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머독과 메리 워녹이 있어서 읽으려고 찜해뒀다가 아직 읽지 못한 책, 처음 읽는 여성 철학사가 다른 출판사에서 질문하는 여자_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원제를 몰랐다면 다른 책인가 했을 텐데 목차가 똑같아서 알게 됨. 어제 포스팅한 히파르키아, 아 히파르키아가 책 제목은 아님. 책 제목은 뭐지 까먹었다. 아 철학자 강아지 결혼_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아 내 이야기랑 겹치는 건가 했다가 책 내용 훑고 알게 된 거임, 히파르키아 이야기라는 건. 그러고보니 애인이 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만일에 당신이 책 읽는 여자가 아니었다면 관심도 없었을 거야_라고 해서 책 읽는 여자들은 흔하고 흔한데 어째서 그런 이유로 나를 택한 건가 물었더니 당신 같이 읽는 여자들은 별로 없어_라고 해서 당신 전 여친들은 무슨 책을 읽었는데? 물어보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행하는 베스트셀러 류의 에세이와 소설류를 많이 읽으셨더라. 지적으로 오만한 거야, 당신이. 했더니 가부장제의 산물이라 이거지? 해서 그렇지, 이 가부장제에 찌든 인간아. 했더니 하지만 내가 만난 여자들 중에 페미니스트는 당신이 처음이야, 라고 해서 그 소리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움찔하긴 했다. 친구들아,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니? 라고 물어보고 싶어져서. 하지만 나는 전문으로 읽는 이도 아닌걸. 당신이 같이 읽자고 했으면 됐잖아, 전 여친분들에게. 말했더니 읽자고 했지. 그랬는데? 왜 넌 그렇게 어려운 것들을 읽니? 대체, 라고 말씀하셨지. 그럼 독서모임 같은 곳에서 책 읽는 여자를 찾지 그랬어? 물어보았더니 당신은 그렇게 해서 연애한 적 있어? 물어봐서 무슨 남자를 만나겠다고 독서모임을 해,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라고 했더니 같은 생각_ 이라고 말해서 으흠 했다. 


