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버블경제의 붕괴가 시작됐다
마쓰후지 타미스케 지음, 이연숙 옮김 / 원앤원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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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가 이 책을 쓴 시점이 언제일까가 일단 궁금했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후 한국에서 출간했다면 2006년말이나 2007년 초쯤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저자의 글은 미국발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것을 꽤 잘 맞춘 셈이 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삐걱 거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초쯤이다. 당시는 이 문제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을만큼 커다란 문제가 되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씨티도 메릴린치도 JP모건도 AIG...거의 모든 미국계 금융기관들은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얼마 전부턴 유럽계도(ubs였던가?) 동참하고 있다.

도대체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뭐길래 이토록 전세계가 벌벌 떨고 있는가?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거의 모든 국가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 수 없다.

 

몇 년째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의 주식시장은 대세상승기였다. 너도 나도 이익을 보던 시장이었다. 그러니 돈은 넘쳐나고, 그 돈으로 소비를 하니 어디든 호황일 수 밖에. 그 돈은  결국 소비로 가게 되어 있다. 명품을 소비하든, 금융시장에서 금융상품을 구입하든, 주택을 구입하든.... 당연히 재화든 금융상품이든 주택이든 이런 것을 공급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도 돈을 쥐게 된다. 당연히 경제는 호황의 확대 재생산이다. 그런데, 경제는 주기가 있기 마련이어서 무한정 호황 사이클이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불황의 사이클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이 대세 상승의 시기가 아니라 정점에서 하강을 하기 시작한 대세 하락기 - 그것도 급격한 하락 혹은 대폭락 - 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버블경제 폭락기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대공황이 올 수 밖에 없는 필연을 저자는 설명한다.  일본은 대체로 주식같은 위험한 자산보다는 안전자산인 현금이나 예금등을 선호하며 실물자산인 부동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덜 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다르다. 미국사람 대부분은 주식 혹은 주식관련 상품에 가처분 소득의 대부분을 투자하고 있다.(이 부분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주식같은 위험한 자산에 그리 많이 투자를 하다니...그러다가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어쩌려구..) 그들은 미국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주식폭락, 불황이 다른 나라에 미칠 영향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사실 미국의 주식시장이 상승장인 것부터 이상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역적자에 재정적자인 미국에서 말이다. 일본과 미국의 이자율 차이 때문에 미국 주가가 상승한 측면이 많다고 말한다. 일본은 이자율을 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에 투자하기 위해 일본에서 빌린 돈의 상환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미국의 주식시장은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저자는 이런 시기에도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가 우리에게 제시한 방법은 특이하다.

 

20~30대는 워렌 버핏처럼 장기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시세표도 자주 보지 말라고 말한다.) 보통의 재테크 전문가들은 20~30대에는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50~60대는 안전한 주식에 장기투자하라고 말하는 데 말이다.

 

40~50대에게 권하는 투자법은 귀 기울일 만하지만 딱히 우리에게 맞는 정서는 아닌 듯하다.

부동산은 총자산의 30% 이내로 하라. 이 방법은 나쁘다는 게 아니고 실현불가능한 듯 보인다. 그저 무리해서 집에 올인하지 말라는 뜻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60~70대에게 권하는 투자법은 더 특이하다.

투자보다는 투기 감각을 가지고, 시간을 100% 활용하라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오래 보유하는 것이 능사도 아니고, 기회가 왔다고 생각될 때 과감히 투자하는 것도 고려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가 노년에 갖고 있던 돈을 몽땅 날려버리면 누가 책임지라고....

 

저자가 제시한 방법을 모두 따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필요도 없다. 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이 있기에 귀기울이면 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한 대로 차트나 기술적 분석보다는 "흐름을 읽어내는 대국관과 트렌드와 타이밍"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나저나 금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투자해야 하나는 고려해 보아야 할 듯하다. 투자대상에는 현금성 자산, 주식, 부동산 외에 금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작년 11월에 모 은행에서 열 몇가지를 추천하면서 상담해 주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입을 서두르라고...얼마 전에 또 가니, 이젠 바닥이니 지금이 적기라고... 뭐, 그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언제나 모든 금융설명서의 하단 구석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듯이, 단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판단은 본인이 하고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니 말이다.

 

아, 갈수록 돈 벌기가...아니 가진 돈 지키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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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나라의 난쟁이들 베틀북 그림책 92
오치 노리코 지음, 위귀정 옮김, 데쿠네 이쿠 그림 / 베틀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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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플 때마다 꾸는 꿈이 있었다. 온갖 색깔이 너울대는 비단으로 이루어진 들판을 흐느적 거리며 하염없이 걷던 일명 '비단꿈'. 왜인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저학때까지 나는 늘 비단꿈을 꾸곤 했다. 몽롱한 상태에서 꾸던 그 꿈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책 속의 아이에게 열이 난다. 열이 난 아이에게만 보이는 이불나라의 난쟁이들. "요호레이호~"를 외치며 신나게 스키를 타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춤을 추고, 잔치를 벌이는지 음식을 나르고, 재잘조잘 와글와글 시끌벅적한 모습을 보며 아이는 즐겁게 웃는다. 물론 아이의 입김으로 난쟁이 나라의 잔치는 엉망진창이 되고 난쟁이들은 아이의 존재를 알아챈다.

