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국이 글을 올려 말하길 "제왕의 군대는 계책을 귀하게 여기고 싸우는 것을 천하게 여겨야 하니,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먼저 적이 이길 수 없게 만들고서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군대를 출동하지 않고 둔전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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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의 풍경 - 주한미군이 불러온 파문과 균열에 대한 조감도 메두사의 시선 3
엘리자베스 쇼버 지음, 강경아 옮김, 정희진 기획 / 나무연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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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대사에서 미군정 시기 3년(1945년 9월 9일~1948년 8월 15일)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본다. 우리는 미국을 몰랐다. - P10


해제를 읽으며 너무 동감했던 구절이 바로 저 위의 구절이었다. 한국 근현대사 중 특히 3년 간을 천착하여 공부하다가 절감한 것은 일본의 지배가 끝나자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또 다른 지배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한반도는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일제의 피해를 겪은 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 열강에 의해 두동강이 났다. 미군은 1950년 이후 지금까지 군대를 주둔시키는 중이다. 이로써 남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건설한 끊임없이 확장하는 ‘기지의 제국’(Johnson 2004: 151)에서 매우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 P81


동맹은 일시적인 것이어야 하는데도 한미동맹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그 지분을 확대해가는 중이다. 한국은 미국의 또 하나의 위성국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미국은 군사주의 국가이며 북한을 비롯한 중국, 일본에 둘러싸인 한반도도 마찬가지로 군사주의 국가다. 

그렇다면 ‘군사주의’란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늘날 군사주의에 대해 가장 포괄적 정의를 내린 이는 사회학자 마틴 쇼다. 

‘군사주의’의 핵심 의미는 군사적 관행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관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규정되어야 한다. 군사주의는 사회관계 전반에 군사적 관계가 침투하는 것을 뜻한다. 군사주의는 군사화할 때 팽배해지고, 비군사화할 때 줄어든다. (2012: 20) - P35

군사주의는 사회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 구성원 일부 세력은 충분한 군사를 갖춰야 평화주의가 안착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군비를 확장한다면 끝은 없는 것이 아닐까.


박정희 시기 일상화된 전시체제를 거친 뒤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집권했고 그는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군부 독재자였다. 광주항쟁이 벌어지자 정부는 공수대를 투입하여 대학살을 감행했다. 그런데 1980년 5월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미국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되, 장기적으로는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압력을 행사한다”는 접근법을 택했다. (Adesnik and Kim 2008: 18) 

이후 들어선 레이건 정부는 전두환을 백악관에 초청했고, 미국이 전두환을 지지하자 많은 한국인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미군이 광주항쟁 진압에 실제로 개입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미국이 결정적 순간에 스스로 투쟁에 나서 민주적 변화를 끌어내려했던 운동가들 편에 공개적으로 서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 P101


경제적 이득이 있었다고 해도 어쨌든 베트남 전쟁에 가장 많은 파병을 할 정도였던 한국에게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실망과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범지구적 테러와의 전쟁’으로 촉발된 지정학적 변화, 촘촘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남한 좌파 NGO의 활동과 개별 사건에 대응하며 벌이는 ‘시민운동’은 남한 내 미국의 역할을 다시 상상케 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시민단체 다수가 민중운동에서 뻗어나왔고, 1980년대 이후에는 훨씬 다양한 사회운동망으로 서서히 변모했다. - P104~105


1992년 기지촌 여성 윤금이가 살해당한 사건은 미군기지 근처 성인들의 유흥 공간에 날뛰는 폭력적 짐승이라는 미군의 이미지를 대중화하면서 ‘구조적 증폭’을 가져왔다. 전국에 퍼진 윤금이의 훼손된 사체 이미지가 민족을 상징하면서 시민들은 미군(나아가는 인종, 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꼈으며 폭력적 상상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기지촌의 성 산업 유입 여성이 겪는 성 착취와 폭력은 한민족 전체의 수난에 대한 너무나도 깔끔한 알레고리로 사용됐다. 따라서 윤금이의 고난은 한민족이 (처음에는 일본, 이제는 미국이라는) 사악한 외세의 탄압에 끊임없이 시달린다는 민족 담론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민족을 억압당하는 여성에 비유하는 새로운 상상력이 좌파 민족주의자 사이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군인-민족이라는 세계관만큼이나 가부장적 세계관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 P137


