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두 판을 먹고 항상 걸어만다니던 길을 버스로 가려니까 좀 어색했지만 생전 처음 타보는 번호의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곳곳을 돌아다녔다. 쉼터와 공부할 수 있는 오픈된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영어와 독일어가 계속 강물처럼 흘러다녔고 집중해서 홀로 책을 펼치고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도 인상적이었다.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 잠깐 동안이나마 느껴지는 학구열이 꽤 뜨거웠다. 커피를 많이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만두를 먹어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에 공간을 둘러보니 믹스 커피도 있어서 얼마인지 물었더니 500원이라 하셨다. 다시 도서관으로 올라가 지갑을 들고 내려와 믹스 커피를 한잔 사마시면서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았다. 일단 어미로서 드는 생각은 내 새끼도 이렇게 여유로운 공간에서 공부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구나 였다. 때마침 가을이니 한번 데리고 와야겠다 싶었다. 카프카를 읽고 캐롤린 두틀링어 선생님이 말하는 카프카를 듣고 선생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끔 들리는 영어와 가끔 들리는 독일어가 음악 같기도 했다. 통역을 하는 이하늘 선생님이 계셨음에도 청중을 배려해서 천천히 말씀하셨다. 인용어구가 있을 때 그 인용어구를 영어로 말하는 게 좋을지 독일어로 말하는 게 좋을지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선생님이 물었고 다수결에 의해서 독일어가 채택되었다. 청중의 팔할은 여성들이었다. 카프카를 찐으로 읽고 이해하는 이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강연이 끝나고난 후 오고가는 질문들 속에서. 비교적 어린 여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학계 사람들 같은 느낌이었다. 책에 싸인을 받고 몇 마디를 농담처럼 주고받고 선선하게 응해주셔서 감사했다. 웃음이 참 맑은 사람이로구나 가까이에서 보니 더 그런 느낌. 강연을 듣고 나오는데 아까 질문을 하신 나이든 반백의 중년 여성이 카프카의 얼굴이 커다랗게 박힌 에코백을 들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어디서 구매하셨냐 물어보니 프라하에 있는 카프카 뮤지엄, 이라고 답하셨다. 에코백 자체도 아름답지만 선생님이 메고 계시니 더 빛나보인다, 스스럼 없이 플러팅을 하니 한껏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인사드리고 가려 하니 내가 차를 갖고 왔는데 아래까지 태워다주겠노라 하셨다, 밤이 깊으니.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드리고 버스를 타러 총총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것은 어떤 것일까. 라는 의문에 사로잡혀 나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나는 정말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낯설고 당황스럽기만 한데 그건 당신이 내게서 본 이마고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이 선뜻 밤하늘 속에서 떠올랐다. 그 말을 처음 한 것이 누구였는지조차. 나는 사람들이 현인인 척 구는 게 싫다. 모든 이들이 다 슬기로웠다면 벌써 이 세상은 불국토가 되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밤하늘 속에 겹쳤다.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걸까. 결국 카프카가 묻고자 했던 건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을지. 누구 하나가 잘나면 누구 하나는 못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러한 우열들 속에서 갖가지 것들이 소용돌이치는 거겠지만 스스럼없이 내려다볼 수 있는 게 가능할까. 우리 모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면 벌써 불국토가 어딘가에 있을 테니. 아마도 카프카 역시 자신의 아버지 품에 안겨 있는 내내 어린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겨워했을 거다. 하여 자신의 약함과 자신의 불확실함과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당신은 나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려 한 적 있는가, 나를 바라보려 한 적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이다, 라고 보내지 못한 편지 속에서 말했던 것 아닐까. 역으로 대입시켜 말할 수고는 덜어도 된다.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 여러 방면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각도, 나와 다름에도 가까이 있고자 하는 태도, 그런 관계성이 가능하겠는가 비웃고 비웃었는데 어느 순간 그 비웃음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여정이 될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엄마가 흔히 자주 하시는 그 말씀, 왜 사서 고생을 한다니. 왜 사서 고생을 하겠습니까. 그것들이 내게 주는 것들이 있으니 그러는 거지요, 라고 엄마에게도 매번 이야기하지만. 얻을 것들은 적고 잃을 것들이 더 많으면? 엄마의 이어지는 물음에 그렇다면 엄마는 엄마 계산대로 그 모든 것들이 다 맞았어? 잃을 것들이 더 많고 더 그득하다고 해서 얻을 것들이 뻔해보여서 겨우 이 두 손바닥 안에 담길 정도라고 지레 짐작해서 행동했어? 물어보았다. 엄마는 잠깐 자신의 셈법을 헤아리는 것처럼 보였다. 어제 오전 일이 있어서 요가 수련을 하지 못한 게 결과적으로는 득이었다. 요가까지 했다면 집에 도착한 밤 10시쯤 뻗어서 오늘까지 영향이 있었을 테니까. 왜 카프카는 그렇게 맥락에 맞지도 않게 상황을 연출했을까요? 선생님의 그 질문, 그게 어제 내 정답이었다.
+ 작품과 그 작품이 쓰여졌던 같은 시간대 일기를 동시에 읽으면 카프카의 세계가 더 잘 보일 것이다, 라고 선생님이 조언하셨다.
어제는 카프카의 날이었다,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