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남자도 드물긴 하다만 그 이름 루이 알튀세르의 저작이 여러 번역자들의 노고로 인해 신년 나왔다. 블로그 이웃님의 신간 소개로 알게 되어 급히 알라딘에 달려오니 있더라. 가뿐하게 신년 첫 책으로 지르고난 후 라면과 와인을 흡입하러 간다. 점심에 유부우동 먹었으니 라면은 먹으면 안 되는데 냉장고에 있는 건 유부초밥과 와인이 전부인지라 유부초밥을 급히 만들고 라면물을 올려놓고 딸아이에게 소리를 질러 와서 라면 끓여줘! 하고 푹 익은 갓김치와 단무지와 썩어가기 일보 직전인 아보카도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초판 발행 60년 만에 완역된 [자본을 읽자]이다. 패트릭 어셔의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도착할듯. 커피맛 좋은 곳을 알았다. 공간은 아담하나 음악이 주는 힘이 있어서 종종 찾아갈듯. 공간이 좋고 커피맛이 나쁘지 않으나 음향이 주는 울림까지 그 삼박자가 균등하게 힘을 내는 곳은 참 찾기 드물더라. 겉과 속이 동일한 인간과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주고받기가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가볍게 굴면 될 것을. 그게 불가하니 삶이 복잡해지는 거다. 딸아이가 학원을 다녀와서 울었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라고. 자 그게 바로 경험이다, 아가. 하나도 못 알아들을 말 속에서 길은 전혀 보이지 않고 안개만이 뿌옇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니 심장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겠지. 바보가 된 거 같고 눈치를 보게 되고. 되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겠지. 허나 뒤를 보아도 온통 안개뿐이다. 되돌아 왔던 길을 간다 치자. 허나 그 길이 과연 같은 길이겠는가. 자 그럼 방법은 뭘까? 하고 물어보니 징징 짜면서 울던 아이가 눈물을 뚝 그치고 나를 바라보았다. 풋 웃음이 일었고 자 도망칠 곳은 없어, 도망치면 계속 도망쳐야 한단다, 얼마나 도망쳐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몸에 힘이 빠지고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입술이 메마르다 보니 심장도 쿵쿵거리고 머릿속은 네게 보이는 바깥 세상처럼 온통 뿌옇기만 하고. 자, 아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말하니 입술에 앙 하고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싶었다. 자 일루 와, 안아줄게, 하니 안겨서 강아지처럼 끙끙 칭얼거리는데 한참을 속으로 웃었다. 신년에는 할 일이 많다. 몸을 단단히 만들 일이다, 일단은. 네게 기댈 인간들과 네게 기대고자 하는 인간들이 물결처럼 파도쳐 올 것이다. 루이 알튀세르의 회색빛 책을 품에 안아들고 페이지를 펼쳐들다보면 내천자가 새하얀 이마 정중앙에 깊이 새겨지는 것도 모르는 채 시간이 흐르고 흐르고 흐를 터이니.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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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5-01-03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간피가 흐른다!! ㅋㅋㅋ 커피잔 예뻐요😘

수이 2025-01-04 09:39   좋아요 0 | URL
오늘 잘 다녀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