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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하는데 글에 취해서 글이 좋아서 궁금해서 빨리 읽게 된다. 나이 든 중년 아저씨의 감성에 놀라며, 시인이 바라보는 시선이 어여뻐서, 글씨 하나하나에 청아한 숲의 향기가 나는 듯 하여 읽는 내내 마음이 평안해서 따뜻한 미소를 띄게 해서 책을 읽는 동안 참 행복했다.
아이들도 남편도 잠들어 있는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읽는 책맛이 어찌나 단지...
서문에서 시인이 우리에게 청하는 글부터 남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라고 써내려간 마지막 글까지 한 글자 한 글자를 음미하며 읽어간다.
살아보니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미물의 생명조차 존엄하며 존중할 가치가 있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 하나하나가 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데 어째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다 잊고 바삐 바삐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지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진실한 마음이 녹아있는 글에서 나도 그렇게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화초를 좋아하는 이웃을 만나서 처음으로 크고 작은 화분들을 들였다. 물 밖에 주는 게 없는데도 햇살 가득한 우리 집이 좋은지 잘 자라주는 화초들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물 만 주었는데 어느새 이만큼 자랐네 하는 대견한 마음을 처음 가져 본다.
노란 은행나무가 거리 가득 했던 지난 가을의 행복감. 그리고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정신 바짝 들게 하는 알싸한 겨울의 공기를 맡으면서 한 해의 끝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보내면서 세월의 무상함과 허트루 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겨울을 느낄 수 있어서, 또 혹독한 시련의 겨울을 잘 견디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앞다투어 새싹을 틔워내는 치열한 생명력에 감탄하게 되는 봄을, 왕성한 생명력을 맘껏 뽐내는 신록 우거진 여름을 기다리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고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바삐 돌아가는 한국을 벗어나 살았던 5년은,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도 축복받은 것이며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심심한 듯 한 느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알게 한 시간들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달라진 대기의 공기를 느끼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이들이 잘 잘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20대를 함께한 나의 좋은 친구인 남편이 내 곁을 듬직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렇지만, 다시 돌아온 이 곳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이들조차 바쁜 현실이 적응하기도 어렵고, 헤집고 들어가기도 두렵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벤치에 앉아서, 산책을 하며 두런거리며 이야기하는 여유가 서울에선 참 어렵다. 늘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곳에선 정말이지 남편이 남편노릇하기가 아빠노릇하기가 참 어렵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된다.
시인의 글이 바삐 사는 우리에게 청량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특별한 책이 되지 않기를, 한 템포 늦추고 길가의 나무와 꽃들을 어여쁜 눈으로 바라보고 대기의 공기에서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하늘 한 번 바라보며 그 곳에 별이 있음을, 내 옆에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있음을 감사할 줄 알며 삶의 여유를 갖는 시인의 삶이 일상이 되기를 꿈꾸어본다. 그런 날이 올까?
시인처럼 맑고 편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이웃에게 '청안하십니까? 청안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마음으로라도 인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모두가 청안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구나, -겠지, 감사"하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는 글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실천하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울까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