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의 술자리.
어쩌다가 이야기는 주례 이야기로 옮겨갔다.

지도교수님의 20년 전 결혼식 주례는 요즘 뜨고 계시는 천주교계의 이단아 함세웅 신부님이었고, 자신의 15년 전 결혼식 주례는 그 유명한 김승훈 신부님이라는 다 알려진 이야기를 늦깎이 입학생인 한 선배는 자랑삼아 또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다.
"아! 저도 제 결혼식때 천주교계의 태두를 주례로 모실 수 있었는데, 그냥 평범한 분으로 했습니다"라고.

다들 궁금해서 누구냐고 묻는다.
"원래 그 신부님의 형이 저희 아버님 친구분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자주 뵈었고, 몇몇 가족들이 동반 여행갈 때 동행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답니다. 주일이면 숙소였던 콘도 방에서 그 신부님께서 직접 미사를 집전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교회법에 어긋나는건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신부님께 연락을 했으면 흔쾌히, 아주 흔쾌히 주례를 봐주셨을텐데..."

"아, 글쎄 누구냐고..."
"아, 네. 그 분은 박*(일명 빠콩) 신부님이십니다."

"(허걱)......"
"야,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 연구회 멤버들 주례는 완전 좌우 합작이었겠네... 큭큭"

유명하지만 많은 욕을 받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안다는 것은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주위 사람에게는 참 다정다감하다. 게다가 어찌나 어린 조카를 아끼시는지, 그 모습만 보면 참 좋다. 그러나 그 신부님께 사적 유감은 없지만, 객관적으로 엄청 싫어한다. 그래도 그 분을 싫어한다는 것이 혹시나 그 분의 형, 그러니까 아버님 친구분께 누가 되지는 않을까, 명색이 천주교 신자인데 하느님의 사제를 그리 미워해도 되나? 별별 소심한 생각이 다 든다.

그래도 미워하기로 했다. 91년 그의 활약상, 정국 반전의 주역임을 아는 나로서 어찌 그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결혼식을 안하면 안했지, 어떻게 그 분을 주례로 모실 수 있는가? 주례사 하다가 주사파 이야기 나오면 어쩌려고...

요즘 다시 스타가 되셨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엄청 욕을 한다. 그러나, 최소한 같이 욕하지는 않는다. 그게 나 나름대로의 행동 제약방식이다. 야, 나도 너무 이성적이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그때도 여전히 아무런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맨날 하는 그 소리, "내가 전향시킨 주사파 몇 명이나 돼.", "주사파 걔들 북한 김정일 지령받고 돈받았어."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절대로 앞에서 싫은 소리 못하겠다...  생김새가 무서워서 그렇냐고? 그럴 수도 있다. 어차피 깊이 있는 논쟁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깐?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래도 사적인 만남 아닌가? 앞으로 개인적 대면은 평생동안 없기를 간곡히 바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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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7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콩 신부님은 한때 무척 존경했던 신부님이에요.
좋아하던 사람이 이상하게 변한 모습 보면 인생이 무섭습니다.

노부후사 2004-10-2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콩 신부 정말 밥맛이에요. -ㄴ-;;
한때 가톨릭 신자였지만 지금은 그때 관두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슴다. 한국에서 종교를 갖는다는 건 신을 믿는 행위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예컨대 돈이라든지...

엔리꼬 2004-10-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아, 존경하실 정도였군요... 마태님도 말씀하셨지만 선민의식이 있는건지.. 끊임없이 언론에서 주목받고 싶어하는 듯한 인상을 받아요.
Epimetheus님 .. 음.. 종교인이 다 그렇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딜 가나 잘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으니깐요... 저도 가끔 성당가는 종교인이긴 하지만 여러 비뚤어진 모습에는 아주 불만이 많지요.
 

나에게 있어 신문보기는 인터넷 시대라는 지금까지도 꽤 중요한 버릇으로 남아있다. 신문의 잉크냄새만 맡아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퍼지는 알러지 환자도 있음을 TV에서 알았지만, 난 그 잉크 냄새를 즐기는 족속이다.

아침에 갓 발행된 신문을 읽지 못하면 하루종일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는 늦은 밤이든 며칠 지난 후가 되었든 모든 면을 뒤져본 후에야 신문을 버린다. 신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각종 미디어가 있어도, 우리 집에 배달된 신문의 모든 면을 손수 뒤지지 않으면 뭔가 할 일을 다 못 끝낸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강박증에 가까운 버릇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진 것이다.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국민학교 고학년때부터 신문을 읽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현재까지 부모님께서 받아보시는 신문은 c일보. 지금이야 그 신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그때야 그런 게 어디 있었나? 그때 신문은 세상과 통하는 흔치 않는 통로이자 지식의 보고였다.

