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딸아이와 등교하기 전에 이야기, 아이는 어제 배운 가스라이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통 가족과 연인 사이에서 가스라이팅이 흔히 행해진다는.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내가, 나 아니면 누가 너한테 이렇게 해줄 거 같아? 라는 말이 가스라이팅의 대표격인 발언들이라고 하면서. 선생님이 들려준 연인 케이스를 들려주면서. 딸아이는 볶음밥을 한 숟가락 그득 떠서 입 안에 넣고난 후 우물거리며 이야기했다. 그래서 엄마 내가 또 상상놀이를 해봤거든. 내 남자친구가 나에게 그렇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거지. 그럼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라고. 뭐라고 대답할 건데? 물었더니 아이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나는 내 길을 갈게, 넌 너의 길을 가, 그리고 세상에는 너 말고 남자들이 깔렸어. 나한테 가스라이팅 하는 남자새끼 따위 내 인생에 필요 없어_라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혼하고 싶은데 이혼을 하기 망설여진다는 한 친구도 떠올랐다. 내 인생에 또 남자가 어디 있겠어, 지금 내 남편 말고. 더구나 나는 이렇게 늙었잖아. 그래서 소주잔을 털어넣으며 남자는 깔리고 깔렸어, 다만 멋진 이들이 드물뿐, 이라고 말하니 다시 시작해야 하잖아, 이렇게 나이 들어서 또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 꾸미고 감정소모하는 일 나는 싫어, 그 짓을 어떻게 또 다시 해, 라고. 감정 소모, 에너지 소모. 할 일이 많고 많아서 그런 짓을 하는 데 시간을 쓰고 돈을 쓰는 건 너무 안타깝다는. 논리의 맥락은 알겠는데 좋으면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싶다가 삶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 그 프레임에 모두 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친구 말에 덧붙이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내가 참으면, 나 하나만 희생하면 되는_ 친구가 그렇게 말을 할 때는 솔직히 화를 내긴 냈다. 지금이 조선시대냐? 뭘 희생하고 말고 그래, 하나뿐인 네 인생이야. 네가 네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걸 보고 네 자식 새끼들이 그걸 본받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인간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가족과 친구들. 그 모습을 보고 삶의 향방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니까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이 나를 반영한다는 소리도 된다. 사랑으로 모든 것들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나는 아빠를 참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엄마를 많이도 사랑했다. 하지만 저렇게 어리석게 참고만 살지는 않을 거야, 난 모던 걸이니까, 라는 생각을 십대 시절부터 했다. 허나 말은 그렇게 잘도 떠들어댔으면서 나도 참고 살고 어리석게 행동하고 시간 따라 늘어가는 건 뱃살과 주름살과 더할나위없는 시니컬함이었다. 번개를 맞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없는 거 빼고 다 가진 여자처럼 다정하고 인류애 충만한 중산층 중년부인 역할을 하고 있을 거다. 왜 갈등이 시작되었는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가면을 쓰고 만족한 척, 다 가진 척 이런 역겨운 가면 놀이를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짜증이 치밀어오르곤 했다. 그렇게 혼자 있을 때 자주 묻곤 했으니까. 한참 갈등을 하고 있을 때 선택을 하게끔 도와준 문장 하나 덧붙이고 오늘을 시작한다. 비행기와 상자였다. 누가 한 말인지는 까먹었다. 비행기는 바람을 거슬러서 오고 가고 상자는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놓고 테이프를 붙여놓은 테두리에 불과할 뿐이다. 비행기는 바람을 거스른다는 말, 그렇게 그 동체가 오고간다는 말, 그렇다면 순응할 필요가 있겠는가 싶어 의문에 방점이 찍혔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네모난 상자는 내가 만든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곳인데 그저 테두리에 투명 스카치 테이프를 붙인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 만일에 내가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겠다고 한다면? 나를 작은 새로 바라본 건 누구의 시선일까. 나를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든 건 누구의 시선이고. 그런 것들을 헤아리는 동안 이미 선택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나를 작은 새로 바라보고 자신의 새장 속에 가둬놓고 싶어했던 이들의 시선, 나를 온실 속의 화초로 여기고 자신의 온실에 나를 가둬놓고 싶어했던 이들의 시선. 비행기와 상자를 접하고 장자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혼자서 깊이 오열했던 순간들.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어, 전남편과 산책을 하면서 마음 속 말을 내뱉었던 순간들. 나는 행복하지 않아, 너와 함께 있어도 이렇게 함께 걸어도 이제 행복하지 않아, 라고 담담하게 말했던 순간들. 솔렌과 솔렌의 딸 이자벨이 나누는 대화 속 그리고 솔렌의 독백에 밑줄을 그었다. 솔렌의 두 남자들, 전남편 다니엘과 현남친 헤이즈는 소설 안에서 내내 비교당한다. 솔렌의 시선으로. 이혼전문변호사가 남자가 이혼을 선택할 때와 여자가 이혼을 선택하는 순간들은 좀 다르다고 인터뷰하는 걸 보았다. 남자들은 대개 새로운 사랑이 생겨서 이혼을 하는 확률이 높고 여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인생길을 이 남자와 함께 걷고 싶지 않을 때 이혼을 택한다는. 물론 내가 이혼한 경우는 솔렌이 이혼을 한 케이스와 다르긴 하지만 이 사람은 더 이상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내 세계를 온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더 이상 함께 할 필요가 무어 있겠는가 싶은 순간들, 그 느낌들은 동일하다고 여긴다. 그저 달콤하기만 한 순간들은 생각보다 더 짧다. 그 이후를 함께 할 수 있을 때 그런 관계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싶은 건 이미 여러 종류의 매체들을 통해 다져진 사랑이란 이데아에 사로잡혀버렸기에 하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 사랑이 끝났구나_ 라는 걸 촉으로 먼저 알게 된 건 그가 이 말을 했을 때였다. 우리도 3년 지나면 별 거 없어_ 그러니까 정확히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이 사랑을 끝내겠다_라고 먼저 생각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3년이 지나면 그 도파민의 효력이 다 떨어져 서로를 돌 보듯 소 보듯 그렇게 다른 이들처럼 살아갈 거라고 한다면 나는 이 사랑은 시작하지 않는다. 왜? 이미 그런 건 지겨울 정도로 수없이 많이 해봤거든. 행복해지기 위해서 한 선택과 결정들. 헌데 그 멍청한 레퍼토리를 굳이 또 이 나이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건 그딴 게 아니니까. 그런 내 생각이 네게 가닿았던 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지금은 담담하게 해본다. 솔렌과 헤이즈의 관계를 짚어나가는 동안 드는 생각들. 헤이즈는 끝없이 묻는다. 행복해? 라고 솔렌에게. 솔직히 이 대목들이 이 뻔한 장면들이 나를 매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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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4-05-27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좋아요 백번 누르고 가요 수이님..❤️‍🔥

수이 2024-05-27 19:06   좋아요 1 | URL
사랑둥이 은오님 사랑을 거부할 알라디너들이 몇이나 될까 싶은 순간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