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나이우스는 겸손과는 심히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므로, 자기가(스스로 자주 들먹이며 자화자찬했던) 재능을 지닌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신의 의지였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에 앞서 다른 누구도 ... 더 위대한 식물학자나 동물학자일 수 없도록... 더 많은 책을, 더 정확히 쓴 적이 없도록 ... 그처럼 다른 모두가한 것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동물의 목록을 만든 일이 없도록온 세상에서 그보다 더 유명해지는 일이 없도록" 전능한 신이 정해두었다는 것이다. 린나이우스는 전능한 신이 창조의 날 이후 전혀 변하지 않은 무수한 생명 형태들에 관해 그 누구보다 큰 통찰력을 자신에게 주었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칼 린나이우스니까. 하지만그러한 거드름을 일단 옆으로 치워두면, 실제로 그에게는 자신을 남다른 존재로 부각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재주와힘을 묘사한 과도하고 현란한 방식이야말로 그 차이를 알려주는 실마리다. - P77

그 시절의 체계화와 명명 작업은 그야말로 자연의 질서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질서에 대해 갖게 된 감각과 강력한 비전의 풍부한 세계를 다루는 일이었다. 박물학자들은 수년간 생명의 세계에 주파수를 맞춘 예리한 감각을 동원해 주변의 생명을 체계화했다. 그러나 터보 충전기를 장착한 듯한 린나이우스의 감식력은 이를 초월했다. 자연사가 점점 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던 그 와중에도, 그의탁월한 감식력은 완전히 새로운 식물, 신비롭고 새로운 꽃을 만나자마자 그 식물이 다른 어떤 식물과 가장 닮아 보이는지, 식물에 집착적으로 빠져 살아온 평생 그때까지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본 모든식물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유사성을 지닌 것이 무엇인지를 의식적으로 사고하지 않고도 즉각 감지하게 해주었다. 그가 즉각 ‘아, 맞아요 맞아. 그건 월계수속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세계에 대한 바로 그 풍부하고도 설득력 있는 감각이 그에게 지극히 명백한 진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P79

자기 입으로 그렇게 부단히 자화자찬해댄 그를 칭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의 체계는 정말로 굉장한 성취였다.
린나이우스는 이십 대 백수 시절에 그 책을 씀으로써, 자기 힘으로서른도 되기 전에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로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영예를 거머쥐었다. 「자연의 체계를 씀으로써 그는 이제 막 생겨나던 분류학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다. 이 책을 비롯한 그의 저서들은 세월의 시험을 통과했을 뿐 아니라, 하나의 표준을 설정했다.
「자연의 체계」 10판은 후에 전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모든 동물의 분류와 명명을 관장하는 동물학 명명법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식물의 종Species Plantarum』은 세계적으로모든 식물 명명법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인정받았다. - P83

그러니까 「자연의 체계는 단순히 체계화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된 세계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순히 우리가아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 것이라고 느끼는 세계였다. 우리는 그 세계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 세계를 소유하고 있다. 린나이우스가 기록한 것은 바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이 비전이었다. 그의 천재성은 디테일에서 드러났지만(우리 중에 그 수수께끼 같은 월계수속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의 인간다움은나머지 모든 것에서, 그러니까 우리 모두 쉽게 볼 수 있는 물고기, 소나무, 호랑이에서 드러났다. 그 모든 개인적 결함과 끝없이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린나이우스가 여전히 그렇게 존경받고 스웨덴의 국민 영웅으로 사랑받으며, 수많은 전기의 주인공이 되고, 수많은 교과서에서 그토록 열정적인 칭송을 받는 것은 바로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리의 세계를 포착하고 그 타당성을 확인해주었다. - P85

위대한 진실은 모두 처음에는 신성모독으로 등장한다.
ㅡ조지 버나드 쇼

따개비는 도무지 동물 같지 않은 이상한 동물이다. 무엇보다 따개비는 돌덩이처럼 보인다. 선체나 새의 발, 고래 옆구리, 거북이 등딱지등 여기저기 불편하게 들러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돌덩이. 따개비는 타고난 비밀스러움으로(따개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것은 꽉 닫힌 껍데기 안의 정교한 조직들 속에 숨어 있다) 체계화와 분류를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난관을 안겨왔다.
일찍이 1597년에 존 제라드John Gerard라는 식물학자는 「초본식물 또는 식물의 일반사Herball, or Generall Historie of Plants』라는 책에서이 수수께끼 같은 혹덩이를 ‘따개비나무Barnakle Tree‘라는 식물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도로는 충분히 괴상하지 않았던것인지, 이 식물에서 만들어지는 따개비는 완전한 형태를 갖춘 이른바 따개비거위라는 작은 거위들을 몸 안에 품고 있다고 여겼다(물론따개비거위는 제대로 된 다른 모든 거위처럼 알에서 부화한다). - P88

물론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장대한 이론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이론이 심오하고도 강력하게 모든 것을 밝혀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동시에 그 이론을 몸서리치게 두려워했다. 그이론이 품고 있는 의미는 장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혁명적이었고, 가장 온건하게 말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닐지언정 (자기 아내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무시무시한 충격을 가할 터였다. 자연에 대한 그의 진화적 비전은 자비로운 신의 존재를 인정사정없이 의심하게 만들 것이고, 인류는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존재에서 그와는 뭔가 다른 존재로 격하되어 따귀를 맞은 것처럼 모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윈은 유명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 경Sir Charles Lyell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의 조상은 물속에서 숨을 쉬고, 부레가 있으며, 거대한 꼬리지느러미와 불완전한 두개골을 지녔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암수한몸인 동물이었습니다! 여기 인류가 참으로 기뻐할 계보가 있군요." - P97

