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 소설의 작가 미셸 갤런의 장편 데뷔작 “Big Girl Small Town" 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생소한 아일랜드 영어랑 날것의 발음대로 써놓은 대화체가 인상 깊었고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이 배경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는데 무엇보다 주인공 여성 캐릭터가 독특하면서 마음을 아프게 하는 면이 있어서 기억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인 이 책도 읽게 되었다.
역시나 이 소설도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이 배경이다. 정확히는 1994년 여름이고 북아일랜드에서의 30년에 걸친 분쟁(The Troubles)의 시기 한복판에 이제 막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양 진영은 협상 중에도 충돌을 하고 마을의 어딘가에서 폭탄이 터지고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또 다른 폭탄이 터지는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주인공 메이브(Maeve)와 친구 이파(Aoife)와 캐롤라인(Caroline)은 고등학교를 마친 18살로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다. 이제 마지막 자격시험에서의 성적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틈에 대학을 가기위해 돈을 벌어둬야 해서 마을에 있는 셔츠 공장에서 일을 하기로 한다.
이 공장에 출근하면서 메이브와 친구들은 처음으로 개신교 쪽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북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그곳에서도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산다. 학교는 물론이고 다니는 가게들도 딱딱 분리되어 있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메이브는 가까이에서 개신교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드디어 셔츠 공장에 다니면서 메이브는 개신교도들과 한 공간에서 인사를 나누는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함께 일한다고 해서 이들이 잘 섞여서 지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쉬는 시간엔 각 진영마다 끼리끼리 모여서 보내고 어딘가에서 폭탄이 터져서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 있는 날이면 공장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공장에서 회식을 하는 날에는 장소를 정하는 것도 어렵다. 선택지가 많지 않다. 두 진영이 함께 모이는 것을 허락하는 가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메이브는 어릴 때부터 폭탄 테러를 여러 번 겪는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기위해 나갔던 거리 군중들 틈에서, 성당에서 연극 연습을 할 때 등등. 폭탄이 터질 때의 공포스러운 공기의 흐름과 깨진 유리창이 몸에 박히는 상처를 기억한다. 뉴스에서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 바로 이웃에서 발견된 폭탄 등 일상적인 공포 속에서 메이브는 성장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불안하지만 메이브의 가정환경도 불안했다. 메이브의 가족, 친척들은 누구도 번듯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메이브의 부모님도 돼지 도살장에서 일하다가 그만 둔 상태다. 두 진영 중 일자리가 없어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가톨릭 진영의 삶은 너무나 팍팍하다. 그중에서도 메이브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메이브의 언니가 런던으로 대학을 갔다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었다.
메이브는 계속해서 언니를 떠올린다. 메이브 또한 현재 런던으로 대학을 가서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고 싶은데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언니가 실패하고 자살한 경험은 메이브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러나 메이브는 우울하게 비관하는 성격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서 희망찬 미래를 상상한다. 다소 엉뚱하고 야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속마음은 시커멓고 야하고 말투는 거침없이 당당한 캐릭터다. 이런 메이브라는 캐릭터는 소설의 우울한 배경 속에서 결코 쳐지지 않는 경쾌하고 웃기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아일랜드 사투리(?)가 섞인 영어가 쏟아져 나오고 친구들끼리 있으면 더럽고 야한 말들도 막 나오는 식이다.
메이브가 진지할 때는 주변의 상황을 예민하게 살필 줄 알고 불의를 참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장 사장 앤디가 직원들의 급여를 착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로 뛰어 보지만 더 큰 사회의 벽에 부딪혀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18살 여자아이가 맞서서 고칠 수 있는 상황은 없지만 메이브는 순순히 순응하지 않는다. 한마디 거친 말을 퍼부어 주고야 마는 식이다.
어릴 때 합창단에 있을 때 영국에서 평화를 위해 친선 합창단이 메이브의 동네에 온 적이 있었다. 그들이 북아일랜드 분쟁의 한복판에서 위선적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영국의 노래를 불러 젖히자 그 꼴을 볼 수 없었던 어린 메이브는 당당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린다. 그러자 메이브를 따라 다른 아이들도 다 나와 버려서 공연을 망치게 된다. 이런 성격 고대로 성장한 현재의 메이브.
소설 끝으로 갈수록 메이브는 더욱더 당찬 모습들을 보인다. 런던으로 대학가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싶다는 메이브는 이미 좋은 언론인의 모습을 갖춰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1990년대 북아일랜드의 상황을 이 소설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쪽의 분쟁의 역사를 자세히 알지는 못 했다. 그나마 관련 영화들을 보고 그때가 참 심각 했구나 우리나라랑 비슷한 면도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게 다다. 그런 영화를 본 것도 꽤 오래전 일이지만...
넷플릭스의 “데리 걸스”가 1990년대의 북아일랜드 배경의 여고생들 이야기라 이 소설과 비슷한 배경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밝고 경쾌하고 귀엽고 웃기는 대사들 때문에 그 당시 북아일랜드의 어두운 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은 일상적인 테러의 공포와 분열된 사회와 가난의 문제 그리고 계급의 문제까지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다. 그렇다고 복잡하고 심각한 정치적 서술로 소설을 채우지도 않았다. 메이브와 친구들 그리고 공장에서 만난 성인 여성 직원들이 생활하고 이야기하는 모습들 속에서 1990년대의 북아일랜드의 사회상을 잘 녹여내었다.
원서읽기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이 책...아일랜드 식 영어 단어와 표현들 때문에 읽는 중에 계속 덜컥덜컥 걸렸다. 하지만 구글신의 도움으로 도저히 해석 안 되는 표현들을 천천히 찾아가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구글 없을 땐 어떻게 살았을까?ㅋㅋㅋㅋ
아무튼 다 읽었다.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