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챕터와 이어지면서... 로렌 캐스키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타일러 캐스키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전혀 의심이 없었다. 캐스키 목사가 오고 처음 몇 년 동안 이곳 사람들이 교회에 앉아서 느낀 감정은 따뜻함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목사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이 웨스트 아넷이라는 곳에서 따뜻함이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짧고 뜨거운 여름과 길고 어두운 겨울이 이어지는 뉴잉글랜드 북부의 내륙 지역. 여기서는 수세대에 걸쳐 인내심으로 견디는 것을 중심으로 한 삶의 방식을 길러왔다. 꽁꽁 언 바닥에 미끄러져서 차 문에 턱을 부딪쳐 치아가 아랫입술을 뚫고 나오는 사고를 당한 아이에게 어른들이 해주는 얘기란 이를 악물고 참아. 의사한테 갈 필요도 없고 그냥 참아, 살 거야가 다였다. 실제로 그는 살아남았고 입에 흉터가 생겼다.

이곳 남자들은 말이 없었고, 여자들은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요리를 해서 밋밋하고 맛없는 요리를 했다. 아이들 충치 치료에 마취제를 쓰지 못 하게 했다면 그것은 무정함 때문이 아니라, 삶이 고통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웨스트 아넷에서의 삶은 실제로 고통이었다. 겨울은 길고 두꺼운 얼음이 얼고 집과 집 사이는 멀어서 고립되기 쉬워서 힘들게 살아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를 갔는데 꼭 믿음이 좋아서 간 게 아니라 멋지게 차려입고 지역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에 있던 스미스 목사 시절엔 설교를 듣는 게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지루한 일이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부인과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 주고 집에 머물곤 했는데 타일러 캐스키가 오고부터는 아니었다.

타일러는 설교문을 읽지 않았고 외워서 교인들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다. 교인들은 그의 얼굴을 보면 한 줄기 빛이 반짝이는 듯 했다는데... 그래서 그의 존재는 교인들에게 강한 애착을 불러 일으켰고 사람들이 그의 정직한 얼굴을 보며 따뜻함 안에 머물기 위해 교회에 오면서 출석률이 급격히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오히려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타일러는 전혀 하지 못 했는데... 크으...인기가 좋으면 그 인기 때문에 힘든 일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아직 타일러는 알 수 없었겠지. 어느 날 타일러가 신학대학원에 가서 옛 늙은 교수를 만나 새로운 교회에서 느낀 흥분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때 교수는 이렇게 경고의 말을 해줬다. “히로히토가 참모에게 했다는 말이 떠오르는군. ‘승리의 열매가 너무 빨리 우리의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고 있다.’” 타일러는 그저 열정이 사라진 늙은 교수의 씁쓸함으로 이런 소리를 해주는 거라고 섭섭해 했는데...

 

오늘은 일요일, 타일러는 교회에 갈 준비를 하며 이 일화를 떠올린다. 10월의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는 아침이다. 어머니 마거릿 캐스키는 애기 제니를 보면서 집에 있을 거고 교회에 안 갈 거라고 하고 타일러는 딸 캐서린과 함께 교회로 가기 위해 차에 탄다. 차 안에서 캐서린은 며칠 전 학교에서 토했을 때 아이들이 코를 막고 냄새난다고 놀리던 기억을 떠올린다. 시무룩해진 캐서린. 아이를 달래기 위한 말인지 자신의 바람인지 타일러는 오늘은 비가 와서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왜 이걸 바라는 것처럼 들리지 타일러 목사님? 수상한 걸?

하지만 교회는 사람들로 꽉 찼다. 캐서린은 앨리슨 체이스가 맡고 있는 주일 학교로 보내진다. 주일 학교는 아이들로 정신없고 캐서린은 축축한 부츠를 벗지도 못하고 계속 신고 있다. 앨리슨 체이스가 별다른 얘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앨리슨이 입술에 바른 오렌지 색 립스틱은 캐서린이 보기엔 너무 역겨워서 쳐다보기도 싫은데... 이제 주기도문 시간이다. 아이들은 다 눈을 감고 기도문을 말하는데 캐서린은 눈을 뜨고 있다. 그리고는 나는 하나님이 싫어라고 말한다. 헐 캐서린아 그런말 교회에서 하면 문제아로 낙인찍히는데 어쩔... 말을 도통 안 하는 아이가 교회에서 한 마디 한 것이 바로 저런 불경한 소리라니... 게다가 목사님 딸이...어쩌면 좋니.

 

예배당에선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기대에 찬 얼굴로 캐스키 목사님이 강단으로 걸어올 때를 바라보고 있다. 신도석 맨 앞 세 번째 줄은 비어있다. 1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세 번째 줄에는 감히 앉지 못 한다. 거기는 로렌 캐스키의 자리였다. 사랑스럽고 예뻤던 목사 부인. 공들인 화장과 비싸고 몸에 잘 맞는 옷, 매달 손질과 관리를 받던 머리색이 그 사랑스러움에 일조 했다고 사람들은 기억한다. 교회에서 목사 부인이 참석해야 하는 일에는 로렌 캐스키를 볼 수 없었다. 아마 로렌은 거울 앞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들 수근 거렸다. 매주 일요일 세 번째 줄에 앉아서 로렌과 캐서린이 눈을 마주치며 비밀스럽게 웃곤 했다. 교인들은 이 모습을 기억한다. 이 엄마와 딸은 사람들의 반응을 계속 불러 일으켰다. 로렌 캐스키가 예배 후 현관에서 활짝 웃고, 악수하곤 했지만, 분명한 무관심이 느껴져서일까? 마치 당신들 집에 가는 것에도 흥미가 없고, 이 작은 마을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타일러는 검은 가운을 입고 서 있다. 거기서 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을까? 아니, 그는 늘 앉던 뒤쪽 자리에 앉아 있는 론다 스킬링스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타일러는 론다가 이미 캐서린의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확신했다. (잉거솔 부인이 캐서린을 심리 상담 받게 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 심리학자는 바로 론다 스킬링스였다) 그는 론다가 대학에서 파이 베타 카파 회원이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교회의 익숙한 소음들과 그가 읽는 성경 말씀으로 잠시나마 위안을 느낀다. 그는 과거 이런 것들을 얼마나 즐겼는지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떠올린다.

타일러는 제단 위 의자에 앉아서 설교문 모서리에 꽃을 장식해주어서 고맙다 인사해야 하는 오라 캔달의 이니셜을 적어 두고, 찰리 오스틴의 얼굴을 보고는 도리스 오스틴의 이니셜도 적어 둔다. 하지만 도리스 오스틴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건 굳이 상기할 필요도 없이 타일러의 마음에 찝찝하게 남아 있다. 금요일에도 도리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전화하자 마음먹고 설교를 시작한다.

이사야에 대한 설교. 캐스키 목사는 설교문을 읽고 있다. 이렇게 설교문을 읽고 있자니 어머니가 교회에 안 오신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교인들은 도통 집중하는 것 같지 않다. 이사야가 반으로 잘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조차, 그는 교인들에게서 관심의 기색 하나조차 읽을 수 없었다. 타일러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찰리 오스틴을 보게 되었는데 그는 전혀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지 않고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타일러는 몇 번을 더듬거리며 계속 읽어 나갔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외워서 설교하던 타일러 목사는 어디로 갔나요?

 

 

세차게 비가 오는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찰리 오스틴. 찰리의 시선으로 타일러는 어떻게 묘사되는지 좀 보자. ‘너무 키가 자라서 사지가 삐뚤어진 새끼 말처럼 미끄러지듯 다니는 캐스키를 보는 불편함을 견디고 난 뒤, 찰리에게는 일종의 무거운 우울감이 드리워졌다라고... 역시 목사를 좋게 묘사하지 않는 구만. 찰리는 젊은 목사를 애송이로 보는 경향이 있음. 어쨌든 예배 후에 주차장에서 담배 한 대 피고 있는 찰리 오스틴은 신문에 나오는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에 답답하다. 아이젠하워가 허둥대고 있고 후루시초프가 유엔에 나타나서 고함치고 미국은 아직 성숙하지 못 하고 순진해서 사방에 스파이들이 설치고 다닌다고. 이 나라에서 점점 조여 오는 위험을 느끼는데, 찰리는 평소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여전히 죽음이 두려울 수도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런 생각의 끝에 떠오르는 생각은 보스톤에서 만난 어떤 여자다. 호텔에서 포커 치다가 만난 여자. 그 여자의 벗은 몸과 나눴던 음란한 대화를 떠올리고 있자니 오 주여!”가 절로 나온다. 그때 마침 아들이 차 속으로 들어온다. 아직 어린 아이 같지만 13살인 아들. 찰리는 아들이 자신이 이제껏 본 아이들 중 가장 못생긴 아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니 아버지란 사람이 아들을 너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거 아닌가? 찰리 오스틴은 고슴도치가 아닌 모양. 턱이 너무 빈약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자식 친구는 있을까? 싶은데... 아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아들이 신문을 접어서 보는 방식이 자신과 똑같다는 걸 발견한다. 아들이 자신의 일부를 복재했다는 사실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고통스럽다. 그래서 아들의 뒤로 다가가 여윈 몸을 팔로 감싸 안고, 자신의 뺨을 아들의 뺨에 대며 조용히 속삭이는 장면을 상상한다. 넌 착한 아이고 사랑받고 있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타일러는 어머니와 두 딸과 저녁을 먹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지막 날에 대해 이미 많이 했던 이야기를 또 타일러에게 하고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고마워였단다, 아버지가 너에게 했던 말 기억하니? 언제나 사려깊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거라...

