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준익
배우 : 수애, 정진영, 정경호, 엄태웅
앞으로 6주는 아이와 함께 해야 하는 시간. 오늘이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치과의 스케일링 예약도 펑크내고 날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님은 먼 곳에'를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눈여겨 두었던 정경호가 나옵니다. 저에게 주는 선물로는 아주 훌륭합니다. 역시 그는 멋집니다. 살짝 살짝 보이는 미소와 그 여린 눈이 참 좋습니다.
한 여자(순이)가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합니다. 시어머니는 언제나 닥달을 합니다. 3대독자인 내 아들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그러나 남편은 순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그리곤 아무런 말도 없이 월남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남편을 찾아 떠납니다. - 사실, 순이가 월남으로 남편을 찾아 떠난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시어머니의 독촉에 못이겨서? 자길 사랑햐고 묻는 남편에게 순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해서? 월남의 전쟁터로 떠나면서 그냥 가버린 남편에게 왜 갔냐고 물어보기 위해서? 어떤 이유에서든 다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준익의 '님은 먼곳에는'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전장터이기 때문입니다. 목숨걸고 순이가 가기도 힘든 그곳을 찾아가야 하는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녀가 그곳에서 서서히 변해가면서까지 찾아야 하는게 무엇인지에 대한 관객의 동의를 얻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뭐야~ 도대체 왜 그 곳엘 가서 순박한 순이를 써니로 만드는 거야?'라는 추궁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순수한 순이는 월남엘 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서서히 변합니다. 그걸 타락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미군앞에서 '수지 Q'를 제대로 부르지 못해 온갖 야유를 받던 순이는 나중에는 미군 앞에서 '수지 Q'를 제대로 부릅니다. 그녀는 이제 순이라기 보다는 '써니'에 더 가까습니다.
김추자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순이는 참 예쁩니다. 제 눈에도 청순해 보이면서 섹시합니다. 돈이라면 동료의 우정과 신의는 시궁창에 처박아버릴 만큼 타락한 정진영의 "She's my money!"는 그의 정체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순이를 바라보는 정경호의 시선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그 시선과 미군 중령의 방 문 앞에서 안타까워 하던 그 눈빛이 참 좋았습니다. - 정경호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처음 본 이후로 참 느낌 좋은 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도 내가 좋아하는 기라성같은 배우들처럼 멋진 배우로 거듭나길...
밴드의 일원이었던 나이든 아저씨.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그는 형사같은 역할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는데, 힘빼고 연주하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순이의 아름다운 노래에 화면 가득 보여지는 남편의 처절한 전투씬은 슬프고도 아름답습니다. -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했던 지옥의 묵시록(?)- 제목이 확실치는 않치만-의 전투씬에 흘러나오던 "What a wonderful world'를 떠올리게 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흘러나오는 '님은 먼 곳에'는 그래서 더 애절하게 들립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그렇게 다른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달러를 벌기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믿기지는 않지만 그것이 불과 40년 전의 일입니다. 목숨걸고 싸우러 가는 이유가 참 그렇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워야 그래도 전쟁에 나서는 이유가 될 터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난했고 순진했습니다. 얼떨결에 전장에 떨어진 순이는 참 쌩뚱 맞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 한국군처럼 말입니다. 세계 평화 수호를 위해 그곳에 갔을까요?
남편이 순이를 사랑한 것도 아니고, 순이 또한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순이는 목숨을 걸고 월남엘 갔습니다. 순이는 무엇을 물어보러 갔을까?남편을 만난 순이는, 또 순이를 마주한 남편의 첫 마디는 무엇일까 참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순이의 마지막 장면은 백마디 말보다도 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나라도 그리 했을 것이라고 수긍하게 됩니다. 그리고, 궁금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동화 속의 행복한 결말처럼 행복하게 아들 딸 낳고 오래오래 행복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