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혀에 돋은 생채기, 팔꿈치의 굳은살,
새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뉴욕 시의 수많은 쓰레기트럭들의 종류, 시골 마을에 버려진 낡은 자주빛 전광판 등등.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어떤 한 장소에 오래 살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점점둔해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바로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흥미롭다. 새로운 장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여준다. - P161

내가 산타페로 이사를 왔을 때 근처 식당에서 시간제 요리사로 일한 적이 있다.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해 일요일 아침에도 여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내 운명이 한탄스럽기만 했다. 아침여덟 시, 나는 마구 섞여 있는 오렌지와 당근 중에서 당근만을 골라 내어 대각선으로 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주아주 깊구나!‘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당근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
내가 이렇게 되어 가는구나! 아주 작은 일에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 보라.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그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글의형태와 장르에 상관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을 단 한번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
- P162

아이들이 빈 시리얼 상자를 흔들어댄다. 당신 지갑 속에는 1달러 25센트만 남아 있다. 남편은 구두가 안 보인다고 불평이다.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고, 당신은 채워지지 않는 백일몽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세상은 원자폭탄의 위협을 받고, 환경오염으로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일어나고, 바깥은 영하 10도이고, 코는 자꾸 막혀 오는데 당신에게는 저녁 식탁에 올릴 음식을 살 돈도 없다. 발이 퉁퉁 붓고, 치과의사와 진료 약속을 해야 하고, 개는 바깥으로 나가자고 성화이고, 냉동실에 들어 있는 닭을 꺼내 해동시켜야 하고,
보스턴에 있는 사촌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백내장 수술을받을 어머니도 걱정스럽고, 수퍼마켓에서는 참치 통조림을 세 - P163

일하고 있고, 당신은 일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방금구입한 컴퓨터를 풀고 설치도 해야 한다. 또, 당신은 오늘부터도너츠는 끊어 버리고 양상추를 먹기 시작해야 한다. 제일 아끼던 만년필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고, 고양이 새끼는 최근에 쓴 습작노트를 발기 발기 찢고 있다.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 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 P164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기차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나무 둥치만 있는 숲속에서, 혼자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사막의 바위 위에 앉아서, 당신 집 앞 모퉁이에 서서, 현관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서재에서, 점심 먹는 계산대에서, 복도에서,
실업자 고용 사무실에서, 치과 대기실에서, 공항에서, 텍사스에서, 캔사스에서, 과테말라에서, 콜라를 홀짝이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가 - P164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중간중간에도 당신은 글을 써야한다.
최근 뉴 오를렌스에 갔다가 우연히 그 근처의 공동묘지에들르게 된 적이 있다. 태양은 아주 뜨거웠다. 나는 노트를 꺼냈고, 시멘트 묘비 그늘에 기대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벽해."
내가 말한 완벽함이란 물론 물리적 시설이 완벽하다는 뜻이아니다.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 P165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 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예전에는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지게 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 P172

이런 의혹에 귀 기울이지 말라. 의혹이 이끄는 곳으로 가보았자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만 만나게 될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신 글의 문제점만 집어 내는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말 한심해. 그렇게 쓰면 어떡합니까? 도대체 당신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작가가 되겠단 말이오?"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갉아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 P175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케이트와 나는 월요일 온종일 서로를 관통하고, 모든 거리, 커피를 관통해서 글을 썼다. 이런 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
세상에는 많은 현실이 있다. ‘다른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문제에 당신이 지나치게 빠져있다면, 세상에는 수많은 현실이 있음을 꼭 기억해두라. 우리에게는 그냥 살아가는 우리 삶이 있다. 우리는 그냥 글을 쓰고 싶은 것이며, 그냥 비와 식탁과 음악과 종이 컵과 소나무를 만지고 싶은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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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당신의 작은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하게 만드는 건 ‘위대한 결정자 입니다. 당신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당신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 즉 새나무, 하늘, 달, 그 밖의 무수한 생명의 흐름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만 위대한 결정자가 당신을 도와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료를 마련해 놓은 다음, 갑자기 당신은 한 순간 별과, 또는 당신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거실 샹들리에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면 당신의 몸이 열리게 되고, 이제는 그 몸이 말을 하게 된다. - P38

