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선 스튜를 거의 먹지 않는 것을 보고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메스꺼움을 잘 느끼던 임신 3개월의 나에게는 그 비린 풍미가 좀 견디기 어려웠지만 차마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그는 매우 유럽 할아버지다운 방식으로 신사다웠고 심지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락없는 마이어, 억누를 수없이 흘러넘치는 마이어였으며, 완전히 잊혀가던 분류학을 구해낸다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과제를 스스로 떠맡은 1950년대의 그와 똑같은 마이어였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가 그런 도전적 과제를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그날 점심을 먹으며 내게 했던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내가할 자격이 없는 일들을 차례로 하나씩 해왔지만, 내가 그 일을 할수 있다고 확신했고, 정말이지 내게는 그 일을 할 능력이 있었다네. - P134

움벨트(생명의 세계 및 그 세계의 질서에 대한 지각)는 우리가 보는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에게 단순하고 객관적인 현실처럼 여겨진다. 너무나 단순명료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그걸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아하!" 하고 이해할 수 있다. 명백히 눈에보이는 것은 어차피 모두가 동의할 것이므로 그걸 이해하기 위해 과학적 실험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요점에서 벗어난 일일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일로 보인다. 그러니 분류학이 합리적인 과학이 되지 못하고끝나지 않는 열띤 논쟁 상태로 떨어진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아등바등하고 있는 분류학이라는 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파괴적인 사실은 아마도, 여러 변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 모든움벨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진화의 발견에서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생명의 세계라는 점일 것이다. 진화분류학자들이 알고 있는사실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움벨트는 불변하는 생명체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비전이 어찌나 큰 확신을 심어주는지 분류학을 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그 반대임을 증명하는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항상 변화하는 종조차도 단 한 문장의 정의로 깔끔하고 수월하게묘사할 수 있다고 계속 믿었던 것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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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도 한쪽 눈이 다른 쪽보다 더 잘 보이고 그런 이유로 더 민감한 것이라고. 그는 그것을 주도하는 눈이라고 불렀다. 그 눈은 더 민감하기 때문에 낯선 물체를 잡아내지 배출하지는 않는다.
그 말인즉 시력이 더 좋은 눈이 더 고통받는다는 뜻이다. 그 눈은 더 강하면서 더 약하고, 우리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상처내거나 할퀴는 먼지 알갱이가 일으키는 참을 수 없는 고통보다더 현실적일 수 없는, 상상과는 거리가 먼 문제를 끌어당긴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눈만 그럴까? 잘 보는 사람, 그러니까 힘 있는 사람은 가장 많이 느끼고 가장 고통받는 사람일까. 그를 괴롭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눈 속의 모래알만큼이나 현실적이다. - P44

한 친구에게 말했다.
"삶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렇지만 너도 삶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걸 잊지마."
"그래." - P45

베른의 겨울, 무덤이 열린다. 여기에 들판이 있고 수많은 풀이있다. 새로운 나뭇잎, 나뭇잎들, 어찌들 바람과 헤어지는지. 재채기가 계속 나온다. 창밖에선 감기에 걸린 세심한 봄이 재채기를 한다. 손가락에는 거미줄이, 정원에는 연못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노란 꽃, 노르스름한 작은 꽃들에게서 어찌나 새 금속 냄새가 나던지. 이파리들과 이파리들, 너희는 어떻게 산들바람과 헤어질까? 그 투명한 틈새 어디에 나를 숨겨야 할까? 나는내 사색의 장소를 잃었다. 그러나 내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뛰쳐나간다면...... 빛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고 또 길을 잃는다- 다른 장면으로 천천히 뛰어 들어가 다시 길을 잃는다- 어떻게 내 것의 부재 속에서 봄을 찾을까?  - P48

