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 - 짧은 제국의 황혼, 이문열의 史記 이야기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90년대 초반 작가의 작품을 읽은 지 근 20년만에 작가의 글을 만났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나는 당혹스러웠다.  서문이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내는 공간이 아닌가. 그곳에서 작가는 아직도 화가 나있었다.  '문화적 홍위병'의 사건은 꽤 오래 전, 아마 5년도 더 지나지 않았나? 그럼에도 지금 2008년의 작가의 글에 실렸다. 더구나 서문 말미의 글은 그럼에도 시대의 아이들과 더이상은 불화하고 싶지 않구나라니....

안타깝고 애석하다.

 

나도 한 때는 그의 작품에 사로잡혀 '황제를 위하여,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은 그의 독자가 아닌가. 엄석태의 강한 포스를 얼추 20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그의 독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 나에게, 작가의 글은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는 인사가 아니었다. 그의 노기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의 불편한 심기는 서문만이 아니다. 초한지1의 본문에도 언뜻언뜻 보인다. 우리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불편한 심사가 행간에 숨어있긴 하지만, 작가의 글을 얼마만에 만나보는가? 단숨에 읽었다.

예전에 고우영 화백의 만화로 읽은 초한지는 사실 재미로 읽은 거라, 살은 없이 뼈만 발라먹은 느낌이다. 제대로 읽고 싶었다.

 

처음 도입부 - 사실, 1권의 1/3에 해당하는 부분은 성경읽기의 가장 큰 걸림돌인 누구는 누구를 낳았더라가 줄창 나오는 족보부분처럼 어려워서 - 는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진시황을 비롯해서 시대의 영웅 유방과 항우, 저잣거리의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나올 수 밖에 없을 만큼 비루했던 한신, 꽃미남 장량 등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합종연횡, 연좌제법  등 그간 우리들의 역사에 등장했던 제도들이 실은 이 시대의 것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용안이나 주지육림 같은 글의 유래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어지러웠던 한 시대를 호령하고자 했던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이야기꾼 이문열작가의 글로 읽어보는 맛은 꽤 괜찮다. 어찌되었든 그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아닌가.

작가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책표지의 날개에 수록된 노기 띤 작가의 사진이 부드러운 미소 가득한 얼굴로 바뀌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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