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우리는 어린아이든 다른 누구든, 백색증에 걸린 낯선 흰색 호랑이든, 심지어 돌연변이로 머리가 둘이거나, 다리 하나를 절단해 다리가 세 개뿐인 호랑이도 호랑이로 알아본다는 사실에도 놀라지 않는다. 이런 건 우리가 전혀 신기해하지 않는 신기한 일, 바로 ‘플라톤의 딜레마‘다.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적은 것을 바탕으로그렇게 많이 아는 걸까? 별 노력이나 생각 없이도 우리는 생명의 세계에 관해 놀랍도록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한 생물이 무엇인지(특히 그것이 거대한 자연의 질서에서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아는 일은 우리모두에게 정말 놀랍도록 수월하다. 너무 쉬워서 우리의 무의식에도깔끔하게 맞아들어갈 정도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이 일에 매우 능숙해 보일 뿐 아니라, 생명의 질서, 생물의 이름과 분류와 조직에 관해 배우는 일에 일찌감치 그리고 아주 깊이 끌리는 것으로 보인다. - P34

그러자 대학 시절에 벌들에 빠져 있던 어느 교수님의 동물행동학 수업에서 배웠던 뭔가가 기억났다. 교수님은 생물학자들이 ‘움벨트Umwel‘라 부르는 것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움벨트는 글자 그대로 ‘환경‘ 또는 ‘주변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지만,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단어로 더 구체적인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생물학자들에게 움벨트란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이 용어는 익숙하지 않지 - P35

만, 그 개념은 아주 익숙하다. 우리는 개들이 색깔을 볼 수 없어서 색채가 아니라 냄새로 그려진 우주에서 산다는 걸 안다. 멍멍이가 자기눈에 보이는 모든 기둥과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 킁킁대며냄새를 맡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 교수님이 애지중지하던 벌들은 다면적인 구조의 눈으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벌들은 꽃에서 꿀이 있는 위치로 정확히 날아갈 수 있다. 꽃에 자외선으로 그려진 띠와 줄 패턴이 벌들을 그 자리로 안내한다. 하지만 움벨트는 개와 벌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심지어 인간에게도 있다. 우리는 그걸 ‘실제‘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우리를 둘러싼 생명의 세계에 대해 우리 특유의 감각이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 게 바로 움벨트다. 그리고 거기에 답이 있었다. - P36

인간의 움벨트에는 내내 드러나지 않고 있던 중요한 의미 하나가 들어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생물의 체계적 질서를 감지하는 방식, 처음부터 내장돼 있으며 판에 박힌 그 방식을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이 바로 움벨트(우리가 공통적으로 지각하는 세계)라는 깨달음이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이 제안한 바이오필리아(생명이 있는 세계에 대한 인류의 사랑)가 사람이 생물들에게 그토록 자주 매료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면(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생명의 세계와 그 속 자연의 질서를 우리가 늘 바라봐왔던 그 방식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움벨트(그 별스러운 특징들과 강점 및 약점, 그리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점 자체를 포함하여그에 관한 다른 모든 것까지)일 것이다. - P36

움벨트는 또한 심리학자들이 뇌 손상 환자들을 연구하는 동안 줄곧 추적하던 것이기도 했다. 생물을 구별하는 능력을 잃은 그 가련한 영혼들의 뇌에서 사라졌거나 고장 난 것이 바로 움벨트였다. 아직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작고 앙증맞은 아기들에게 생명의 세계란 과연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 역시 움벨트였다.
내가 전에는 분류학과 관련지어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아주 많은 것의 원인이 움벨트임이 분명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서나움벨트가 우리에게 질서를 보게 하고, 또한 그 질서에 근거해 행동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인간을 포함해) 한종 안에서도 또 질서를 매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분류하고, 그들이 우리의 자연 질서 안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그러니까 흑인인지 백인인지 아시아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등을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의료를 처방하고, 적합한 화장실을 고르며, 장학금과 기회를, 심지어 사랑을 나눠주는 데까지 그 분류법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우리의 움벨트라는 렌즈를 통해 행한다. - P37