일찍 일어나시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화장실을 가시면서 배달된 신문을 항상 가지고 들어 가셨고, 어느 정도 훑으신 다음에는 마루에 던져 놓으셨다. 늦게 일어난 우리들은 신문 쟁탈전을 벌이지만 결국은 스포츠 면을 비롯한 알짜배기 지면은 장남이 차지하고, 우리 남매는 재미가 떨어지는 나머지 부분부터 보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까지 우리 삼남매는 나눠진 신문을 각자 펼쳐놓고 쪼그려 앉아 읽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당시에는 헤드라인은 물론 기사의 많은 부분까지 한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하지만 스포츠면의 선수 이름까지 한글 표기 전혀 없는 한자였다. 프로야구에 심취했던 나로서는 김시진(金始眞)이니 김봉연(金奉淵)이니 윤동균(尹東均)이니 하는 지면에 실릴만한 선수들의 한자 이름을 읽어내야 했다.

다행히도 국민학교 때 천자문 서예를 배운 적이 있어서 한자에 나름대로 익숙했기에, 신문에 나오는 새로운 한자 읽기에도 재미를 붙였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반드시 부모님께 여쭤보면 정확한 답변을 해주셨으니 나의 한자실력은 쑥쑥 늘어났다. 지금도 이건 선동렬의 선(宣)자이지 의(宜)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유두열의 유(柳)씨와 테니스 선수 유진선의 유(兪)씨, 유남규의 유(劉)씨가 모두 다른 집안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신문의 덕이다. 대학시절, 시험기간에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내 답안지를 보여준 유일한 경험도 '한문' 과목 시간에 일어났으니, 그 신문에 크게 고마워해야 할까? 물론 당시 다른 신문을 구독했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겠지만..

c 일보의 풍부한 컨텐츠(당시엔 컨텐츠란 말은 없었지만)는 어린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단행본으로도 여러 권 편집되어 나왔던 꼭지 중 하나인 이** 코너를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시사 문제와 맞닿아 있는 토픽 선택과 그 토픽과 관련된 동서고금의 관련된 모든 자료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그 지식의 향연에 매혹되었다. 하루가 채 안되는 그 짧은 시간동안 한 주제에 대한 서적을 다 뒤지는가? 책을 뒤진다고 되는 일인지? 자료조사원이 몇 명씩은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후 그 코너의 제목 삽화가 펜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자료수집은 컴퓨터로 했다는 기사를 얼핏 보았고, 그래서 그 의문은 풀렸었다. (그런데 지금도 의문이다. 그 시절에 컴퓨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인터넷도 없었는데 말이지..)

당시 각종 지방신문들은 중앙신문인 c와는 말 그대로 게임이 되지 않았다. 중앙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빈약한 기사거리, 조악한 편집상태와 종이의 질, 별로 관심도 없는 지역 이야기(당시만 하더라도 애향심은 별로 없고, 서울로 뜰 생각만 했다)으로 도배한 지역 신문들과 비교하면 독보적 우위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87년 민주화의 광풍이 몰아쳤었고 89년 전교조가 기지개를 펴면서 우리 사회에 다른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지만, 입시에 매달린 범생이 고등학생에게 더이상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c일보를 바라보는 범생이의 눈은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89년 고3 여름, 1면엔 대문짝만하게 임수경의 북한 잠입, 탈출 소식을 전했고, 급기야 반공 애국청년 서림은 부르르 떨었다. "결국엔.... 그런데 이 새끼들이 미쳤나?". 그에 앞선 봄 무렵, 대학가요제로 유명한 '따라지 대학교(당시 부산에선 그렇게 불렀다)'에선 학생들이 선량한 전경을 불태워 죽였단다. "이 미친 놈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려나..."
c 일보의 논조와 일치되었던 그때의 그 상황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신문과 함께 했던 우리 삼남매. 국민학교때부터 허공에 한자를 쓰는 특이한 취미를 가졌고 바둑을 즐겨했던 장남은 우리 어머니 표현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과생으로 1등만 도맡아 했고, 매년 초 신춘문예에 큰 관심을 보이던 막내는 문예창작과로 진로를 정한다. 나? 나는 신문 잉크 중독증에 빠졌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렇게 나와 인연을 맺었던 신문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구독했던 신문과는 대척점에 있는 신문을 보기 시작한다. (시리즈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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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10-2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척점에 있는 신문이라... 그렇담...?

