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에 사람들이 좀비떼처럼 우수수수수 밖으로 쏟아지는 시간, 냉기가 옅어지고 온기가 사방팔방을 메꾸어나가기 시작할 무렵. 더 이상은 요거트를 만들지 않는다. 시중에 파는 요거트가 내가 만드는 요거트보다 갑절은 더 낫다는 사실을 알고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는 오늘 아침. 봄이다. 고관절에서 삐그덕거리는 음향을 들으면서 간단하게 체조를 하고 오늘을 시작한다. 인연은 소중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개별성을 지니고 있다. 서운함도 없고 허망함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영원히 지내기로 한 그 사람의 말을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내 안에서 그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지지 않을 무렵 그러니까 우연히 마주해도 더 이상의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기가 끝이라는 걸 아니까. 거기에서부터 쓸 수 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이끼를 걷어내고 그 안에 무엇이 놓여져 있는지를 헤아리는 일이 내 일이라면. 오늘 그 사람은 이끼가 그득한 곳을 거닐었다. 살아간다는 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수백번 돌리는 것과 다르다. 인간의 몸이 행하는 것들, 나는 앞으로 그것만을 믿을 계획이다.거짓된 눈으로 모든 것들이 리얼하다고 믿어봤자 언젠가 그 믿음이 깨질 때 박살나는 것은 그 자신이다. 소소하게 일상을 살아가며 진실되다고 믿으나 어디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명확한지는 그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잘 아는 거고. 거짓을 호화롭게 만드는 것도 어쩌면 재능일지도.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동등하다. 그 무형의 것들과 그 잡히지 않는 것들을 '삶'으로 만드는 건 오직 스스로. 그리고 마주하는 이들이다. 마주하는 그 얼굴들과 그 몸들이 내 '삶'을 만든다는 걸 부인할 까닭은 없다. 뭔가 '다른 삶'을 바란다면 방법은 하나다.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내가 내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규칙에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기에게 충실한 삶을 전제한다. 윤리적 삶은 자기에게 좋은 삶, 적합한 삶을 가리킨다. 실존적인 삶은 때론 기존 관습이나 관행을 거스르는 삶을 가리키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이 기존 관습적 삶으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자기에게 좋은 삶은 새로운 행동으로 보여 주고, 타인에게 그 행동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 행동에 대한 새로운 의미는 새로운 가치로 자리매김한다. 따라서 실존적인 삶은 자기 삶의 진정성을 찾는 삶이며,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으려는 노력이 실존인 것이다. 자기 진정성은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삶에서 찾아야 할 과업이다." (8)



"리쾨르 철학의 출발점은 살아 있는 자기 자신, 자기 인식이다. 자기 인식은 실존적 구조를 갖는다. 형이상학과 존재론의 구분이 이 차이에 입각하고 있다. 존재론은 주체의 독특성을 탐구한다. 대상의 속성 또는 본질의 탐구는 형이상학의 몫이다. 따라서 실존은 존재론적 탐구로만 가능하다. 리쾨르도 이런 존재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주체는 대상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다. 자기 몸은 타인에게 관찰 가능한 대상이기도 하지만, 몸의 '자기'는 타인의 관찰 대상이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느끼는 것, 살아 있을 때만 느끼는 것이다. 몸을 가능하게 하는 피와 살과 같은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살펴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의 확실성은 대상의 확실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 쇠렌 키르케로그는 말한다. "주체는 대상이 아니며 대상일 수 없다." 바로 자기 자신은 스스로 설명되어야 할 무엇이다." (18-19)



"인간 실존의 이해는 결국 인간 행위의 이해다. 이런 상호 반응은 특정 방식으로 의미를 얻게 된다. 중요한 점은 복잡하고 다양한 상호작용 속에서 드러나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자기 말과 행위들은 하나의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하나의 전체로 나타난다. 그 전체성이 자기 정체의 일부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구체적 상황을 인식하고 상황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관습과 주위 환경에 매몰되면 자기 자신은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순응적인 자기 자신에는 독창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 없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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