그리고 유대인 사울 파이퍼의 부인 일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수용소에서 만난 둘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는데 얼마 전에 일스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끔찍한 수용소에서도 살아 남았는데 자살을 하다니 마거릿 캐스키는 이해할 수 없다고 타일러에게 말한다. 유대인들은 자살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나보지? 라고 묻는 마거릿, 타일러는 그들도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함부로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다.

타일러가 교회에 갔을 때 서재를 들여다 본 마거릿은 그 방에서 학교 다니는 소년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걸 보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 아들이 이렇게 혼자 계속 살면 안 될 것 같다 싶은거지. 그래서 타일러에게 홀리웰에 참한 아가씨가 있는데 전화 한번 해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는 애기 제니를 데리고 셜리 폴스로 돌아간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찰리 오스틴은 지난밤에 사촌에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한다. 타일러 캐스키 목사의 가정부 코니 해치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 코니가 2년 전에 요양원에서 일할 때 돈과 귀중품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조사 받는 3명 중 한명이라는 것이다. 부인 도리스에게 말해 줄까 싶었지만 목사한테 훔쳐갈 만큼 돈이 있지도 않을 것이기에 굳이 누구에게도 말할 필요 없겠지 싶어서 그만둔다. 도리스는 아침 준비를 하면서 겨울이 오는 게 싫다고 투덜댄다. 눈이 오는 것도 싫고 꽁꽁 어는 것도 싫다고. 사실 찰리는 눈을 좋아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한다. 그러면서 다시 보스톤에서 만난 그 여자 생각을 한다. 그 여자가 했던 음란한 대화. 오 그 여자가 내던 소리. 그때 딸 리사가 세균전 연구를 반대하는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다시 찰리 오스틴은 현실로 돌아와 딸과 대화를 나누고, 딱히 미국이 세균전 연구를 한다는 것에 반대 입장을 내지 않는 찰리에게 리사는 실망하는 눈치. 아빠는 전쟁에도 참전한 적 있으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듯하다.

 

 

타일러 목사는 캐서린이 학교에 간 뒤 하루 첫 시간을 기도와 묵상에 바치는 것이 습관이었다. 여기에는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도 포함되었다. “궁핍한 자들을 구하소서...그들은 어둠 속을 걷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그는 한 기억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마을에 처음 왔을 때, 그는 자신의 교구 신자들에게 기도 생활을 더 확장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저와 이야기하러 오셔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론다 스킬링스가 왔었다. 그들은 4세기의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우구스티누스, 틸리히, 니부어, 그리고 물론 본회퍼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는 론다에게 기도 모임을 시작해보겠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미소 지으며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학 시절 파이 베타 카파 였다고 언급했다. 그 후 론다는 다시 오지 않았다. 타일러는 이 일을 회상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론다 스킬링스는 약간 잘난 척 쟁이 인 듯?

그 때 코니가 출근하는 소리가 들린다. 코니와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서재에 앉는 타일러. 설교문 개인적 허영의 위험에 대하여를 다듬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다 지겹네. 타일러 목사님 이 설교문 언제 완성하실건가요? 이번엔 톨스토이를 인용하며 하나님의 집은 교회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이다.”를 써놓고 다음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데...그리고 익숙하면서 지긋지긋한 걱정이 올라오자 도리스 오스틴에게 전화를 건다. 이번에도 받지 않는다. 또다시 설교문 쓰는데 실..

코니와 함께 커피 타임을 가지기로 한 타일러. 식탁에 앉아서 코니에게 자신의 얘기를 해보라고 말한다. 고향이 이 주변인가요? 로 시작하자 코니는 아니라고 저기 강 상류쪽이라고 말한다. 코니에게는 언니도 있고 12살 터울 남동생 제리도 있었는데 9년전 한국 파병갔다가 죽었단다. 이때가 1959년이니까 1950년에 제리가 죽었구나. 타일러는 매우 안타까워 하고 코니는 계속 말을 잇는다. 한번 말이 터지니 계속 대화가 되는 중.

제리는 원래 독일에서 싸우고 싶었으나 그때는 국내에서 사무직을 맡아서 참전할 수 없었다. 전투에 나가본 적 없다는 사실이 자신을 겁쟁이처럼 느끼게 만들어서 한국전에 나갈 필요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갔다고. 아이구 왜그랬어 제리!! 터울 많이 지는 남동생 제리를 자신의 아이처럼 돌봤는데 전쟁에서 죽었다고 하니 코니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날 제리의 장교였다는 사람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갔다. 가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리의 죽음이 실감이 날까 싶어서. 그런데 가서 보니 그 장교는 하루종일 휠체어에 앉아 뒤에서 누가 올까 벽에 휠체어를 붙이고 몸을 떨면서 담배만 피우고 있었단다. 사람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그리고 적어도 내 동생 제리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고 살아서 고통 받지는 않았다고 목사에게 말한다. 이때 코니의 목소리는 갑작스럽게 흥분으로 커지고 타일러는 그런 코니에게서 어떤 불안감을 감지한다.

그건 사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나요?”라고 묻는 코니.

하지만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준다. 그때 코니 얼굴에 스치는 혼란과 두려움의 경련을 목사는 본다. 오호 이러니까 코니도 수상하네.

그리고 코니는 위층 옷장에서 주웠다며 캐서린의 반지냐면서 빨간 보석이 달린 반지를 목사에게 준다. 타일러는 처음 보는 반지라 캐서린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코니는 이 집에서 발견된 것이니 캐서린에게 주라고 한다. 반지를 챙기는 타일러.

그러면서 타일러는 애기 제니도 이제 데려와서 같이 살 계획인데 해치 부인이 종일 베이비시터를 해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코니는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 순간 타일러는, 코니의 얼굴 속에서 젊은 시절의 모습이 잠깐 비치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자 다시 과거로 가서 타일러와 로렌이 사랑에 빠지던 순간을 보자. 신학생으로서 현장으로 보내진 타일러는 외딴 고립된 마을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교인 6명을 앉혀놓고 설교를 시작하면서 처음엔 좌절했지만 점점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쉽고 열정적인 설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평가가 좋아진 타일러는 해안가의 작은 마을로 설교를 하러 보내졌다. 그 마을은 연중 내내 담당 목사를 둘 만큼 크지 않았지만, 7월이 되면 외지에서 온 여름 휴가객들 때문에 교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7월 초 어느 날, 날씨가 충분히 따뜻해 교회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예배당의 창문들도 모두 열려 있었다. 교회 안에는 아침의 달콤하고 포근한 공기가 가득 스며들어 있었다. 모든 신도석은 꽉 차 있었다. 대부분은 매사추세츠나 코네티컷에서 여름을 보내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날 교회에는 파란 드레스와 파란 모자를 입은 여름을 보내러 온 아름다운 소녀, 로렌 슬래틴이 아버지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온통 색과 빛으로 가득 차 있으며, 젊은 캐스키 목사를 바라보는 얼굴과 눈에서는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타일러의 설교는 말해 뭐해! 타일러의 눈빛은 강렬하고 뺨은 달아올랐다. 그렇게 예배 막바지 축도 기도에 이르자 둘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매사추세츠 출신의 부잣집 딸 로렌. 만약 로렌이 뉴햄프셔 출신이었거나, 더 나아가 버몬트 출신이었다면, 아마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매사추세츠 출신이라는 것은, 일종의 속물임을 의미했다. 대부분 돈과 칵테일을 좋아하고, 매사추세츠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운전자들이었다라고 메인 주 사람들은 생각했다고.

그러니까 결혼식 날 양가의 마음속에는 서로 한쪽이 더 높은 위치에서 결혼한다는 암묵적 이해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 그날을 회상하며 타일러는 이해한다.

 

한편 웨스트 아넷 교회의 여성 자선모임소속의 몇몇 여성 신도들이 제인 왓슨의 집에 모였다. 이들은 여기서 수다를 떨면서 소식을 교환하거나 가십을 옮기고는 했는데, 오늘 모임은 캐서린 캐스키가 주일학교에서 하나님 싫어!” 라고 한 말을 목사에게 전해야 하는지 마는지가 수다의 주제다. 잉거솔이 목사와 캐서린 문제로 상담을 하고 울면서 집에 갔다는 이야기, 목사가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야기 등등이 오고가고 도리스 오스틴은 은근히 목사에 대한 험담에 말을 보탠다. 오르간 얘기 하러 갔더니 엉뚱한 가톨릭 순교자들 책이나 읽으라 했다며(거짓말이죠?)... 그러다가 결국은 캐서린이 주일학교에서 한 말을 목사에게 전해야 하고 제인 왓슨이 전화하기로 결론을 낸다.

 
















하아.....해석은 그냥 주르륵 하는데 정리해서 풀어 쓰는게 너무 오래 걸린다.

이번 챕터는 대충만 정리

그래도 기네... 확 줄이고 싶은데 나는 왜 그게 안되는 걸까? ㅠㅠ


아무튼 이번 챕터는 로렌과 타일러가 교회에서 교인과 목사로 예배 중에 눈 맞아 뿅 반하는 내용이 인상적.

그게 가능하다니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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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11-03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고님~~ 너무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코니가 남동생의 장교를 찾아갔을 때의 그 장면 특별하네요.

“그건 사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나요?”라고 묻는 코니. 하지만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준다. 그때 코니 얼굴에 스치는 혼란과 두려움의 경련을 목사는 본다. 오호 이러니까 코니도 수상하네.

저는 코니의 미래를 아니까요(에헴~~) 그 행동이(혹 궁금하신 분들 ㅋㅋㅋㅋㅋ<바닷가의 루시> 읽으면 그 행동이 나옵니다) 예전부터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거라는 걸 알거 같네요. 저는 타일러와 비슷한 생각이지만, 요즘에 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 아닌 나의 문제라 생각했을 때는 더 복잡해지고요.