호자, 제일 까만드레스를 다림질하렴. 연속되는 조용한 장면들 위로 특히 다른 장면 위로-다시 또 다른 장면 위로 한 세기 그리고 다른 세기, 고요하고 투명한 또 다른 세기에 유일하게 가능한 자아인 나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오! 불친절한 봄이여. 어쩌면 이 새로운 시대로 인해 봄이 뛸지도 모른다, 길 없이 이 새로운 세상을 가로지르면서, 수많은 빛나는 재채기와 온갖 풀과 함께. 나는 심장이 뛰는 곳, 네 공허의 유일한 지표인 곳, 봄, 오직 그곳에서만숨을 헐떡이며 멈출 것이다. 나는 검은 옷을 입고, 너는 황금색옷을 입고, 나는 머리에 한 송이 꽃을 꽂고, 너는 머리에 천송이 - P48

꽃을 꽂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더 잘 알아보기 위해 나는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망설임을 든다. 나는 키가 크고, 감기에 걸렸다. 너는 손수건과 재채기로 나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가증스러운 텅 빈 하늘 한가운데에서 나는 숨을 쉬고 또 숨을 쉰다. 나는 너의 눈먼 바람으로,
교만한 개화로 인한 나의 재채기로 너를 알아볼 것이다.
이 잠든 봄에 시골에서는 염소들이 꿈을 꾼다. 호텔 테라스에는 수족관에 물고기가 산다. 언덕 위 외로운 동물들. 며칠이, 며칠이, 며칠이 가고- 시골에는 바람과 염소들의 파렴치한 꿈, 수족관에 사는 배 속이 텅 빈 물고기들이 있다-너는 느닷없이 봄이 되면 하늘을 날아오르려고 하는, 혼자 뛰어오다가 벌써 붉어지는 동물이다. 그렇다, 여름이 올 때까지 그리고 가을에 10만개의 사과가 익을 때까지. - P49

 그러니까 직감이 발달한 바람의 방향을 아는 지혜가 있는, 직관적인 통찰력을 가진, 죽음을 경험한, 웅덩이를 알아채는, 불안하게도 행복한 적응력을 상실하는 심장 말이다, 적응력을 상실한 존재가 내 원천인 것을 알게 됐으니까. 우리는 모기가 나타나면 소나기가 온다는 것을 안다. 나는 건강한 머릿결을 위해 새 달에 머리를 잘라야 하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름을 말하면 지연과 커다란 불행이 따르고, 가구 다리에 악마를 빨간 줄로 묶어 어쨌든 내 악마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중앙에 서 있지 못하고 수 세기 전부터 그늘에, 왼편에 서 있는 내 심장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매우 낯선 존재이고 그의 순수함만으로도 그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안다.
아니다, 사실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반박하더라도 나의 간접적인이 마음은 옳다. 파세이토는 틀림없이 죽음을 가져오고, 흐릿한 눈에 겁에 질린 얼굴은 스스로 차오른 만월을 본다. - P59

우는 것에도 좋은 방법이 있고 나쁜 방법이 있다. 나쁜 방법은 멈추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통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방식은 당신을 지치게 하고 고갈시키기만 할 뿐이다. 어떤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건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의 울음과 같은 것이 아니냐고. 그렇다. 그런 유의 눈물이 나면 참는 편이 낫다. 운다고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강한 척하고 맞서는 게 더 낫다. 힘들기는 하지만 핏기 없이 보일정도로 창백해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늘 강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존중해야만 한다. 그것은 부드러운 눈물이자 우리가 누릴 권리가 있는 정당한 슬픔이다. 그 눈물은 천천히 흐르고, 입술에흐를 때면 짜고 맑은 맛이 느껴지며, 더 깊은 고통을 만든다.
우는 남자는 감동적이다. 그는, 그 투사는 자신의 싸움이 때로는 헛되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우는 남자를 존중한다. 나는 우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 P65

나도 그런가?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는익명으로 비밀스럽게 지내고 싶다. 가능하다면 말없이 말하고싶다. 마리아 베타니아는 내 책을 통해 나를 안다. 나는 <조르나우두 브라질>로 명성을 얻었다. 장미꽃도 받았고, 언제가는 그만둘거다. 되어버린 것이 되기 위해서. 왜 나는 이렇게 쓸까? 그렇지만 나는 위험하진 않다. 점점 더 사이가 돈돈해지는 자매들을 제외하고도 내게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보통 친근한 편인데 그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나는 침묵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한때는 침묵을 지켰다. 이제는 말하지 않고도 소통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 나는 그걸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허락을 구하지 않는 일종의 자유다. - P77

