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과에는 한 분의 괴짜 교수님이 계시다.
학창시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책하고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특히나 영어책은 죽도록 보았단다. 결국 모교에서 석박사까지 마치고, 국가기관에서 일했다. 여기서부터 워커홀릭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워낙 책을 좋아하시는데다가 전공 또한 요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전공인지라 당신이 자의로 타의로 맡으신 프로젝트만 해도 항상 3개 이상씩을 달고 다니셨다.
댁도 인천이라 출퇴근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라 아예 연구실에 침낭과 침대를 마련해 놓고 밤새 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교수님은 그것이 좋으셨나보다.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렇게도 뜨거웠다.
댁에 가셔도 책을 놓지 않는 것은 당연한지라, 한번은 답답해서 보다 못한 사모님께서 읽던 책을 덮으시더니 질문하셨다고 한다. "내가 좋아? 책이 좋아?" 교수님의 답변 한마디 "책"
그 말씀을 들으신 사모님은 더 이상 책 보는 것에 참견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간의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모두 외국 박사 그것도 미국 박사 일색인 우리 과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두루두루 발도 넓으신 교수님을 좇아 대학원에 입학한 학생만도 그간 수십명. 그나마 돈되는 학문이라 그런지, 학문적 열의 없이 무작정 교수님 이름만 보고 입학한 경우도 많았으리라..
아무튼 교수가 되어서도 그의 워커홀릭은 여전했고, 학교에서도 보직까지 맡아가며 일까지 전념하시는데. 학문에 대한 열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고, 그것은 학생 가르치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2005년 2학기 강의계획서를 검색하던 중 그 교수님의 대학원 과목 소개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3학점 짜리 과목을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시작해서 거의 10시가 끝날 때까지 하는 수업방식(우리가 의대냐? 임상수업이냐? 할 정도로 수업이 빡셌다..)은 이미 몇 년전부터 있었던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그리고, 매번 원서 몇 십페이지를 읽어 와야 하고, 즉석에서 직독직해를 시키는 방식, 틀릴 경우 무자비하게 면박을 주는 수업방식(그래서 수업 중 여학생이 울기도 했다)도 여전하다.
그런데, 다음을 보라.
1) 가급적 평생교육과 인접 HRD 전공자에 한하는 것이 좋겠음.
2) 9월 3일 첫 수업일에 Sharan B. Merrriam and Rosemarry S. Caffarella. Learning in
Adulthood: A Comprehensive Guide(Second Edition). San Francisco: Jossey-Bass
Publishers(1999)을 끝까지 읽고, 용어를 숙지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장별 요약한 것을 바
인더로 제출한 자만이 수강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구술시험을 치룰 것임.
3) 16주 이후에 20주까지 수업있음.
아무리 힘들게 가르치시는 교수님이시라도 첫 시간만큼은 널널한 마음으로 오는 것이 당연한데, 첫 날부터 원서 1권(두껍다)을 모두 읽고 와서 각 장별로 요약한 것을 바인더로 제출한 사람이 수강할 자격이 있다니!!! 게다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구술시험까지 통과해야 한다니... 게다가 12월로 수업이 끝나지 않고 거의 1월 중순 이후까지 수업을 계속 한다니....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이렇게 수업을 하겠다고 하니 학생들은 반박할 논리도 잃어버리고 두 손 들고 투항할 수 밖에 없다.
이 분이 나의 지도교수님이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하나? 아님 이렇게 지지리도 실력 없는 내가 환골탈태하기 위해선 이런 분을 만나서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도 받았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앞선다.
과연, 이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자들이 몇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이런 수업방식에 대해 찬반 논란이 있는데(물론 찬성쪽은 그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이다), 어쨌거나 그의 열정은 인정할 만하고 그런 학문적 자세는 본받고 싶다..
자, 개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