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을 축하합니다.
물론 00학번 모두가 졸업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압니다. 행정적인 착오가 없다면 내가 알아본 바로는, 정임, 해나, 주현, 은주, 선애, 선영, 가현, 덕귀, 자영, 혜정, 효현, 지영, 지선, 지현. 이렇게 열 네 명이 대학의 문을 나서더군요. 이름 하나하나를 타자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하나하나의 얼굴을 떠 올리게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었건, 공부를 가지고 씨름을 하였건, 아니면 교실에서나 복도에서 오가며 눈웃음만 주고 받았을 뿐이건... 이제까지 선생과 학생으로서 만난 밀도에 서로 차이는 있겠지만, 졸업하는 00학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는 지금 나의 애틋한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해준 것 없는 지도교수로서의 자괴감, 좀 더 성실하고 참될 수 있었어야 했던 교육사회학 선생으로서의 후회, 사회라는 새 땅으로 막막하게 나가도록 자네들을 내버려 둔 삶의 선배로서의 미안함...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은 어둡고 슬플뿐입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 그대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것을 크게 피워낼 수 없었던 내 게으름을 탓하면서...
잘 살기 바랍니다.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 모두 달리 생각하겠지만, 궁극에는 생각을 모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삶의 가치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우리는 미망 중에 헤매며 행복을 고민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우리를 주관하는 절대자께서 우리에게 행복의 답을 주는 데 인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상은 지금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의 문을 나서면서 성공보다 실패의 느낌을 가지고 나가도록 세상이 부추기고 있습니다. 취업이 되지 않았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적지 않은 도전이 실패로 끝나게 된 마당에 어느 누가 담담할 수 있겠으며, 어느 누가 쉽게 자신을 추스를 수 있겠습니까? 적지 않은 우리 친구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깨가 쳐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제자를 소위 경쟁력 있게 키우지 못한 선생 탓도 작지 않음을 인정하며 미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경쟁에서 이기고 성취를 맛보는 데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깨가 쳐졌을지 모르는 친구들을 위로하고자 애써 꾸며내는 말이 아닙니다. 졸업을 앞두었다는 심각한 계기를 이용하여 어쩌면 마지막으로 강의(?)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번 찬찬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시험을 치고 합격하여야, 직장을 얻어야, 삶을 채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널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역량과 손길을 기다리는 곳은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그 곳 모두 돈을 충분히 주고 사회적 위신을 충분히 주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곳들이 여러분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행복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새롭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결코 백수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진정 하지 않고는 못배길 일이 있다면, 실업이라는 말 같은 것은 무의미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버젓한 직장을 가지고 졸업할 수 있었더라면 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었으면 내 마음이 훨씬 가볍고 기쁠 것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다만, 좀 더 근본적으로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경쟁에서의 승리나 직업의 위신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서로 더 가르치고 배울 수 없었다는 사실이자 현실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부자와 권력자들이 가엾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가서 우리는 공부를(교육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실지로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디 지금 부딪치고 있는 어려움에 절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어쩌면 절망할 가치가 없을 부딪침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늘 자신의 고유함과 존재 의의를 잊지 말고 열과 성을 다하여 일상에 임하기 바랍니다.
어줍잖게 감상적으로, 평소에 제대로 열심히 가르치지 못한 죄의식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양으로, 제스추어를 쓰는 꼴이 되었습니다. 사실이 그러한 점도 있구요. 그러나 졸업하는 여러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여겨주기 바랍니다.
부디 잘 살기를... 그리고 가끔은 안부를 묻고, 계속해서 어렵고 힘든 일들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
2004년 2월 12일
강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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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된 글이지만, 알라딘 내 서재에 꼭 모셔두고 싶은 글...
아!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발끝마저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