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혀에 돋은 생채기, 팔꿈치의 굳은살,
새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뉴욕 시의 수많은 쓰레기트럭들의 종류, 시골 마을에 버려진 낡은 자주빛 전광판 등등.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어떤 한 장소에 오래 살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점점둔해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바로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흥미롭다. 새로운 장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여준다. - P161

내가 산타페로 이사를 왔을 때 근처 식당에서 시간제 요리사로 일한 적이 있다.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해 일요일 아침에도 여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내 운명이 한탄스럽기만 했다. 아침여덟 시, 나는 마구 섞여 있는 오렌지와 당근 중에서 당근만을 골라 내어 대각선으로 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주아주 깊구나!‘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당근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
내가 이렇게 되어 가는구나! 아주 작은 일에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 보라.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그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글의형태와 장르에 상관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을 단 한번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
- P162

아이들이 빈 시리얼 상자를 흔들어댄다. 당신 지갑 속에는 1달러 25센트만 남아 있다. 남편은 구두가 안 보인다고 불평이다.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고, 당신은 채워지지 않는 백일몽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세상은 원자폭탄의 위협을 받고, 환경오염으로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일어나고, 바깥은 영하 10도이고, 코는 자꾸 막혀 오는데 당신에게는 저녁 식탁에 올릴 음식을 살 돈도 없다. 발이 퉁퉁 붓고, 치과의사와 진료 약속을 해야 하고, 개는 바깥으로 나가자고 성화이고, 냉동실에 들어 있는 닭을 꺼내 해동시켜야 하고,
보스턴에 있는 사촌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백내장 수술을받을 어머니도 걱정스럽고, 수퍼마켓에서는 참치 통조림을 세 - P163

일하고 있고, 당신은 일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방금구입한 컴퓨터를 풀고 설치도 해야 한다. 또, 당신은 오늘부터도너츠는 끊어 버리고 양상추를 먹기 시작해야 한다. 제일 아끼던 만년필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고, 고양이 새끼는 최근에 쓴 습작노트를 발기 발기 찢고 있다.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 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 P164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기차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나무 둥치만 있는 숲속에서, 혼자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사막의 바위 위에 앉아서, 당신 집 앞 모퉁이에 서서, 현관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서재에서, 점심 먹는 계산대에서, 복도에서,
실업자 고용 사무실에서, 치과 대기실에서, 공항에서, 텍사스에서, 캔사스에서, 과테말라에서, 콜라를 홀짝이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가 - P164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중간중간에도 당신은 글을 써야한다.
최근 뉴 오를렌스에 갔다가 우연히 그 근처의 공동묘지에들르게 된 적이 있다. 태양은 아주 뜨거웠다. 나는 노트를 꺼냈고, 시멘트 묘비 그늘에 기대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벽해."
내가 말한 완벽함이란 물론 물리적 시설이 완벽하다는 뜻이아니다.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 P165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 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예전에는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지게 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 P172

이런 의혹에 귀 기울이지 말라. 의혹이 이끄는 곳으로 가보았자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만 만나게 될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신 글의 문제점만 집어 내는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말 한심해. 그렇게 쓰면 어떡합니까? 도대체 당신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작가가 되겠단 말이오?"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갉아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 P175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케이트와 나는 월요일 온종일 서로를 관통하고, 모든 거리, 커피를 관통해서 글을 썼다. 이런 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
세상에는 많은 현실이 있다. ‘다른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문제에 당신이 지나치게 빠져있다면, 세상에는 수많은 현실이 있음을 꼭 기억해두라. 우리에게는 그냥 살아가는 우리 삶이 있다. 우리는 그냥 글을 쓰고 싶은 것이며, 그냥 비와 식탁과 음악과 종이 컵과 소나무를 만지고 싶은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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