아니, 아직 붉지는 않았다. 거의 밤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밝았다. 본래의 모습대로 붉게 보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색이 없는 따뜻한 빛이었고, 그녀는 멈춰 있었다. 아니다, 여자는 땀을 흘리지 못했다. 그녀는 메말랐고 투명했다. 밖에는 깃털이 달린 박제된 새들만이 날아다녔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는 더위였고, 그녀가 더위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면 느린 환영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 환영이 상징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거대한 코끼리들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 견딜 수 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속살은 젖어 있지만 피부는 마른 덩치크고 순한 코끼리들이었다. 자기 몸을 옮기기가 힘들어 발걸음은느리고 무거웠다. - P104

달콤한 여자들과 함께 엄습하는 인도의 향. 공동묘지의 패랭이꽃 향기다. 모든 것이 그렇게 갑자기 변할까? 밤도 비도 물속의 썩은 나무도 없었던 사람을 위해, 진주밖에 없었던 사람을 위해 밤이 올까, 나무가 마침내 썩을까, 공동묘지엔비를 맞아 생기발랄한 패랭이꽃이 피어 있을까,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비가 내릴까? 절박함은 꼼짝없지만, 그 내면에는 이미 떨림이 있다. 여자는 그 떨림이 자기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녀를 태운 것이 오후 끝의 뜨거운 열기가 아니라 인간의 열기라는 사실을 그녀처럼 모두가 지각하지 못한다. 다만 그녀는이제 무언가 달라지리라는 것을, 비가 오거나 밤이 오리라는 것을 감지한다. 그러나 그녀는 누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다이아몬드 같은 두눈이 눈물 두 방울로 녹아버린다. 마침내 하늘이 잠잠해진다. - P107

라이노라이프 식자공에게


오타가 너무 많아서 죄송합니다. 일단은 제가 오른손에 화상을입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교정하지 말아주세요. 구두점은 문장의 호흡입니다. 그리고 제 문장은 그런 방식으로 숨을 쉬지요. 혹시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신다고 해도 그것마저 존중해주세요. 저 역시 저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쓰기는 저주입니다. - P114

아니, 그저 단순한 부탁이 아니야. 내가 간절히 빌게.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마. 한 잔은, 알겠어, 너에게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니까, 너는 부끄러움 때문에 사람에게 의지하는 대신에 술을택했지.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너에 대해 하는 말이 두려워. 네가 전보다 세 배는 더 많이 마신다는 것 말이야. 네 생명을 단축시키지 말아줘. 삶을 살아, 삶을 살아야 해. 어렵지, 힘든 일이야, 그렇지만 삶을 살아야 해. 나 역시 삶을 살고 있어. 수도자인 네가 신실하게 믿는 신의 이름으로, 조금만 마시길.
내 말을 믿어봐. 내게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 - P115

많은 사람이 눈에 띄기를 원한다. 그것이 얼마나 삶에 제약을 주는지 알지 못하고. 내 작은 유명세는 내 수줍음에 상처를 낸다. 그래서 하고 싶었던 말조차 더 이상 할 수 없다. 익명은 꿈처럼 달콤하다. 내게는 그 꿈이 필요하다. 게다가 나는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현재 나는 돈이 필요해서 글을 쓴다. 나는 입을닫은 채 있고 싶다. 내가 절대로 쓰지 않는 것들이 있고, 나는 그것들을 쓰지 않고 죽을 것이다. 그것들은 절대 돈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안에는 커다란 침묵이 있다. 그 침묵은 내 언어의 샘이었다. 침묵에서 그 어느 것보다 가장 귀한 것이 나온다. 그러니까 침묵, 그 자체 말이다. - P117