난쟁이들은 아픈 아이에게 무언가를 하기 위해 열심이다. 나무를 베어서 무언가를 만들고 백조인지 거위를 잡느라 부산스럽고, 톱과 바위로 열심히 만들고 도르르래로 물을 퍼담아 옮겨, 깃털로 만든 부채를 살살 흔들면 물은 눈이 되어 아이의 불덩이 이마위에 펄펄 내린다. 아이와 난쟁이들의 눈 축제 때문인지  한 잠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거짓말처럼 열이 내린다. 

 

아픈 아이가 보았던 이불나라의 난쟁이들은 내가 어릴 적 꾸었던 꿈처럼 꿈이었을까? 이렇게 재미있는 꿈을 꾼다면 아픈 것도 감수하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가 만난 난쟁이들은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간다. 그들을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와 아픈 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책  소개에도 있듯이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불나라의 난쟁이들은 우리들이 행복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작가의 착한 상상력이 만들어 놓은 따뜻한 그림이 좋다.

 

"으랑랑, 몽모도몽모, 으가으가, 샤가샤가, 도롱도롱 모롱모롱, 쇼롱쇼롱..." 재미있는 난쟁이들의 말을 따라하며 딸아이와 나는 한바탕 웃는다.

"엄마 난쟁이말 너무 웃겨."라는 딸아이의 말에  따라해보니 진짜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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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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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 편쯤은 읽지 않았을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작품은 남아 있으나, 작가에 대한 삶의 흔적은 베일에 가려있는 셰익스피어. 그래서인가 [셰익스피어는 없다]고 단언한 책제목을 본 기억이 난다. 로맹 가리의 또다른 이름인 에밀 아자르처럼 어쩌면 셰익스피어도 누군가의 또다른 이름이었을까?

 

마이클 그루버는 이런 정황을 근거로, 어딘가에 혹 있을지도 모르는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을 발견하는 과정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팩션 추리 소설쯤으로 분류해야 할 이 책은 추리소설 본연의 정의를 상실한 듯 하다. 전개는 느슨하고 지루하며 어딘지 어수선하다. 어쩌면 작가는 추리소설을 쓰려고 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브레이스거들이  어딘가에 숨겼다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발견하는 장면은 그저 사실을 전개하는 정도로 긴박하지도 않다. 작가는 오히려 제이크 미쉬킨의 화려한 여성편력과 어릴 적의 성장배경과 부모에 대한 이야기들에 더 공을 들였으며, 크로세티의 영화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작가 마이클 그루버는 왜 제이크 변호사의 여성편력을 지나치게 자세히, 여러 장에 걸쳐 표현했을까? 제이크의 관심은 오로지 만나는 여자와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이야기의 흐름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또한 크로세티의 지나치게 세세한 영화이야기와 영화 연출을 염두에 둔 구성 또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이런 부분을 생략하고 책의 두께를 줄였다면 꽤 괜찮은 소설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총585페이지의 촘촘한 글씨체로 써내려 간 이야기는 총 세축으로 이루어졌다. 저작권 전문 변호사인 제이크 미쉬킨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고서점에서 일하는 영화감독 지망생 크로세티와 미스테리의 여인 캐롤린 롤리의 이야기, 그리고 롤리와 크로세티가 우연히 발견한 고문서 속의 주인공 브레이스거들의 이야기이다.

그저 크로세티가 롤리의 흔적을 찾아가 만나면서 알아낸 진실 -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의 남편은 사실 형부였으며, 언니가 죽기 전까지 자매와 형부는 한 집에서 여자와 남자로 살았다는 부분은 - 영화광인 크로세티가 언급한 '차이나타운'의 잊혀지지 않는 부분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임팩트가 강하지 않았다. 잭 니콜슨이 여자의 뺨을 때릴 때 했던 그  절규  "She's my daughter, She's my sister. She's my daughter, She's my sister...." 는 정말이지 머리 속에 인이 박혔다.

 

어딘가에 있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부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작품을 쟁탈하기 위해선 사람 목숨 여럿 절단날테니 말이다.

