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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어떤 분야의 전문가는 그 분야에 대해 박식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분야를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전해서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휘자 금난새는 적어도 클래식 음악의 전문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얼마나 클래식을 사랑하는지, 글 사이사이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다. 청소년기란 만물에 대해 열려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설사 사물에 대해 편견과 오해가 있다 하더라도 쉽게 고쳐질 수 있는 시기이다. 그래서 작가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이러한 독자 선택은 곧바로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이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에 휘둘리고 있는 지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오해와 편견을 그대로 안고 있는 내게 금난새는 친절하게, 솔직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이야기를 건네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머리에서 클래식에 대한 몇가지 오해를 풀어주는 그 말 솜씨에 매료되었다. 뛰어난 화술로 포장되는 이야기가 아닌, 투박할 지라도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 그 덕에 나도 집에 쌓아둔 먼지묻은 클래식 음반을 다시 걸게 되었다.

당신은 클래식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그는 야구와 공놀이의 예를 든다. 그냥 공을 던지고 놀아도 즐겁겠지만, 약간의 룰만 알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야구같은 음악이 클래식이라고. 혹 당신이 클래식은 고급스런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음악 역시도 그 시대의 대중문화였을 뿐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양의 몇몇 귀족들이 즐기던 음악을 굳이 다시 들을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있다면, 스핑크스나 만리장성을 찾아 보고 감동하는 자세로 인류의 문화유산에 좀더 겸손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조언를 들어봐야 한다.

이야기를 푸는 방식도 바흐와 헨델, 모짜르트와 하이든 등으로 두 음악가를 나란히 이야기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얘기해 놓아서 읽기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음악을 좀 더 사랑하게 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고 나니 클래식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되고, 알고 들은 클래식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클래식으로 삶을 조금 더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한번 읽고 넘어가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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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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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런 우스개가 있다. 부부 사이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 나 사랑해?'라고.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지금 이 평화가 거짓을 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으므로 던져서는 안 되는 질문이란 건가. 그렇다면 아마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 '나는 지금 행복한가?'가 아닐까? '부자 되세요!'라는 주술에 걸려있는 인간들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게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너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읽으면 이 책은 끝도 없이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은 지금 행복해?' 당신은 당신의 이웃보다 더 많이 가져서 행복한가? 당신은 미래를 위해 돈을 모아두었기에 지금 행복한가? 당신은 지적으로 우뤌하다고 느낄만큼 책을 읽고 또 읽었으므로 행복한가? 책의 물음은 끝이 없다. 그리고 책은 인디언의 말을 통해서 답을 하고 있다. '베푸는 삶은 아름답다. 그러나 문명인이 된 당신은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고.

우리가 잃어버린 게 어디 그 뿐일까? 우리는 더 이상 바람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땅의 충고를 들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동물 형제들을 만날 수도 없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도 만날 수 없다. 그러고도 우리는 행복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돈이 있으면 행복 할 수 있다고. 땅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하나로도 족하지만 두개, 세개가 있으면 행복하다고. 열심히 적고 읽어서 외워두면 행복하다고.

이 책은 그래서 무겁다. 종이의 무게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진실의 무게때문에 읽기가 버겁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니 두려워진다. 내게 행복하냐고 묻기가 두렵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떨치고 진실을 똑바로 쳐다본다면 참된 행복이 그리 멀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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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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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질문에 더불어 떠오르는 책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 책으로 지은 '모모'라는 노래 가사이다.

'인간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단 것을 ...'

