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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란돌린 ㅣ 어린이 성교육 시리즈 3
아네트 블라이 그림, 카트린 마이어 글, 허수경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슬픈 란돌린은 읽어내기가 참 힘든 책입니다. 몇 페이지 안 되는 그림책임에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서 큰 숨을 몇번이나 다시 고르고 끝까지 읽어내었습니다.
인간의 성이 더 이상 인격이 아닌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수도 없이 많이 던져지지만, 이 책만큼 내게 충격과 감동을 준 책은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성교육 강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성교육 책자가 늘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책이 나온다 할지라도 우리 아이들이 발 딛고 살아가야 하는 이 현실이 너무도 암담해서 어디서 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늘 막막하고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게 그래도 살아야 하고, 또 우리는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어린이 성폭력피해자들이 성장한 후에 그들의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겪은 심리적 치료과정을 소개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들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존자... 정말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어린 시절의 성폭력, 더군다가 가까운 사람에게서 당하는 성폭력은 그 피해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피해자에게 양가감정을 가지게 해서 자신을 탓하게 만들고,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삶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든다는 면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아근친성폭력 피해 사실은 꼭꼭 닫혀진 문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걸고 증언하고 싸워온 우리의 용기있는 자매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힘을 주기 위해서라도 제대로된 성 지식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훌륭한 성교육 지침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은 어린 시절, 어떤 형태로든 성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왔던 우리시대 성인여성들을 위한 치료서입니다. 란돌린과 브리트가 울음과 고통으로 고민했던 날을 보내며 친구인 이웃의 아줌마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삶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하나 더 꼽고 싶습니다. 바로 어린이 성폭력의 실체를 정확하게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저씨가 성기를 꺼내고 있는 장면이라든가, 브리트의 옷을 벗기고 성기를 만지는 장면 따위, 정확하게 성폭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존에 추상적인 묘사에 그쳤던 그림책에 비하면 아주 진일보한 책입니다. 그 그림들을 통해서 작가의 사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내게 물으면, 나는 늘 '책은 즐거운 놀이이고, 책은 여유로운 산책이고, 사상적 동지이자,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고 얘기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덧붙이고 싶습니다. 책은 아픔의 공감이고, 희망의 지랫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