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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눈물 ㅣ 산하어린이 9
권정생 / 산하 / 199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친구가 물었다. '도대체 이 세상이 진보하긴 하는 걸까? 더 편하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빠르게 살 수 있는 것? 그게 진본가? 진보한다는 게 뭐지?' 나는 진보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 더 이상 타인을 억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원시공산제 사회부터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그 발전은 인간이 더 이상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하지 않아도 되는 생산력을 가져왔다. 그러나, 과연 지금 세상이 그러한가? 그 발전된 생산력이 진정으로 인간의 삶에 진보를 가져왔는가?
권정생 선생님이 글을 읽으면 늘 이 고민을 다시금 맞닥뜨린다. '강아지 똥', '무명저고리와 엄마', '하나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몽실 언니',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등을 통해서 보여준 권정생 선생님의 삶의 철학은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열통의 물이 있는 세상에 열사람이 산다. 그러나 한 사람이 여덟통을 차지해 버리면 나머지는 살기 위해 서로를 죽이고 싸울 수 밖에 없다.' 많이 가지는 것이 죄악인 삶. 그 선명한 철학은 선생님의 삶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나는 권정생 선생님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동화를 들라면 꼭 이 '하느님의 눈물'을 권한다. 이 동화를 처음 읽었을 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남 우세스러운 것도 잊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산토끼 돌이는 하루 종일 굶었다. 댕댕이 풀이랑 민들레 꽃이랑 먹으면 죽어버리니, 차마 먹을 수가 없다. '정말 넌 착한 아이로구나. 하지만 먹지 않으면 죽을 텐데 어쩌지.'하는 햇님의 말에 돌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어요. 괴롭지만 않다면 죽어도 좋아요.' 그 착하디 착한 산토끼 돌이는 어찌해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도 나와 같이 탐욕과 오만으로 가득한 인간들이 산토끼 돌이를 굶겨 죽이고 있겠지. 산토끼 돌이의 그 절박한 흐느낌은 서른해를 앞만 보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내 삶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 괴로움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게 해를 끼쳐야만 하는 괴로움이었다. 그 괴로움은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은 고통이었다. 현실 자본주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을 '선'이고 '합리'라고 가르친다.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괜한 연민을 가지는 아이들을 오히려 사회 부적응자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인류가 피땀 흘려 이룬 진보의 결과가 고작 이런 세상이라면, 정말 이 세상엔 희망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내게 주어진 삶을 살면서 나는 무수한 희망들을 만나고 보았다. 산토끼 돌이의 삶을 지켜주기 위한 노력들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만났다. 아마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들이 한없이 밑바닥을 훑고 있지만 절대로 절망스럽지 않은 것이 바로 이런 현실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그 작은 힘에 내 삶을 얹어보면서 오늘도 기도한다. '하느님, 저도 하느님처럼 보리수 나무 이슬이랑,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을 먹고 살아가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