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을이다 -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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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을 시간이

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이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시간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근육과 감각을 움직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구상하고

기획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에 인용되어 있는 폴 라파르그의 말이다.

이십대 후반에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당시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와, 노동에 찌들린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연민 따위 치기어린 감상들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이 말은 그저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당위로만 다가왔다.

그러나 책을 읽어내려 가다가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이 말은 바로 내 삶을 위한 말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마을이다'는 제목 아래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란 부제가 딸려있다. 그러나 이 책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위험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남기'이다. '주류사회에 미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어서, 어떻게라도 살아남아야 하기에'가 아니다. 지금 그대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기 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한 '용감한 떠남'이다.

대선 기간이다.

어떤 후보가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제안하는가 꼼꼼히 들여다보고 투표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후보들이 자기가 말한 내용이 무언지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 내용을 뒷받침할 철학과 조직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마당에 그 제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오늘 이 글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

우리는, 혹은 나는 누군가의 그 제안이 온전히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걸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까?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세상인지 알고는 있을까?

내 삶이 의심스럽다.

한번이라도 내 머리로, 내 손으로, 내 이웃들과 함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구상하고 기획해 본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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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1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는 것이 겁나 중요합니다. 산딸나무님.


산딸나무 2007-12-1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겁나?
하하하
한사님이 이런 표현을 쓰시니 되게 재미있어요^^

진진 2008-10-2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인데...
내가 살고 싶은 세상...언니가 던진 질문이 가슴을 울립니다.
구체적으로 구상할 수 있을 때 내 의지가 행동으로 옮겨지겠지요.

산딸나무 2008-10-2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늦은 밤, 서재를 방문해 주시다니, 감사해요.^^
우리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구상해봐요.
함께 고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겨 나도 기뻐요.
 
아버지가 없는 나라
양 얼처 나무.크리스틴 매튜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스러운 책이다.

모쒀족의 이야기는 이런 저런 책들을 통해서 들어왔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의 눈으로 들여다본 그 세계는 더없이 매력적이다. 

그곳에도 사람살이의 고단함이 있고, 일상의 지겨움이 있고,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 땅이 이토록 매혹적일 수 있는 까닭은 여성들의 성과 사랑이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존중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누가 내게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결혼이란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제도가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이란 엄연한 현실에서 결혼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은 너무도 많은 부연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가끔은 시집과의 갈등과 육아와 직장생활이란 이중의 노동과 가부장제의 부당함을 애기하면서 쉽게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래도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잘 극복할 수도 있다고 충고를 한다.

그러나 그 충고가 전혀 와 닿지 않는 것은 내가 결혼이 싫은 진짜 까닭이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일부일처제가 싫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강제하는 사랑의 의무가 싫고, '당신만을 사랑해'라는 거짓 맹세가 싫고, 나의 인격인 성과 사랑의 자유를 관계의 안전망과 교환하는 게 싫다.

물론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엄연히 '아버지만 있는 나라'임을-호주제가 폐지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의식은 부계 중심이니까-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땅에 살면서 사랑의 자유를 운운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사고인지도 안다. 심리적으로 외롭고, 경제적으로 불안할 각오없이는 어려운 선택이란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길이란 것도 안다.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도 행복하게 살아오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그 길을 걷다보니 문득 문득 만나는 사람들이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된다. 새로운 삶을 지향하는 멋진 자매들도 만나고, 연인인지 친구인지 굳이 경계가 필요치 않은 이성친구들도 생기고, 사랑과 감정을 억압하느라 피곤해할 필요가 없으니 삶의 에너지가 늘 건강하게 차오른다.

모쒀족 자매들의 삶은 내 삶에 바치는 축가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이 사랑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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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1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요.. 하하


산딸나무 2007-12-14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지요.
그래서 늘 혼자 있는 시간,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구요.
사랑하는 연인과는 마음이 가는 만큼만 함께 있을 시간을 만드는 게 더 좋던데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게 세상 모두에게 자연스럽지는 않답니다 ^^

 

 책상 위 달력이 달랑 12월 한 장만을 남기기가 무섭게, 초등학교 여자동창들 모임 송년회에 끌려 나갔다. 달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졌는데, 그 핑계들도 열한 가지는 떠오르더니만 열두 번째 핑계는 끝끝내 떠오르지 않아 눈 딱 감고 3시간만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시내 밥집으로 나갔다.