읽는 사람은 참 즐겁고 행복하지만 정리하시려면 시간 많이 걸리실 거 같아요. 저도 그랬던거 같아요. 해석을 넘어서 요약하고 정리하고 그래야하니깐요. 망고님의 읽기에 다시 한 번 화이팅을 보태놓고 갑니다! 뽜야!!!

망고 2025-11-03 11:28   좋아요 1 | URL
타일러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과연 막상 닥친다면? 타일러 아주 수상한 목사님이고요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몇년전에 읽어서 세세한 부분은 기억이 잘 안났었는데 요즘 이렇게 정리하면서 읽어 나가니 좋은 점도 많아요. 게다가 예전에 찾아서 적어 두었던 단어는 지금 읽어도 모르는 단어ㅋㅋㅋㅋ단어 죽어라 안 외우는 사람 바로 접니다. 몇 년 후에 또 읽어도 또 모를 단어들ㅋㅋㅋㅋㅋㅋ
챕터 안에서도 이 사람 저 사람 이 생각 저 생각 다양하게 나오다 보니 요약이 잘 안되고 글이 길어지는데...저도 잘 요약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ㅠㅠ
 



메리 잉거솔은 사실 타일러 목사와의 학부모 상담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돋보이게 해 주는 빨간색 니트 원피스를 입었는데, 전날 남편이 셔츠 주머니에 휴지를 넣어 놔서 세탁기 돌릴 때 그 먼지가 온통 옷에 다 달라붙고 말았다. 그래서 니트 원피스도 깔끔한 상태이지 못 했다. 애초에 징조가 안 좋았군 하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사실 잉거솔 부인은 타일러 캐스키 목사를 예전부터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그와 상담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연습하고 목사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보이기 위해 십자가 목걸이도 걸고 나갔다. 비록 바빠서 교회를 잘 나가지 못 하지만 목사는 분명 잉거솔 부인의 바쁜 상황을 이해해 주는 말을 해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목사를 만나서 딸 캐서린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목사는 집중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내내 피곤해 보였다. 막판에 심리상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보인 목사의 냉담함에 잉거솔 부인은 그만 상처를 크게 입고 말았는데...

그날 밤 남편한테 과장해서 목사에 대한 험담을 한다. 목사가 자신을 비웃고 어린애처럼 눈싸움이나 했다면서.(아니 대체 언제?)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자 친구인 심리학 전공자 론다 스킬링스와 다른 친구들한테도 전화를 걸어서 목사에 대해 더 과장해서 험담을 하고나자 편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타일러는 누구 험담이라도 하며 털어 놓을 사람이 없었고 잠에 들지 못 한 채 소파에 누워 밤을 새는데... 자신 안에 어두운 무언가가 딱딱한 돌멩이 같이 존재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를 마음이 들다가 곧 사라지고는 놀이터에 혼자 서 있는 딸 캐서린의 모습이 마음속에 남게 된다. “아무도 캐서린이랑 안 놀아요라던 잉거솔 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떠오르면서 옛날의 기억이 덮쳐온다.

그의 누나 벨이, 어린 시절 셜리 폴스의 놀이터에서 혼자 서 있던 모습. 두 살 어렸던 타일러는 그런 누나를 외면하고 친구들한테로 갔던 기억. 무심한 척하는 표정으로 애들 노는 걸 구경하다가 돌아서던 누나의 모습을. 그 기억이 떠오르자 타일러의 마음은 아팠다. 그는 학창시절 반장도하고 축구팀 주장도 했건만...

타일러는 다시 이리저리 걱정스러운 생각들이 떠오르고 설교문을 완성하지 못 했다는 걱정도 떠오르는데... 몇 주 지나면 헌신 주일이고 그러고 나서는 예산안이 나오고 확정 투표도 곧 하게 될 텐데, 그때 도리스 오스틴은 새 오르간을 사자며 교회 위원들을 조정하려 들 거고 그걸 막아야 한다는 걱정을 또 하고... 그러다가 코니 해치의 초록색 눈을 떠올리니 졸음이 오는데...

선잠에 들고 다시 깨어났을 때 딸 캐서린이 옆에 와 있는 걸 본다. 캐서린은 침대에 실수를 했고 옷이 다 젖어 있었다. 캐서린을 욕실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켜주면서 따뜻한 톤으로 학교에서 비명 지르는 짓 하지 말자고 타이르고, 친구들한테 가서 같이 놀자고 다정하게 말해보라고도 말해 본다. 캐서린은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이제 아침이다.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반짝이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과연 인간이 이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아침. 후르시초프가 핵무기를 4년 안에 없애야 한다고 말했지만, 군비 축소에 대한 사찰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1959년의 이 시대에 대한 배경이 또 다시 서술된다.

타일러는 새로 산 흰 셔츠를 입고, 접은 담요를 팔 아래 끼운 채 교회를 향해 걸어간다. 러시아 지도자와 잉거솔 부인을 위한 기도를 하는 중일까 아니면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사하고 있는 중일까? 다 아니고 타일러는 코니 해치를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 나눴던 시선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놀랐고, 오랜 세월 누구의 눈도 그렇게 마주한 적이 없었던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회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교회는 1796년에 지어졌고 작은 언덕에 기대어서 서 있다. 그 교회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주변의 소나무와 삼나무들처럼 교회도 땅 속으로 뿌리를 레이스처럼 내려서 단단히 뻗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고.

목사 서재는 교회의 본관 지하에 있었고 지금 타일러가 향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하지만 먼저 예배당에 들러서 가지고 온 담요를 뒤쪽 의자 밑에 집어넣는다. 교회는 대공황 때부터 부랑자들이 와서 자지 못 하도록 문을 잠그곤 했다. 타일러는 교회 운영에 대해 거리를 두는 성향이었지만 처음 부임했을 때 교회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유의 열정적인 어조로 옛날에는 쫓기는 범죄자가 성스러움의 감화로 인해 교회 예배당 안에서 피난처를 찾았다고 설교했다. 그래서 타일러 부임 이후 웨스트 아넷 교회는 계속 열려 있게 되었고 교회에서는 이제 어느 부랑자라도 잠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촛대를 훔치다 잡힌다면, 다른 한쪽 촛대도 그에게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사랑의 본질입니다.” 라고 설교하는 캐스키 목사. 아무도 목사에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사에게 이 설교 이후 은촛대를 은도금 촛대로 바꿔 놓고 진짜 은촛대는 제인 왓슨에게 맡기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 다시 가져다 놓는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이 웨스트 아넷 교회 교인들 너무 웃기잖아. 이게 바로 작가 스트라우트식 유머겠지만.

타일러가 촛대 일을 알았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마음을 쓴 곳은 촛대 따위보다는 월터 윌콕스라는 교인이다. 그는 아내를 잃고 나서 아내와 살던 집을 못 견뎌서 교회에 와서 자곤 했다. 깨우면 때때로 어린아이처럼 울기도 했던 월터에게 타일러는 목사관에 와서 자라고 초대하기도 했었다. 타일러의 아내는 당연히 반대했지만.

지난밤에 잠을 뒤척이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월터 생각도 났고 요즘은 날씨도 쌀쌀하니 교회에 담요를 가져다 놓자하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물론 월터 이후에 교회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런 다음 교회 지하에 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사적인 허영의 위험에 대한 설교문을 다 쓰고 나서 외우기까지 하려고 했다. 이건 그가 존경하는 본회퍼 목사가 해야 한다고 믿었던 방식이었고 캐스키 목사도 올해 전까지는 계속 해 오던 방식이었다.

허영은 영적 성장을 방해한다. 예배 장소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필요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여야 한다. 이런 설교문을 구성하다가 오르간 문제를 직접 언급할까 말까로 고민하다가 스스륵 졸음이 오고, 잉거솔 부인이랑 상담했던 내용이 다시 생각을 방해하고, 개인적 허영은 차림의 단정함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라는 설교문을 졸음 속에서 흔들리며 다시 또 생각하고...

그러다 위층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나가 보니 도리스 오스틴이 계단 위에 서 있다. 타일러를 만나러 온 것이다. 타일러는 도리스를 서재에 들인다. 그때 순간적으로 도리스의 순종적인 얼굴을 한 대 때리는 장면이 예상치도 못 하게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캐스키 목사가 왜 이런 장면을 상상하지? 아무래도 목사가 도리스와 대화를 하기가 너무 싫은데, 그 마음이 이런 환상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셔츠 사러 갔을 때도 도리스를 피했는데 말이다. 도리스 너무 눈치가 없군.

도리스는 목사에게 너무 슬프다면서 남편 찰스 오스틴이 자신을 때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데...그는 울고 있는 도리스를 보고 지친 기분을 느낀다. 그러면서 지난 몇 달 동안 홀리웰의 자동차 세일즈맨들을 부러워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책임감이 없기 때문에. 즉 목사는 도리스 같은 이런 교인들, 목사에게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이들이 부담스러운 걸까? 지친 걸까? 그 선하고 다정했던 캐스키 목사가 속마음은 이렇다고? 너무 수상한 걸?

목사는 도리스에게 그다지 위로가 되는 말을 해 주지 못 하고 다른 지역의 목사에게 가족 상담을 받아 보라는 이야기나 한다. 그리고 그때 캐서린이 학교에서 토했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이 상담은 중단된다.

이제 도리스 오스틴이 목사의 성의 없는 상담에 실망하여 험담을 퍼트리고 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는가?

