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기억이 너무도 많지만, 꼭 언급할 필요가없는 건 모두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어떻게, 왜 성매매에 유입되었는지 보여주는 데 있어 시시콜콜 묵은 이야기들을 굳이 끄집어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어린이가 겨울밤에 1그램의 무게마다 수치스럽게 느껴지던 가벼운 짐들을 손에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 돌아가는 이 풍경은 중요하다. 인생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큰 역경들을 겪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랄 수 없었는지를 이해할수 있게 한다.
때때로 원통할 때면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나의 어머니‘라는 다른 이들의 확신에 모욕감을 느낀다. 과대망상 조현증을 가진 사람에 의해 양육되는 경험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경건한 체 내뱉는 말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상한 크림에 설탕을 넣어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설탕을아무리 많이 넣은들 그 크림이 상해 신맛이 나는 건 어쩔수 없다. 어머니가 항상 나의 어머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화가 난다. 나는 그렇다. - P57

원만하게 무르익은 정서적 성숙도 측면에서 보자면 많은 면에서 내가 소녀였을 때 어머니도 나와 같은 소녀였고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렇다고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더이상 서로 만나지 않는데 슬프게도 현재로서는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것이 최선이다. 책망으로 가득 찬 씁쓸한 감정에서는 멀어졌다. 부모를 단순히 부모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게 되는 때가 온다고들 하는데, 자신에게 느꼈던 연민이 부모님에게 이동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 부모님을 떠올리면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이다. 그저 슬픔과 연민뿐이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때 놀랐다.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늘 어머니를 측은해했지만, 뼈가 부러졌을 때 팔이나 다리를 구부리지 않듯이 그저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었다. - P58

어린 자녀가 어머니의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판단할 정도로 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따르지 않기는 어렵다.

-누알라 오페레인, 
『당신은 그 누군가인가.』

성매매 유입이 부모님 탓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두 분은 아프셨지만 나쁜 분들은 아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이 성매매 유입을 조장하고, 그 환경은 때로 부모들의 도덕적 실패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내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 부모님이 내 인생 방향에 부정적으로 영향을미치는 선택들을 하셨지만 유일한 원인이지는 않았다. 당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다른 요인들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정신 질환, 중독 그리고 가난이 우리 가정 내 역기능을 조장하는 근본적인 세 가지 요인이었고,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 그 어떤 부모들도 구태여 익숙해지거나 바라거나 불러들이고 싶지 않은 일련의 경험들이었다.
얼마간의 역경을 겪고 난 뒤 나름대로 괜찮게, 비교적 정서적으로 건강한 인생을 살아낸 똑똑한 자녀 다섯 명을 키워내셨으니 어머니, 아버지께서 잘못하신 일이 있었더라도 뭔가는 잘하셨음에 틀림없다. - P61

다섯 명의 아이를 둔 가정에서 겪는 가난이란 우울증을 주요 정신질환으로 길러내기에 완벽한 바탕이 되고, 우울증을 겪는 중독자는 중독성 있는 물질로 우울 증상을 완화시키려 하지만상태만 더욱 악화될 뿐이다. 가난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욕구가 생겨나고, 이 욕구는 중독을 부추기며, 정신 질환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여 취업이 어려워지고 빈곤을 고착화한다.
하루 종일 이 연결 고리를 짚어가며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서로를 배양해냈는지 상세히 밝혀낼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부모님의 문제들이 수그러들줄 몰랐던 것은 당연했다. 나를 사랑했던 두 분이 미궁에빠져 허우적댔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라고 화가 나서 간절하게 울부짖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실적이고 차가운 낮은 목소리로 되돌아온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라고말이다. - P63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매일같이 학대당했다. 부모님의 고의가 아닌 질환의 결과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실이 학대로 인한 상처를 완화시키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인생 초반 14년 내내 들이닥치는 태풍을 받아들이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거의 끊임없는 긴장 상태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그래왔던 방식으로 혼란속에서 반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옮겨가기 얼마나 쉽겠는가? 이런 방식과 이유로 성매매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들보다 내게 훨씬 더 가까웠다.
그 모든 긴장감과 스트레스 요인들을 유년기에 겪었지 - P63

만 형제들 중에서 내가 운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대부분 어머니는 좌절감을 쏟아낼 수 있는 상대, 당신을존중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오랫동안 나는 그 위치에있었고, 내 ‘자리‘를 고수하려고 인내심와 교활함이 특이하게 섞인 불온한 요령을 터득했다. 역기능적으로 작동하는가정 내에서 정신 질환이 있는 여성을 상대로 유리한 자리를 얻어내는 건 실제로 기술이었고 나에게는 매일이 피할수 없는 연습 기회였다. - P64

인간은 지극히 구성적 동물이라서 사회적으로중요롭다는 느낌을 필요로 한다. 필요하고 쓸모있다는 느낌 외에 그 어떤 감정도 우리에게 더큰 기쁨을 줄 수 없다. 반대로, 필요 없고 쓸모없다는 느낌만큼 절망을 야기하는 감정은 없다.
-모건 스콧 펙, 『거짓의 사람들]

