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노아 > 최고의 역사 이야기꾼, 이덕일
졸업을 하고 학교라는 곳에 첫발을 내딛던 그 순간, 온갖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전공을 했다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만한 컨텐츠라는 게 내 안에 있는가...라고 자문했을 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몸만 어른인 것 같았고, 나 역시 아직 학생인 것만 같던 그때.... 첫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엄청 머리를 싸매었다. 3월 2일이 개학인데 하루 전인 삼일절 날에 나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다. 정말, 수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첫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아무튼 수업은 마쳐졌다. 다행히 학생들 반응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후의 수업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어떤 수업을 할 것인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나에게 지침이 될만한 참고서, 도우미 책이 필요했다. 그때, 일년 전쯤부터 나를 열광시켰던 사람이 생각났다. 탁월한 글솜씨와 익히 새겨둘 필요가 있던 문제 제기. 무엇보다도 즐겁게 읽혀졌던 그 책 "역사에게 길을 묻다..."
내가 배웠던 역사책을 성역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책이 그토록 문제가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했다. 내가 즐겨 보던 사극들, 그 사극의 문제점과 실제 역사와의 간극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해 봤다. 역사 속의 사건 사고 인물들과 오늘을 사는 이 시대의 사건 사고 인물들이 교묘하게 겹쳐짐을, 그래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배워지는 인간의 모습도,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새삼스레 깨달았다.
재미와 교훈, 정보를 두루 주면서 은근 감동까지 안겨주었던 이 책은, 시작할 때 제시했던 문제점을 재차 환기시키며 독자에게 다음 나아갈 길을 물으면서 끝이 난다. 너무도 신선했던... 반가운 만남.
그래서, 이 책을 쓴 이덕일씨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두번째로 만난 것은 "누가 왕을 죽였는가"라는 제목의 책. 제목도 어찌나 극적으로 지었는지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 두권을 신청해서 빌려 읽었는데 책 내용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나도 소장해야지... 결심했건만, 그 순간 책이 절판되었음을 알았다. (학교 도서관에서 구한 게 용했다.) 구하고 싶어도 구할 길이 없었다. 결국, 책 한권을 통째로 복사해서 분철을 했다. 그렇게라도 소장하게 되었음을 얼마나 기뻐했던가. 시간이 흘러 책이 다시 출간되었을 때, 제대로 된 표지를 갖고 소장하게 된 것이 무척 기뻤다. 책 제목은 "조선왕 독살 사건"으로 바뀌었는데, 첫번째 제목보다는 덜 마음에 들었다.
조선의 임금들이, 그토록 독살 의혹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누군가는 의혹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지만, 또 누군가는 너무도 명백한 증거들이 있어서 타살임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단지 기막힌 죽음만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정이 나오게 된 배경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웬만한 스릴러보다 더 긴장감 높았고,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거의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고... 채 이루지 못한 조선 왕들의 꿈과 야망과 희망들에 나는 여러 날 마음이 쓰이고 아파했다.
이젠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이덕일'이라는 이름 석자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고, 내 역사 공부에 지대한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에는 같이 실리지 않은, 그러나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도세자... 그 이의 자취도 나는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도세자의 고백... 아, 또 다시 제목부터 나를 울린다. 얼마나 처절한 울음이었던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아버지 영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왕이 되었는지, 그의 치세 기간 동안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데에 말리기는커녕 동조했던, 아니 등 떠밀었던 세력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 저간의 사정들을 알아가면서 나는 사도세자와 함께 분노했고, 그와 함께 오열했으며 목 메인 울음을 토해야 했다. 이 책을 읽고 일년 여 뒤 수업을 위해서 책을 다시 읽으면서 여전히 내 가슴은 타올랐다. 그리고 수업 시간. 나처럼 무섭게 몰입하는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지막 종이 치는 순간 절묘하게도 나의 마지막 말은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로 마쳐졌고, 그 순간 또르륵 눈물 흘리는 학생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나도 울컥!하고 말았다. 다행히 같이 울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꽤 인상 깊었던,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이야기 수업'을 선호하게 된 것은 사도세자 때부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국사는 2학기 시작할 때 조선사를 들어가는데 개학하던 날, 으레 수업이 없을 거라 여긴 나는 부끄럽게도 수업 준비를 해가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은 있었고, 학생들은 그 흔한 '놀아요~' 소리도 안 하는 것이었다. 맙소사! 선생 체면에 (수업 준비를 안해 왔으니) 놀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한 시간 수업을 그냥 버릴 수도 없었다. 어쨌든 수업은 시작해야 했고, 나는 무언가를 학생들에게 내주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사를 쭈욱 한달음에 개관을 했다. (졸지에 말이다.) 어쩌지? 하고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말은 술술 잘 나왔다. 한 시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학생들 역시 졸지도 않은 채 서로 재밌게 수업이 마쳐졌다. 그때, 수업의 방향을 "즐겁게, 재밌게, 감동적으로..." 잡았다. 다행히 나의 학생들은 요즘 학생들 답지 않게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들이었고, 호소하는 그대로 흡수할 줄도 알았다.
그때 내가 의지했던 책은 바로 이거였다.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였지만 고려말부터 조선 창립기의 일도 아주 자세히,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설명해 주었던 책이다. 이전에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이성계와 정몽주, 정도전을 나는 이 책에서 만났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혹은 과장되고 미화된 야사 속의 조선이 아니라, 실록에 의해 입증되는 좀 더 사실적인 조선을 만났던 것이다. 네 차례나 이어지는 사화의 폭풍우를 지나니 '당쟁'이라는 더 큰 해일을 만나고 말았다.
