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공선옥'이라는 이름이 먼저 내 눈을 잡아 끌었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피어라 수선화',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멋진 한세상', '붉은 포대기'... 어느 것 하나 제쳐 둘 것없는 작품들이다. 가난과 여성이라는 뻔한 주제를 뻔하지 않게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이 작가에게 나는 이미 충분히 매료당해 있었다. 그런데, 그네가 마흔에 길을 나서다니...

마흔에 떠나는 길은 이십대나 삼십대에 떠나는 길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마흔의 인간은 절대로 삶을 불확실한 공간으로 내몰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마흔의 실직이 두렵고, 마흔의 셋방살이가 두렵고, 마흔의 불륜이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직장과 내 집과 가정은 '안정'을 뜻하는 것들니까. '길' 역시 불안한 공간이다. 그 공간으로 마흔의 삶이, 더구나 공선옥이 떠났다니, 이 책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했다.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은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내내 부풀려져서 결국은 나를 통곡하게 만들었다. 그냥 흐르는 눈물도 아니고, 꺼이꺼이 소리내며 내 온 가슴을 휘저어 놓는 감동이었다.

처음 강원도산골 길에서 만난 지복덕 할머니의 삶에서부터 눈물이 치솟아 오르더니, 노동자 배달호씨의 죽음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목이 다 쉬어 올랐다. 작가가 이런 글을 쓰고 나면 한바탕 앓고 말듯이, 읽는 나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리고 눈이 부어올라 참 힘들게 힘들게 읽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형제 자매들의 삶이 그 곳에 오롯이 피어나는데,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가 없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있는 품위를 말하고 싶다고 했던가? 가난한 이들의 '존심'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던가? 그네의 목적이 그러하다면 그네는 정말 제대로 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의 토대는 늘 사람살이가 아닌가. 안동하회마을을 찾았을때, 그곳에는 상술은 없고 사람살이만이 있다는 그네의 말을 읽고 '아하' 싶었다. 우리들의 삶은 박제화된 아름다움이 아니다. 조잡한 관광지 기념품을 놓고 파는 아주머니의 삶도, 민박집을 하는둥 마는둥 하는 아저씨의 삶도 모두 오늘, 안동 하회마을을 이루고 있는 삶이다. 사람들 찾아오는 거 번잡스럽지 않냐는 작가의 말에 '고맙지 뭐, 그덕에 이렇게 사는데.' 라고 하는 주민의 말에서 작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품위를 읽어낸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가난하기에 서로 부대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귀찮은 것도 번잡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부대낄 필요없이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나 누리는 감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이제 박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밀랍인형처럼 여유있는 사람들의 눈요기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가난을 구경하기 위해 동정이라는 관람료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팍팍하고 구질구질 해 보여도 살아있는 가난, 그 속에 인간의 길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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