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의 그림동화 1
이우일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처음 보는 작가와 그림이 낯설었다. 
책에서는 처음 보는 멘트(만화에 곁들여진 글들은)들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책도 역시 그 시대를 반영하는 소산인만큼 인터넷에 둥둥 떠다는 말들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이라는 단서가 따라 붙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는 하도 오래되어서, 혹은 영상이든 책이든 구전이든 많은 부분 왜곡되고 재해석되기 때문에 어느 것이 원작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원작인지도 불투명하다. 사실 첫번째 이야기인 재투성이(작가는 신데렐라라고 명하는 대신 아셴푸텔이라고 쓴)는 안데르센이 원작자인 줄 줄곧 알고 있었다. 아니면 신데렐라의 독일 버전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도입부부터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투성이 언니들의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싹둑 잘라버리더니 노간주나무에서는 아이의 머리를 뎅강 잘라버리고 그 위에 사과를 척 올려 놓는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고전 동화들이 원래는 잔혹동화였다는 것도 사실 안데르센은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니 작가의 그림이 따지고 보면 아주 왜곡이 아닌 셈이지만 그래도.

아, 노간주 나무는 정말이지 너무 잔혹하여 웬만한 공포소설이나 공포영화보다도 더 강하고 더 원색적이고 더 노골적이다. 표지그림에서 아이 같지 않은 얼굴에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만화에도 몇 세 이상 독서 가능한지 영화처럼 등급제가 있다면 난, 단연코 19세 미만 절대 독서 금지라고 말하고 싶다.
 

재투성이에서도, 노간주나무에서도,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아이의 친아버지는 참 못났다. 아이에게 신데렐라를 읽어주면 우리 아이는 왜 (새)엄마가 신데렐라를 괴롭히는지 이해를 못한다.  (진짜)엄마의 부재를 설명하기도 참 난감하고(왜냐하면 대여섯살 즈음의 아이는 엄마는 수퍼우먼인 줄 알고, 엄마의 부재를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새엄마를 설명할 길이 없으며, 더군다나 자기를 사랑하는 아빠가 자기가 엄마에게 갖은 구박을 받으며 고생하는 것을 외면하는 것을 더더욱 이해를 못한다. 아이는 단지 디즈니 만화의 예쁜 캐릭터로써 신데렐라를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난 사실 안데르센 동화도 그림형제의 동화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지나치게 왜곡된 세상을 너무 일찍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태를 반영하여서 인기도 많고 독자도 많다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좀 더 따뜻한 그림을 좀 더 훈훈한 글들로  짜여진 작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젯밤에 숭례문에 불이 났다. 600년 우리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나라의 보물이 훨훨 잘도 타더라. 아마도 사회에 불만을 품은 어떤 이가 고의로 불을 질렀다는 기사를 보면서 세상이 참 각박하고도 각박해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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