대부분 가정에서 한 청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러니까 공부시키기 위해 치르는 희생을 당신이 아셨으면 합니다. "초과" 라는 말이 나타날 때마다 얼마나 깊고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얻는지를요. "초과"로 분류된 어느 젊은 여학생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겨서 그녀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갑자기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과 허무함을 느꼈다고 말했지요. 그때 그 여학생 곁에 있었던, 합격을 거부당한 다른 남학생들과 여학생들도 몸을 숨기고 역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들은 시위하기 위해 저항하기 위해 길에 나올 수조차 없었습니다. 경찰들이 그들에게 폭력을 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위해 지불하는 교재 비용을 알고 계십니까? 정말 비쌉니다. 아주 힘들게 사고, 할부로 사지요. 이 모든것이 결국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입니까?
이 글이 젊은 학생들의 저항 행진을 상징하기를 바랍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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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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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나이우스는 겸손과는 심히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므로, 자기가(스스로 자주 들먹이며 자화자찬했던) 재능을 지닌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신의 의지였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에 앞서 다른 누구도 ... 더 위대한 식물학자나 동물학자일 수 없도록... 더 많은 책을, 더 정확히 쓴 적이 없도록 ... 그처럼 다른 모두가한 것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동물의 목록을 만든 일이 없도록온 세상에서 그보다 더 유명해지는 일이 없도록" 전능한 신이 정해두었다는 것이다. 린나이우스는 전능한 신이 창조의 날 이후 전혀 변하지 않은 무수한 생명 형태들에 관해 그 누구보다 큰 통찰력을 자신에게 주었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칼 린나이우스니까. 하지만그러한 거드름을 일단 옆으로 치워두면, 실제로 그에게는 자신을 남다른 존재로 부각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재주와힘을 묘사한 과도하고 현란한 방식이야말로 그 차이를 알려주는 실마리다. - P77

그 시절의 체계화와 명명 작업은 그야말로 자연의 질서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질서에 대해 갖게 된 감각과 강력한 비전의 풍부한 세계를 다루는 일이었다. 박물학자들은 수년간 생명의 세계에 주파수를 맞춘 예리한 감각을 동원해 주변의 생명을 체계화했다. 그러나 터보 충전기를 장착한 듯한 린나이우스의 감식력은 이를 초월했다. 자연사가 점점 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던 그 와중에도, 그의탁월한 감식력은 완전히 새로운 식물, 신비롭고 새로운 꽃을 만나자마자 그 식물이 다른 어떤 식물과 가장 닮아 보이는지, 식물에 집착적으로 빠져 살아온 평생 그때까지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본 모든식물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유사성을 지닌 것이 무엇인지를 의식적으로 사고하지 않고도 즉각 감지하게 해주었다. 그가 즉각 ‘아, 맞아요 맞아. 그건 월계수속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세계에 대한 바로 그 풍부하고도 설득력 있는 감각이 그에게 지극히 명백한 진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P79

자기 입으로 그렇게 부단히 자화자찬해댄 그를 칭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의 체계는 정말로 굉장한 성취였다.
린나이우스는 이십 대 백수 시절에 그 책을 씀으로써, 자기 힘으로서른도 되기 전에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로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영예를 거머쥐었다. 「자연의 체계를 씀으로써 그는 이제 막 생겨나던 분류학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다. 이 책을 비롯한 그의 저서들은 세월의 시험을 통과했을 뿐 아니라, 하나의 표준을 설정했다.
「자연의 체계」 10판은 후에 전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모든 동물의 분류와 명명을 관장하는 동물학 명명법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식물의 종Species Plantarum』은 세계적으로모든 식물 명명법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인정받았다. - P83

그러니까 「자연의 체계는 단순히 체계화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된 세계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순히 우리가아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 것이라고 느끼는 세계였다. 우리는 그 세계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 세계를 소유하고 있다. 린나이우스가 기록한 것은 바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이 비전이었다. 그의 천재성은 디테일에서 드러났지만(우리 중에 그 수수께끼 같은 월계수속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의 인간다움은나머지 모든 것에서, 그러니까 우리 모두 쉽게 볼 수 있는 물고기, 소나무, 호랑이에서 드러났다. 그 모든 개인적 결함과 끝없이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린나이우스가 여전히 그렇게 존경받고 스웨덴의 국민 영웅으로 사랑받으며, 수많은 전기의 주인공이 되고, 수많은 교과서에서 그토록 열정적인 칭송을 받는 것은 바로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리의 세계를 포착하고 그 타당성을 확인해주었다. - P85

