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은 왜 인류의 고전이 되었나 - <구약 읽기>_크리스틴 헤이스


종교학자인 크리스틴 헤이스가 쓴 <구약 읽기>는 유대 민족 역사서이자 서양 종교 원형이 된 성경의 안내서이다.

성서학자 예헤즈켈 카우프만(1889~1963)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유일신교는 당시 근동 지방의 다신교와 벌인 투쟁의 산물이라 보았다. 헤이스는 이 설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런 투쟁이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벌어졌음을 강조한다. <구약 성서>는 성격이 다른 수많은 자료로 구성돼 있다. 두 가지 판본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전승돼 오던 여러 텍스트를 가져와 편집하여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거나 상충하는 내용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반영웅의 구약 성서읽기 - <처음 만나는 구약성서>_장 루이 스카


이 책은 20세기 문학사가 에리히 아우어바흐가 대표작 <미메시스>에서 보여준 <구약성서> 해석에 주목한다. 아우어바흐는 <미메시스> 첫 장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19장의 오디세우스 이야기와 <구약 성서> <창세기>의 아브라함-이삭 이야기를 비교한다. 호메로스의 서술이 "구체적인 묘사, 균등한 조명, 중단 없는 연관, 거침없는 표현, 모든 사건의 전경 배치, 의심의 여지 없는 의미의 전시" 따위를 특징으로 한다면, <구약 성서>의 서술은 "어떤 특정한 부분을 강력히 조명하고 다른 것은 어둠 속에 버려 두는 수법, 갑작스러운 당돌함, 표현돼 있지 않은 것의 암시력" 따위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또 다른 차이는 인물의 성격과 문체의 특성에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귀족 계급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숭고한 문체로 묘사하는 데 반해, <구약 성서>의 이야기는 영웅적이지 못한 인물들을 민중적 산문체로 간명하게 서술한다. 


다시 쓰는 세계철학사 - <세계철학사 1>_이정우


저자는 2000년 철학연구공동체인 철학아카데미를 세운 뒤 줄곧 철학사 강의를 해 왔는데, 그 강의록이 이 저작의 바탕이 됐다.

현재 3권까지 나온 이 책은 4권이 시리즈 완간인데 4권 출간 알림을 해둔 상태다. 시리즈 완간이 되었을 때 읽어보고자 생각하고 있는 셈!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철학 전공자이자 전문가가 쓴 책이고 또 국내 저자가 쓴 세계철학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철학사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국내 저작은 없어서 아쉬웠었다. 게다가 서양 철학사에만 국한되 있거나 있다 해도 비중이 극히 약했던 전례를 깨고 인도와 동아시아 철학을 포함한 '아시아 철학'을 시리즈 2권에 담았다. 

첫 권도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에서 시작해 서구 중세 철학으로 이어지는 통상의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와 오리엔트 지역을 아우르는 서술 방식을 택해 궁금증을 일으킨다. 


'암흑의 유럽' 깨운 이슬람 스페인 - <스페인의 역사>_브라이언 캐틀러스


이 책은 중세 스페인을 새로운 관점으로 서술한 역사서다. 전통적 중세 스페인사 서술은 '레콩키스타'를 중심에 두어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싸움 끝에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을 몰아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가 함께 공존하며 융합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관점의 서술이다. 두 관점 모두 역사를 온전하게 담아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캐틀러스가 내놓은 관점은 "중세 스페인은 인종과 종교가 다른 공동체들이 편의에 따라 함께 모여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충돌이나 관용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랐다.'이다. 

중세 스페인 역사는 '근대 세계'를 만든 유럽 문명의 문이다. 전통적인 유럽사 서술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가 중세에 재발견되어 근대 유럽을 낳았다'라고 말하지만 어떤 경로로 고대 그리스 로마가 재발견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는데 그 답을 주는 것이 중세 스페인 문화라는 것이다. 전통적 서술의 중세 스페인 역사만 알고 있어서인지 이 관점이 새롭게 느껴진다. 