폭력적 상상이란 사람들이 개인의 폭력 행위를 국가와 관련한 문제로 재구성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주의를 이해하는 식의 사회적 관행을 말한다. - P45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매우 작은 민족의 일원일지라도 다른 많은 동료 구성원을 알거나 만나지 못하며, 혹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일조차 없겠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합일의 이미지가 살아 숨 쉬고 있다.” - P47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폭력 행위에는 소통의 측면이 있다. 폭력은 소통성이 없어도 사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지닌 채 지속되는 유일한 인간 행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또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쪽은 피지배자의 동기를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피지배층은 관계를 우위하는 이들의 관점을 ‘상상’하고 염려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고 주장한다. - P50


윤금이 사건으로 기지촌이 문제의 본산지가 되면서 경제적 타격을 받은 클럽들은 기지촌 여성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필리핀 등지에서 접대부를 데려오면서 해결했다. 마침 기존에 있던 기지촌 여성들은 국내에 있는 다른 유흥가 클럽(강남 등)으로 옮겨갔다(물론 떠나지 못한 이들도 있다). 


안드레아 브리겐티Andrea Brighenti는 ‘집단적 “상상 행위, 즉 물질을 비물질로 연장하는 행위”로 형성된 특정 영토와 장소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품은 잠재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비전, 꿈, 욕망이 새겨진 물리적 영역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 P208


이제 미군은 유흥을 위해 기지촌을 고집하지 않고 시내 유흥지로 나오면서 미군과 민간인의 접촉이 늘어난다. 미군들은 홍대를 즐겨 찾았고 외국 민간인들은 과거 독재 시절부터 기지촌이었던 이태원에 대거 유입되었다. 이곳들은 자유로운 소비공간이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 되었다. 이태원은 동성애자, 성전환자, 무슬림, 기타 이주민들이 뒤섞여 초국적 지형이 되었다. 홍대는 권리를 박탈당한 학생, 예술가, 반항적 청년을 끌어모았고 여기에 미군과 외국인도 술집, 클럽, 거리로 모여들며 혼종의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출신 국가, 배경, 민족, 종교, 직업이 매우 다양하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다양한 문화와 민족을 포용하도록 확대되면서 한국성이 점차 탈민족화하는 초기 단계가 목격”되는 것이다(Lee J. 2010: 19). 하지만 민족의 단일성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던 한국인들은 ‘한국성’의 본질을 잃는데 대한 두려움 또한 크게 느끼고 있다. - P247


어릴 적 늘 “한국인은 단일 민족이다.”임을 들어오며 강요를 받았고 암암리에 세뇌를 당했다. 이제는 이것이 결코 사실이 아니고(어떻게 단일한 민족들만 모여 살 수 있겠는가. 한반도는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교류해왔다.) 더군다나 외부에서 끊임없는 외국인이 유입되고 있는 이 때에 더 이상 한국인의 단일 정체성을 고집하며 이들을 거부한다는 것은 세계화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군에 대한 이미지는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특정 사건들에 노출된 언론들의 기사와 매체들, 그리고 대중에 의한 폭력적 상상의 이미지가 증폭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인은 이념적인 사고에 여전히 갇혀 있으며 특히 정치계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 다행히도 요즘 일부 청년들은 이념적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고도성장한 한국에서 완전히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은 한국이 전 세계적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에 갈수록 깊이 개입하는 점을 비꼬면서 피해자로서의 한국의 역할에 반박했다. 그러면서 민중운동가 선배들이 맹렬히 붙들고 있던 민족주의 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전 세계의 급진 운동에서 적극적으로 영감을 모색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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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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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독자가 읽기에 더 매끄럽고 수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설명에 살을 붙여서 문장의 이해를 돕는다고 해야 할까. ˝한 사람을 제게 말씀하옵소서˝ <- ˝들려주소서˝ 이전 숲 출판사 내용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다르다. 좀 더 현대적인 번역으로 느껴졌다. 이제 오뒷세이아의 귀향길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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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의례와 사회변화: 자바의 예
제7장 현대 발리에서의 “내적 개종”