위대한 진실은 모두 처음에는 신성모독으로 등장한다.
ㅡ조지 버나드 쇼

따개비는 도무지 동물 같지 않은 이상한 동물이다. 무엇보다 따개비는 돌덩이처럼 보인다. 선체나 새의 발, 고래 옆구리, 거북이 등딱지등 여기저기 불편하게 들러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돌덩이. 따개비는 타고난 비밀스러움으로(따개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것은 꽉 닫힌 껍데기 안의 정교한 조직들 속에 숨어 있다) 체계화와 분류를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난관을 안겨왔다.
일찍이 1597년에 존 제라드John Gerard라는 식물학자는 「초본식물 또는 식물의 일반사Herball, or Generall Historie of Plants』라는 책에서이 수수께끼 같은 혹덩이를 ‘따개비나무Barnakle Tree‘라는 식물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도로는 충분히 괴상하지 않았던것인지, 이 식물에서 만들어지는 따개비는 완전한 형태를 갖춘 이른바 따개비거위라는 작은 거위들을 몸 안에 품고 있다고 여겼다(물론따개비거위는 제대로 된 다른 모든 거위처럼 알에서 부화한다). - P88

물론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장대한 이론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이론이 심오하고도 강력하게 모든 것을 밝혀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동시에 그 이론을 몸서리치게 두려워했다. 그이론이 품고 있는 의미는 장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혁명적이었고, 가장 온건하게 말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닐지언정 (자기 아내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무시무시한 충격을 가할 터였다. 자연에 대한 그의 진화적 비전은 자비로운 신의 존재를 인정사정없이 의심하게 만들 것이고, 인류는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존재에서 그와는 뭔가 다른 존재로 격하되어 따귀를 맞은 것처럼 모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윈은 유명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 경Sir Charles Lyell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의 조상은 물속에서 숨을 쉬고, 부레가 있으며, 거대한 꼬리지느러미와 불완전한 두개골을 지녔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암수한몸인 동물이었습니다! 여기 인류가 참으로 기뻐할 계보가 있군요." - P97

그는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한 일은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뒤로 미투기로 했다. 웃음거리가 되는 대신 수년 전에 발견한 이 따개비에 집중하는 거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두어 달, 아무리 길게 잡아도 1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저 한 종류의 작은 생물, 한 가지 따개비일 뿐이었다. 어려워 봐야 얼마나 어렵겠는가? 하지만 유리병 속 따개비들을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다윈은 자기가 어떤 상황 속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는지 아마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작은 바다생물이 그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바람에, 진화에 관한 이론(이미 10년 전에 처음으로 떠올렸던)은 그때부터 13년이나 더 출판되지 못하다가 1859년이 되어서야 「종의 기원으로 출판됐다. 지금 다윈이 막 시작하려는 곁다리 프로젝트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참이었고, 그는 앞으로 8년을 오직 이 따개비에게만 쏟아부으며 자신을 갈아 넣게 될 참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생과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적 동요에 시달리는 한편, 보상도 따를터였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피하려 애썼던 진화론에 대한 핵심적증거가 될, 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도 그 보상 중 하나였다. - P101

생명에 대한 과학적 시각과 나머지 우리 모두의 시각이 일치했민 순간(린나이우스가 축하하고 기록했던 그 순간)은 이제 공식적으로막을 내렸다. 그 많은 조개껍질 수집가와 딱정벌레 사냥꾼, 그 많은올빼미 관찰자와 식물 덕후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었던 생명의시각, 움벨트의 시각, 인간과 생명 세계 사이의 가장 깊고 심오한 연결이 이제 나가는 문 쪽을 향해 떠밀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과학이 칼자루를 넘겨받았고, 과학은 완전히 새로운 어딘가로, 어떤 새로운 비전으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을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철저하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방식을 향해 가는 자기만의 여정에 올랐다. - P120

