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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ㅣ 문학동네 시집 41
박남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 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빛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비 그친 새벽.
가을이... 깊다.
풀 벌레 소리.
마음에 담긴다.
나도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오늘도 넘어진 상처.
찬 비에 쓰리다.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꿈으로도 환하겠다.
어릴 적 우물 곁 텃밭의 솔...
저렇게 환한 무리의 흰 꽃이라니...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참전의 댓가,
피의 석유를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