며칠 전에 친정 모임(이것 봐, 친정이래, 내게는 이제 시댁도 없는데)에서 동생 하나가 언니 책 읽는 남자라면 지긋지긋하지 않아? 물어봐서 책 읽는 남자가 왜 지긋지긋하니? 물어보니 형부 아니 엑스 형부도 책으로 만났잖아. 해서 응 그렇지, 대꾸하고 동생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노라니 책으로 만난 악연인데 또 책 읽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물어봐서 언니는 다 책으로 만났는걸. 첫사랑 빼고. 언니 친구들도 다 책 읽는 사람들인데_ 대꾸하니 하긴 언니랑 책이랑 떼고 생각한다는 건 좀 아니긴 아니네, 했다. 동생아, 너는 왜 책을 안 읽니? 했다가 언니처럼 팔자 편한 사람들이 읽지. 난 장사하느라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니, 하는 쌀쌀맞은 대꾸를 듣고는 어쩐지 미안해지네, 하니까 아니야, 난 우리 언니가 행복한 게 좋아. 하고 꽈악 안아줘서 좋았다. 언니 같은 내 둘째 동생. 맞다, 그러고보니 첫사랑은 지독히 책을 읽지 않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소파에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소리내어 읽어주면 한참동안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곤 했다. 더 읽어줘, 더 읽어줘 하면서. 이 이야기는 현재 애인에게 하지 말아야겠다. 어쩐지 한소리 들을 각이야. 엄마와 어제 한참동안 차가 막힐 때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렵지 않니? 엄마는 또 물었고 나는, 닥치지도 않은 두려움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할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아. 답했다. 만일 가슴 아플 일이 생기면 어쩌니? 엄마가 물었고 가슴이 아파도 그 전에 온통 기쁨만 한가득한 순간들이 있어, 말하니 엄마는 웃었다. 걱정이 담긴 불안한 미소. 나도 엄마여서 안다. 엄마가 왜 그런 어정쩡한 미소를 짓는지. 엄마는 두려운 게 뭐야? 물어보았다. 세상의 시선들. 엄마가 운전하면서 답했다. 난 그 시선들 너머에 있을 거야. 왜 이렇게 당당해? 엄마가 물어봐서 또 답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러니 당당해도 괜찮아. 내가 두려우면 그 시선들 안에서 계속 살았어야 해. 또 말하고. 우리는 대화 형식이 비슷하다 맨날 엄마야. 엄마는 걱정하고 나는 괜찮다 하고 엄마는 또 걱정하고 나는 또 왜 불안하다 겁먹는가 하고 말야. 그렇네, 이제야 패턴을 알겠네. 오늘은 하늘에 맡기고 그저 하루를 보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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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4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민이가 사달라고 해서 사주고 배송 전 히파르키아 히파르키아 홀로 중얼거리다가 마사 누스바움이 언급한 히파르키아가 바로 이 히파르키아라는 걸 뒤늦게 깨달음. 이야 이 언니는 정말 대단했구만. 그 시대에 그 정도였다니. 다시 감탄함. 역시 여자는 똑똑하고 봐야...... 라는 소리를 저절로 하고 말았습니다, 이 못난 인간아. 하고 잠깐 반성. 이거 내가 타파해야할 지점이다. 스님도 나 똑똑한 사람들한테 약한 거 이미 캐치하시고 예전에 조언해주셨는데. 가물가물하지만 네가 쳐놓은 그물에 네가 잡히고말 수도 있다, 뭐 그런 식의 말씀을 하셨던 거 같다. 전 그래도 똑똑이들이 좋아요, 스님. 하고 대꾸하고 부처님 보면서 부처님도 똑똑하고 잘생겨서 좋아하는 거예요_라고 대꾸해서 보살님들 다 웃긴 적 있음, 어렸을 때. 내가 놓은 그물에 내가 걸리지 않도록 조심할 일. 근데 이게 가능할까 모르겠다. 아흔아홉살 정도면 좀 뭘 깨달을지도. 아 스님 말씀 그거였음?! 하고. 아는 동생 우울증 걸렸다. 갱년기여서 그런듯. 함부로 조언할 일 아닌지라 좀 보려고 한다. 미친듯 우울증 관련서 읽는 거 보고 알았다. 좀 정리되면 만나야 할듯. 그러고보니 좀 정리가 되고 만납시다, 이 말을 작년부터 어마무시하게 하고 다녔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그들 다 올해 안에 봐야돼. 잊지 마. 다 나를 살린 사람들이야. 수연아. 다시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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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1-24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너무 근사해요! 히파르키아, 히파르키아.... 저도 외워두어야 할 이름이네요.
그림은 또 왜 이렇게 내 스타일? 이러고 있습니다!

2024-01-24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4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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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한반도에 한파가 시작된 날, 클레어 키건의 긴 단편을 읽고난 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책장을 적시는 걸 가만히 응시했다. 아는 만큼 행하고 행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딸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한겨울에 뜨거운 여름날을 불시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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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1-22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겨울에 뜨거운 여름날 너무 근사하네요. 저도 밀린 책들 밀어내고 읽고 싶어요^^

수이 2024-01-22 23:24   좋아요 1 | URL
천천히 읽어도 괜찮아요. 단발님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실 수 있을듯
 







할 일을 대강 마치고 외출 전에 완독, 이른 저녁을 먹기 전에 바나나를 하나 까서 입 안에 넣어 오물거리며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눈물을 결국 뚝뚝 떨구었고 떨어진 눈물이 종이를 적시는 걸 지켜보면서 우리딸 책 더러워지는 거 싫어하는데_라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눈물 자국을 꾹꾹 소매로 찍어 없앴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난 후 '출간 이래로 교과과정에 줄곧 포함되어 아일랜드에서 모두가 읽는 소설로 자리 잡았다'는 작가 프로필을 다시 읽었다.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다가오는 무게감이 남다른 거겠지만 이 짧은 단편과도 같은 중편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자리매김을 하게 될지는 굳이 떠들 필요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일단 들었다. 아니 읽어야 하는 이들은 어른들이지. 함께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에 대해서도. 