사람들 대부분이 ‘노숙‘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이해하지못한 채 사용한다. 노숙도 성매매처럼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경험이 아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정이 있는 사람은 연민으로 노숙인을 동정할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실감할 수 없다. 경솔하게 선을 그으려는 건 아니지만 노숙이란 실상 소파가 없고, 의자가 없고, 테이블이 없고, 텔레비전이 없으며, 냉장고가 없고, 밥솥이 없고, 샤워할 곳이 없고(끔찍한 상황), 침대가없는 최악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숙‘이라는 단어를 보면 언뜻 결여된 것이 집 한 가지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개별적 결핍들 간의 결합이다. 감정적인 측면이 가장 힘들지만, 육체적인 어려움부터먼저 언급해보겠다. 육체적인 면을 말해보자면 노숙에서는극심한 피로가 가장 힘들다. 잠이 부족한데 배도 고프고, 어느 때고 계속해서 옮겨 다녀야만 하는 상황을 비롯해러 가지 요인들이 체력을 소진한다. - P79

너무 피곤한 나머지 맥도날드 매장이 아침식사 메뉴인 에그 맥머핀를 팔려고 새벽에 문을 열자마자들어갔다. 적어도 화장실 칸에 들어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 안전할 거라 생각했다. 잠이 깼고 화장실 청소를 하려고 들어온 직원에게 쫓겨나면서 노숙을 통해 겪을수 있는 절실하고도 가장 깊은 상처를 경험했다. 그건 바로 외로움이었다. 내 존재가 전혀 쓸모없다는, 모든 상황과 장소에서 내 존재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경험이었다.
노숙인은 어디를 가진 환영받지 못한다. 노숙자는 사회적의미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 없고 필요 없는 자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사회에서 따돌림 받는 사람, 추방된 자, 외부인이며 자신과 함께 짊어지고 다녀야만 하는 그들의 몸은 어디를 가든지 침입이 되어환영받지 못한다. 그야말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존재이다.
불필요함이 신체로 구체화되었다. 모든 노숙인들이 그렇다. 피할 수 없다. - P84

노숙 경험 중 거리에서 지낸 첫날의 느낌은 가장 이상하면서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 궁핍은 저항하기 힘들만큼 유혹적인 즐거움으로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 즐거움은 유약한 것이었으며 견딜 수 없이 추운 한겨울의 작은 새처럼 죽어갔다. 마음속에서 빈궁을 자유로 탈바꿈했지만 그 꾀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일랜드 날씨는 끔직하게 변덕스러웠고 추웠다. 날씨가 급변해 비와 진눈깨비가 번갈아 공격하고 갑자기 나타난 해가 젖은 옷을 데우고, 다시 강철 같은 회색빛 구름이 뻥 뚫린 지붕 위로 몰려왔다.
나의 자율성은 취약했고, 내 자신은 더욱 취약했기에 그땐 자유가 빈궁으로 탈바꿈했다고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정확히 말할 수 없었고, 수치심 때문에 어쨌거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겠지만 뼛속 깊숙이 느꼈다. - P91

간밤에 내가 변했나? 가만 보자. 오늘 아침일어났을 땐 내가 그대로였나? 좀 다른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치만 내가 그대로가 아니었다면, 다음 질문은 "대체 내가 누구라는거지?"인데, 아, 그거야말로 커다란 수수께끼네.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91년 8월 중순, 따뜻하고 해가 좋은 오후에 성매매여성이 되었다. 그 오후는 이후 7년간의 하루하루를 말로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놓았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많든 적든 그 모든 날들에 영향을 미칠 터라 그날의 경험이머릿 속에 각인된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스물한 살이댄 애인의 제안을 놓고 몇 시간 동안 갈등했는데 어느새 그제안이 갑자기 실현 가능하고 실용적으로 보이더니 심지어어떤 점들은 매력적으로까지 느껴졌다.
‘내가 저 여자일 수도 있어‘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할 정도로 충분히 강할지도 몰라. 잠자리가 소파일지 벤치일지도 모르는 이 방황에 끝을 낼 수 있어. 빌어먹을 음식이나 담배를 끊임없이 열망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걸 할 수 있을 만큼 강하기만 하다면 다 끝낼 수 있어.‘ 그런 방식으로 성매매를 용기의 문제로 변형시켰고 그 후로 돌이킬 가망이 없어졌다.
남자친구는 나처럼 노숙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성매매로 잘 알려진 벤허브 거리에서 몇 분 떨어진 인퍼머리 길가까이에 위치한 친구 집에서 숙박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됐을 시점이었다. - P93

요즘에는 거리 성매매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1991년엔거의 모든 여자아이들이 구강 성교 시 콘돔을 썼다. 콘돔을사용하는 하지 않든, 구강 성교를 해야 하는 현실이 역겨웠지만, 손과 입을 사용한 유사 성행위를 거의 매일같이 했다. 이런 상황이 2년 동안 계속되었다. 삽입 성교 성매매를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날에 대한 기억은 흩어지고 깨져 있다. 예닐곱 번 성매매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번은 남자친구에게 차에서 내렸다고 알리기 전에 다른 차에 올라탔다. 남자친구는거리 저 끝에 서 있었는데 마지막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른차 한 대가 바로 내 옆에 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차에 올라탔다. 내가 돌아오자 남자친구는 내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봐 놀라서 극도로 겁을 집어먹은 채 화가 나 있었다. 남자친구는 아마도 자신이처벌당할까 봐 더 염려했겠지만, 당시엔 순진해서 이런 행동을 배려라 해석했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남자친구 옆에 누웠을 때,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내 안의 어떤 곳에서 눈물이 나왔다. 아프게 하는 그것을 뭐라고 부를지 몰랐다. 그날 아침 잠에서깼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으로 잠드는 느낌이었고 정확히많은 면에서 그게 바로 일어났던 일이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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