정에 올랐다.
그러나 분기학자들의 탄생과 물고기의 죽음은 아직 한참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에 분류학의 다른 세 학파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진화분류학, 다음에는 수리분류학, 마지막으로 분자분류학이 등장했는데, 세 학파 모두 과학적 생명 분류가 부상하고 최종적으로 움벨트를 버리게 되는 과정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런 다음에야 마침내 물고기를 죽일 분기학자들이 등장할 터였다. 그것은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윈의 마차 에피파니에 힘입어이루어진 진화에 대한 깨달음은 과학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에세웠고, 그 길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오래 공유했던 자연의 질서로부터 과학을 점점 더 멀리 이끌어갈 터였다. - P120

마차 에피파니가 마무리되면서 다윈의 따개비 시절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8년을 쏟아붓고 1854년 가을이 되자 다윈은 그 일을마무리할 준비가 되고도 남은 상태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전의 그 어떤 사람도 이토록 미워해본 적 없을 만큼 따개비가 밉다.
느릿느릿 바다를 지나는 선박의 선원조차도 이 정도로 따개비를 미워하지는 않았으리라."
다윈은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변이를 발견했고, 종의 기만성을깨달았으며, 오랫동안 사람들이 자연의 질서라고 이해해왔던 것에막강한 개념적 폭력을 가했다. 게다가 따개비 문제도 해결하며 어마어마한 분량의 분류학 연구 성과를 쌓았고 그걸로 현존하는 따개비와 따개비 화석을 통틀어 모든 따개비에 관한 연구서 4권을 내면서, 그가 그토록 원했던 과학자로서의 존경도 얻어냈다. 따개비 연구로그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들의 협회인 왕립학회에서왕실 자연과학 훈장을 받았다. - P121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에서는 그보다 더 단도직입적으로, 진화는 일단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분류학의 "막대한 헛소리들을 깨끗이 제거할 것"이라고 썼다.
정말 많은 것에 관해 옳은 말을 한 걸로 유명한 다윈이지만, 이말보다 더 틀린 말은 없을 것이다. 분류학의 입장에서 진화에 대한 깨달음은 상황을 명료하게 만들어주는 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화는 분류학에 투척된 폭탄 같았다. 다윈이 분류학자들에게 구체적인 목표 하나를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생명의 계보를 찾아내고 그것을 활용해 생명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해야 그럴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감각을 통해파악되는 유사성과, 모호하게 정의되었으나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자연의 질서를 찾는 일은 가능했다. 그것은 분류학이 줄곧 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아주 오래전 과거를 밝혀내고 모든 생명의 계보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라도 품어볼 수 있는 걸까?
따개비 연구가 끝나고 5년 후, 그 진실이 세상에 나왔다. 다윈은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그 진실, 생명은 불변하는 존재들의 고정적 배열이 아니라 성장하고 변화하며 가지를 떨구고 왕성하게 싹을 틔우며 항상 변화하는 나무라는 진실을 알게 된 후 다윈이개인적으로 짊어지고 있던 짐은 이제 더 이상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 P122

온 세상에서 뒤죽박죽된 혼란보다 더 나쁜 건 없어요.
무시무시하게 들려도 죽음과 운명을 직면하는 게 오히려 쉽죠.
내가 돌이켜보며 경악하게 되는 건 나의 혼란들이에요....
혼란을 조심해요.
E. M. 포스터, 『전망 좋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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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는 어린아이든 다른 누구든, 백색증에 걸린 낯선 흰색 호랑이든, 심지어 돌연변이로 머리가 둘이거나, 다리 하나를 절단해 다리가 세 개뿐인 호랑이도 호랑이로 알아본다는 사실에도 놀라지 않는다. 이런 건 우리가 전혀 신기해하지 않는 신기한 일, 바로 ‘플라톤의 딜레마‘다.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적은 것을 바탕으로그렇게 많이 아는 걸까? 별 노력이나 생각 없이도 우리는 생명의 세계에 관해 놀랍도록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한 생물이 무엇인지(특히 그것이 거대한 자연의 질서에서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아는 일은 우리모두에게 정말 놀랍도록 수월하다. 너무 쉬워서 우리의 무의식에도깔끔하게 맞아들어갈 정도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이 일에 매우 능숙해 보일 뿐 아니라, 생명의 질서, 생물의 이름과 분류와 조직에 관해 배우는 일에 일찌감치 그리고 아주 깊이 끌리는 것으로 보인다. - P34