 

 내가 기껏해야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일 뿐인 일에 왜 이리 심각한 표현을 써 대느냐 하면 그 자리가 초등학교 시절의 숙제나 시험보다 백배는 끔찍하기 때문이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과, 71년생 돼지띠란 것, 여자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공통점이 없는 이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세 시간이나 유지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자리를 가도 얘기할 거리가 없어서 입 닫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이 모임에만 가면 정말 입 한 번 달싹거리지 못 하고 돌아온다.

 

 그날도 결혼해서 아이 낳고 고만고만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30대 후반의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까칠하고 잘난 척 하는 독신녀’라는 소리 안 듣고 무사히 이 시간을 마칠 수 있나 싶어 열심히 웃음 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일찍 일어날 궁리를 짜내면서... 나도 웃음연기 말고 대사 있는 연기도 하고 싶은데 아이들 얘기, 남편 얘기, 재테크 얘기, 드라마 얘기... 도대체 하나라도 내가 입을 뗄 수 있는 거리들이 없으니. 게다가 그날은 연말이라고 거하게 대낮부터 고깃집이었다. (육식을 못하는 까닭에, 그렇지만 입맛까지 까칠하단 소리 들을까봐 따로 시키지도 못하고) 세 시간을 상추와 당근만 씹으며, 그저 조신하게 웃고만 있으려니 참 할 짓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내 웃음연기가 완벽해서 마음에 들었는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덕담이랍시고 한 마디씩 던져준다.

 “넌 혼자 살아도 참 행복해 보여.” 
 “넌 남편 없어도 별로 외로워 보이지 않아서 좋다, 얘.” 
 “독신이라도 성격 좋잖아. 애 없어도 생속인 것 별로 표 나지 않고.”

 

 그 애길 들으면서 속없는 년처럼 허허실실 웃었다. 그러나 그 순간 입이 근질근질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억지로 웃느라 뭉친 안면근육을 풀면서 아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서 중얼거렸다.

 “난 혼자 살아서 행복하고, 남편 없어서 외롭지 않고, 아이가 없어서 성격이 좋다. 이것들아, 도대체 뭘 알고 지껄이는 건지...”

 하루 종일 투덜투덜 대봐도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는다. 대놓고 얘기하지, 왜 뒤늦게 이 짓이람. 그렇지만 낼모레면 마흔인 이 나이에 이십 대처럼 굴 순 없지 않나. 20대 후반에 ‘니는 아직도 결혼 안했나? 그 나이까지 뭐했노? 연애 안 하고.’ 하는 선배에게 ‘어, 아직도 이혼 안 하고 살고 있어요? 뭐했어요? 그 나이까지 바람도 안 피고?’ 했다가 성격 더럽다고 십 년 지난 지금까지도 욕먹는다. 나의 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농담을 이해 못하는 인간들에게는 정말 더 이상 대꾸할 기력이 없다.

 

 사람들이 ‘저 사람은 장애인인데도 참 즐거워 보여.’, ‘애가 아빠 없이 자랐어도 얼마나 반듯한지 몰라.’, ‘저 집은 가난해도 참 행복해 보여.’, ‘저 친구는 대학을 안 나왔어도 참 똑똑해.’ 따위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경악스럽다.

 

 어느 누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순 없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겠나? 결혼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혼자서 행복할 수 있겠나? 사지육신 멀쩡한 게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장애를 가져도 행복할 수 있겠나? 두 부모가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 부모로도 행복할 수 있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렇기에’ 행복하다. 행복한 독신녀는 남편 따위 없기에 행복한 것이고, 행복한 가난뱅이들은 바로 돈 따위 없기에 행복한 것이다. 행복한 장애인은 바로 그 장애가 있기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이고, 행복한 한부모가정은 아빠, 혹은 엄마 따위 없어서 행복할 수 있다.