엔리꼬 2004-10-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탄을 기대하세요... 지금 구상중입니다... 왜이리 글 한편 쓰기가 힘이 들까요..

sooninara 2004-12-2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안에 2탄을 써주시지요^^
 

학력은 지역과 무관하다

비육우나 돼지를 사육한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저기에서 100마리를 사와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눠 따로따로 사육하기로 한다. 한쪽은 축사에 가두어 컴퓨터가 계산한 과학축산에 의존하며 성장호르몬 섞인 배합사료만 먹이고, 다른 한쪽은 가축의 본성에 내맡겨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흙을 파서 벌레를 잡아먹게 놔둔다면, 일정 시간 후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과학축산에 의존한 쪽은 값이 많이 나가도록 살이 붙었지만 그리 건강하지 못할 것이고 다른 한쪽은 체격은 보잘것없지만 튼튼할 것이다. 목장주는 살찐 쪽을 선호할 것이 틀림없다. 오직 돈을 위해서.

도시 어린이들이 시골 어린이보다 수학문제를 잘 푼다. 슈퍼와 문방구가 지천인 도시에서 계산이 빠른 것은 환경 탓이다. 도시 어린이들이 더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도시 어린이들은 들풀의 이름을 거의 모른다. 언제 애기똥풀 꽃이 피고 무당개구리는 알을 낳고 강낭콩을 언제 파종하는지, 청호반새가 어떻게 새끼를 치는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므로. 살아가는데 계산이 필요하지만 생태계의 질서는 몰라도 될까. 그렇지 않다. 감성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해 금방 지치고 만다.

히말라야 북쪽의 작은 민족 라다크에는 불행이라는 단어가 없다. 어휘가 짧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들은 불행이라는 의미를 알 필요가 없었다. 가난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모두 자기 집과 갈아입을 옷이 있고 서로 도와 나누며 자급자족했으므로 수입이 다를 리 없다. 생활수준이 한결같으니 비교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서구문물이 돈과 함께 밀려들어오면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육체노동을 천대하면서 불행을 배웠다.

최근 서울 시내의 일부 대학교에서 수시모집을 하면서 지역별로 차별했다는 의혹이 시민사회에서 강하게 일고 있다. 시골이나 지방도시는 물론 강남권과 강북권 고등학교 학생에 노골적인 차이를 두어 공정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일고, 참교육 학부모회와 전국교직원조합원 소속 교사들이 해당학교와 교육인적자원부 앞에 나와 연일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평준화 원칙을 위배했다는 주장인데, 강남권과 강북권 고등학생의 학력은 입시에 반영해야 할 정도로 분명한 차이가 있을까.

학생들을 무작위로 반으로 나눠 한 그룹은 수업 마치면 학원과 과외로 입시공부에 몰두하게 하고, 한 그룹은 친구들과 산과 들로 쏘다니며 우정을 쌓고 사회 구석구석의 자원활동으로 보람을 배운다고 하자. 입시 공부에 치중한 그룹의 성적이 단연 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성적이 뛰어난 그룹의 학력이 당연히 뛰어날까.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인데, 왜 문제의 대학들은 강남권 학생들을 집중 선발했을까. 그건 학생을 선발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사육으로 끌어올린 성적을 학력으로 판단한 천박성 때문이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일찍부터 강남권 고등학교로 옮겼다는 거 모르는바 아니다. 그런데, 아파트 값 올리며 일찍부터 학교를 옮긴 열성부모의 아이는 원래 학력이 높을까. 부모의 기대와 달리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어려서부터 남을 의식하는 부모의 천박한 욕심으로 일찍부터 사육된 아이가 강남으로 옮겼을 터이므로.

하루종일 실험에 몰두한 대학원생을 두고, 생각은 언제 하느냐고 교수가 핀잔을 주었다는데, 남이 정해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성적 올리기에 급급했던 고등학생들은 하인이나 로봇처럼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할지 몰라도 대학 진학 후 또는 사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는데 대단히 미숙하다. 한마디로 창의성이 부족하다. 남을 배려하는 일도 교과서에 의존하려 든다. 문제는 잘 풀지만 원리를 찾는데 실패하는 유학생들이 초반에 고전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생각 깊은 교육자라면 표피적인 성적에 의존하며 사육된 학생을 선발하는데 몰두하지 않아야 옳다. 다양한 지역에서 창의력 있는 학생을 공정하지만 유연하게 선발하는 편이 미래지향적이라고 본다. 차제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아침밥 차리는 엄마가 시리얼에 우유 부어 먹이는 엄마보다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냉정한 과학적 칼로리보다 눈에 비치는 엄마의 정성이 아이의 감성을 따뜻하게 그리고 창조력 있게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리얼을 보면 개 사료가 생각난다.
 