그러자 대학 시절에 벌들에 빠져 있던 어느 교수님의 동물행동학 수업에서 배웠던 뭔가가 기억났다. 교수님은 생물학자들이 ‘움벨트Umwel‘라 부르는 것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움벨트는 글자 그대로 ‘환경‘ 또는 ‘주변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지만,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단어로 더 구체적인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생물학자들에게 움벨트란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이 용어는 익숙하지 않지 - P35

만, 그 개념은 아주 익숙하다. 우리는 개들이 색깔을 볼 수 없어서 색채가 아니라 냄새로 그려진 우주에서 산다는 걸 안다. 멍멍이가 자기눈에 보이는 모든 기둥과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 킁킁대며냄새를 맡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 교수님이 애지중지하던 벌들은 다면적인 구조의 눈으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벌들은 꽃에서 꿀이 있는 위치로 정확히 날아갈 수 있다. 꽃에 자외선으로 그려진 띠와 줄 패턴이 벌들을 그 자리로 안내한다. 하지만 움벨트는 개와 벌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심지어 인간에게도 있다. 우리는 그걸 ‘실제‘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우리를 둘러싼 생명의 세계에 대해 우리 특유의 감각이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 게 바로 움벨트다. 그리고 거기에 답이 있었다. - P36

인간의 움벨트에는 내내 드러나지 않고 있던 중요한 의미 하나가 들어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생물의 체계적 질서를 감지하는 방식, 처음부터 내장돼 있으며 판에 박힌 그 방식을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이 바로 움벨트(우리가 공통적으로 지각하는 세계)라는 깨달음이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이 제안한 바이오필리아(생명이 있는 세계에 대한 인류의 사랑)가 사람이 생물들에게 그토록 자주 매료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면(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생명의 세계와 그 속 자연의 질서를 우리가 늘 바라봐왔던 그 방식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움벨트(그 별스러운 특징들과 강점 및 약점, 그리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점 자체를 포함하여그에 관한 다른 모든 것까지)일 것이다. - P36

움벨트는 또한 심리학자들이 뇌 손상 환자들을 연구하는 동안 줄곧 추적하던 것이기도 했다. 생물을 구별하는 능력을 잃은 그 가련한 영혼들의 뇌에서 사라졌거나 고장 난 것이 바로 움벨트였다. 아직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작고 앙증맞은 아기들에게 생명의 세계란 과연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 역시 움벨트였다.
내가 전에는 분류학과 관련지어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아주 많은 것의 원인이 움벨트임이 분명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서나움벨트가 우리에게 질서를 보게 하고, 또한 그 질서에 근거해 행동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인간을 포함해) 한종 안에서도 또 질서를 매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분류하고, 그들이 우리의 자연 질서 안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그러니까 흑인인지 백인인지 아시아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등을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의료를 처방하고, 적합한 화장실을 고르며, 장학금과 기회를, 심지어 사랑을 나눠주는 데까지 그 분류법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우리의 움벨트라는 렌즈를 통해 행한다. - P37

과학을 태동시키기 훨씬 전부터 움벨트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세월 동안 과학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인류가살아 있는 모든 것과 나누는 가장 좋은 연결이자 가장 내밀한 연결이었다. 움벨트는 단순히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우리 자신이누구인지 이해할 맥락이며, 이는 언제나 그래왔다. 움벨트는 우리에게 자연의 한 질서를 보여줌으로써 사실상 뭐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선포한다. 또한 현실 자체의 경계선을 정하며, 그 세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포함해 생명의 세계 안 존재들의 위치를결정한다. 움벨트를 잃어버린 사람들, 뇌 손상으로 생물의 자연적 질서를 인지할 수 없게 된 환자들이 바로 그 살아 있는 증거다. - P40