인간들은 그 둘도 없는 진리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 기억하지 못한다.삶을 걱정하고 염려해서 적금을 들고, 보험을 들고, 집을 사고, 돈을 벌고... 그렇게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인간을 살아가게끔 만드는 것은 인간들의 사랑, 그것 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이 진리를 실천하며 살기엔 이 세상이 너무도 부조리하게 느껴져 헤매고 있음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톨스토이가 지은 다른 여러 작품들에서 나는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를 배웠다. 글이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빨아당기는지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러나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작가가 인생 말년에, 살아오면서 깨달은 철학적 질문을 답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성경을 읽는 것처럼, 때론 교훈적 동화를 읽는 것처럼 빤한 이야기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이 주는 감동은 독특하다. 동화라곤 하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너무도 난해한 삶의 진리, 그리고 줄거리의 작위적 구성 따위들을 먼저 인식하면 같은 사람이 쓴 글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만치 엉성하다고 느껴지는 글일수 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런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다) 다닐 적에, 그리고 중학교 독서토론시간에,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 다시 이 책을 접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토록 심오한 것이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내일 일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내 삶에 어린 시절 성경학교에서 배운 얘기를 떠올리게 했다.

'너희는 내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 하늘을 나는 새와, 들의 꽃들도 다 살아가게 하시는 하느님이 설마 사랑하는 너희의 삶을 예비하지 않으셨겠느냐.'

그때는 그 말이 하느님만 믿으면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의 답을 톨스토이는 이렇게 멋진 비유로 풀어놓았다니. 인간은 자신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살아가지 못한다.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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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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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선옥'이라는 이름이 먼저 내 눈을 잡아 끌었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피어라 수선화',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멋진 한세상', '붉은 포대기'... 어느 것 하나 제쳐 둘 것없는 작품들이다. 가난과 여성이라는 뻔한 주제를 뻔하지 않게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이 작가에게 나는 이미 충분히 매료당해 있었다. 그런데, 그네가 마흔에 길을 나서다니...

마흔에 떠나는 길은 이십대나 삼십대에 떠나는 길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마흔의 인간은 절대로 삶을 불확실한 공간으로 내몰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마흔의 실직이 두렵고, 마흔의 셋방살이가 두렵고, 마흔의 불륜이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직장과 내 집과 가정은 '안정'을 뜻하는 것들니까. '길' 역시 불안한 공간이다. 그 공간으로 마흔의 삶이, 더구나 공선옥이 떠났다니, 이 책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했다.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은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내내 부풀려져서 결국은 나를 통곡하게 만들었다. 그냥 흐르는 눈물도 아니고, 꺼이꺼이 소리내며 내 온 가슴을 휘저어 놓는 감동이었다.

처음 강원도산골 길에서 만난 지복덕 할머니의 삶에서부터 눈물이 치솟아 오르더니, 노동자 배달호씨의 죽음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목이 다 쉬어 올랐다. 작가가 이런 글을 쓰고 나면 한바탕 앓고 말듯이, 읽는 나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리고 눈이 부어올라 참 힘들게 힘들게 읽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형제 자매들의 삶이 그 곳에 오롯이 피어나는데,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가 없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있는 품위를 말하고 싶다고 했던가? 가난한 이들의 '존심'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던가? 그네의 목적이 그러하다면 그네는 정말 제대로 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의 토대는 늘 사람살이가 아닌가. 안동하회마을을 찾았을때, 그곳에는 상술은 없고 사람살이만이 있다는 그네의 말을 읽고 '아하' 싶었다. 우리들의 삶은 박제화된 아름다움이 아니다. 조잡한 관광지 기념품을 놓고 파는 아주머니의 삶도, 민박집을 하는둥 마는둥 하는 아저씨의 삶도 모두 오늘, 안동 하회마을을 이루고 있는 삶이다. 사람들 찾아오는 거 번잡스럽지 않냐는 작가의 말에 '고맙지 뭐, 그덕에 이렇게 사는데.' 라고 하는 주민의 말에서 작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품위를 읽어낸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가난하기에 서로 부대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귀찮은 것도 번잡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부대낄 필요없이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나 누리는 감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이제 박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밀랍인형처럼 여유있는 사람들의 눈요기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가난을 구경하기 위해 동정이라는 관람료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팍팍하고 구질구질 해 보여도 살아있는 가난, 그 속에 인간의 길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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