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뭣한 그런 차가움이 공기 속에 감돌고 있지만_ 그러니까 입춘이 지나긴 지났다만 아직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에는 뭣한 애매모호한 봄의 경계에 있다. 봄이 곧 오실 거라는 건 알지만 아직은 몸을 감싸는 냉기에 저절로 몸서리가 쳐지는. 어제 도서관에서 따뜻하다고 패딩을 잠깐 잠깐 벗었는데 그새 몸이 오슬오슬거리는 게 섬뜩해 다시 패딩으로 몸을 감싸고 열람실 안에서 나오는 히터 기운에 몽롱해지면서 책 몇 권을 빌려 왔다. 집에 오면서도 추웠고 보일러를 틀어놓아도 추웠고 샤워를 할 때는 벌벌 떨면서 뜨거운 물을 콸콸 틀었고 머리를 말리면서 헤어 드라이어로 목과 어깨에 끝없이 뜨거운 바람을 갖다 댔다. 온수매트를 미리 틀어놓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이불을 덮고 아 추워 추워 추워 내가 미친년이야 아까 패딩을 벗지 말았어야 하는데 식당에서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패딩을 벗지 말았어야 했는데 계속 자책을 하면서 벌벌 떨면서 잠들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냉기가 몸을 전체적으로 감싸면 아 그때는 뼈까지 으슬으슬거려서 감기가 오시는구나 싶어 미리 유난을 떤다. 이때 유난을 떨면 감기에 된통 걸리는 일은 피할 수 있어서. 물론 냉기가 몸을 침범하는 순간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어제 또 방심하고 말았다. 볕이 하도 좋아서. 나는 추위에 약한 인간인지라 한겨울에는 항상 온몸을 두꺼운 천으로 감싸고 다니는데 이렇게 애매할 때 한없이 감싸기에도 애매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코트를 입거나 가볍게 입고 다닐 때 나만 패딩을 벗지 못할 때 이때가 제일 춥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몸을 풀고 음성을 남기고 요거트에 꿀과 견과류를 넣어 뜨거운 커피를 내려 번갈아 먹는다. 내 루틴이다. 일부러 몸에 열기를 내려고 반복 횟수를 늘리니 체온이 올라갔다. 가디건을 걸치고 커피를 내리고 있노라니 평상시보다 아이가 일찍 일어나 사과를 깎아달라고 해서 사과를 하나 깎아 접시에 담고 폰을 보니 3년 전에 썼던 오늘 일기와 5년 전에 썼던 오늘 일기와 7년 전 오늘 일기가 알림판에 떴다. 하나씩 읽어보고 웃음이 나왔다.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7년 전에도 도서관에 다녀온 이야기였다. 도서관에 갔다. 날씨가 애매모호하다. 좀 추웠지만 버틸만 했다. 패딩을 입고 자판기에서 뜨거운 밀크커피를 뽑아 벤치에 앉아 마셨다. 봄이 곧 오실 거 같다. 기분이 좋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엄마들은 아장거리는 아이들 뒤를 쫓아다닌다. 새가 지저귄다. 불행은 도서관에 출입이 불가하다. 안온하게 존재하고 싶다. 언젠가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렇게 봄이 곧 오실 테니 내 인생에도 봄날이 오지 않겠는가. 김윤아는 봄날은 간다고 노래를 했지만 살아가는 내내 봄이 또 오시리라 믿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봄날은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도 오고 겨울이 시작되고 또 봄을 기다리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식의 이야기를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7년 전에도 비슷하게 하고 있었다. 명절증후군을 앓을 여동생들 걱정을 잠시 했다. 방어 기제에 대한 구절들을 읽고 그렇지, 인간이 다 그런 거지.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러긴 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내가 제일 끔찍하다고 여기는 인간 유형들, 그런 행동들. 그런 것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그런 짓을 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기장을 펼치고 문장들을 하나씩 적어가던 아주 오래 전 기억도 떠올랐다. 시간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야. 책 하나씩 들고 딸아이랑 오후에는 엄마 집으로 간다. 번잡스러움을 온통 물려버리고 1961년에 녹음된 음에 몸을 맡기고 어젯밤 남은 식재료를 꺼내 밥을 볶을 준비를 한다. 구정이다. 게으르게 보낸 2024년 1월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그렇지! 2024년 1월은 내일부터 시작인 거지, 비로소! 개구지게 웃는다. 많이 웃고 많이 웃어서 눈주름도 한가득, 팔자주름도 한가득 깊이 만들래. 그럴래. 내가 원하는 삶은 그런 거니까. 어릴 때부터 내가 원한 자아상도 그런 거였으니까.

봄이 곧 오시지 않겠어요.

그러니 서서히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1961년 녹음된 음들이 속삭이는 전언. 민이 책 도착. 겨울방학을 맞이해서 [소피의 세계]를 같이 읽고 있다. 만화책으로 된 소피 1권을 갖고 있기에 2권이 언제 나올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온 걸 알고 재빨리 주문. 봄을 기다리는 동안 두껍고 두꺼운 책을 하나씩 깨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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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2-09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보다 으스스한 추위를 더 무서워하는 사람이에요. 어제 4도라고 하더니 나가니 바람 불어 춥더라구요.
오늘도 기모 청바지에 패딩 입고 나갔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데우시고 뜨거운 물을 부어주세요. 감기는 절대 안 됩니다.

저는 이제 막 들어왔어요. 1부, 2부, 3부 마치고 왔고요. 오늘 대망의 4부 마치고 나서 글 쓰는 단발머리로 돌아오겠습니다!
계속 데우고 있어요!!

수이 2024-02-11 08:38   좋아요 0 | URL
저도 기모 청바지에 패딩 입고 외출할 준비 하고 있습니다. 감기는 노노. 그저께 어제 고생하셨으니 오늘 해피 모드로 푹 쉬시기를 바랍니다. 아 일요일이네! 오늘까지 고생하시고 내일부터 푹 쉬세요!

hylaw2 2024-02-19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좋네요. 이 글 제목을 인용해서 저도 블로그 한편 올려야 겠어요. 작성하면 공유해 드릴게요.

수이 2024-02-19 17:04   좋아요 0 | URL
작성하시면 보여주세요! :)

steal0321 2024-02-21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의 힘이 강해요. 봄은 부드럽고. 제가 참가하는 독서모임에서 소피의 세계 함께 읽기가 계속 언급되어도 시큰둥했는데,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라니, 흥미가 올라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이 2024-02-21 20:25   좋아요 0 | URL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도, 소피의 세계도 모두 좋아요.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은수달 2024-02-27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피의 세계가 만화로도 나왔군요! 꼭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수이 2024-02-28 08:14   좋아요 0 | URL
즐거운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은수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