문화와 사회체계 사이의 본질적 차이는 그들 각각의 특징적이고 대조적인 통합의 형태를 생각해보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소로킨이 "논리-의미적 통합(logico-meaningful integration)"이라고 부른 것과 "인과기능적 통합(causal-functional integration)"이라고 부른 것 사이의 대조이다." 문화의 특징인 논리-의미적 통합은 바흐의 푸가, 천주교의 교리 혹은일반 상대성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통합을 뜻한다. 즉양식의 통일, 논리적 함의의 통일, 의미와 가치의 통일이다. 사회체계에 특징적인 인과기능적 통합은 모든 부분들이 단일한 원인 및 결과의 그물에결합되어 있는 유기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통합을 뜻한다. - P178

1910년 이후 비교적 큰 도시에 거주하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세련된 상인계급들 간에 나타난 이슬람식 근대화(또한 이에 대한 맹렬한 보수주의적 반동)와 종교적 민족주의의 출현은 전통적 종교관이 강한 일반 대중들사이에 이슬람교는 배타적이며 반혼합적이라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마찬가지로, 공무원과 도시지역에서 증가하던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나타난 세속적 민족주의와 마르크스 주의는 종교혼합의 전(前) 이슬람적(즉 힌두-애니미즘적) 요소를 강화했다. 그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이슬람 순수주의에 대한평형추로 찬양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그중에는 자신들의 보다 특수한 정치사상을 실현하기 위한 일반 종교적 준거틀로 이용한 사람들도 있었다. - P182

자바 장례식의 분위기는 흥분상태의 이별이나 자제되지 않은 흐느낌, 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형식적인 통곡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조용하고, 감정을 나타내지 않으며, 담담하게 진행되는 것이며, 돌이킬 수없는 관계를 간결히 의례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눈물은 용납되지 않으며장려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즉 일을 잘 마치려는 노력이지, 비탄에 잠겨서 질질 끄는 것이 아니다. 장례식의 세밀한 바쁜 작업, 모든 곳에서 오는이웃들과의 정중하고 의례적인 교제, 약 3년 동안 몇 차례나 개최되는 죽은사람을 위한 슬라메탄 ㅡㅡ 이 모든 자바의 의례체계의 전체적 동력(動力)은사람들로 하여금 심한 감정적 혼란 없이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유족들에게 장례식과 그 이후의 의식은 이클라스(iklas)의 감정, 즉 일종의 의도적 무감정, 초연하고 안정된 "무관심"의 상태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이웃 집단에게는 루쿤(rukun), 즉 "지역 공동체의 조화"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 P187

말리노프스키는 "종교의 모든 근원 중에서 인생 최대의 그리고 최후의위기- 죽음ㅡ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라고 썼다." 그는 죽음은 유족들에게 사랑과 미움이라는 이중의 반응, 즉 인간 존재의 심리적, 사회적 기초 모두를 위협하는 매혹과 공포라고 하는 상반된 양면적 심층심리를 유발시킨다고 주장했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에 대한 그들의 애정에 의해서 그를 향하여 끌려들어가는 동시에 죽음이 가져오는 무서운 육체적 변형에 의해서 죽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진다. - P197