과학을 태동시키기 훨씬 전부터 움벨트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세월 동안 과학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인류가살아 있는 모든 것과 나누는 가장 좋은 연결이자 가장 내밀한 연결이었다. 움벨트는 단순히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우리 자신이누구인지 이해할 맥락이며, 이는 언제나 그래왔다. 움벨트는 우리에게 자연의 한 질서를 보여줌으로써 사실상 뭐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선포한다. 또한 현실 자체의 경계선을 정하며, 그 세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포함해 생명의 세계 안 존재들의 위치를결정한다. 움벨트를 잃어버린 사람들, 뇌 손상으로 생물의 자연적 질서를 인지할 수 없게 된 환자들이 바로 그 살아 있는 증거다. - P40

우리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맡겨두는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의 생명에게 눈길도 주지 않게 됐다. 수많은 야생의 생물들이 자기 좀 보라는 듯 눈에 띄는 모습으로 끈덕지게 우리 앞에 나타날 때도(예컨대 매들이 주차장 상공을 날아 이동하거나, 한밤에 다채로운 색깔의 나방들이 유리창에와서 몸을 부딪치거나…. 이런 일은 항상 있다) 우리는 그 존재들을 거의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모두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일 가운데 우리가 생명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하는 일,
바로 ‘먹기‘를 할 때조차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 사실은 생명의 세계임을 점점 더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고기가 콧김을 뿜어대는 덩치 큰 포유동물에서 잘라낸 살덩어리가 아니라 스티로폼접시에 놓인 새빨간 타원형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세계는 항상 바로 우리 눈앞에 있지만 우리는 그걸 모두 놓치고 있다.
우리가 치를 대가는 그보다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것 중 가장 큰 것을, 바로 야생의 자연 자체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는데, 우리는 생명과 너무 심하게 단절된 탓에그에 대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심지어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도 없다.  - P44

매년 플로리다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아하함, 하품이 나네. 종들이 멸종하는 속도가 인류가 끼어들기 전에 비해 100배 내지 1000배나 빨라졌다고? 하암, 하아암. 우리는 도무지그런 일에 신경을 쓸 정도로 각성하지 못하며, 생명의 세계는 우리와너무 멀어졌고 너무나 무관해 보인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그리고 이 지경에 와 있음을 깨달은 지금, 어떻게 여기서 탈출해야 할까? 이 책은 이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나의 시도다. 이 책에는 우리가(과학자들과 나머지사람들 모두) 이 낯선 장소에 도달한 여정의 이야기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지도가 담겨 있다. - P45

우선 나는 내 물고기들을 되찾고 싶다. 알고 보니 나는 뱀들과새들과 물방울을 튕기는 매혹적인 물고기들로 가득한 세계를 내게보여줬던 유년기의 숲에서 마음껏 활개 치는 움벨트와 함께하던 그시절, 처음부터 올바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비록 과학을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이기는 해도 나는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해야겠다. 우리가 과학을 아무리 많이 필요로 하더라도(실제로 우리는 과학을 많이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는 물고기도, 아마 모두가 짐작하는 것보다훨씬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끌미끌하고 반짝거리며 물속을 헤엄치는 그 동물들은(자연탐구가들이 기나긴 세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알아보았던 다른 모든 생물과 함께) 우리와 생명의 세계를 연결하는 중심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제 터무니없게도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 이상한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다놓은 여정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P45

져 있는 냉담한 분리 상태가 생기기 한참 전, 사람들이 생명의 세계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에서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아마 제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있던 인물, 당대 지성계의 가장 거대한 문제인 생명의 세계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이야기에 시동을 건 인물에서 시작한다. 바로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가 된 카롤루스 린나이우스다. 그는 물고기와 얼룩말, 나방, 그리고 수정처럼 맑고 파란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우리가 오랫동안 알아보았던 다른 모든 것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었다. - P46

우리가 와 있는 이곳은 정말 이 세상 같지 않게 너무나도 풍성해....
저 엄청난 나무들이라니! ・・・ 새들과 물고기,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된)가재까지 색깔도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 지금까지 우린 내내 얼간이들처럼이리저리 뛰어 돌아다녔어. 첫 사흘은 뭐가 뭔지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지.
계속 먼저 잡았던 걸 던져버리고 바로 다음 걸 붙잡아야 했으니까.
봉플랑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 경이로움이 어서 바닥나지 않는다면자기는 분명 정신이 나가버릴 거래‘

ㅡ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프로이센의 유명한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1799년 형에게 쓴 편지 중에서 - P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