 

 자기의 잣대로 남의 인생을 재단하지 말자. 제발 자기의 잣대는 자기 인생에만 써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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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06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의 잣대는 자기 인생에만 써 먹자.
자기의 잣대는 자기 인생에만 써 먹자.
자기의 잣대는 자기 인생에만 써 먹자.
한 세번 암송했습니다. 산딸나무님.

조금씩 나이 들어가며 내 아이들에게 또는 주위사람들에게
은연중 내 가치관을 들이대는 것 같습니다.
반성합니다. 하하
각인될 때까지 당분간 좌우명으로 삼아야겠어요.

"자기의 잣대는 자기 인생에만 써 먹자."
산딸나무님 고마워요.


산딸나무 2007-12-0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십대 후반의 후배가 자기 인생의 좌우명이
'늙더라도 꼰대가 되지는 말자!'래요.
저도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어찌나 뜨끔했는지...
 
환수의 성좌 14 - 완결
아키노 마츠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오잉? 이게 끝?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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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05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산딸나무님.
산딸나무님 짧은 책 소개 없으니, 심심해요. 하하


산딸나무 2007-12-05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그간 좀 바빴어요.
 
개를 기르다 청년사 작가주의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숙경 옮김 / 청년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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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만화계에서 작가주의의 거장으로 이름 높은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다. ‘개를 기르다’. 이 제목만으로 연상되는 내용은 어떤 것일까? 귀여운 강아지의 재롱, 충직한 개와 주인 간의 끈끈한 우정, 개와 아이들의 다정한 한 때...

 드물게도 이 작품의 소재는 ‘개의 죽음’이다. 작가가 15년을 함께한 개와 이별하는 1년여의 시간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탐’이란 개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끼는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가 칸칸이 채워져 있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자기가 맺어왔던 다양한 관계들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 아픔이 가슴 속에 오롯이 기억되는 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일은 늘 한없이 두렵고 겁이 나는 일이다.

  특히 다수의 반려동물들이 대개 인간보다 짧은 생의 주기를 갖기에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잃는 아픔을 한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행복했으므로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아픔과 상처가 없는 관계는 거짓이다. 사랑해서 아프고, 아파서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기억. 그것이 진정한 관계 맺기이리라.

 특히나 동물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를 먼저 떠나보낼 각오를 하는 것이다. 이별의 상처를 예견하고 시작하는 관계란 얼마나 성숙한 마음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런데 요즘 우리는 어떤가. 그만한 각오로 관계 맺기를 시작하고 있을까?

 얼마 전, 조카 녀석들이 키우던 강아지를 아파트에서 더 이상 못 키우겠다며 내 어머니께 맡기는 걸 보면서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돈을 주고 사오면서 시작된 관계일진 모르지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인데. 반려동물들을 애완용으로 착각하는 아이들의 문화와 거기에 대해 진지한 성찰 없이 ‘시험 몇 점 맞으면 사 줄게.’라고 아이들을 부추기는 어른들의 천박함이 두려울 따름이다.

 관계는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리고 반려동물들은 애완용이 아니다. 우리는 존재 대 존재로서 만난다. 그리고 사랑하고 이별한다.

 그들과 관계 맺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사랑하였으므로 상처받고, 눈물 흘리고, 아파할 각오를 하라고. 그리고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이 순간, 더 많이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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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2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키우며 역시, 제일 괴로운 일이 이놈들이 고만 죽는 것이었지요.
개는 오래살면 15년 정도 삽니다. 키우던 개가 세상을 떠나면 진정 슬프지요..
키우던 개는 팔 수 없습니다. 남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가족을 팔거나 남에게 줄 수 없지요(..입양은 가능할까요?).
죽을 때까지 키울 수 없다면 개를 키우면 안됩니다.
개와 주인의 관계는 그렇습니다. 산딸나무님.


산딸나무 2007-11-21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깊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