급격한 사회변동은 자바 사회를 분열시켰으며, 이는문화의 해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즉 전통적 촌락사회가 잘 통합되어 있을때는 그 통합성이 슬라메탄에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캄퐁 사회의 붕괴는 우리가 방금 살펴본 장례식의 실례에서처럼 슬라메탄의 붕괴라는형태로 반영된다. 바꾸어 말한다면, 문화의 쇠퇴가 사회의 분열을 유도했으며, 활력 있는 민속 전통의 상실은 사람들간의 도덕적 유대를 약화시켰다.
두 방식 중 어느 방식으로 진술되느냐에 상관없이 이러한 논의에는 두 가지 잘못된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사회적(또는 문화적) 갈등과 사 - P198

회적(또는 문화적) 해체를 동일시하는 점이며, 다른 한 가지는 둘 중에 하나를 단순히 다른 것의 종속현상으로 봄으로써 문화의 구조와 사회구조의 독립된 역할을 부정하는 점이다. - P199

의례는 단지 의미의 패턴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형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덜 분화된 농촌의 배경에서 도시적 맥락으로 종교적 패턴을 옮기려는 시도는 문화적 모호성을 생성시킬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도 야기시킨다. 그것은 그 종교적 유형에 의해서 표현되는 사회 통합의 종류와 사회 일반에서의 주된 통합의 유형이 일치하지않기 때문이다. - P203

사회변화의 동인(動因)은 자신이20Moron무엇인가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세상, 그 본질적 의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느끼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하는 인간의 욕구와 기능하는 사회유기체를유지시키려는 욕구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이 고려되는, 보다역동적인 형태의 기능주의 이론에 의해서만 분명하게 도식화될 수 있다.
"학습된 행위"라는 산만한 문화 개념은 균형잡힌 상호 작용의 패턴으로 사회구조를 보는 정태론적 견해이며, 또한 문화의 구조와 사회구조는 "해체"
상태를 제외하고) 결국 서로의 단순한 투사상에 불과하다는 공언된, 혹은무언의 가정은 파이잔의 불행하지만 교훈적인 장례에 의해서 제기된 것과같은 문제들을 다루기에는 너무도 유치한 개념장치이다. - P205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종교학에 관한 유명한 저서에서 세계종교를 "전통적인(traditional)" 종교와 "합리적인(rationalized)" 종교라는 두이념형으로 구분했다. 비록 이 두 이념형은 극도로 일반화되고 덜 체계적인개념이기는 하지만 종교의 변동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여전히 유용한 개념이다."
이 두 이념형은 종교와 사회가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전통적 종교(베버는 "주술적"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다)는 기존의 사회적관행들을 엄격하게 전형화시킨다. 전통적 종교는 거의 하나하나가 연결되는방식으로 세속적 관습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모든 인간 활동을………상징적 주술의 범주로" 끌어들이고, 그렇게 해서 일상적 삶이 끊임없이 고정되고 확고하게 계획된 과정을 거치도록 해준다." 그러나 합리적 종교는 일상생활의 구체적 실상과 그렇게 전적으로 얽혀 있지 않다. 합리적 종교는 일상생활과 "떨어져서", "그 위에" 또는 "그 외부에" 존재한다. - P207

인간과 신성함 사이의 이러한 엄청난 "거리"의 증가로, 훨씬 더 정교하고비판적인 방식으로 그것들 사이를 유지시켜주는 끈이 필요해진다.
베버는 이것이 성취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한 가지 방식은 예언자, 경전, 기적 등을 통하여 신에 의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윤리적 명령으로 구성된,
의식적으로 체계화되고 형식적인 법적-윤리적 코드를 만듦에 의해서이다.
또 다른 방식은 신비주의, 통찰력, 미적 직관 등에 의해서 요가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고도로 조직화된 영적, 지적 수련의 도움을 받아 신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접하는 방식이다. - P210

이른바 원시종교라고 불리는 많은 종교들도 자의식이 강한비판을 보여주고 있으며, 종교적 사고가 고도의 철학적 정교함에 도달한 사회에서도 전통적인 종류의 민간신앙이 끈질기게 지속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한다면, 세계종교가 씨족, 부족, 촌락의 종교나 민간신앙에 비해서보다 뛰어난 개념적 일반화, 보다 단단한 형식적 통합, 보다 명쾌한 교리를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P211