 

 

토요일 아침이다. 타일러의 어머니 마거릿 캐스키가 사랑스러운 아기 제니 캐스키를 데리고 목사관에 와있다. 마거릿은 목사관의 청소 상태를 못마땅해 하고 가정부 코니가 대체 뭘 하면서 돈을 받는 거냐면서 자신이 직접 청소를 한다. 아무래도 코니 해치는 손이 야무지지 않은 모양인데... 마거릿은 이렇게 살고 있는 아들 타일러를 보며 걱정을 늘어놓고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있기 힘든 타일러는 설교문을 쓴다고 서재로 들어가는데... 사실 설교문을 이미 다 썼다. 원래 쓰려던 허영에 관한 설교문은 결국 쓰지 못 했고 신학교 시절에 써 놓았던, 현재 타일러 교회의 상황과 하나도 관련 없는, 설교문으로 내일 있을 예배 준비를 마쳤다.

 

책상에 그냥 앉아서 방을 둘러보던 중 본회퍼의 옥중서신에 눈이 놓인다. 너무 자주 들여다본 나머지, 전체 단락들을 외워서 말할 수도 있는 책.

그 책을 보고 있자니 사람들이 신학적 문제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베를린의 한 집을 상상해 보게 된다. 독일 라디오 방송 소리와, 본회퍼의 또렷한 목소리가 인간이 악에 맞서 책임을 지는 것은 행동하는 것에 있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라디오는 정부 당국에 의해 문장 중간에 끊긴다. 젊은 금발의 목사 본회퍼가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도 상상한다. 뉴욕에서 배를 타고 독일로 돌아가는 본회퍼의 모습, 또 그가 인간의 죄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리고 테겔 군사 감옥을 떠올린다. 그 남자의 용기와 고통의 수많은 장면들을 떠올려 보고나니 타일러 자신의 절망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 강하게 느끼게 된다. 뒤틀린 자신의 고통에 비해 디트리히 본회퍼가 겪었을 고통은 마치 순수함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타일러는 이 순교자에 대한 사랑이 너무 개인적이라서 서로 한번도 만난적도 없고 본회퍼가 타일러라는 존재 자체를 모를 것이란 생각을 하면 스스로 놀라곤 했다. 우린 친구가 되었을 텐데 라고 타일러는 생각한다. 비록 본회퍼는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21년 후 미국의 메인 주 셜리 폴스에서 타일러 캐스키가 태어났지만, 또한 타일러가 소화 잘 못 하는 애기로 이유식이나 받아먹고 있을 때 본회퍼는 이미 박사논문을 완성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오 똑똑한 사람이네미래의 로렌 캐스키(드디어 나왔다 타일러의 부인 이름!) 가 타일러와 두 번째 데이트 때 한 말이다. 타일러가 두 번째 데이트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본회퍼 목사의 일대기를 열정적으로 이야기 해 준 모양이다.

본회퍼는 단지 자신의 교회가 나치즘을 묵인하는 것에 맞서 일어섰을 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신앙고백교회를 위한 신학교 설립에도 참여했다. 1939년 미국에서 1년을 보낸 뒤, 그는 독일로 돌아가기로 선택했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친구들도 본회퍼에게 나치 독일로 돌아가지 말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가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독일에 있지 않는다면, 전쟁 이후 독일에서 신뢰를 얻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돌아갔다고 타일러가 말하자 , 참 고귀한 행동이었네,” 라고 미래의 캐스키 부인이 반응했다. 타일러는 만약 이 말 속에서 어떤 냉소를 감지했다면,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중에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는 냉소를 감지하지 못했고, 지금, 서재에 앉아 이 일을 떠올리면서도, 로렌의 말 속에 어떠한 냉소도 없었다고 믿었다. 또 그때 로렌이 아이 같은 말투로 나는 안 돌아갔을 거 같아라고 하는 정직함에 타일러는 감동을 받았다고. (이게 감동받을 말이란 말인가)

이 데이트에서 알 수 있는 점, 타일러는 역시 신학생답게 진지했구만. 근데 로렌은 타일러와의 데이트가 재미있었을까? 어쩌면 콩깍지의 힘으로 괜찮다 느꼈을지도...

 

이제 서재에 앉아 있는 타일러는 만약 그가 1년 전 이 방에서 본회퍼와 함께 앉아 있었다면? 만약 타일러가 본회퍼의 손을 잡고,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나는이라고 말했다면?’

하지만 그는 결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뭘?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계속 읽다보면 나오겠지?

타일러는 다시 본회퍼가 감옥에서 썼던 글을 떠올린다. “성숙한 인간에게는 현재 상황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온전함이 있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고, 감옥과 자신의 죽음에 직면했고,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미성숙한 사람과 달리,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중심이 항상 자신이 실제로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본회퍼는 감옥에서 이렇게 썼다. 이 문장을 생각하면서 타일러는 자신이 있는 이곳 웨스트 아넷에서 자신의 일을 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는다. 그의 일은 신도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진지한 일이었고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스스로에게 사랑이 어떻게 가장 잘 실현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일은 그들의 지도자이자, 스승이자, 본보기가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본회퍼를 본받아 자신의 일을 잘 해나가겠다 생각하는 타일러 캐스키 되시겠다.

 

이제 이야기는 타일러가 처음으로 웨스트 아넷에 오던 날로 돌아간다.

웨스트 아넷 사람들에게 타일러 캐스키의 등장은 크고 활달한 곰이 강을 헤엄쳐 올라 강가에 기어오르는 것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곰처럼 키가 크고 뼈대가 우람한 큰 남자였고, 그의 손을 잡는 건 곰의 손을 잡는 느낌이었다. 목소리도 큰 덩치에 맞게 깊은 울림이 있었지만 그의 전체적인 인상이 위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온화한 표정과 반짝이는 창백한 청교도식 눈에 있었다고. 설교는 열정적이고 강렬하게 했지만 교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붙임성 있고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해서 교인들에게 감동을 샀다. 하지만 일부 교인들은 그의 친근함과 열의가 진실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바로 찰스 오스틴이 그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매력적이라고 여겼다. 또한 목사 부인인 로렌 캐스키도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자 여기서 웨스트 아넷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살펴보면, 이 시골 마을이 겉보기에는 깨닫지 못 하겠지만 여기는 엄연히 사회적 계급 구조가 존재한다. 이 곳은 여기 처음 온 조상이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이들은 지치고, 굶주리고, 억압받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은 가난하고 지쳐서 미국에 온 이민자들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았다. 예를 들어 가난해서 이민 온 아일랜드계나 이태리계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종교의 자유와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온 사람들 청교도들이거나 스코틀랜드인들이거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익숙한 이름 버사 배브콕(“다시 올리브에 나옴)의 메이플라워 호 모형이 집에 있다는 것도 언급된다. 웨스트 아넷 사람들의 조상들은 가난과 지침, 허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는 자부심이 있다는 의미랄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웨스트 아넷의 계급 사다리 중 위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들의 조상이 먼저 여기 터를 잡고 살았으니 말이다.

어쩐지 고집 세고 자존심 센 사람들일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오지 않나?

 

이런 웨스트 아넷에 타일러 캐스키가 처음으로 설교를 부탁받고 오는 날이다. 캐스키 목사의 설교를 듣고 이 사람을 교회 목사로 찬성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일종의 오디션을 보는 날이랄까.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오기와 실비아 딘의 집에서 목사 부부를 처음으로 대접하기로 하고 교회 집사 부부와 교회 간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처음 이들 앞에 나타난 목사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 부인은 아니었다. 눈도 크고 입도 크고 볼도 동그랗게 커보이던 로렌 캐스키는 목사 부인이라면 기대하는 외모가 전혀 아니었고, 특히나 신고 온 신발은 뒤가 끈으로만 된 것이었다. 4월이지만 눈이 내린 계절에 뒤가 뚫린 신발이라니. 임신까지 했는데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런 걸 신고 왔담? 게다가 립스틱도 진하게 발라서 컵에 자국을 남길 것 같은 모습. 백화점 특유의 냄새가 좋아서 쇼핑하는 걸 좋아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런 사람이 목사 부인이라고? 웨스트 아넷의 사람들은 첫 인상부터 로렌 캐스키를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로렌도 마찬가지로 교인들의 첫인상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찰스 오스틴은 분명 늑대일 거라며 타일러에게 말해 주고 제인 왓슨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래도 오늘의 만남을 자신이 썩 잘 해내지 못 한 것 같아 로렌은 울음을 터트리고 타일러는 그런 부인을 다정하게 안아준다. 이 둘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한 쌍의 부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타일러는 다음날 웨스트 아넷 교회 설교단 위에 서게 된다.

설교단으로 걸어가면서 가슴속에서 억누를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던 타일러 목사.

 


그날, 웨스트 아넷에서의 첫째 날, 목사 타일러의 기쁨에 찬 모습으로 챕터 2는 끝

아니 이렇게 정리하는 거 왜이렇게 힘들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챕터 3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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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5-10-25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 얘기지만, 삶의 여러 모습을 묘사하는 스트라우트의 글이 쓸쓸하기도, 따스하기도 하네요. 저도 스트라우트를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망고 님 글솜씨도 대단하시네요!

망고 2025-10-25 23:39   좋아요 1 | URL
미국 얘기지만 사람사는 거 다 비슷하다 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때문에 좋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지지고 볶는 얘기들이요ㅋㅋㅋ
저는 그저 해석만 하고 있는 거라 글솜씨랄 것이 없는데ㅎㅎㅎ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5-10-25 0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만세 만세 만만세!! 망고님 글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스트라우트가 만들어낸 멋진 세계를 망고님이 이렇게 실감나게 전해주셔서 정말 좋구요.
저는 일찍이 걸음마를 익혔던 그 때로부터 교회에 나갔던 사람으로서 타일러 목사님(급 존경심ㅋㅋㅋㅋㅋㅋㅋ)의 내면의 고민과 갈등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본 회퍼 이야기에도 관심이 가구요. 무엇보다 망고님의 글을 통해 스트라우트를 읽는 맛이 더 살아나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연재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꾸벅!