그 사이사이에 양념처럼 송시열을 만났고 정약용과 정조를 만났다.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에 대한 감춰졌던 이면을 '운부'를 통해서 만났고, 그 바람에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게 있어 멈춰짐 없이 하나의 서사로 이어졌다. 역시나 절판된 바람에 도서관을 통해서 빌려 읽은 운부는, 친한 지인이 생일 선물로 어렵게 구해주는 바람에 고맙게도 소장 책이 되고 말았다. 출판사를 수소문하고 온갖 서점을 수소문한 끝의 쾌거였다. ^^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는 본문의 내용이 다소 어려웠다. 전문적인 내용이 많았고 워낙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지라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그때는 "살아있는 한국사"를 겸해서 같이 보니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에 작가 후기 비스무리하게 에필로그가 있었는데, 그 부분은 18세기부터의 조선사의 흐름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방면에 걸쳐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진국으로 요약이 되어 있었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개항기를 맞이할 때의 조선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고, 역시나 나의 수업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2학기 수업만 도움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1학기에는 선사시대부터 고조선사, 삼국사, 고려사 등을 배우게 되는데, 나에게 흥미를 주고 재미를 주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이덕일씨 책에서 역시 많이 찾게 되었다. 고구려에 신라에 백제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책장을 넘기며 나는 황홀감과 함께 맛보았다.
무지했던 것을 알아가는 기쁨과,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부심, 막연히 알았던 옛 이야기를 영화처럼 들여다 보는 재미는, 그의 이름이 박힌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나를 흥분되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는 부지런했고, 다작을 했으며, 그럼에도 집중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정사만 파고들었던 것도 아니다. 톡톡 튀는 즐거움과 맛을 선사했던 수수께끼 시리즈도 내게는 반가운 만남이었다. 또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 획을 그었던 여인들을 재조명한 것도 내게 있어 큰 수확이었다.
내가 했던 수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임진왜란'이었다. 많이 가슴 아픈 전쟁에 관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 너무도 사모하는 장군님이 계셔서 준비할 때에도, 수업에 임할 때에도 언제나 신이 나곤 했다.
그 길을 열어준 것이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권에서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편견이었다. 오래도록 죽일 놈! 소리를 들어왔던 그 원균이 사실은 조금 억울하다는 것.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증이 일었다.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고 좀 더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 거기에는 이덕일씨의 책 외에도 역사스페셜이나 그밖에 영상 자료도 큰 몫을 해내었고, 그 한권으로 나를 팬으로 묶어버린 김훈의 "칼의 노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였지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도 마찬가지의 자극을 내게 주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나이다."를 말할 때에는, 마치 내가 이순신이 된 것처럼 그 감정에 사로잡혀 간곡하고도 단호한 어조가 되었다. 앞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내가 수업 중에 학생을 처음으로 울린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그리고 울둘목 전투를 얘기할 때에는 학생들이 너무도 집중해서 수업을 듣는 바람에 '시선'이라는 게 이토록 뜨거울 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득하기도 했다. 그 '몰입'은 나를 다시 '몰입'하게 만들었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했다.
늘 설명만 하는 수업이 아니라 언제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수업이었던 탓에 학생들의 관심은 높았고 수업에 대한 기대나 반응도 늘 높았지만, 그게 언제나 순기능만 할 수는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내게 있었다. 단지 '재미'만 주어서는 안 됨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책을 읽을 때에도 언제나 고민이 같이 따라왔다. 역사속 시간을 헤집어 나갈 때에는 호기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종의 두려움과 걱정도 동반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깨닫고 바뀌어가야 할 어떤 의식 같은 게 필요했었다. 다음의 책들은 그런 생각들을 일깨우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특정 인물(이회영/김종서)이나 특정 주제(고조선, 개혁, 혁명, 투쟁)로 묶은 책이었고,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이 밟아 나갔던 역사 속 과정 속에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렬한 무언가를 만나게 하였다. 역사가 결코 과거 속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오늘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대로 투영해 내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알려주었던 책들이다.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체험한 이회영은, 내용은 다소 어려웠지만 자부심을 알게 해준 존재였고, 김종서 평전 '거칠 것이 없어라'는 채 이루지 못한 꿈과 희망에 역사에서 있을 수 없는 'IF'를 자꾸 되뇌이게 하는 책이었다.
이밖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도 나는 큰 도움을 많이 받았고, 최근에 주제사로 묶인 책 두권도 제법 흥미롭게 읽었다.(조선 최대 갑부 역관, 한국사의 천재들-감동은 별로 없었지만)
다행히도 과거에 절판되었거나 품절되었던 많은 책들이 복간되거나 개정되어서 다시 나오고 있어 책이 없어 못 볼 걱정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 위대한 전쟁"은 '오국사기'의 개정판이고, "교양한국사"는 '살아있는 한국사'의 개정판이며, "조선 선비 살해 사건"은 '사화로 보는 조선사'와 '당쟁으로 보는 조선사'의 개정판이다.
나로서는 이제 사놓고서 아직 보지 못한 "장군과 제왕"을 보는 즐거움이 남아 있다. 소망이 있다면, 세종 시절을 배경으로 한 역사책을 더 써주셨음 하는 것이고, 이덕일씨의 박사 논문 주제였던 동북항일 투쟁사가 좀 더 소상하게 설명되어진 책이 나왔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4권도 열심히 기다리는 중이다. ^^
사족 하나, 이제는 수업 준비 안하고 학교 가는 일은 절대 없다. 밤을 새워서라도 준비는 마친다(>_<)
사족 둘, 이덕일씨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나처럼 늘 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다른 각도의 접근도 귀기울이고 있다. 여전히 이덕일씨의 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알라딘 주최의 이덕일씨 강연회는 가지 못했다. 그날 이승환이 열린음악회에 출연하는 바람에 방송국으로 직행했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