오늘날 발리에서는 세계사의근본적 종교변동에서 야기되었던 것과 동일한 사회적, 지적 과정의 일부가최소한 상당히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변화나 최종적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그 과정은 교훈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이 독특하고 작은 섬에서다음 수십 년 동안 무엇이 일어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면, 이미 발생했던역사가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종교변동의 역학이 지닌 구체성과 직접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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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 34 ] The Rise of Julius Caesar


Caesar Is Kidnapped

로마는 점점 더 부강해지고 강한 제국이 되어 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왕가와 관련되어 있어 그야말로 정통 귀족이었다(로물루스의 후손이었으며 아버지는 로마법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하는 등). 카이사르는 읽기, 쓰기, 수학, 웅변 등을 교육받았는데 웅변술을 더 배우고 싶어 유명한 선생들이 있다는 지중해 중간의 섬으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지중해는 해적들이 날뛰던 곳, 아니나 다를까 배를 타고 가는데 부유한 옷차림의 그를 알아본 해적들이 카이사르를 납치하여 몸값을 요구한다. 카이사르는 돈을 주고 자신을 풀어주면 너희들을 죽일 것이라 경고한다. 그는 결국 로마로 돌아가 로마 해군을 동원하여 해적을 뒤쫓아 몰살시킨다. 이 일은 카이사르를 유명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The Consuls of Rome

카이사르는 집정관이 되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미 로마에는 2명의 현행 집정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로마의 식민지였던 스페인을 감독하는 일을 맡게 된다. 스페인에서 카이사르는 인정을 받고 유명해진다. 하지만 그는 로마로 돌아가 영향력을 떨치기를 내내 소망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 앉아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삶에 대한 기록을 읽다가 문득 창문을 봤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그림이 자신의 앞에 있었고 그림에는 부케팔루스를 타고 전투에 나가 전사들을 호령하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그림을 보고는 눈물을 흘린 덕분(?)이었는지 로마로 귀환을 허락받게 된다. 이로써 로마에는 3명의 집정관 체제가 들어섰으나 그는 더 많은 권력을 바랐다.


Caesar and the Senate

로마의 원로원들은 집정관을 돕는 존재로 집정관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집정관은 카이사르가 자신들의 말을 잘 듣지 않자 불만에 쌓인다. 

킨키나투스라는 이상적인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아주 옛날 킨키나투스가 로마 집정관 시절일 때다. 그는 고위직에서 은퇴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로마에 이민족들이 침입하여 방화와 약탈을 일삼는다. 로마인들은 출정한 군대가 승리하여 돌아오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고작 5명만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귀환한다. “그들이 너무 강했어요.” 원로원은 혼란에 휩싸였다. 이 때 킨키나투스를 생각한 이들은 그로 하여금 군사훈련을 맡겼고 양성된 군대를 내보내 마침내 로마는 승리할 수 있었다. “우리의 왕이 되주시오. 킨키나투스.” 그러나 그는 “아니오.” 하더니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간다. 



[ Ch 35 ] Caesar the Hero


Caesar Fights the Celts

카이사르는 로마 시민의 신임을 얻기 위해 군사들이 자신에게 완전히 충성하도록 만든다. 그는 영국을 정복하려 한다. 이를 위해 배를 건조하고 병사를 해안에 배치했는데 영국 땅이 춥고 축축한데다 피로까지 겹쳐 병사들이 병에 걸리고 만다. 병사들은 마른 땅을 찾다가 켈트라 불리는 영국인들이 사는 섬 해안에 닿는다. 그들은 키가 크고 근육질이었으며 호전적이었다. 로마병들은 3주간을 그곳에 있었는데 배들이 태풍으로 난파되어 그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패배는 카이사르에게 치욕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승리한 기록만 쓰고 패배한 기록은 남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갈리아 전기를 쓰면서 자신이 잘한 일만 적었다. 이로써 백성들은 그의 영웅적인 면모만 알 수 밖에 없었다. 갈리아 전기를 볼 때 이를 참고해서 봐야할 것 같다. 


