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의 술자리.
어쩌다가 이야기는 주례 이야기로 옮겨갔다.
지도교수님의 20년 전 결혼식 주례는 요즘 뜨고 계시는 천주교계의 이단아 함세웅 신부님이었고, 자신의 15년 전 결혼식 주례는 그 유명한 김승훈 신부님이라는 다 알려진 이야기를 늦깎이 입학생인 한 선배는 자랑삼아 또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다.
"아! 저도 제 결혼식때 천주교계의 태두를 주례로 모실 수 있었는데, 그냥 평범한 분으로 했습니다"라고.
다들 궁금해서 누구냐고 묻는다.
"원래 그 신부님의 형이 저희 아버님 친구분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자주 뵈었고, 몇몇 가족들이 동반 여행갈 때 동행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답니다. 주일이면 숙소였던 콘도 방에서 그 신부님께서 직접 미사를 집전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교회법에 어긋나는건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신부님께 연락을 했으면 흔쾌히, 아주 흔쾌히 주례를 봐주셨을텐데..."
"아, 글쎄 누구냐고..."
"아, 네. 그 분은 박*(일명 빠콩) 신부님이십니다."
"(허걱)......"
"야,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 연구회 멤버들 주례는 완전 좌우 합작이었겠네... 큭큭"
유명하지만 많은 욕을 받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안다는 것은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주위 사람에게는 참 다정다감하다. 게다가 어찌나 어린 조카를 아끼시는지, 그 모습만 보면 참 좋다. 그러나 그 신부님께 사적 유감은 없지만, 객관적으로 엄청 싫어한다. 그래도 그 분을 싫어한다는 것이 혹시나 그 분의 형, 그러니까 아버님 친구분께 누가 되지는 않을까, 명색이 천주교 신자인데 하느님의 사제를 그리 미워해도 되나? 별별 소심한 생각이 다 든다.
그래도 미워하기로 했다. 91년 그의 활약상, 정국 반전의 주역임을 아는 나로서 어찌 그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결혼식을 안하면 안했지, 어떻게 그 분을 주례로 모실 수 있는가? 주례사 하다가 주사파 이야기 나오면 어쩌려고...
요즘 다시 스타가 되셨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엄청 욕을 한다. 그러나, 최소한 같이 욕하지는 않는다. 그게 나 나름대로의 행동 제약방식이다. 야, 나도 너무 이성적이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그때도 여전히 아무런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맨날 하는 그 소리, "내가 전향시킨 주사파 몇 명이나 돼.", "주사파 걔들 북한 김정일 지령받고 돈받았어."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절대로 앞에서 싫은 소리 못하겠다... 생김새가 무서워서 그렇냐고? 그럴 수도 있다. 어차피 깊이 있는 논쟁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깐?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래도 사적인 만남 아닌가? 앞으로 개인적 대면은 평생동안 없기를 간곡히 바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