글쓰기에 이런 과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우리는 모든 불안을 잠재우고 인내심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경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가쓰는 글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결코 편하게 앉아서 사탕이나 먹으며 살겠다는 핑계거리로 삼지 말라. 우리는 계속해서 비료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비료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우리의 근육이되어 준다면 우리는 위대한 우주의 조류를 타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P38

어떤 것이 이상적인 글쓰기인가?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그 속으로 파고들어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
정보가 부족해서 자신이 쓴 글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라. 내가 엘크톤을 둘러싼 들판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말한 것은 그곳의 지리학적인 정보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내마음이 그 들판 속으로 영원히 산책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안다는 뜻이었다.
당신이 엘크톤에 사는 시인이나 트랙터 회사의 영업사원,
또는 서부로 떠나는 여행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당신의 글쓰기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지, 그것이 가는 대로 풀어 놓아라. - P62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로 글쓰기에 임해야 한다. "왜?" 라고끊임없이 묻거나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종이 위에 쏟아붓도록 해야 한다. ‘이건 글을 쓰기에 좋고, 저것은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동차를 먹는 사람을 창조해 낼 정도로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만이 개미를 코끼리로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사람만이 각각의 분리되어 있는형태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형태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공통된무언가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 P71

글쓰기에서 우리가 살았던 장소와 그 공간을 채우던 사물들의이름을 불러 주고 그것을 우리 삶의 세부사항으로서 써 내려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는 알부퀘르크 콜 가에 위치한 어떤 차고 옆에서 살았고, 시장을 볼 때는 리드 가로 갔었다. 그해 이른 봄 이웃에 일치감치 사탕무를심은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탕무가 빨갛고 푸른 잎사귀를 피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작가는 의미없어 보이는 삶의 작은 부분들마저도 역사적인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이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인생의 모든 면들에 대해, 한 모금의 - P84

물, 식탁에 묻어 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쓰는 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버리는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 만약 우리 인생의 작고 평범한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당장 원자폭탄에 의해 전멸당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세부 그림은 기록으로 남아야할 가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들이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이며 우리가 펜을 쥐고 자리에 앉는 이유이다. 우리가 삶의 세부사항을 묘사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와 효율성만을 주장하는 문명의 이기, 우리를 대량학살하려는 원자폭탄 같은 무자비한 폭력에 항거하기 위함이다. - P85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
작품 진행을 하고 있을 때 좋은 작품을 읽는 것은 글에 좋은 영향을 준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근원을 찾아가야 한다. 17세기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인 바쇼는 "나무를 알고 싶으면, 나무한테 가라"고 말했다.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시를 읽고, 시를 들어야한다. 논리적으로 시를 분석함으로써 시로부터 멀어지는 어 - P100

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그저 시가 당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게하라.
위대한 선승인 도겐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당신은 표현하고싶었던 것이 조금씩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느낄 수 있게 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 P101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미 매 순간 무엇엔가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대지, 폐를 채우고 비우는 공기......, 이모두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 그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지금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침의 침묵,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하라. 그런 다음마주 보고 있는 친구가 "난 네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 하고말하면 그 좋은 기분을 그저 간직하면 된다. 대지와 의자가 당신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 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라. - P107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를걷다가, 내가 아는 식물들인 산딸나무나 개나리를 보면 그 장소에 더 깊은 친근감을 느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 줄 때 느끼는 기분은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쾌한 증명인 것만 같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William Carlos Willams의 시를 읽다 보면 그시인이 나무와 꽃 하나하나를 얼마나 특별하게 다루는가를 알게 된다. 그의 시에는 치커리, 아카시아, 포플러, 마르멜로, 노랑 데이지, 라일락 등이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바로 당신 코앞에 있는 것을 쓰라고 말했다. - P121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활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이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다시 지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위대한 비전을 갖춘 작품만이 남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또 다시 책속으로(물론 좋은 책 속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지 밝혀 주는 작품을 읽고 또 읽어라.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우고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거듭 체험하게 된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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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네가 사랑을 믿을 때만이 사랑이 네가 가야할길을 이끌어 주는 법이지." 나는 여기에 조금 덧붙이고 싶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이끌어 주는 법이지."
그리고 여러분에게 안정된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평생 안정될 거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 P16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글쓰기 공부는 일차원적인 과정이 아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A에서 B를 거쳐 그 다음은 C로 가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없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이다. 충치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발목 골절을 당한 사람과 똑같은 처방전을 내릴 수 없듯이 이 책은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 P17

