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리를 놓으며 - 황후의 독서 추억
미치코 황후 지음, 김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미치코 황후의 독서편린
미치코 황후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황후의 후원 사업으로 인하여 혜택을 받는 아이들이 부럽습니다. 왜 황후는 아이들의 도서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까요?
돌이켜보건대, 제게 있어 어린 시절의 독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무엇보다도 독서는 제게 즐거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올 청년기의 독서를 위한 기초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독서는 제게 뿌리를 부여하고,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이 뿌리와 날개는, 제가 안팎으로 다리를 놓으면서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나가고 가꾸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독서는 제게 슬픔과 기쁨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책 속에는 다양한 슬픔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깊이 사물을 느끼고,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지 깨닫게 된 것도 독서를 통해서였습니다.
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괴로움과 슬픔을 겪고 있는 어린이들의 존재를 생각하면, 혜택과 보호를 받던 저의 어린 시절에 슬픔이 있었다는 말을 삼가야 할는지 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삶에도 슬픔은 있게 마련이며,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에는 모두 나름의 무게가 있습니다. 제가 제 나름의 작은 슬픔 가운데서도 책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은총이었습니다. 책을 통해 인생의 슬픔을 아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살찌우는 일이며, 타인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책 속에서 과거 또는 현재의 작가들에게 창작의 원천이 되고 있는 기쁨을 접하는 일은 삶의 기쁨을 알게 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 살고자 하는 희망을 되찾게 하며, 다시금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가다듬게 합니다. 슬픔이 가득한 이 세상을 어린이들이 계속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슬픔을 참고 견디는 마음을 기르는 동시에 기쁨을 민감하게 느끼는 마음, 또 기쁨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덧붙입니다. 독서는 제게 인생의 모든 것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복잡함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말입니다.(34쪽 ~36쪽)
나의 독서편린
나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다 떨어진 고무신과 목장 갑 뿐인 어머니와 아버지는 밤낮을 가리시지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세네 살 되는 아이는 논두렁에 과자 한 봉지랑 놔두고 어머니 아버지는 땡볕이 내리쬐는 무논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십니다. 책, 책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초등학교 조차 제대로 다니시지 못한 아버지는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하기에 하루하루 일, 일 뿐이였습니다.
내게는 어린 시절의 독서 추억이 없습니다. 피터팬이며 말광량이 삐삐, 혹은 영웅을 이야기할 때는 꿀 먹은 벙어리인 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또래의 친구들은 이순신이며 세종대왕을 이야기 하곤 합니다. 하지만 난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며, 초등학교를 들어가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노는 것이 더 즐거워서 따로 책 볼 시간이 없습니다.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 떠서도 나는 친구들과 놀기에 열중을 했습니다. 딱지나 구슬 따먹기, 가을 걷이가 끝난 이맘 때는 논에 가서 흙으로 탱크며 비행기를 만들어서 편을 나누고 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서서히 책을 한 권 씩 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는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날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수가 있었습니다. 어린이 시절 책을 읽지 않은 나는 위인전기와 세계 명작 동화는 뛰어 넘고, 해문출판사에 내놓은 추리소설을 하나씩 읽어 갔습니다. 명탐정 ‘포와로’와 ‘홈즈’, ‘뤼팽’을 조금씩 읽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책을 읽지 않은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 어떻게 책을 읽을 수가 있었을까라는 의문...? 이상하나요?
저는 책을 보게 되는 것이 두 가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습관(교육), 하나는 유전입니다. 부산에 친구 애기가 있는데, 슬기입니다. 친구 엄마는 슬기가 100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밖으로 데리고 나가곤 했습니다. 저도 간혹 병원이나 관공서를 따라 갔는데, 그럴 때면 저는 『GEO』라는 잡지 책을 펼치며 아기랑 보고 했습니다. 되도록이면 그림이 많은 책을 펼쳤습니다.
아기는 무엇인지도 모른체 혹은 책장 넘기는 것이 재미나는지 무조건 넘기곤 합니다. 하지만 애기 엄마와 난 마냥 따라 합니다. 애기는 책에 대한 두려움이나 지겨움이 없습니다. 지금 4살이 되었는데, 친구집에 놀러 가면 전 "슬기야 우리 책보고 놀까?"라고 묻습니다. 아기는 저랑 같이 놉니다. 지겨우면 다른 놀이를 하면 됩니다.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 예전에 그는 『누가 내 머리에 똥 샀어』와 『강아지 똥』『열 두 띠 이야기』그리고 일본 번역서인데 토끼가 무명 치마를 입었는데 꽃밭을 지날 때 마다 옷 무늬가 달라지는 내용입니다. 아기는 이 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슬기와 저는 책이랑 잘 논답니다. 두 번째는 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아와 어린이 시절에 책이라고는 교과서도 싫어하는 아이가 중학교를 다니면서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 간격을 매꿔주는 것이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비록 제대로 다니시지 못했지만 이웃집에 책이 많이 있었는데, 젊으실 때에 많이 읽으셨다고 했습니다. 『일곱 송이의 장미』『번지 없는 주막』등을, 혹은 제가 중학생이 되어 가져온 책을 사흘 밤이면 다 읽으시는 것입니다. 책 한 권을 일주일 동안 읽는 내게 아버지는 신이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읽은 것이 유전이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합니다.그렇기 시작한 읽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은 없지만 저는 오늘도 책을 읽으면서 추억을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꿈을 꿉니다. 미치코 황후는 책을 통해 "단순치 않음"을 배웠다고 했는데,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생겼습니다. 책이라는 것을 시야를 넓게 해줌과 동시에 꿈을 이야기 합니다. 왜 어린이에게 책을 읽혀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단순한 '수 능 대비'가 아닌 "아이 스스로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립하여 어떠한 시련이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힘을 키울 수가 있으며,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치코 황후는 할머니가 되어 유년시절의 독서를 돌아보니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 추억 속에는 돈으로 살 수가 없는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이 지혜를 우리 아이에게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변해간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현상이 아닌 근본입니다. 그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은 다름아닌 책을 읽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모우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임 : 이 책은 내용이 아닌 두께에 비하면 책값이 너무 비쌉니다. 하지만 미치코 황후의 이야기는 책값으로 책정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조금 돈이 있으시다면 사시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면 도서관 혹은 서점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제 서른이 되어가는 어설픈 총각이 책은 "머다머다"라는 말 보다, 일흔이 되어 가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울림이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