헤이스는 신이 역사를 통해 인간들에게 도덕적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야말로<구약 성서》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신의 도덕 명령을 대행하는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선지자라고 해서 모두 신의 뜻을 대행하는 자들인 건 아니다. <구약 성서》는 유다와 이스 - P199

라엘의 왕들이 예언자들을 고용해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써먹었음을
알려준다. 후대의 성서 편집자들은 궁정 예언자들의 거짓에 맞서 신의뜻을 바르게 전하는 참된 선지자들을 부각했다.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라는 문제를 신앙의 본질과 연결한 것이야말로 <구약 성서》가 인류의 고전으로남은 이유라고 이 책은 말한다. - P200

장 루이 스카는 성서를 일종의 교향곡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음표 하나하나는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지만 그것들이모두 모여 교향곡의 총체적 아름다움을 빚어내듯이, 성서도 그렇게 전체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개별적인 사실들에 있는 것이아니라 전체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헤겔의 말은 《구약 성서》에도 들어맞는다. 텍스트의 한 면을 절대화하는 것이야말로 독서를 위험에 빠뜨린다. 그 위험을 피하려면 전체를 보아야 한다. 스카는 거듭 말한다. "구약 성서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던지는 모든 물음에 완전히 답하는 경우는 없다." 이야기들은 물음을 통해 독자에게 길을 제시하고 안내할 뿐이다. - P205

이정우는 초국적 기업 중심의 비인간적 세계화를 넘어 보편성을 지닌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 과제를 해결할 비전을 찾아내려면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를 역으로 음미한 뒤 현재로 돌아오는 거시적인 지적 성찰이 필수적이다. 세계철학사집필은 과거를 경유해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 P210

왜 중세 스페인 역사가 오늘날 관심의 대상이 되는가? 한마디로 줄여, 중세 스페인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근대 세계‘를 만든럽 문명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유럽사 서술은 ‘중세 후기에 고대 그리스·로마가 재발견됐고 그 재발견이 르네상스를 이끌었 - P236

으며 근대 유럽을 낳았다‘고 뭉뚱그렸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고대 그리스-로마가 재발견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물음에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알 안달루스‘ 곧 ‘이슬람이 지배하던 스페인‘의 지식문화다. 이 스페인 이슬람 문화가 옛 영광을 잃어버리고 ‘암흑‘ 속에 잠자던 중세 유럽을 흔들어 깨웠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억해 둘 것은 중세 스페인의 이슬람 문화가 더 보편적인 아랍 · 페르시아 이슬람 문명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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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의 역사
메리 보이스 지음, 공원국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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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구약성서
장 루이 스카 지음, 박요한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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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읽기- 역사와 문헌
크리스틴 헤이스 지음, 김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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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 이야기 : 구약편
김호동 지음 / 까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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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7~11장의 내용은 공감이 잘 안 가서인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7장의 '욕'은 뜬금이 없었다. 갑자기 왜 욕이 등장할까? 나는 욕을 혼자 내뱉는 것은 상관없지만 대화를 할 때 써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욕을 쓰면 일단 대화의 격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불평이나 분노를 해야 할 상황에 꼭 욕만이 답은 아니지 않나? 더군다나 욕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굳이 그런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자신의 힘을 이상하게 과시하는 등의 용도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생각하지도 않고 막 뱉어내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8~9장: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


목소리의 특질 중에서 음정은 독특한 성격을 띤다. 음량, 톤, 심지어 개인의 모국어와도 달리, 유일하게 생리학에 의해서 좌우된다. 평균적으로 남성의 성대는 여성 성대보다 조금 더 길다. 언어학자들은 낮은 음정이 더 큰 몸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낮은 음정은 지배나 역량과 관련 있었다. - P257


2015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셰릴 샌드버그는 "여성으로서 말하는 일의 이중 억압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은 간단하다고 적었다. 여성 상사를 더 많이 뽑는 것이다. - P268