박병상
(요즘세상, 200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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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게임은 끝났다. 고교등급제 반대한다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마저 그랬다.(물론 다른 대안을 내놓으려 하긴 했지만)  고교등급제가 어디 논의거리가 되는가? 그러나, 의도한 것인지, 의도되지 않은 것인지는 몰라도 상황은 항상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결국, 이번 사건도 언론에 의해서 '고교평준화 반대' 에서 '사학의 자율성',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나아가 검은 속마음을 가진 못되먹은 몇몇 단체의 선동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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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일보 사설이다.

[사설]연세대 유감 표명 일리 있다
 
일부 단체가 제기한 고교등급제 적용 의혹을 받으면서 집중적인 공격대상이 되었던 연세대가 어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 대학은 “일부 단체가 강남 강북을 대립시키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양상으로 우리 학교의 입학정책을 단편적 자료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비난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는 이번 고교등급제 파문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번 사태는 몇몇 대학의 수시모집에서 강남지역 학생들에게 고교등급제를 적용해 우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전교조 등 일부 단체들이 압박하자 교육부는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반은 대학에 입학서류철을 요구했고, 면접을 담당한 교수명단까지 제출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그동안 일부 단체들은 외곽에서 연일 대학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헌법이 보장한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율권’을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학을 여론재판에 올려 욕보이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대학이 지닌 학생선발권에 관한 일이다. 일부 단체의 ‘선동’에 교육당국까지 가세한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연세대가 발표문에서 “일부 단체가 강남과 강북을 대립시켰다”고 주장한 것은 그들 단체의 ‘교묘한 의도’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수시모집에서 강남보다 훨씬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는 다른 지역의 특수목적고는 슬며시 빼놓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처럼 몰고 간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연세대가 “입학정책은 신뢰의 기반 위에 대학자율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천명한 것에 공감한다. 고교등급제 의혹은 곧 흑백이 가려지겠지만 어떤 구실로도 이번처럼 대학을 유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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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7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졸업을 축하합니다.

물론 00학번 모두가 졸업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압니다. 행정적인 착오가 없다면 내가 알아본 바로는, 정임, 해나, 주현, 은주, 선애, 선영, 가현, 덕귀, 자영, 혜정, 효현, 지영, 지선, 지현. 이렇게 열 네 명이 대학의 문을 나서더군요. 이름 하나하나를 타자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하나하나의 얼굴을 떠 올리게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었건, 공부를 가지고 씨름을 하였건, 아니면 교실에서나 복도에서 오가며 눈웃음만 주고 받았을 뿐이건... 이제까지 선생과 학생으로서 만난 밀도에 서로 차이는 있겠지만, 졸업하는 00학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는 지금 나의 애틋한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해준 것 없는 지도교수로서의 자괴감, 좀 더 성실하고 참될 수 있었어야 했던 교육사회학 선생으로서의 후회, 사회라는 새 땅으로 막막하게 나가도록 자네들을 내버려 둔 삶의 선배로서의 미안함...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은 어둡고 슬플뿐입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 그대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것을 크게 피워낼 수 없었던 내 게으름을 탓하면서...

잘 살기 바랍니다.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 모두 달리 생각하겠지만, 궁극에는 생각을 모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삶의 가치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우리는 미망 중에 헤매며 행복을 고민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우리를 주관하는 절대자께서 우리에게 행복의 답을 주는 데 인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상은 지금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의 문을 나서면서 성공보다 실패의 느낌을 가지고 나가도록 세상이 부추기고 있습니다. 취업이 되지 않았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적지 않은 도전이 실패로 끝나게 된 마당에 어느 누가 담담할 수 있겠으며, 어느 누가 쉽게 자신을 추스를 수 있겠습니까? 적지 않은 우리 친구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깨가 쳐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제자를 소위 경쟁력 있게 키우지 못한 선생 탓도 작지 않음을 인정하며 미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경쟁에서 이기고 성취를 맛보는 데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깨가 쳐졌을지 모르는 친구들을 위로하고자 애써 꾸며내는 말이 아닙니다. 졸업을 앞두었다는 심각한 계기를 이용하여 어쩌면 마지막으로 강의(?)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번 찬찬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시험을 치고 합격하여야, 직장을 얻어야, 삶을 채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널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역량과 손길을 기다리는 곳은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그 곳 모두 돈을 충분히 주고 사회적 위신을 충분히 주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곳들이 여러분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행복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새롭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결코 백수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진정 하지 않고는 못배길 일이 있다면, 실업이라는 말 같은 것은 무의미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버젓한 직장을 가지고 졸업할 수 있었더라면 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었으면 내 마음이 훨씬 가볍고 기쁠 것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다만, 좀 더 근본적으로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경쟁에서의 승리나 직업의 위신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서로 더 가르치고 배울 수 없었다는 사실이자 현실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부자와 권력자들이 가엾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가서 우리는 공부를(교육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실지로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디 지금 부딪치고 있는 어려움에 절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어쩌면 절망할 가치가 없을 부딪침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늘 자신의 고유함과 존재 의의를 잊지 말고 열과 성을 다하여 일상에 임하기 바랍니다.