아는 만큼 행하고 행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기로 한다. 그게 내 몸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생각도 들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 여전히 심장이 미친듯 뛴다. 미친듯 아저씨와 아줌마를 향해 달려가는 '나'처럼. 시간을 들여 마음을 쓴다는 일은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말이다, 나 스스로에게 말고, 나 스스로를 위해 말고, 그 마음씀은 읽기에서도 사랑에서도 역시 동일하다. 찰나에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기도 하다는 속성 또한 동일하고. 


출간되지 않은 클레어 키건의 다른 작품을 방금 전에 주문했다. 아마도 곧 번역되어 나오겠지.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마카롱을 열두 개쯤 먹었다. 잠시 후 두 남자가 초인종을 울리더니 학교 지붕교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 복권을 팔러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당연히 사야지." 킨셀라 아저씨가 말했다.
"우린 사실 그렇게"
"들어오게." 킨셀라 아저씨가 말했다. "나한테 애가 없다고 해서 다른 집 애들 머리에 비가 떨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 그래서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차를 더 끓였다. - P47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 P70

아주머니가 나에게 갈색 가죽가방을 준다. "낡은 거지만 가져도 된단다."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아무 데도 안 가서 쓸 일이 없어."
우리는 내 옷을 개서 그 안에 넣고 고리의 웹스 서점에서 산 책도 넣는다. 하이디』, 『다음으로 케이티가 한 일은What Katy Did Next』, 『눈의 여왕』. 처음에는 약간 어려운 단어 때문에 쩔쩔맸지만 킨셀라 아저씨가 단어를 하나하나 손톱으로 짚으면서 내가 짐작해서 맞추거나 비슷하게 맞출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나는 짐작으로 맞출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그런 식으로 계속 읽어나갔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출발하는 것이 느껴지고,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들까지 자유롭게 가게 되었다가, 나중엔 정말 쉬워진 것처럼. - P83

나는 아기를 안은 엄마와 함께 두 사람을 따라서 자동차 앞까지 나간다. 킨셀라 아저씨가 잼 상자와 25킬로그램짜리 감자 자루를 꺼낸다.
"포슬포슬해." 아저씨가 말한다. "퀸 품종이야, 메리."
우리는 잠깐 가만히 서 있다가 엄마가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나를 맡아주다니 정말 친절하다고 말한다.
"하나도 힘들 게 없었어." 킨셀라 아저씨가 말한다.
"정말 잘 지냈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맡겨도 돼." 아주머니가 말한다.
"아주 좋은 딸을 뒀어, 메리." 킨셀라 아저씨가 말한다.
"책 계속 열심히 읽어라." 아저씨가 나에게 말한다. "다음에 왔을 때는 습자 연습장에 금별을 받아서 아저씨한테 보여주는 거다." 그런 다음 아저씨가 내 얼굴에 입맞춤을 하고아주머니가 나를 안아준다. 나는 두 사람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문이 닫히는 것을 느끼고, 시동이 켜지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흠칫 놀란다. 킨셀라 아저씨는 여기 올때보다 더 서두르는 것 같다. - P95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차가 떠나고 나서 엄마가 말한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내가 말한다.
"말해."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자갈 진입로에서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 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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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hings Like These : Shortlisted for the Booker Prize 2022 (Paperback, Main) - 『이처럼 사소한 것들』원서
Claire Keegan / Faber & Faber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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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인간에 대해서 성찰하게 만드는 소설. 인간이 인간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무엇을 앗아갈 수 있는지 비교대조하며 보여주는 소설. 묵직한 한 방. 소시민 빌 펄롱에게서 예수를 보았다. 모두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부인하던 모습도. 불안을 발판으로 삼아 그는 주저함 없이 그의 일을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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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1-21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설. 펄롱이라는 사건.

수이 2024-01-21 10:40   좋아요 0 | URL
펄롱이라는 사건, 좋다, 리뷰 제목으로. 아 근데 이미 쓰셨지!

단발머리 2024-01-2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수님 나와요? 😳😳

수이 2024-01-22 12:39   좋아요 0 | URL
예수님이 현세에 존재한다면_ 그런 걸 잠깐 상상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