망고님이 알고 계실런지 잘 모르겠지만, 일전에 제가 필리스 체슬러의 책을 읽다가 [An American Bride in Kabul]이라는 책을 알게 됐어요. 너무 읽고 싶은데 아직 번역이 안 되어 있고... 해서... 천천히 혼자 읽다가 중간중간 페이퍼를 썼는데, 알라딘 서재 이웃분들이 그 다음, 그다음은? 하고 자꾸 물어보셔서 ㅋㅋㅋㅋㅋㅋㅋㅋ막 건너뛰면서 올리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꽤 긴 시간 연재를 ㅋㅋㅋㅋ 했더랍니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이제 망고님의 시간인 것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내놓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10-25 23:54   좋아요 1 | URL
저 근데 이거 요약해서 올리고 싶은데 하다보면 길어지고 그냥 해석만 주르륵 하는 것 같은데ㅋㅋㅋㅋㅋ이래도 되나 싶어요. 재밌게 읽어 주시는 점은 너무 감사하지만..
저도 애기때 부터 교회를 다녔는데(지금은 안 가고요) 이 책은 교회 이야기라서 뭔가 익숙하고 그 분위기가 뭔지 알 것 같고 그래요ㅋㅋㅋㅋㅋㅋㅋㅋ
독일의 본회퍼 목사는 실제 인물로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도 하고 나치 반대하는 설교도 하다가 결국 감옥에 갇혀 사형당했다고 해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름을 처음 들어봤어요^^
단발머리님 연재하신 페이퍼 읽었던 기억도 나고요 그거 읽으면서 제가 봤던 영화랑 비슷하다 했던 기억도 나요. ˝솔로몬의 딸˝이란 영화였어요.(제목이 기억 안 나서 지금 검색 한참 해보고 옴ㅋㅋㅋ)
단발머리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몇 년 전에 아마 코로나 때일 것 같은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Abide With Me"를 읽었다. 이 책은 스트라우트의 비교적 초기 소설인데 번역이 안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원서로 읽었다. 근데 아직까지도 번역본이 안 나왔다.

아무튼 요즘 안 읽고 쌓아 놓은 책이 많은데도 아무것도 읽고 싶지 않은 마음에 모두 다 놓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이 책이 다시 읽고 싶어지는 거다. 사실 나 이 책 읽고 마지막에 눈물 찔끔 흘리기도 했는데, 그런 감동을 다시 맛보고 싶은 걸까?

아무쪼록 책태기가 왔을 땐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근데 이왕 다시 읽을 거 그냥 읽지 말고 기록도 해 보자 싶은 거다.

근데 또 이렇게 마음만 먹었지 하다가 귀찮으면 안 하고 그냥 읽고 끝낼 수도 있다. 뭐든지 하겠다하고 질러 놓으면 하기 싫어지는 성향이 또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이제 주말에 읽었던 챕터 1을 정리를 해 보겠다 이거다. 정리가 모야 그냥 해석이지 모.

챕터 1은 짧으니까







소설의 첫 문장은 샙어낙 강 북쪽 마을에 어떤 목사가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라는 약간 옛날 이야기 들려주는 톤으로 시작한다. 목사의 이름은 타일러 캐스키. 이 목사의 이야기가 강 아래 위 마을에서 회자되었고 원래의 이야기에 많은 변형이 일어나면서 오랫동안 멀리까지 전해졌는데 대체 목사에 대한 무슨 이야기 길래 소문이 계속 퍼져 나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궁금하지 독자들아 하는 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1959년 겨울의 마지막 몇 달간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하고 아직까지 웨스트 아넷(스트라우트 팬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지명이다)에는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는 노인들이 몇몇 살고 있다고.

당시 캐스키 목사에게는 딸이 두 명 있었는데 첫째 딸 하고만 같이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둘째 딸은 완전 애기여서 아빠 혼자 돌볼 수가 없었기 때문. 캐스키 목사는 왜 혼자 남았을까? 아직 안 가르쳐줌.

아무튼 애기 딸은 캐스키 목사의 어머니가 데리고 가서 길러 주는 모양인데 이 어머니가 사는 곳은 셜리 폴스(여기도 스트라우트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곳). 셜리 폴스도 그렇게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크고 튼튼한 건물들도 몇 있었는데 타일러가 살고 있는 웨스트 아넷은 거기보다 더 촌이라서 아무리 가도 가도 들판이랑 농장, 띄엄띄엄 있는 농가 밖에 안 나오는 곳이다. 그 농가에 타일러 캐스키 목사랑 첫째 딸 캐서린이 살고 있었다.

 


그러면 목사가 살고 있는 집 그러니까 목사관은 어떤 곳이냐 하면, 약 백 년 전에 조슈아 로크의 가족이 세우고 농사도 짓던 곳이었다. 근데 대공황이 끝날 무렵 이곳에 살던 로크 일가도 그만 몰락해 버려서 유일한 상속자인 칼 로크만이 살게 되었다. 칼 로크라는 사람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마을에 잘 나오지도 않고 집에 누가 찾아오면 라이플 총을 들고 손님을 맞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아무튼 은둔해서 살던 칼 로크가 죽을 때는 집과 헛간과 땅을 몽땅 회중파 교회에 기증하고 죽었단다. 교회도 안 나오던 사람인데 말이다.

웨스트 아넷의 회중파 교회는 작은 마을에 유일하게 세워진 하나 뿐인 교회고 재정 상태도 넉넉하지 않은 게 당연했는데, 마침 오랫동안 있던 스미스 목사가 은퇴를 하고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스미스 목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바로 돌아서서 교회 땅을 팔아먹기 시작한다. 메인 스트리트에 있던 목사관을 아주 좋은 값에 치과의사에게 팔았더니 새로 올 목사가 살 집이 없네. 그렇다면 저 시골에 있던 로크가 기증한 농가에 살게 하면 되지 라고 결정하고 목사 추천을 받게 되었다.

바로 타일러 캐스키가 적당한 인물이라고 선정된다. 왜냐하면 타일러는 젊었고 키도 크고 건장한 체격에 성격도 쾌활했지만 무엇보다도 돈 관련 얘기가 나오면 불편해 하는 기색을 풍겼다는 게 가장 제격인 요소였다. 이런 사람이라면 시골 가서 살라고 해도 아무 말도 안 할 것 같았기 때문에.

이런 예상은 아주 잘 들어맞았는데 지금까지 목사가 그곳에서 6년을 살았지만 별다른 불평이 없었던 거다. 그저 거실과 다이닝 룸을 핑크색으로 칠하면 안 될까요? 하고 허락을 구한 게 6년 동안 집 관련으로 말한 전부였다고.

집을 고치거나 인테리어를 새로 한다거나 하질 않았으니 이 농장 주택은 처음의 지은 그대로 낡은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는데 그래도 자세히 보면 집 외관이 꽤나 단정하고 대칭이 잘 이루어져서 지은 사람의 훌륭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낡아서 난간도 부러지고 그러는데 좀 고치며 살지 싶었다.

 


이야기는 10월 초에 시작된다. 높고 파란 하늘 강렬한 햇빛이 쨍쨍하고 나뭇잎들은 색이 변하고 목사관을 둘러싼 들판들은 황금빛으로 물든 전형적인 가을날.

그 때가 어느 때냐 하면 소련이 위성을 쏘아 올려서 미국을 감시 하고 있다는 등 하던 시기였고, 후르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해 있는 상태인데 암살이라도 당하면 전쟁이 날 거고, 소련이 미사일을 쏘면 어디까지가 안전한가 뭐 이런 흉흉한 이야기들이 나오던 시기였다. 웨스트 아넷에서도 방공호를 만든 3 가족이 있었다.

어쨌든 이런 시기에 이 날은 아주 아름다운 날이었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은 날이었는데 사실 캐스키 목사는 아침에 늘 산책을 하면서 교회 까지 걸어서 가곤 했고 가면서 만나는 교인들과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는데, 오늘은 집 서재에 앉아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딸 캐서린의 학교에서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선생님인 잉거솔 부인이 캐서린에 대해서 의논할 게 있으니 오후에 학교로 와 달라는 전화였다.

목사는 갑자기 받은 전화로 마음이 무겁겠지. 가만히 서재에 앉아 있으려니 쇄골 뼈가 콕콕 쑤시는 고통이 느껴지는데... 사실 목사는 최근에 슬픈 일을 겪었고 이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들이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지쳐있는 상태였다.

 


지금의 목사관 서재는 칼 로크의 침실이었고 칼 로크는 성격도 고약했지만 더럽기까지 했는데 목사의 부인은 처음 이사 왔을 때 이 방에서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목사는 마당 풍경이 잘 보이는 이 방을 좋아했다.

여기서 이번 주일 설교문을 쓰려고 하는데 설교 제목은 개인적 허영의 위험이라고 하려고 한다. ? 요즘 교회에서는 새 오르간을 사는 문제로 말썽이 일려고 하고 있던 참이다. 오르간 연주자 도리스 오스틴은 당연히 오르간을 사야한다는 입장이고 또 반대 입장들도 있는데 여차 하면 이 작은 마을 유일한 교회에서 싸움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캐스키 목사는 반대 하는 입장이었지만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고 설교로 자신의 반대 입장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설교 제목이 저렇게 되는 것.

그렇게 오늘 아침 목사는 다시 설교문을 써보려고 하는데, vanity가 허영 이라는 뜻과 헛됨 이라는 뜻 모두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보니 내 생각에 허영이 결국 헛됨이라고 설교하려는 의미인 듯했다.