Caesar Crosses the Rubicon

카이사르가 로마를 장악해가자 원로원들은 Pompey라고 하는 집정관을 하나 더 두기로 결정한다. Pompey는 카이사르의 딸과 결혼을 하였으나 카이사르에게 질투심이 컸다. 카이사르는 Pompey가 자신을 반역자로 몰아 재판정에 세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카이사르는 원로원들은 자신을 싫어하지만 로마인들은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한다며 살 길이 있을거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루비콘 강을 마침내 건넌다. 카이사르와 그의 군대가 로마에 모습을 나타내자 Pompey 군대는 도망을 친다. 카이사르가 육지에 발을 닿기도 전에 Pompey 또한 도망쳤다. 카이사르는 당당히 로마 땅에 개선할 수 있었다. “Today, when someone has to make an important decision, people still say. “You’re about to cross the Rubicon.” Crossing the Rubicon means that you’re about to do something that you can’t undo. We get this expression from the story of Julius Caesar’s return to Rome. 


Caesar and Cleopatra

카이사르는 사라진 Pompey를 제거하고자 했고 그가 이집트로 갔음을 알고 있었다. 이집트에는 두명의 파라오가 있었다(클레오 파트라와 그녀의 남동생). 그러나 그들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고 카이사르가 이집트로 출발했을 때도 다투고 있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은 Pompey를 체포하여 카이사르에게 넘기면 그와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 한다. 반면 클레오파트라는 폼페이의 머리를 베어 카이사르에게 넘기자 말했고 그녀의 계획대로 되었다. 정작 카이사르는 Pompey에게 겁만 주려는 것이었을 뿐 그를 죽일 의도는 없었다. 클레오파트라를 만났을 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동생을 죽이는 것을 도와달라 한다 했고 카이사르는 그렇게 했다. 클레오파트라의 정치력이 고단수임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져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원로원들과 로마군은 이집트로 진군하여 그를 공격한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싸우는 법을 잊지 않았고 전투에서 승리한다. “I came, I saw, I conquered!”


The Death of Caesar

카이사르는 로마를 모두 수중에 넣었고 마침내 로마로 돌아간다. 그는 독재자였기에 원로원의 기능을 무력화시켰다. 카이사르가 모든 정치를 행하게 되었다. 원로원은 로마의 차기 지도자로 카이사르에게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카이사르는 자신의 조카인 Octavian(옥타비아)에게 임기를 맡기려 하면서 충돌이 벌어진다. 결국 원로원 Brutus(브루투스)가 원로원 회의에 참석(3월 15일) 차 간 카이사르를 칼로 찔러 사망하게 만든다. 참고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친구이기도 했다. Suetonius라고 하는 로마의 작가가 책에 쓰기를 예고된 사망이었다라고 이야기에 적고 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좋아하는 말들을 보러 갔는데 말들이 먹지를 않았고 점쟁이가 3월 15일을 조심하라고 한 것이다. 거기에 아내가 악몽을 꾼 뒤에 불길하다며 회의에 불참하라고 권했으나 카이사르는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He gasped. “You, too, Brutus?” 



[ Ch 36 ] The First Roman Prince


Augustus Caesar

카이사르가 죽을 당시 Octavian(옥타비아)는 19세에 불과했지만 그는 카이사르의 양자여서 부를 이어받게 되었다. 그는 부를 로마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에게도 사랑을 받게 된다. 옥타비아는 원로원에 가서 집정관이 될 것을 요구했으나 원로원들은 그가 너무 어리고 카이사르의 양자인 것도 마음에 걸렸으나 로마인들도 그를 인정하는 것을 보고 그를 집정관으로 수용하게 된다. 옥타비아는 카이사르의 제왕 정치 대신 킨키나투스의 방식을 따랐다. 