우리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맡겨두는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의 생명에게 눈길도 주지 않게 됐다. 수많은 야생의 생물들이 자기 좀 보라는 듯 눈에 띄는 모습으로 끈덕지게 우리 앞에 나타날 때도(예컨대 매들이 주차장 상공을 날아 이동하거나, 한밤에 다채로운 색깔의 나방들이 유리창에와서 몸을 부딪치거나…. 이런 일은 항상 있다) 우리는 그 존재들을 거의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모두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일 가운데 우리가 생명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하는 일,
바로 ‘먹기‘를 할 때조차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 사실은 생명의 세계임을 점점 더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고기가 콧김을 뿜어대는 덩치 큰 포유동물에서 잘라낸 살덩어리가 아니라 스티로폼접시에 놓인 새빨간 타원형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세계는 항상 바로 우리 눈앞에 있지만 우리는 그걸 모두 놓치고 있다.
우리가 치를 대가는 그보다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것 중 가장 큰 것을, 바로 야생의 자연 자체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는데, 우리는 생명과 너무 심하게 단절된 탓에그에 대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심지어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도 없다.  - P44

매년 플로리다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아하함, 하품이 나네. 종들이 멸종하는 속도가 인류가 끼어들기 전에 비해 100배 내지 1000배나 빨라졌다고? 하암, 하아암. 우리는 도무지그런 일에 신경을 쓸 정도로 각성하지 못하며, 생명의 세계는 우리와너무 멀어졌고 너무나 무관해 보인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그리고 이 지경에 와 있음을 깨달은 지금, 어떻게 여기서 탈출해야 할까? 이 책은 이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나의 시도다. 이 책에는 우리가(과학자들과 나머지사람들 모두) 이 낯선 장소에 도달한 여정의 이야기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지도가 담겨 있다. - P45

우선 나는 내 물고기들을 되찾고 싶다. 알고 보니 나는 뱀들과새들과 물방울을 튕기는 매혹적인 물고기들로 가득한 세계를 내게보여줬던 유년기의 숲에서 마음껏 활개 치는 움벨트와 함께하던 그시절, 처음부터 올바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비록 과학을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이기는 해도 나는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해야겠다. 우리가 과학을 아무리 많이 필요로 하더라도(실제로 우리는 과학을 많이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는 물고기도, 아마 모두가 짐작하는 것보다훨씬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끌미끌하고 반짝거리며 물속을 헤엄치는 그 동물들은(자연탐구가들이 기나긴 세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알아보았던 다른 모든 생물과 함께) 우리와 생명의 세계를 연결하는 중심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제 터무니없게도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 이상한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다놓은 여정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P45

져 있는 냉담한 분리 상태가 생기기 한참 전, 사람들이 생명의 세계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에서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아마 제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있던 인물, 당대 지성계의 가장 거대한 문제인 생명의 세계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이야기에 시동을 건 인물에서 시작한다. 바로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가 된 카롤루스 린나이우스다. 그는 물고기와 얼룩말, 나방, 그리고 수정처럼 맑고 파란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우리가 오랫동안 알아보았던 다른 모든 것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었다. - P46

우리가 와 있는 이곳은 정말 이 세상 같지 않게 너무나도 풍성해....
저 엄청난 나무들이라니! ・・・ 새들과 물고기,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된)가재까지 색깔도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 지금까지 우린 내내 얼간이들처럼이리저리 뛰어 돌아다녔어. 첫 사흘은 뭐가 뭔지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지.
계속 먼저 잡았던 걸 던져버리고 바로 다음 걸 붙잡아야 했으니까.
봉플랑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 경이로움이 어서 바닥나지 않는다면자기는 분명 정신이 나가버릴 거래‘

ㅡ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프로이센의 유명한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1799년 형에게 쓴 편지 중에서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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