이날 캐스키는 전도서의 태양 아래에서 모든 것은 헛되도다라는 구절을 적는다. vanity가 허영과 헛됨 두 가지 뜻이라는 점 때문에 이 부분 해석이 쫌 어려웠음.

어쨌든 전도서에 태양 아래에서 헛되다는 구절도 있지만 태양 위에서 신의 관점에서 보면 삶이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구절도 있다고. 하지만 캐스키 목사는 신의 선물인 삶에 대한 구절은 패스한다. 왜 그럴까? 캐스키 목사는 이제 삶이 신의 선물이라는 믿음이 없어진 건가?

 


다시 캐스키 목사의 생각은 딸 캐서린에게로 흐르고. 불현 듯 캐서린을 생각하자 짊어질 십자가라는 단어가 스쳐지나 가는데. 안돼! 캐서린은 신이 내린 선물이지 짊어질 십자가가 아니다 라고 훠이 훠이 생각을 날려버린다. 그래도 일단 캐서린을 부담이라고 생각한 건 맞잖아? 점점 타일러 캐스키 목사 수상한걸?

그런데 그때 자신의 셔츠 소매 단이 다 헤어진 걸 본다. 이걸 왜 알아차리지 못 했을까?

이 정도로 소매가 낡아 있으면 아내라면 가지고 가서 소매를 반으로 자르고 자기가 입고 다닐 텐데 하고 또 생각에 잠긴다.

아내는 발 없는 발레 타이즈 위에 타일러의 커다란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때가 1950년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 파격적인 패션이긴 하다. 물론 집에서 그러고 다녔지만.

그러면 캐스키는 그런 부인을 보고 목사 사모가 그러고 다니면 목사 잘릴지도 몰라 라고 농담을 던지곤 했었다고. 하지만 부인은 이렇게 입는 게 자신을 자유롭게 해준다며 목사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목사의 부인이 이 집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었다. 이 집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교회의 소유였으니까.

겨우 목사가 페인트를 자비로 사서 바른다고 하자 교회에서 색깔을 칠하는 걸 허락해 줬는데 그때 목사의 부인은 핑크색으로 다 칠해 버릴 거라며 좋아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캐스키는 드디어 서재를 나간다. 해치 부인을 부르면서.

 


해치 부인이 누구냐면 목사관 가정부다. 키가 커서 캐스키 목사랑 눈높이가 비슷할 정도고, 광대가 높고 넓었으며 눈썹이 짙고 머리카락은 부드러운 갈색이다 . 해치 부인의 가계에 인디언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얼굴을 보면 과연 맞는 것 같기도 하단다.

목사가 해치 부인을 부르며 손목을 들어 올리며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고 묻는다. 이 부분 뭔가... 뭔가... 목사가 좀 끼를 부리네? 싶은 장면이었는데

소매가 헤어졌다고 말하는 대신에 손목을 폴짝 들어 올려서는 귀여운 척 하는 거야 뭐야? 싶은 장면인데 목사의 이런 점이 그의 성격의 큰 특징이라고 서술된다.

언제나 자신을 잘 통제하고 완전히 순응하면서 자신의 불행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소의 타일러 캐스키가 어느 순간엔 갑자기 순진한 표정으로 당혹스러운 순간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런 캐스키 목사의 행동이 여성 교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일부 남성들에게 까지도 목사를 한순간 연약한 사람으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연예인 좋아할 때도 멋진 모습 뿐만 아니라 갑자기 불쑥 나오는 귀여운 모습에 사람들이 꺅꺅 거리듯이. 캐스키 목사한테도 그런 성향이 있고 그래서 교인들한테 인기를 얻고 있었다고. 이런 점들은 자신이 의식하고 하면 안 되고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행동인데, 타일러 캐스키가 그런 모양이다.

아무튼 손을 폴짝 들고 내 소매 어떻게 해요? 하는 목사에게 해치 부인은 셔츠를 사셔야 한다고 말해준다. 타일러는 내심 좋아한다. 세상에 쇼핑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아무튼 그래서 셔츠를 사러 가려는데 웨스트 아넷으로 갔다가는 교인들을 잔뜩 마주칠 거고 그러면 허영에 대해 설교를 할 때 말빨이 안 설 것 같기도 하고 교인들 만나기도 싫고 해서 멀리 홀리웰이라는 곳으로 쇼핑을 나간다.

 


목사관에 혼자 남은 코니 해치는 집안일을 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한데, 목사에게 점심을 와서 먹을 거냐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멀리 나갔으니 먹고 오겠지 싶으면서도 아니면 어쩌지 싶고. 코니의 머릿속은 마치 지지직 거리는 TV화면 같다고. 학교 다닐때는 늘 성적이 바닥이었고 머리를 좀 쓰라고 선생님한테 핀잔을 듣곤 했다.

지금은 마흔 여섯 살이고 아이를 낳기를 바랬으나 낳지 못 했다. 코니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뭔가가 숨겨져 있는데 그런 것들이 밤에 잠드는 일을 방해한다. 에이드리안 해치가 남편이고 학교 식당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요양원에서도 일했다.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으며 지금은 목사관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가장 좋아했던 남동생이 한국전에서 죽자 그 이후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고. 코니의 삶이 참 고생스러웠겠구나 싶다.

 

 

셔츠를 사러 간 캐스키 목사는 이 아름다운 날씨에 그 느낌(The Feeling)'이 찾아오는 순간을 생각한다. 한때는 처진 버드나무 가지를 스치는 빛 한 줄기, 풀을 휘게 하는 산들바람 한 줄기,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 한 움큼. 이런 것들을 보며 하나님이 바로 그곳에 계시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는데 지금은 그 느낌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마음속에는 깊은 어두운 동굴이 있고 이런 것과 함께 산다면 하나님이 그곳에 있다는 황홀한 순간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고백한다.

대체 타일러 캐스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셔츠 가게 앞에 내려서는 길을 건너려 하는데 마침 도리스 오스틴이 거기 서 있다. , 정말 교인들 안 만나려고 이 먼 곳 까지 왔건만... 그래서 목사는 도리스를 피해 얼른 셔츠 가게가 아닌 바로 앞의 약국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 도리스도 따라 들어온다.

쓸데없는 약을 사고는 나오는데 도리스도 같이 나온다.

도리스를 보니 목사가 또 회상에 잠긴다.

지난주 예배 후에 목사는 도리스에게 이 마을에 중요한 사람이라고 덕분에 훌륭한 음악을 듣는다며 칭찬을 했었다. 사실 교인들은 도리스가 성찬식 마다 솔로를 부르는 걸 굉장히 우스워하고 뒤에서 비웃곤 했었다. 도리스가 몸을 막 흔들면서 약간 좀 민망하게 노래를 부르기는 하나보다. 어린 학생들은 대놓고 키득키득 웃기도 한다니까. 목사도 도리스가 노래를 하면 교인들의 표정을 보기가 괴로워 눈을 감고 명상하는 척 한다고 까지 한다. 이 부분 좀 웃겼다.

아무튼 그런데 지난주에는 도리스가 부르는 울부짖는 듯 한 노래가 내면의 절박함이 비명으로 드러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목사가 도리스를 보고 위로 차원에서 칭찬을 했던 것이었다.

그때 도리스는 눈물을 머금고 감동 받아했는데 또 이런 건 목사가 보기에 버거워서 도리스를 칭찬할 때는 계속 움직여야겠다 라고 생각한다. 칭찬 하고나서 감사 인사 받지 않고 재빨리 움직이기?ㅋㅋㅋㅋ

 


타일러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걸 좋아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의 직업이 목사인데.

그런데 타일러의 이런 성향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었나 보다. 타일러의 어린 시절, 매일 밤 그의 아버지는 말했다. ‘타일러, 언제나 사려 깊게 행동해라.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라고. 훌륭하십니다 아버님! 이런 교육을 받은 탓에 타일러는 목사가 된 듯하다.

하지만 타일러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을 칭찬하고 싶은 욕구가 커질수록,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 또한 커졌다고.

지금 목사는 도리스에게 돌연 작별인사를 하고 셔츠 가게로 들어가 버린다. 도리스는 목사를 만나서 반가운데 이런 식이면 황당했겠지? 다음에 목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릴지도?

아무튼 그렇게 캐스키 목사의 셔츠 쇼핑은 마무리 된다.

 

 

타일러 캐스키의 첫째 딸 캐서린은 다섯 살이고 1년 좀 넘게 말이 없다. 말을 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말을 안 하고 있다.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지저분하고 유치원에 가서도 친구랑 놀지 못 한다. 말이 안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움직이지만 침만 모이고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러다가 선생님 앞에서 비명을 지르곤 한다.

타일러는 그런 딸을 보고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도 같다. 딸한테 다정하게 질문하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내버려 둔다. 스스로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건데, 1년이나 이 상태인데 너무 태평한 아빠가 아닌가?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선생님이 캐스키를 학교로 부른 것이다.

잉거솔 부인은 목사에게 캐서린의 문제를 말하고 비명을 지르는 게 집에서는 아니고 학교에서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캐서린을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 심리 상담을 받게 해야 한다고 캐스키 목사에게 말하는데, 목사는 심리 상담 받는 것에 반대를 하며 내 딸을 심리학자의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학교에서의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캐스키 목사.

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인식하게 된 참담한 아버지의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부인을 생각한다. 1년 전에 부인이 했던 마지막 말을 당신은 정말 겁쟁이야!”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궁금하지만 아직은 챕터 1이라 궁금한 채로 남겨두고.

 


캐스키 목사가 목사관으로 들어와 코니 해치와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아주 인상 깊다.

타일러가 코니와 눈을 마주치자 마자 찰나의 순간에 서로 영혼의 공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드는데... 이게 바로 이심전심인가...