여성이 이끌고 남성이 따라가는 일이 정상화될수록, 여성이 '새된' 소리나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고 말할 일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여성과 종속적인 태도가 자동적으로 연합될 일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젠더가 어떻게 들려야 하고 권력이 어떻게 들려야 하느니에 대해서 서로 잘못 연결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 P269


어릴 적 나는 목소리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합창단의 구성으로 따지면 '알토'와 '메조 소프라노'에 어중간하게 걸린 낮은 음성이었는데 누가 내 목소리를 들을 때 남자 목소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오해를 많이 받았었다. 맑고 높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갖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걸걸하고 낮고 탁한 목소리를 가졌을 뿐이라 목소리를 바꿀 수는 없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더 낮아졌다. 

공적인 자리에서 목소리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낮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서 임팩트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굳이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다르다고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성이 누구나 인정하는 리더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주는 목소리에만 집중할까? 결국 그 사람의 능력과 내용이 주는 것이 큰 것이 아닐까.  

 


10장


기쁨을 위한 섹스에 대한 담론, 즐거움을 생식과 분리하는 담론, 여성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며 성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하며 발기한 페니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기존의 권력 구조에 도전하고 이에 직면할 수 있다. 상호적인 탐색, 소통, 발견, 서로를 기쁘게 해 주는 새로운 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삽입은 다가 아니라, 에로틱한 기쁨을 찾는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이다. - P317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성애 중심의 성과 섹스의 용어에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힘과 문제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겠다. 결국 이를 위한 해결 방법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 구조에 의한 폭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성애가 다가 아니라는 기본 전제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11장: 여성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까?


"저는 늘 '여성의 인식을 표현한다'는 언어에 담긴 생각에 회의적입니다. 그게 어떤 인식이고, 어떤 여성에게 속하게 되는 걸까요?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인식의 집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집단적 자매애를 느끼는 건 좋지만, 여성의 경험은 복잡한 스펙트럼을 구성하고, '자매애'는 하나만 의미하지 않는다. - P330


"언어는 페미니즘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지가 있을 때 (1970년대처럼) 더욱 페미니즘적인 방향으로 갔어요." 캐머런은 말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침묵을 거부하고, 페미니즘을 확산하도록 싸우는 것이겠지요."


인용문처럼 나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단기간에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과연 될까 싶은 생각도 있지만 현재의 페미니즘이 더 진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라야 개선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목소리로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 P275

게이 남성들이 여성처럼 말한다는 문화적 스테레오 타입은 모든 여성이 업토크를 한다거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에 사람들에 대한 가십을 즐긴다는 것만큼이나 취약하다. - P283

화자의 이데올로기를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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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9-18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도 나오는군요?
며칠 전 만두 님 서재에서도 얼핏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언어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언어에 영혼이 깃든다고 어떻게 말을 쓰느냐에 따라 권력의 우선권을 가진다는 건 참 뭐라 형용할 수가 없네요.

거리의화가 2023-09-19 09:07   좋아요 1 | URL
네. 제가 평소 욕과 친하지 않기도 하고 저자가 가진 욕에 대한 생각이 저와 맞지 않음을 느꼈어요.
저도 언어가 가진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위에 따라서 그 힘이 부여되는 만큼 더 잘 사용해야겠죠.

희선 2023-09-19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목소리보다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더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목소리로 사기 치는 사람이 있기도 하네요 그런 데 속으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이 속을지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3-09-19 09:0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희선님 생각과 비슷해요! 목소리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로 사기치기!ㅋㅋ 그러네요. 번지르르한 목소리에 속아넘어가면 안되겠지요. 역시 내용이 중요^^
 

[ 단오절 ]
중국어에 ‘그게 그것(差不多)’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이 말을 쓰는 경우는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정도의 말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 팡쉬엔춰는 이 말을 요즘 입버릇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그가 이 말을 사용할 때가 대부분 이 말과는 관련 없거나 적당하지 않은 상황인 경우가 많다. 곤란하거나 불평이나 분노해야 할 상황을 애매하게 넘어가기 위해서 이 말을 쓰는 것이다.