나는 첫 번째 수업을 무척 좋아한다.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고민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 첫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첫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돌아가야하는 자리일 것이다.
두 달 전에 꽤 괜찮은 글을 썼다고 해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쓴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솔직히 나는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전에 어떻게 글을 완성했었는지 의아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새로운 여행이다. - P19

이러한 치열한 글쓰기 훈련에 있어 가장 기본은 제한된 시간 동안 글을 써 보는 것이다. 10분, 20분, 1시간······ 시간의 길이는 각자가 알아서 정한다. 처음에는 시간을 짧게 했다가일 주일 후에 늘릴 수도 있고, 처음부터 1시간 동안 글쓰기에 빠지겠다고 작정해도 좋다. 시간의 길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할애한 시간이 얼마이든 간에 그 시간동안만큼은 글쓰기로만 완전하게 채우도록 집중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도움이 될 것이다.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된다. - P25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에너지가 있다. - P26

글쓰기 훈련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몸과 육체를 믿는 법, 다시 말해 인내심과 공격하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법을 배우는 것이다.
예술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세계다. 시를 쓰든 소설을쓰든 간에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법칙은 없다. 진짜 중요한것은 작품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꾸려 나가는 과정이다.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도 나중에는 정신병자나 알코올 중독자,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우리에게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시와 소설을 방편으로 삼아 진정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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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양날의 칼에베인다. 즉, 성매매와 자신을 간신히 단절하는 바로 그 정도까지 성매매로 인해 심리적으로물든다. 하지만 성매매를 자신과 단절하지 않으면 성매매와의 근접성으로 인해 물들어 오염된다. 머지않아 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오염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해리는 이문제들을 단지 지체시킬 뿐이다).
이것이 역설의 진수이다. 해리는 도피이자 외면이고 그녀가 겪는 경험의 현실을 스스로 부정하게끔 강요하는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어 현실과의 단절이 그토록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오염의 근원이다. 성매매에서 해리는 필수적이다.  - P217

대놓고 폭력을 행사하며 성적으로 흥분하는 성구매자여서 저항해봤자 구타로 이어지는 뻔한 상황이라면, 내 몸과 마음을 축 늘어지게 했다. 이 방법만이 이 상황에서 가능한 단 하나의 저항이었다. 상황을 빠져나갈 수 없었기에 함부로 거칠게 다뤄도 맞서 싸우지 않았다.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알력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내 쪽에서 밧줄 끝을 놓는다. 구매자는 여전히 절정을 느끼겠지만 나는 그 강도가 희석되었음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즐겁지는 않다. 해리로 얻은 작은 보상이 진실과 더욱 분리되어 버리는 응징과 함께 나란히 자리 잡을 뿐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구매자는 예외 없이 적대적이고고약하게, 때로는 공격적으로 군다. 구매자는 내가 장단을맞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늘 알아차리기 마련이고 왠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구매자는 나의 묵인을 원하지 않았다. 저항을 필요로 했다. - P218

나는 이런 상황들에 항상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일들이 일어나지 않은 척했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게곧 강요하는 상황이 긍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은 필연 명백하지 않은가?
성매매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초래하는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 속에서 참된 자아가 매우 모호해진다. 자아가 모호해지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진정 위험하다.
따라서 현재 성매매 상황 밖에 있는 자신을 상상할 필요가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본질로부터 의도치 않게 거리를 두게 된다. - P219

성매매를 자신의 삶 속에 통합하기 전에 성매매에 대한본능적인 거부감으로부터 자신을 먼저 분리시켜야만 한다.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는 행위가 최초로 필요해진다. 성매매가 여성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인격적으로 분리되는 방법이다. 성매매 여성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어떻게이 기술을 연마하느냐이다. 실상 강화되었을 뿐이다. 자기로부터의 분리는 이미 최초 성매매 행위 이전에 발생했고,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이 분리가 성매매가 가능해지는 유일한 길이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혐오감을 우선 무시하고어찌됐든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 자신과의 분리가 시작된다. 자신의 감정을 묵살하면서 내적 본능과 외적 행동의 격차가 생길 때 자신과의 분리가 처음 발현된다. 하는 행동과바라는 바가 의도적으로 분리되는 순간에 시작되는데, 성매매 여성만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 P220

