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곳, 파리. 나 역시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파리가 실은 악취가 진동하는 더러운 도시였단다. 거리의 온갖 오물이 치마자락에 닿지 않게 하려면 높은 하이힐을 신어야 하며, 거리는 언제나 막힌 하수구때문에 질척거리고, 썩은내가 나는 더럽고 지저분한 도시였다.  대류식 난방으로 인해 언제나 매캐한 연기가 드리워져 대기마저 더러운- 겨울엔 너무 추워서 개를 데리고 침대에서 자야 될 정도였다니 당연히 목욕도 안했을 - 19세기의  파리에 착안하여 씌여진 소설이 향수란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향수제조가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그 파리에 향수제조인이 있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특이한 한 남자가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작가만이 그에게 관심을 기울인 유일한 사람일 것 같은 생각이 들만큼 세상사람 누구에게서도  단 한번도 따뜻한 눈길 한 번 받은 적 없는 가엾은 남자 그르누이. 생선썩는 악취속에서 사그러질 운명에서 어렵게 살아났지만, 그에게 주어진 삶은 그리 녹녹한 정도가 아니라 늘,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을 처절하게 지켜야하는 고단함이다.

 

아무런 냄새도 없는 남자. 세상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미움이 무엇인지, 즐거움과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관심은 냄새이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오로지 향기뿐이며, 자신만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또한 냄새 혹은 향기이었으며, 그는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향기의 궁전에서만 희열을 느낀다.  향기만이 삶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희노애락을 모르고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그는 세상과 단절된 듯 자신만의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그에게, 단 한가지 소망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자신만의 향수를 갖는 것.  이것만 있으면, 초라하고 비천한 자신도 남들에게 관심을 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이지만, 세상으로부터 완벽한 무관심 속에 살아가는 그의 삶이 측은했다. 만약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방치하지 않았다면- 한 번이라도 안아주었다면, 아니 한 번이라도 따뜻한 눈길을 주었다면- 아니면 사랑과 헌신으로 그를 돌봐줄 양부모라도 아니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준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줄곧 생각하게 된다.(아이의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다. 모든 안타깝고 아픈 사연의 원인을 사랑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부모가 되고 나서 달라진 부분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향수를 갖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지만 - 물론 그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다. 그에겐 사랑과 증오도 도덕과 양심도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불쌍한 영혼이여 - 정작 그 결과물 뒤에 느끼는 공허함은 뭐지?

그르누이는 혼란스럽다.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뿌리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리라 상상했다. 물론, 그가 향수를 뿌리자 모든 사람이 열광하고, 미친듯이 그를 사랑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환각파티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광란의 모습일 뿐이다.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 나에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남편의 말에 의하면 나만의 독특한 냄새가 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나의 냄새를 알지 못한다. 그르누이처럼...

나에게 있어 가장 기분좋은 향기는, 아이의 볼에 뽀뽀할 때 아이의 입술에 뽀뽀할 나는 기분좋은 살냄새이다. 이렇게 매일 부비며 뽀뽀하고 안아주면서 느끼는 엄마의 사랑을 그르누이는 받지 못했으니, 이보다 더 가엾은 영혼이 있을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냄새 혹은 향기로 지칭되는 세상의 온갖 냄새에 관한 보고서처럼 그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 내가 모르는 그 세상에 별천지가 있었다.  

작가의 꼼꼼하면서도 치밀한 상상력에서 태어난 어느 버림받은 자의 처절한 삶에 대한 몸부림은 연민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랑하며 아끼며 살아갈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0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만 봤는데, 영화도 괜찮았어요 ^^
책으로도 한번 보구 싶네요^^

꿈꾸는자 2007-07-05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괜찮다하시니 시간내서 봐야겠네요^^
그 섬세한 향기의 향연을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영화로는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