 

P.487 "딕, 연극이란 무엇인가? 화요일이면 새 것을 올리고, 7일 후면 그들은 뭐 다른 것 없소. 이것은 전에 들었소. 하고 외친다네. 이는 한푼 두푼 장사이며, 음유시인과 곰 싸움의 중간에 자리하는 것이라네. 바람과 그림자처럼 무게라고는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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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의 그림동화 1
이우일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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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와 그림이 낯설었다. 
책에서는 처음 보는 멘트(만화에 곁들여진 글들은)들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책도 역시 그 시대를 반영하는 소산인만큼 인터넷에 둥둥 떠다는 말들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이라는 단서가 따라 붙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는 하도 오래되어서, 혹은 영상이든 책이든 구전이든 많은 부분 왜곡되고 재해석되기 때문에 어느 것이 원작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원작인지도 불투명하다. 사실 첫번째 이야기인 재투성이(작가는 신데렐라라고 명하는 대신 아셴푸텔이라고 쓴)는 안데르센이 원작자인 줄 줄곧 알고 있었다. 아니면 신데렐라의 독일 버전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도입부부터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투성이 언니들의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싹둑 잘라버리더니 노간주나무에서는 아이의 머리를 뎅강 잘라버리고 그 위에 사과를 척 올려 놓는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고전 동화들이 원래는 잔혹동화였다는 것도 사실 안데르센은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니 작가의 그림이 따지고 보면 아주 왜곡이 아닌 셈이지만 그래도.

아, 노간주 나무는 정말이지 너무 잔혹하여 웬만한 공포소설이나 공포영화보다도 더 강하고 더 원색적이고 더 노골적이다. 표지그림에서 아이 같지 않은 얼굴에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만화에도 몇 세 이상 독서 가능한지 영화처럼 등급제가 있다면 난, 단연코 19세 미만 절대 독서 금지라고 말하고 싶다.
 

재투성이에서도, 노간주나무에서도,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아이의 친아버지는 참 못났다. 아이에게 신데렐라를 읽어주면 우리 아이는 왜 (새)엄마가 신데렐라를 괴롭히는지 이해를 못한다.  (진짜)엄마의 부재를 설명하기도 참 난감하고(왜냐하면 대여섯살 즈음의 아이는 엄마는 수퍼우먼인 줄 알고, 엄마의 부재를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새엄마를 설명할 길이 없으며, 더군다나 자기를 사랑하는 아빠가 자기가 엄마에게 갖은 구박을 받으며 고생하는 것을 외면하는 것을 더더욱 이해를 못한다. 아이는 단지 디즈니 만화의 예쁜 캐릭터로써 신데렐라를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난 사실 안데르센 동화도 그림형제의 동화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지나치게 왜곡된 세상을 너무 일찍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태를 반영하여서 인기도 많고 독자도 많다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좀 더 따뜻한 그림을 좀 더 훈훈한 글들로  짜여진 작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젯밤에 숭례문에 불이 났다. 600년 우리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나라의 보물이 훨훨 잘도 타더라. 아마도 사회에 불만을 품은 어떤 이가 고의로 불을 질렀다는 기사를 보면서 세상이 참 각박하고도 각박해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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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1 - 짧은 제국의 황혼, 이문열의 史記 이야기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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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작가의 작품을 읽은 지 근 20년만에 작가의 글을 만났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나는 당혹스러웠다.  서문이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내는 공간이 아닌가. 그곳에서 작가는 아직도 화가 나있었다.  '문화적 홍위병'의 사건은 꽤 오래 전, 아마 5년도 더 지나지 않았나? 그럼에도 지금 2008년의 작가의 글에 실렸다. 더구나 서문 말미의 글은 그럼에도 시대의 아이들과 더이상은 불화하고 싶지 않구나라니....

안타깝고 애석하다.

 

나도 한 때는 그의 작품에 사로잡혀 '황제를 위하여,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은 그의 독자가 아닌가. 엄석태의 강한 포스를 얼추 20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그의 독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 나에게, 작가의 글은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는 인사가 아니었다. 그의 노기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의 불편한 심기는 서문만이 아니다. 초한지1의 본문에도 언뜻언뜻 보인다. 우리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불편한 심사가 행간에 숨어있긴 하지만, 작가의 글을 얼마만에 만나보는가? 단숨에 읽었다.

예전에 고우영 화백의 만화로 읽은 초한지는 사실 재미로 읽은 거라, 살은 없이 뼈만 발라먹은 느낌이다. 제대로 읽고 싶었다.

 

처음 도입부 - 사실, 1권의 1/3에 해당하는 부분은 성경읽기의 가장 큰 걸림돌인 누구는 누구를 낳았더라가 줄창 나오는 족보부분처럼 어려워서 - 는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진시황을 비롯해서 시대의 영웅 유방과 항우, 저잣거리의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나올 수 밖에 없을 만큼 비루했던 한신, 꽃미남 장량 등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합종연횡, 연좌제법  등 그간 우리들의 역사에 등장했던 제도들이 실은 이 시대의 것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용안이나 주지육림 같은 글의 유래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어지러웠던 한 시대를 호령하고자 했던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이야기꾼 이문열작가의 글로 읽어보는 맛은 꽤 괜찮다. 어찌되었든 그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아닌가.

작가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책표지의 날개에 수록된 노기 띤 작가의 사진이 부드러운 미소 가득한 얼굴로 바뀌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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