어줍잖게 감상적으로, 평소에 제대로 열심히 가르치지 못한 죄의식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양으로, 제스추어를 쓰는 꼴이 되었습니다. 사실이 그러한 점도 있구요. 그러나 졸업하는 여러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여겨주기 바랍니다.

부디 잘 살기를... 그리고 가끔은 안부를 묻고, 계속해서 어렵고 힘든 일들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

2004년 2월 12일

강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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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된 글이지만, 알라딘 내 서재에 꼭 모셔두고 싶은 글...

아!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발끝마저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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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0-0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지만, 훌륭한 분들도 많군요. 글 너무 멋져요...
 

언제부터인가 자동차가 사람 위에 군림한다. 편리함과 시간의 소중함을 안겨주는 문명의 이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동차가 사람을 무시할 때는 화가 난다.

인도와 차도가 제대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작은 골목길.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왔다. 뒤에서 스르르 차가 따라오더니 갑자기 '빵빵' 거린다. 화들짝!! 어련히 알아서 비켜주겠냐? 내가 그 긴 골목길 유유히 갈테니 골목길 끝날 때까지 자동차 천천히 따라오라고 할 줄 알았나?

그럴 땐 운전자를 쫙 째려본다. 어떨 땐 쌩하니 달리는 그 차 뒤에 대고 아무도 모르게 침 퉤 뱉는다. 그 큰 덩치에서 나오는 갑작스런 경적 소리에는 나도 깜짝 놀라고 마는데, 하물며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라곤 하는 아기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나? 자동차 회사에서는 어찌나 그 경적 소리를 크게 만들어내는지.

이럴 때마다 나는 또 다른 공상 발명가가 된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경적 소리가 한 가지만 있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속도에 따라서 경적 소리가 달라지면 어떨까? 고속도로 150km 달릴 때 급한 상황에서는 큰 소리가 나고, 골목길 천천히 달릴 때는 아무리 세게 눌러도 작은 소리밖에 나지 않는 발명품은 어떤가? 그리고, 멋진 성우 목소리로 '잠시만 실례합니다'라는 소리가 차에서 나오는 것은 어떨지. 없어 보인다고? 그렇긴 하다.

내 후배 녀석은 자기가 운전자일 때와 보행자일 때 태도가 극명하게 갈린다. 운전할 때 횡단보도가 나오면 사람이 건너고 있어도 휑하니 먼저 지나치기 일쑤지만, 도로를 건널 때 그런 상황을 만나면 쌍욕을 한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양면성을 지니고는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내가 그 녀석 안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것 하나 보더라도 그 사람의 인격이 보인다고나 할까?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지 오래되서 주차장이 좁아 터졌다. 그래서 보이는 틈이 있으면 자동차를 마구마구 주차한다. 그런 자동차 천국에서 다행히 보행자 전용길이 있어 사람들, 특히 초등학생들은 그 길을 등교길로 이용한다. 그런데 하도 주차할 곳이 없다보니 보행자 전용길 끝에 자동차를 대는 경우가 있다. 그건 이해한다. 그러나 사람이나 자전거, 유모차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한쪽으로 바짝 대야 하지 않나? 자기가 운전석에서 나오기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 놈이 길 가운데를 떡하니 버티고 대고 있다. 흰색 sm3!  어떤 놈인지 보고 싶어 출입증을 보는데, 허걱! 조선일보 출입증이 있다. 안그래도 편견있는데 조선일보 너 잘 걸렸다. 너네 하는게 겨우 이런 짓이냐? 사람들 눈을 피해 본네트에 퉤 하니 또 침을 뱉는다.

아무튼 운전대만 잡으면 엄청 바빠지고 과격해지는 우리 운전자들. 아무대나 떡하니 주차해놓는 자들. 여유를 배워야 할 때다. 사람 생각해야 한다. 제발 유모차 앞에서만이라도 빵빵거리지 말자. 인격 보인다.

쓰고 보니 교통안전 캠페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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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0-0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조선일보 출입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