그래서 둘은 눈으로 이렇게 대화한다.

It's a sad world, the housekeeper's eyes seemed to say. And I'm sorry.

The minister's eyes said, It is a sad world, isn't it. I'm sorry, too.

(모두 쉬운 단어이니 해석은 알아서ㅋㅋㅋㅋ) 


 



이렇게 여운을 남기며 챕터 1이 끝난다.

챕터 2는 언제 정리할지 모르겠다. 그냥 읽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내용을 너무 세세하게 썼나보닼ㅋㅋㅋ 그래서 앞으로는 점점 더 대충대충 짧게짧게 쓰게 될지도 모르겠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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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10-21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스트라우트 소설 중에 사 두고 아직 안 읽은 책도 있고, 한글로만 읽고 원서는 미뤄두었던 책도 있는데, 이 책은... 마침 없네요. 얼른 사야겠에요. 책도 예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 (외모 중요) 망고님 문장 따라읽는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코니가 <바닷가의 루시>에 나오는 그 코니 맞는거 같고요.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요!!!

망고 2025-10-21 12:08   좋아요 0 | URL
저 스트라우트 원서는 다 하드커버인데 이 책만 종이커버라서 이 책 외모는 좀 속상하거든요?ㅋㅋㅋㅋㅋㅋ근데 예쁘다 하시니 오 저도 예뻐보입니다ㅋㅋㅋ팔랑귀
코니가 바닷가 루시에 나오나요? 문장으로 스쳐지나가려나? 기억이....바닷가 루시랑 텔 미 에브리띵 에서 캐서린이 나오잖아요. 그 캐서린이 여기 등장하는 5살짜리 말 안 하는 목사의 딸 입니다ㅋㅋㅋㅋ밥 버지스랑 어린시절 목사관에서 만났던 얘기를 나누잖아요^^
단발머리님 이 책 얼른 사셔서 함께 읽어 봅시다ㅎㅎㅎ

단발머리 2025-10-21 15:49   좋아요 1 | URL
코니와 캐서린 아빠와의 루머와 코니가 감옥에 가게 된 이야기가 나와요. 아… 바로 구입해도 이주 걸린다고 하는데… 아직 주문 전이에요ㅋㅋㅋㅋㅋ 망고님, 화이팅!!

망고 2025-10-21 17:30   좋아요 1 | URL
오오 기억나요 코니 이야기가 나왔었군요 단발머리님 기억력👍
2주나요? 2주 기다렸다가 단발머리님이랑 같이 읽을까...이렇게 또 미루고 싶은 마음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10-21 19:36   좋아요 1 | URL
엄지척은 엄청 감사하고요 ㅋㅋㅋㅋㅋ 제가 접수를 ㅋㅋㅋㅋㅋ 제가 바닷가의 루시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서요.
2주 후에 제가 바로 읽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ㅋㅋㅋㅋ책 사는 것만 부지런한 편ㅋㅋㅋ미루지 마시고 쭉쭉 앞서 가시옵소서!!!

blueyonder 2025-10-2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고 님, 정리해 주신 내용이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게 눈에 떠오르네요. ^^
˝It‘s a sad world,˝ 이 말이 참 sad 합니다...

망고 2025-10-21 17:32   좋아요 1 | URL
너무 내용을 다 적었나 싶어 걱정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둘이 슬픈 일을 겪어서 눈만 봐도 알아요 상태가 된 것 같아요ㅜㅜ

다락방 2025-10-22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정리해주신 내용에 제가 아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면 정말 이렇게 했겠지, 싶은 문장들이 다 있어요. ‘그 느낌‘이 찾아오는거요. 그건 다시 올리브에서 2월의 하늘을 보며 올리브가 제일 좋아하는 달이라고 했던 그 장면이 생각나고요,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마지막 에서 루시가 야구장 바깥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장면도 생각납니다. 역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다 싶고요. 그리고 눈으로 대화하는 부분에서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올리브의 남편과 젊은 약사가 아이스크림 좋아해서 먹던 장면이 오버랩 되고요. 아, 이 책도 읽고 싶은데 저는 아직 ... 그리고 저 이 책 존재를 몰랐어요!! 망고 님, 이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꺅 >.<

망고 2025-10-22 22: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책 읽다 보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동안 썼던 문장들의 느낌이 많이 생각나요. 이 책은 ˝에이미와 이자벨˝ 다음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입니다. 초기작이라서 스트라우트의 문장의 원천?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요. 자연을 묘사하는 방식도 그렇고 사람을 묘사하는 방식도 올리브 키터리지의 단편들이 많이 생각 나고요. 저는 이 초기작을 읽고 나서는 스트라우트가 문장을 점점 더 간결하게 쓰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요즘 쓰는 문장들은 짧고 쉬운데 이 초기작은 문장이 길거든요? 스트라우트는 점점더 응축해서 짧은데 바로 느낄 수 있는 문장을 쓰는 작가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해석만 해서 요약해서 올렸지만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꺅 >.<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
앤 브론테 지음, 손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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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들 중 막내인 앤 브론테의 소설은 처음이다. 셋째 이지만 위의 두 언니가 어린나이에 죽어서 실질적으로 장녀가 된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그 동생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고 나도 어릴 때 아주 재밌게 읽었다. 사실 브론테 자매라고 하면 나는 샬롯과 에밀리 브론테 둘만 있는 줄 알기도 했다. 막내인 앤 브론테는 두 언니들에 비해 덜 알려진 작가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뒤의 해설을 읽어보니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이 출간되자 두 언니들의 작품을 뛰어넘는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당시 엄청나게 인기를 끈 소설이었지만 평론가들은 여성은 읽지 말라고 경고할 만큼 위험한 소설로 분류되기도 했다고 한다. 읽어보니 그럴 법도 한 게 그때가 빅토리아 시대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 급진적인 작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참한 결혼 생활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이 소설이 최초의 진정한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황량한 와일드펠 저택에 그레이엄 부인이라는 젊고 아름다운 과부가 5살 난 아들 아서와 이사를 와서 세 들어 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레이엄 부인에게 호기심을 보이지만 부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 않고 이웃과 교류도 잘 하지 않은 채 은둔해서 살아간다. 생계는 직접 그린 그림을 팔아서 해결한다고 한다.

이웃의 총각 길버트 마컴은 그레이엄 부인을 보고 반하게 되고 호감을 표현 하며 책도 빌려 주고, 아들 아서와 놀아주기도 하고, 그레이엄 부인이 그린 그림에 진정한 찬사도 보내면서 점점 친해진다.

그러던 중 마을 사교계에서는 그레이엄 부인에 대한 소문들이 솔솔 피어오른다. 와일드펠 저택의 주인인 로런스가 몰래 그 집을 드나들며 그레이엄 부인과 만나고 다니고 어린 아들 아서가 사실은 로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는 거다. 이 소문을 듣고 길버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했으나 어느 날 그레이엄 부인과 로런스가 만나는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소문을 믿게 된다. 분노에 휩싸인 길버트는 친구인 로런스를 갑자기 때리고(욱 하는 성격인 듯?) 그레이엄 부인에게 따지고 드는데, 그레이엄 부인은 이 모든 소문이 다 오해라며 길버트에게 자신이 처녀시절부터 써오던 일기를 건네주며 읽어보라고 한다.

 

 

그 일기에는 그레이엄 부인, 아니 헬렌이 겪은 모든 일들이 담겨 있었다.

처음 사교계에 진출해서 남편인 아서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헬렌의 보호자인 이모는 아서가 좋은 남편감이 아니라며 반대를 했다. 하지만 헬렌은 사랑에 눈이 멀어 아서의 잘못 된 점을 자신이 고쳐줄 수 있다며 결혼을 강행한다. 나쁜 남자에 빠진 여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고쳐 쓸 수 있다고, 자신이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게 어쩜 이렇게 똑같은가...

결혼하자마자 신혼여행을 갔을 때부터 이 결혼 뭔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이 왔지만 신혼 때는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걸 이해하고 그에게 맞춰 주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남편 아서는 조만간 헬렌에게 싫증을 내고 총각 시절부터 알고 지내며 시시덕거렸던, 헬렌과도 아는 사이인 친구의 사촌과 바람을 피운다. 헬렌이 남편을 추궁하자 남편은 뻔뻔스럽게 그래서 너가 뭘 할 수 있는데?”를 시전하고 헬렌은 그때부터 그저 공식적으로만 아내인 채로 살아가기로 한다. 결혼을 한 여자는 남편에게 종속된 채 남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대. 헬렌은 남편의 폭언과 학대를 견디며 그저 남편을 무시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남편이 어린 아들까지 망치게 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자 아버지 닮은 개쓰레기 아들로 키울 수 없다는 결심이 더더욱 굳어지게 되면서 아들을 데리고 도망가기로 계획한다.

비참한 결혼생활의 끔찍한 기록들을 자세하게 묘사해서 그 시대 여성들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소설은 그 상황을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헬렌은 남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한다. 지주인 친 오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데도 헬렌은 오빠가 도와준 살림살이 등의 비용까지 돈을 벌어 갚을 거라고 다짐하는 점에서 자립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자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편의 돈도 오빠의 돈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의지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캐릭터에게 굳건히 심어져 있는 것에서 작가 앤 브론테의 현명한 통찰이 엿보인다.

 


헬렌의 이 모든 기록들을 읽어 보고 길버트는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하고 헬렌의 끔찍한 결혼생활을 알게 되면서 헬렌을 이해하게 된다. 헬렌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지지만 아직 남편이 있는 상태, 이혼하지 않은 상태의 유부녀에게 계속 구애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헬렌의 뜻에 따라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시간을 갖기로 한다.