분열의 과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알아챌 수 없을정도로 몸에 배어 성매매 여성은 아마도 분열이 일어난 지수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완전히 인식하게 된다. 성매매유입되어 있던 동안 나뿐만이 아닌 내가 본 모든 곳에서 목도했고, 자아로부터 부자연스럽게 분리된 결과로 이중성, 외로움, 혼란을 경험하고 목격했다는 사실을 10대였을 때는 몰랐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성매매에서 내 자신을 보호했던 방법들 중 하나는 나와의 분리였다. 말 그대로 내 자신을 두 사람으로 분리한다.
진정한 나 그리고 상상의 나. 물론, 성매매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진정한 나를 아껴두고, 성구매자들로부터 거리 두기 위해 상상의 나를 만들어냈다. - P223

지름길이 없어 되돌아가는 먼 길을 택한다. 그 여행길에 오른 나는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아 슬프다. 감상에 젖은 게 아니라 사실이다. 도착지의 풍경을 모르는데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성매매에 유입되지 않았다면 존재했을 자신에게 도달한다면 과연 어떻게알 수 있을까? 성매매를 결코 경험한 적이 없는 상태를 어찌 인식할 수 있을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 정도로알아보겠지만 아마 결국엔 그 곳에 도달하지 못하겠지. 현재 여기에 있는 내가 바로 나이다. 접근할 수 없었던 어떤 세계에 존재했을 나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 P226

‘아무도‘라는 말은 일반 사람들과 성구매자들 모두를말한다. 스스로에게 왜 이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달을 듣기 위해서 홀로 질문한 어떤 본능적인 기초 연습같았다. 내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키기위해 들었어야만 했던 대답이었던 듯한데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는 ‘내가 누구인지에 그 어떤 부정적인 요소가반영되는 경우가 드물어서였다. 혼자 있을 때 나는 대개 책을 읽거나 조용한 음악을 듣거나 향이 은은한 촛불을 켜놓고 목욕을 한다. 종종 이 세 가지를 모두 같이 한다. 음악을 낮게 틀고 라벤더 향이 나는 오일을 떨군 욕조 안에 가장 좋아하는 책을 손에 들고 몸을 담근다. 혼자 있는 걸 즐긴다. 내 자신과 함께 있는 걸 즐긴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를 좋아했기에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을 오늘날에야 깨닫는다. - P227

자신의 균열을 겪으면서 경험하는 이 상처받은 느낌은 분리하고 나누는 능력을 한층 더 소환해 낸다. 그 목적은 긍정적이다. 자신을 건강하게 인식하려고 보호한다. 하지만 갈수록 더 분열을 초래하기에 해롭다. 분리가 실행되면 여성을 엄청난 몸부림 속에 가두게 되므로 본디 목적과는 무관해진다. 이는 빈틈없이 균형 잡힌 싸움인데,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건강하게능하게끔 만들어지지 않았다. 타인이 우리를 부정적으로보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도록 부정하고 대항해 맞서는 행위는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대중들이 인식하는 성매매 여성의 이미지에서 자신을 분리해내는 일은 중대하면서도 불가능하기에 그 싸움이 헛되다는 점이 비극이다. - P228

현재 나의 자아상과 과거에 있었던 진실의 대조는 때때로 어렸을 때 시리얼 포장지에서 찾곤 했던 홀로그램 사진을 떠오르게 한다. 한쪽으로 기울이면 한 이미지를 보게 되고 다른 쪽으로 기울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성매매 여성에서 비성매매여성으로의 이행이 이렇게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 그 여성이 아니지만 그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또 다른 면이고 사소하게 마주친 기분 나쁜 눈길 혹은 속삭임에도 그녀는 다시 출현한다. 인생이 특정하게 왜곡된 방식으로 기울여지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사람인 신기루로 그녀를 상상하는 것이 이롭다.
골웨이 호텔 주차장에 서 있던 어느 날 밤이 기억난다.
유별나게 모욕적이었던 성매매 후 휴대폰으로 부른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 P229

