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시선 237
김태정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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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드들강

                          

                                  김태정

 

울어매 생전의 소원처럼 새가 되었을까

새라도 끼끗한 물가에 사는 물새가

 

물새가 울음을 떨어뜨리며 날아가자

바람 불고 강물에 잔주름 진다

슬픔은 한 빛으로 날아오르는 거

그래, 가끔은 강물도 흔들리는 어깨를

보일 때가 있지

오늘같이 춥고 떨리는 저녁이면

딸꾹질을 하듯 꾹꾹 슬픔을 씹어 삼키는,

울음은 속울음이어야 하지 울어매처럼

저 홀로 듣는 저의 울음소린

바흐의 무반주첼로곡만큼 낮고 고독한 거

아니아니 뒤란에서 저 홀로 익어가는

간장맨치로 된장맨치로 톱톱하니

은근하니 맛깔스러운 거

 

강 건너 들판에서 매포한 연기 건너온다

이맘때쯤 눈물은

뜨락에 널어놓은 태양초처럼

매움하니 알큰하니 빠알가니

한세상 슬픔의 속내, 도란도란 익어가는데

강은 얼마나 많은 울음소릴 감추고 있는지

저 춥고 떨리는 물무늬 다 헤아릴 길 없는데

출렁이는 어깨 다독여주듯

두터워지는 산그늘이나 한자락

기일게 끌어당겨 덮어주고는

나도 그만 강 건너 불빛 속으로 돌아가야 할까부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중에서

 

 

강...

드들강.

그 물들과 함께 자랐고 그 강 뚝길에서 철이 들었다.

.......

 

이 시를 읽는 내내

둑 넘어 땅콩밭을 매던 울어매 굽은 등이 보인다.

사래 긴 밭에 한 점 점으로 하루가 가고 하루가 오던 그 뜨겁던 여름...

그 강물에 떠내려 보낸 꺼먹고무신 같이 까매진 울엄니의 이마. 

그 마른 이마위로 강물은 흐른다.

거기 두고 온 따뜻한 시절의 한 때,

지금도 흘러가고 있겠지.

그저 흘러가고만.

그 밭 언저리를 날고 있는 새 한마리...

훨훨 날고 싶다던 울엄니 소망일까?

 

강...

가을이 잠겨오는 드들강.

그 곳에 가고싶다.

강변의 하얀집.

별이 쏟아지는 평상에 앉아

울엄니, 팥칼국수 먹고싶다.

꿈에서라도.

 

사는 게 너무나 힘들다고,

나는 너무 너무 잘못 살아왔다고,

그저 열심히 살기만 했는데 왜 이렇게 엉키는 거냐고,

그저 울기만 하는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끊었다를 반복하는 몇 시간.

세월을 흘러가는 강물소리를 듣는다.

저 혼자 뒤척이며 흘러가는

저 유장한 강물...

 

 

 

강...

드들강이 나도 많이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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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문학동네 시집 41
박남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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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 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빛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비 그친 새벽.

가을이... 깊다.

 

풀 벌레 소리.

마음에 담긴다.

 

나도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오늘도 넘어진 상처.

찬 비에 쓰리다.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꿈으로도 환하겠다.

 

어릴 적 우물 곁 텃밭의 솔...

저렇게 환한 무리의 흰 꽃이라니...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참전의 댓가,

피의 석유를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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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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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유월의 어떤 날.

 

컴에 지친 눈을 들어

책 꽂이를 쓰윽 훑다가

뽑아든 책.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

헉~ 선생이 떠난 날이

1990년 6월 27일.

 

14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 독서는

내 책읽기는 겨우 요만큼이구나.

 

선생께도

내게도

행. 복. 한. 책. 읽. 기.

 

 

퇴색해가는 노란 색만큼 빛 바랜 밑줄들이

가슴에 선을 긋는다.

 

'뻔히 저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거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세계에 살고 있는 고통....... 카프카가 이미 묘사했으나

아직도 낯선 그런 세계.......'

 

다시 짬짬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완벽하게 날카로운 비평,

섬세한 문장의 칼날에 뇌가 찔리고

심장은 자상을 입는다.

그러나 그는 따뜻했으니.......

 

'삶에는 지름길이 없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

 

이틀동안 무진장의 빗소리를 듣고 있다.

가슴에도 찰박찰박 빗물이 고여 오는 것 같다.

빗물을 떨치고 가야 할 길을 가기 위해 이제 일어나야 한다.

그의 문학을 향한 열정과 애정이 그립다. 

문체가 말 걸어오는 그가 그립다.

 

 

                                          2004. 7. 16.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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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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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헷세의 글 중 유일하게 안 읽은‘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지와 사랑] 이 맞는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읽기 전에는 서로 다른 책인 줄 알았는데 어떤 제목을 갖고 있든 같은 책이다.

  맑고 아름다우면서 매끄러운 글이다.

  그런 우정 속에 살 수 있다면...

  구름을 좋아해서 일까?

   매 작품마다 방랑하는 시선을 따라 전원풍경들이 손에 잡히게 묘사되어있다.

  거기에 지순한 우정과 우주적인 종교관,

  미래지향적인 사상까지 담겨있다.

  작가와 시선은 사물 하나도,

  풍경하나도,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거라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설명의 나열이 아니라 묘사와 전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쪽 중 나는?

  골드문트?

  그렇담 나의 나르치스는?

  지와 사랑은 다르지만 결국 한 인간의 내면 안에 공존하는 두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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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가족 최인호 연작 소설 가족 3
최인호 지음 / 샘터사 / 198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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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가족’ 샘터에 연재됐던 생활 소품 같은 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상을 담담하면서 맛깔스럽게 그려가고 있다. 자질구레한 일상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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