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김지우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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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그새 또 지랄맞게 눈발이 날린다. 철 만난 한추위 원풀이라도 하듯, 달도 없는 섣달 그믐밤부터 진탕만탕 퍼부어댄다. 자우룩한 눈안개에 덮여 운장폭포 아랫길이 흔적조차 없다. 밤낮으로 익혀온 길눈이 아니라면 길을 틔울 수조차 없을 것 같다. 그믐치에는 없던 바람마저 살아 산등성이로 밭 언저리로 눈발을 휘몰고 다니고, 과녁빼기 운장사 풍경들은 소리를 놓아 버렸다. 아무래도 살짜기 지나가고 말 눈이 아니었다. 운장산성길 돌담 한군데를 호되게 다스려놓든 참나무골 버섯 막사를 그예 반병신을 만들어놓든 한바탕 북새질을 쳐놓을 심보다. 별나게 볕이 좋던 두어 날 새 골안개에 먹진 구름이 동무해 걸릴 때, 암만해도 재 넘어오는 바람이 수상쩍다 여겼어야 했다.


                                 김지우 단편, 눈길 중에서 <소설집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창비)>

 

 

 

낮에 한참 동안 쏟아진 비가 딱 저랬다.

아직 덜 여문 감들을 떨구고 가는 바람도 심상치 않다.

아람 벌어진 밤들도 이 바람에 쏟아져 내리겠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을비가 지나치리만큼 많이 내린다.

비 때문에 커피가 더 맛있다느니 하는 생각 끄트머리에

들판 걱정이 슬그머니 들이민다.

쯧쯔~

참 철딱서니 없다.

가난한 추석도 곧 인데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제발~!

이 글을 옮겨 적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친구가 보내온 문자가 생각난다.

"세상은 불공평해요. 어쩜 글도 잘 쓰는데 이리 미인이기도 하다지요."

맞다.

췟~!

나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덮고 나서도 그 생각만 했다.

최근에 읽은 작가들 다 그랬다.

윤성희, 이명랑, 천운영, 김별아, 전경린.......

시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글 잘 쓰는 블로그 이웃들의 미모는 또 어떻고.

진짜, 불공평한 세상이다.

약 오르다.

그럼, 내가 글이 안 되는 건

미모 때문인 것일까?

갸웃~ 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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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247
박형준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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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비행이 죽음이 될 수 있으나, 어린 송골매는

                                     절벽의 꽃을 따는 것으로 비행 연습을 한다.



근육은 날자마자

고독으로 오므라든다


날개 밑에 부풀어오르는 하늘과

전율 사이

꽃이 거기 있어서


絶海孤島,

내리꽂혔다

솟구친다

근육이 오므라졌다

퍼지는 이 쾌감


살을 상상하는 동안

발톱이 점점 바람 무늬로 뒤덮인다

발 아래 움켜쥔 고독이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상공에 날개를 활짝 펴고

외침이 절해를 찢어놓으며

서녘 하늘에 날라다 퍼낸 꽃물이 몇동이일까


천길 절벽 아래

꽃파도가 인다



                                                  박형준 시집<춤- 창비>중에서

 

 

몇 번을 읽어도, 읽어도

저릿하다.

자라기도 전에 퇴화된 날갯죽지가

쭉 펴진다.

내 모국어가 자랑스럽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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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사랑 창비시선 249
박철 지음 / 창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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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길


내가 큰길 놓아두고

샛길 접어듦은 석양에 물든 그대 때문이라

어둠이 오기 전 나는 마지막 태양의 흙냄새

작은 열기라도 잊지 않기 위함이라

내가 멀리 길 떠날 막차를 보내고

어둠을 틈타 한적한 곳 돌아서

샛길, 샛길, 하며 목마르게 걷고 또 걷는 것은

길의 어느 한군데쯤

그대 등 돌려 나를 맞이할까, 두려움이라


젊다지만 나는 이미 천상의 인간

그대 거기까지 나를 따라 올까

내가 곧은 길 놓아주고

샛길 험한 길 들어섬은 생의 슬픔 때문이라

슬픔만이 우리를 한결로 엮어

어느 무리 멀리 떠난 뒤에도

샛길, 샛길, 하며 한몸으로 

걸어갈 수 있음이라


                              박철 시집 <험준한 사랑 -창비> 중에서



 

  팔월,

  잦은 빗속에 내내 끌어안고 다니던 <험준한 사랑>을 내려놓습니다.

  폭우로 쏟아지던 백양사,

  그 길 위에서 함께 젖어든 시집.

  시집을 펼칠 때마다 하늘 가득 채우던 애기단풍의 별꽃들이 촘촘히 얽혀들었지요.

  앞으로도 <험준한 사랑>은 그렇게 기억될 것입니다.

  뜨거운 이마에 서늘하게 얹히던 손의 감촉 같은 시어들,

  그 사이로 제가 걸어가야 할 샛길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해야겠습니다.

  너무 오래 놀았습니다.

  구월이 문 밖에 와 있습니다.

  이마, 서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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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입 창비시선 245
천양희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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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맞다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오려나 거위눈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단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 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천양희 시집 [너무 많은 입 - 창비]에서
 

 

       

  덥다.

  날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덥게만 느껴지는 날들이다.

  팥죽땀을 쏟아낸 우리에게 한 시간의 휴식은 찬 수박이다.

  울타리를 넘는데 자두를 갉아먹던 청솔모가 놀래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멈칫거린다.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하다.

  찬 물을 좍좍 끼얹는데 질리게 푸른 은행잎이 빼꼼히 들여다본다.

  바람이 지나간다.

  팔랑팔랑 더운 잎을 흔든다.

  나무도 덥다.

  나무도 견딘다.

  가슴에 바람을 맞는다.

  은행잎에 반성문을 적는다.

  나는 왜 뒤돌아 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사진은 작년 성탄이브에 자분자분 눈 내리던 송광사,

  불일암 해우소에서 찍은 고요한 바깥 풍경이다.

  그립다. 쏴아아~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 그립다.

  소나기라도 한 줄금 쏟아지면 좋겠다. 


 

  정말 덥지요. ^_^"

  그래도 찬 거 너무 많이 드시지 말고 건강하게 견디시기를.......

  이 여름을 건너가는 장한 그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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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시집 57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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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젖다


           윤제림


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도 아닌 것들과.


                     시집-- 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자분자분 비가 내린다.

고요로 비는 내리고 논물이 찰랑찰랑 흔들린다.

함께 젖는다.

인적 없던 개심사 심검당 풍경도 흔들린다.

그립다.

내려오는 길에 얻어 탔던 택배 트럭까지도.

길이

.

.

.

그립다.

 

 

창문을 열어놓고

어린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본다.

댕글댕글 떨어진다.

이렇게

금쪽같은 휴식시간이 끝나간다.

에라~

노래나 듣자.

시와 노래가 안 어울리나???

그래도 하는 수 없다.

함께 젖다도 이은미도 오늘은 땡기니까.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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