"마음에서 멀리 떠나 있어" "구매자는 끔찍하게 거칠고냄새났지만 침대 위에 있는 건 내 몸뿐이었지 나는 창문 밖구름 위에 떠 있었어. 너도 알잖아."라는 투로 말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이런 말들은 다른 성매매여성들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성매매를 견뎌냈다는 사실을확신시켜줬지만, ‘너도 알잖아‘라는 더블린식 표현이 자주반복되었다는 건 우리 여성들 사이에서 성매매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공유되었고, 그 외에 다른 식으로 인식될 수 없었음을 예상했다는 사실을 이제 다시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두 해리 현상을 겪었다. 우리 각자는 성매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위한 각자의 방법들을 찾았다. 동일한 이유들을 비슷한 방법들로 차단했고 그로 인한 대가또한 치뤘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소외됐다. 자신으로부터의 분리는 흔하고 공유되던 집합적 경험이었다. - P231

내가 원치 않는 접촉을 원하는 누군가의 욕구가 확대된 그 소리가 내 마음을 깊숙이 속속들이 침범해 오싹해지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마음속 거대한 돌기둥이었고, 그 그늘이 드리워지는 건 감당이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컸다. 나를 희미하게 만들었을 테다. 그래서 그 돌기둥의 위험과 거대함을 알아채는 나의 한 부분을 잠재워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만큼 분명히 무언가 느꼈음이 틀림없는데 내 자신과 느낌 사이 가로막힌 그 문을 열수만 있다면 처음 느꼈을 가장 근접한 감정이 있었다. 그건 바로 불행이었다.
누구나 삶에서 심박수가 느려지며 영혼이 알아채는 소리 한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그 소리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언제나 문고리로 나무 방화문을 두드리는 소리이다. - P240

그가 내 가슴을 움켜쥔 채 성기를 꺼내고 손가락을 질 안으로 쑤셔 넣는 동안 나는 차에 앉아 있었고 1년 전 기억들과 함께 그때 내가 얼마나 순진했었는지, 이 더러운 개자식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과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 내게 하는 짓을 차단하려고 일부러 스스로를 멍하게 만들었다.
무수히 많은 경험을 했지만 그 경험들에 대한 내 반응을 분명하게 모양 지을 수 있다. 핵심은 이렇다. 여성이 꿈틀하며 반응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위해 20유로를 지불했든 2백 유로를 지불했든, 남자가 손가락을 질 안에 쑤넣으면서 동시에 다른 손 손가락 끝으로 클리토리스를비틀면서 젖꼭지를 이로 물고, 혀로 핥을 때 여성은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차단하느라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 반응들 중 성적 흥분은 없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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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우물은,
동네 사람들 얼굴을 죄다 기억하고 있다.

우물이 있던 자리
우물이 있는 자리

나는 우물 밑에서 올려다보는 얼굴들을 죄다기억하고 있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
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
그는 병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죠
그는 병들었다. 하지만
나는 왜 병이 좋은가
왜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나
그는 버르적댄다
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
침이 흐른다
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평에
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
어떤 기적이 필요하다
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벌받고 있지 않는가, 그는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변칙에 대한 갈망으로 불탄다
새날이 와야 한다
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
나는 재앙이 필요하다
나는 천재지변을 기다린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
짧은 아침이 지나가고,
긴 오후가 기울고
죽일 듯이 저녁이 온다
빛을 다 썼는데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안된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
그는 힘없이 낫는다.
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 
대홍수가 나지 않아도,
메뚜기떼가 새까맣게 하늘을
덮지 않아도 좋다

나는 안락하게 죽었다
나는 내가 좋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
소주와 꿈 없는 잠
소주와 꿈 없는 잠

깔깔대는 혼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기를
살려주는 일
정말 해야 할 일도 저에게 위로를
던지지 않는 일
입이 말을 못하겠나
손이 구원을 못 쓰겠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을 해내는 일
여름 마당에 병아리들 불러 모아 모이 주는
어른 흉내 내어
빈손을 감추고 구구구
장난치는 아이처럼
누가 마음 없이 마음을 못 내놓나
죽음 없이 시체를 못 내놓나
깔깔대는 혼이여
거품 같은 몸이여
모두 일 나가고 저물도록 혼자 집 보는 것
무섭고 외롭더라도

조금만 더 외로워보아
조금만 더 정신을 잃어보아
원한 없는 열개 스무개 닭 모가지들이 
갸우뚱 올려다보는 하얀 마당
원한 없는 열개 스무개 닭 모가지들이
갸우뚱 내려다보는 검은 잠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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