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을 나의 이 존재감이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인지(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인지, 아니면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또 다른 세계로 옮겨가게 되는 것인지) 그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

문득 언제가 누군가가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죽는게 나쁜건 아닌것 같아. 아직껏 죽으러 오지 말라고 말리러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쟎아??' 하지만 언젠가 부터 죽은후의 세계를 엿보고 왔다는 사람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죽음이 영원한 수수께끼였던 우리에게 그것은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이겠는가?

이 책은 그런 이야기이다. 죽은 세계를 엿보고 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단지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니라, 그 내용을 분석하고, 그게 정말 죽음의 세계를 방문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단지 어떤 생리학적 메커니즘에 의한 환각 비슷한 현상인지를 모든 가설을 검증해보고 살펴봄으로써 밝혀보려는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임사체험이라는것은 뇌가 일으키는 환각 비슷한 현상일거라는 쪽에 무게를 더 실어주는듯하다. 하지만, 어느쪽이 더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을 떠나서, 죽음의 문전에 가기 직전의 우리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건지를 한번 더 강조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결국은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이 중요한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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