여기에서 길버트와 또 다른 남자 하그레이브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헬렌의 비참한 결혼 생활 동안 끊임없이 구애해 왔던 남편의 친구 하그레이브. 처음에는 친절하게 헬렌을 도와주는 듯 보였지만 싫다는 헬렌에게 계속해서 구애하며 왜 나를 안 만나 주냐고 화를 냈던 남자였다.

하그레이브 역시 남편 아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생각하는 자였고 남편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조금 더 신사의 예절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라는 정도.

헬렌과 길버트의 로맨스가 약간은 뜬금없고, 로맨스가 로맨스로 다가오지 않아서 전혀 떨림이 없다는 불만이 있기는 한데,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 중 가장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좋은 남편감에 대한 교훈을 작가는 길버트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해서 더 불행해 지는 경우가 말도 못 하게 많아 안 하고 살아도 괜찮겠지만(실제로 헬렌은 아끼는 동생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해 준다) 그래도 한다면 최소한 길버트 같이 섣불리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이기적인 구애를 하지 않으며 기다려라고 할 때 기다릴 줄 아는 남자랑 하라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두 언니들의 작품에 비해서 이 소설은 그렇게 즐기지 못 했다. 읽는데 시간도 오래 걸렸고. 문제를 현실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해결 방안 까지 제시하는 의미 있는 소설인 건 맞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기대하는 상상력이 들어설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이렇게나 길게 세세하고 교훈적인 대화와 묘사가, 그리고 감흥 없는 로맨스가 조금은 사족처럼 붙어서 나오는 건 읽기에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도 앤 브론테가 이 소설이 출간되고 다음 해인 29세에 세상을 떠났다니까 이 소설은 20대 중후반에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 대단한 것 같기도 하다. 그 나이에 여성의 현실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깊이 있는 작품을 써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그 나이일 때 뭐 했더라...

아무튼 브론테 자매들은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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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는 그림을 보러 가서 그림을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한때는 미술관에 많이 다녔고 여행을 가서도 유명한 미술관들을 둘러보며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예술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내가 무엇을 봤던가?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작품들을 보긴 봤는데 내가 내 눈으로 봤다는 생생한 기억은 없고 원래 알고 있던 그림의 이미지만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난해한 현대미술을 보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있는데 정확히 뭘 봤는지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게 다 내가 그림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식이란 바로 이렇다. 그림을 한번 쓰윽 보고 제목을 보고 다시 그림을 쓰윽 보고 제목에 나온 게 이거구나 확인하고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서 또 같은 행동을 반복. 이렇게 한 그림 앞에서 길어야 고작 3분 정도의 시간만 할애해서 그림을 봤으니 기억이 안 나는 게 당연하다.

조금 느긋한 전시실에서는 오랫동안 한 그림 앞에 서 있어 보기도 했다. LA 현대 미술관에 갔을 때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때 마침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로스코의 그림 앞에 가만히 오랫동안 서 있어 봤다. 이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그림을 보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조용한 미술관에 커다란 로스코 그림 앞에 서 있는 나, 이 공간과 이 시간을 누리고 있는 나, 그러니까 평소의 나 같지 않은 나의 모습에 취해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로스코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나의 뒷모습을 빨리 사진 찍으라고 같이 간 언니를 닦달했었지ㅋㅋㅋㅋ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나는 그동안 잘 보지 못 했다는 거다.

 

 

이 책은 예술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에서 출발한다. 난해한 현대미술 앞에서 이게 무슨 예술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들을 해보지 않았나? 이 책의 저자도 우리 같은 예술 문외한들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 예술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삶이 옥죄어드는 벽같이 느껴지자 예술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단다.

저자의 할머니가 유대인 수용소 생활을 하던 와중에도 미술을 가르치고, 여든이 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더욱더 궁금해 졌다. 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하나도 중요해 보이지 않는 예술에 그토록 열정을 쏟을까?

그래서 예술을 이해해보고자 미술계에 직접 뛰어든다.

갤러리에도 취직을 하고 화가의 잡다한 일을 처리해 주는 보조로도 일을 하고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을 하기도 한다. 틈틈이 다른 미술계 관련자들, 컬렉터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예술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한다.

몇 년 동안 직접 발로 뛴 생생한 경험과 방대한 자료 조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옆에서 예술작품을 많이 아주 많이 보게 되면서 처음의 문외한의 시선으로 이게 무슨 예술이야!” 라고 했던 불신을 벗어 던지고 열린 마음으로 예술을 즐기게 된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가 나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보긴 봤는데 보지 않은 것과 같았던 그동안의 나의 미술관 관람 방식을 말이다.

저자는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을 하면서 몇 시간이고 한 작품 앞을 지키고 서 있어야 했을 때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 경험을 한다. 한번만 쓰윽 봤을 때는 느끼지 못 했을 작품 속의 이야기들이 진득하게 오래 바라보자 들려오기 시작했단다. 보는 사람이 얼마나 그 작품 속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작품은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느낌이 든단다. 시간이 그냥 흐르는 게 아니고 흥미진진한 경험으로 흐르니까 삶이 풍요로워 진다는 것이다.

더 많은 작품을 보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보면서 한 작품을 오랫동안 바라보라, 작품의 곁다리인 제목이나 작가의 이력에 대한 배경은 생각하지 말라, 그저 작품만 보면서 그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라,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감정을 어떤 해설서의 언어가 아니라 내 언어로 표현해 보라. 멈추고, 알아채고, 감탄하라. 저자가 권하는 예술 감상법이다.

 

 

이것을 읽으면서 내 미술 감상법이 형편없었음을 반성하는 동시에 우리 집에 있는 그림 두 점이 생각났다. 내가 애기였을 때 아빠가 생활이 어려운 화가의 그림 두 점을 돕는 셈 치고 사셨다고 했다. 그 그림들은 내가 세상을 기억하는 때부터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어릴 땐 뒹굴뒹굴 하면서 그림을 바라보며 잠이 들곤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본 그림들이다. 지금도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애기 때 그림을 보면서 상상하던 이야기들도 생각나고, 그림 속에 그려진 집의 창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어른거려서 이 사람은 누굴까 상상하며 놀았던 시간도 기억이 난다. 만약 이 그림이 어디 전시관에 걸려 있어서 원래 하던 대로의 나의 감상법으로 한번 쓰윽 보고 지나친다면 창문에 비친 사람도 못 봤을 거고 그림 속에 꽤 여러 명의 사람이 작게 그렇지만 모두가 다른 자세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넘어갔겠지. 그렇게 감상하면 지금 내가 이 그림에 느끼고 있는 비밀스러운 아름다움도 전혀 느낄 수 없었겠지.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의 말이 정말 맞다. 작품은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계속 보다보면 처음에 봤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림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내가 상상해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렇게 경험하는 감정과 생각들이 시간을 채워서 삶을 살아볼 만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새로운 생각, 새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예술을 통해서 우리는 채울 수 있다.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 미술관에 가면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도록 노력해야겠다. 근데 사람이 너무 붐비는데도 그게 가능할까? 그래도 시도는 해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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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9-11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워낙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라서... 빨리 보는 방법조차도 잘 모르거든요. 망고님 글 읽으면서 다음에 미술관 가게 되면 꼭 이렇게 해야지 다짐하게 되는데.... 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래봐야겠어요.
망고님 집의 그림 두 점이 이 책의 씨앗처럼 느껴지네요. 그 점도 참 부럽습니다~~~

망고 2025-09-11 13:32   좋아요 1 | URL
취재를 시작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처음 이 책의 저자도 이 책을 선택해서 읽는 사람들도 다 그림은 봐도 모르겠다의 상태일 건데요 그래도 이 책을 읽다보면 예술에 마음이 약간 열리게 된달까요. 그중에서도 저자가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터득한 경험으로 미술관 관람객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라 였거든요, 이 부분 읽으면서 그동안의 저의 관람 행태가 생각나서 가슴에 콕 박혀버린거죠. 제대로 보지도 않아놓고 그림은 봐도 모르겠다고 하질 않나, 이게 예술이냐 비아냥대질 않나...제가 그랬거든요ㅋㅋㅋ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일단은 제대로 오래 보자를 실천해야 겠다 생각했어요. 단발머리님도 이 책 읽어보셔요 정말 재밌고 빵터지는 부분도 많아요

거리의화가 2025-09-11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술을 잘 모르지만 미술관에는 종종 가곤 해요. 가다 보면 좀 트이지 않을까 싶어서^^;
오래 보면 좀 더 보이겠지만 처음 한 번 보았을 때는 분명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볼 기회가 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어려우니까...
이 책 재밌을 것 같네요. 특히나 저는 현대 예술은 아직 많이 난해하더라구요ㅎㅎ 제가 생각하는 범위 이상을 표현하는 것들이 많다보니 늘 물음표가.
그나저나 마지막 문단 너무 공감됩니다!^^

망고 2025-09-12 16:21   좋아요 0 | URL
거리의화가님 이 책 꼭 읽어 보세요 진짜 재밌어요ㅎㅎㅎ예술에 대한 탐구가 깊은데 빵터지게 재밌어요.
그쵸 같은 작품 여러번 보기가 어렵죠 게다가 무슨 유명한 전시 한다고 하면 인파도 엄청 몰려서 한 작품을 진득하게 바라보기가 힘든 현실이죠. 그래도 이 책에서 말하길 한 작품을 아주 오랫동안은 못 봐도 5분 정도는 시간을 주라고 하더라고요 제목은 보지 말고요. 그렇게 바라보다가 생각나는 것을 5가지 말해보라고. 이런식의 감상법을 머리에 익혀서 작품을 보면 또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예술 난해하죠 이 책에서도 진짜 이해하기 힘든 엉덩이 예술가가 나오는데....음....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약간 열린 마음이 되기는 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