어느 날 옥타비아는 원로원들을 불러놓고 로마는 평화로워 더 이상 집정관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으니 일을 그만두겠다 말한다. "당신이 로마에 평화를 가져왔는데 원로원을 그만둔다면 로마는 또 다시 분열될 것이오!"라고 원로원들이 말한다. "로마는 왕이 필요 없소. 난 그저 로마의 시민일 뿐이오." 원로원들은 그에게 "우리는 당신을 'First Citizen'으로 부르겠소." 답한다. "first citizen"는 라틴어이며 영어로는 "prince"이다. 또 그는 기존에 사용하던 "Octavian Caesar"에서 "Augustus Caesar"라는 호칭을 부여받게 되었다. Augustus에서 달력의 8월(August)이 유래되었고, Julius Caesar에서 7월(July)가 유래되었다.



[ Ch 37 ] The Beginning of Christianity


The Birth of Jesus

아우구스투스 치세에 로마는 팍스 로마나(The Roman Peace) 시대였다. 이 무렵 유대 땅(옛 가나안. 현재는 로마에 복속됨)에서 한 아기가 태어난다. 이 아이가 자라서 새로운 종교의 시작이 되는데 성경에서는 이 이야기를 4권의 책에서 "the Gospels."(복음서)에 담고 있다. 

나자렛에 사는 마리아(Mary)라는 유대인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요셉과 결혼을 약속했으나 결혼식은 아직 몇 달 담은 상태였다. 어느 날 신이 마리아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신이 네게 아이를 보낼 텐데 이름을 예수로 지어라!" 마리아가 요셉에게 천사가 자신을 만나러 왔었다고 이야기한다. 마리아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인구를 조사하겠다고 말한다. 요셉은 베들레헴에서 왔기 때문에 둘은 베들레헴으로 간다. 도착해보니 잠잘 데가 없어서 동물들이 자는 곳으로 들어가 예수를 낳는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천사들이 모습을 비추고 섬광이 나타나 양치기들이 두려워했다고 한다. 오늘날 예수는 성인이 되었으며 Christian의 기원이 되었다. "Glory to God in the highest! Peace on earth, good will to men!" 


Jejus Crucified and Resurrected

예수가 유대 땅에서 살며 30년 쯤 지났을 무렵 그는 땅을 돌아다니며 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법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고 이를 "Sermon on the Mount"라고 부른다. 오늘날 신약성서 복음서에 그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러니 유대땅을 다스리던 지도자들이 로마에 반하여 추종자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로마 당국도 예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고 결국 유대인 지도자들 중 일부를 매수하여 예수를 체포하여 반역죄 명목으로 예루살렘에서 처형한다. 복음서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예수 사후 3일이 지나서 그를 따르던 여성 신도들이 그의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입구에 있던 돌을 치우고 무덤을 확인했더니 무덤은 비어 있었다. 반짝이는 옷을 입은 두 명의 천사가 나타나 "예수를 왜 찾는 거지?" 묻는다. "그는 여기에 없어. 부활했지." 여성들은 다른 예수 신도들에게 이야기를 전했으나 아무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예수가 그들 앞에 모습을 보이자 그제서야 그들은 사실을 믿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되었으며 예수를 신의 아들로 여기게 되었다. 이 사람들이 Christi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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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27 0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이사르가 한 말 브루투스 너마저가 나오는군요 불길하다고 하면 가지 말지, 그럴 때 꼭 자신은 괜찮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벌써 일어난 일이니 바뀔 일은 없겠지만... 여기엔 예수가 태어나는 것도 나오는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0-27 09:12   좋아요 2 | URL
맞아요. ˝브루투스 너마저!˝ 친구한테 배신당했다고 느낄 법하죠. 그렇지만 그러기 전 자신의 행위를 돌아봤어야... 킨키나투스나 아우구스투스 같이 권력에 욕심을 두지 않았다면 원로원들에게 불안감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성서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 저 같은 무신자들도 예수의 탄생과정은 익숙하네요.

책읽는나무 2023-10-27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1등 화가 님^^

2023-10-27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27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