그는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한 일은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뒤로 미투기로 했다. 웃음거리가 되는 대신 수년 전에 발견한 이 따개비에 집중하는 거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두어 달, 아무리 길게 잡아도 1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저 한 종류의 작은 생물, 한 가지 따개비일 뿐이었다. 어려워 봐야 얼마나 어렵겠는가? 하지만 유리병 속 따개비들을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다윈은 자기가 어떤 상황 속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는지 아마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작은 바다생물이 그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바람에, 진화에 관한 이론(이미 10년 전에 처음으로 떠올렸던)은 그때부터 13년이나 더 출판되지 못하다가 1859년이 되어서야 「종의 기원으로 출판됐다. 지금 다윈이 막 시작하려는 곁다리 프로젝트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참이었고, 그는 앞으로 8년을 오직 이 따개비에게만 쏟아부으며 자신을 갈아 넣게 될 참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생과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적 동요에 시달리는 한편, 보상도 따를터였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피하려 애썼던 진화론에 대한 핵심적증거가 될, 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도 그 보상 중 하나였다. - P101

생명에 대한 과학적 시각과 나머지 우리 모두의 시각이 일치했민 순간(린나이우스가 축하하고 기록했던 그 순간)은 이제 공식적으로막을 내렸다. 그 많은 조개껍질 수집가와 딱정벌레 사냥꾼, 그 많은올빼미 관찰자와 식물 덕후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었던 생명의시각, 움벨트의 시각, 인간과 생명 세계 사이의 가장 깊고 심오한 연결이 이제 나가는 문 쪽을 향해 떠밀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과학이 칼자루를 넘겨받았고, 과학은 완전히 새로운 어딘가로, 어떤 새로운 비전으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을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철저하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방식을 향해 가는 자기만의 여정에 올랐다. - P120

정에 올랐다.
그러나 분기학자들의 탄생과 물고기의 죽음은 아직 한참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에 분류학의 다른 세 학파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진화분류학, 다음에는 수리분류학, 마지막으로 분자분류학이 등장했는데, 세 학파 모두 과학적 생명 분류가 부상하고 최종적으로 움벨트를 버리게 되는 과정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런 다음에야 마침내 물고기를 죽일 분기학자들이 등장할 터였다. 그것은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윈의 마차 에피파니에 힘입어이루어진 진화에 대한 깨달음은 과학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에세웠고, 그 길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오래 공유했던 자연의 질서로부터 과학을 점점 더 멀리 이끌어갈 터였다. - P120

마차 에피파니가 마무리되면서 다윈의 따개비 시절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8년을 쏟아붓고 1854년 가을이 되자 다윈은 그 일을마무리할 준비가 되고도 남은 상태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전의 그 어떤 사람도 이토록 미워해본 적 없을 만큼 따개비가 밉다.
느릿느릿 바다를 지나는 선박의 선원조차도 이 정도로 따개비를 미워하지는 않았으리라."
다윈은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변이를 발견했고, 종의 기만성을깨달았으며, 오랫동안 사람들이 자연의 질서라고 이해해왔던 것에막강한 개념적 폭력을 가했다. 게다가 따개비 문제도 해결하며 어마어마한 분량의 분류학 연구 성과를 쌓았고 그걸로 현존하는 따개비와 따개비 화석을 통틀어 모든 따개비에 관한 연구서 4권을 내면서, 그가 그토록 원했던 과학자로서의 존경도 얻어냈다. 따개비 연구로그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들의 협회인 왕립학회에서왕실 자연과학 훈장을 받았다. - P121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에서는 그보다 더 단도직입적으로, 진화는 일단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분류학의 "막대한 헛소리들을 깨끗이 제거할 것"이라고 썼다.
정말 많은 것에 관해 옳은 말을 한 걸로 유명한 다윈이지만, 이말보다 더 틀린 말은 없을 것이다. 분류학의 입장에서 진화에 대한 깨달음은 상황을 명료하게 만들어주는 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화는 분류학에 투척된 폭탄 같았다. 다윈이 분류학자들에게 구체적인 목표 하나를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생명의 계보를 찾아내고 그것을 활용해 생명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해야 그럴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감각을 통해파악되는 유사성과, 모호하게 정의되었으나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자연의 질서를 찾는 일은 가능했다. 그것은 분류학이 줄곧 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아주 오래전 과거를 밝혀내고 모든 생명의 계보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라도 품어볼 수 있는 걸까?
따개비 연구가 끝나고 5년 후, 그 진실이 세상에 나왔다. 다윈은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그 진실, 생명은 불변하는 존재들의 고정적 배열이 아니라 성장하고 변화하며 가지를 떨구고 왕성하게 싹을 틔우며 항상 변화하는 나무라는 진실을 알게 된 후 다윈이개인적으로 짊어지고 있던 짐은 이제 더 이상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 P122

온 세상에서 뒤죽박죽된 혼란보다 더 나쁜 건 없어요.
무시무시하게 들려도 죽음과 운명을 직면하는 게 오히려 쉽죠.
내가 돌이켜보며 경악하게 되는 건 나의 혼란들이에요....
혼란을 조심해요.
E. M. 포스터, 『전망 좋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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