팡쉬엔춰는 교원의 월급이 반 년 밀려 다른 교원들과 동맹휴업을 결행한다. 수업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교원이 돈을 요구하는 것은 고상하지 못하다는 말로 위안한다. 아내가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도 반찬 투정은 하면서도 돈을 받아내는 것은 왜 어려워하는건가?

내가 만약 wife 입장이라면 같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은데 말이다.

자신이사회악과 싸울 용기가 없기 때문에 양심을 저버리고 고의로 도피할 길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이건 혹시 ‘시비(是非)를 가리는마음이 없는 것‘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고치는 것이 훨씬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도리어그의 머릿속에서만 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 ‘그게 그것‘을 최초로 공표한 것은 베이징의 서우산학교(北京首善學校)의 강당에서였다. 그때 아마 역사상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별로 다르지 않다古今相遠는 것을 말하고,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일지라도 "성격은 비슷하다"고 말하는 데까지 이르더니, 끝내는 학생과 관료의 신상에까지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일대 열변을 토한 것이다.
"현재 사회에서의 유행이 관료를 욕하는 것인데 학생들이 더욱심하게 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료라고 결코 타고난 특별한종족이 아니라 바로 평민이 변해서 된 것입니다. 지금 학생 출신의 관료도 적지 않은데, 그들이 나이 든 관료와 무슨 다른 점이있습니까? ‘자리를 바꾸면 다 그런 것(易地則皆然] 이니, 사상, 언론,행동, 풍채에 무슨 커다란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 단체가 새로 하고 있는 많은 사업도 폐해를 면치못하거니와, 대부분은 연기나 불같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않았습니까? 그게 그것입니다. 중국의 장래 걱정거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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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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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내용이 짐작 가능한 책들이 있다. 이 책은 내겐 그렇지 않은 책이었다. ’피에 젖은 땅’은 BloodLand의 번역어이다. 이는 소련 서부로 구체적으로는 지금의 러시아 서부 일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폴란드를 의미한다. 그럼 이 땅에서 피에 젖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을 예상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역사 분야의 신간이 나오면 으레 살펴보기 마련인데 이 책이 발간된 무렵도 그랬다. 다만 시간을 두고 읽기를 원해서 미루어 두었다(역사 하위 분야 중에서도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으면 신간을 바로 사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 궁금한 경우가 아니면 좀 묵혀 두었다 평가를 보고 읽는 편이다). 그동안 보관함에 묵혀두었다가 다른 신간이 나왔길래 이 책으로 미리 예열을 해볼까 해서 이제 접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전체적으로 앞 수식이 길고 명사로 끝나는 문장의 번역어 투가 강해서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사용하는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이 안 되어서 잘 읽히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중반 이후에는 독자도 문체에 적응하기 마련이어서 나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치주의와 스탈린 체제는 블러드랜드에서 1400만 명 이상의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1932년 스탈린은 소련령 우크라이나에 집단화 정책을 실시하며 300만 명을, 1937년에서 1938년 사이에는 대공포 실시로 부농들과 소수 민족 70만 명을 학살했다. 1939년에서 1941년 사이 소련과 독일이 합동하여 폴란드 국민 20만 명을 학살했다. 1941년 스탈린을 배신하고 전쟁을 선택한 히틀러는 소련 전쟁포로와 민간인 400만 이상의 목숨을, 점령지 소련과 폴란드, 발트3국에서 540만 명의 유대인의 목숨을, 벨라루스와 폴란드 바르샤바의 빨치산 전투로 50만의 민간인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사건에 가담한 인물, 그리고 관련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이 책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숫자 안에 포함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집중하여 읽었다. 


1932년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진 집단화 정책으로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 무렵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동요가 아이들에게 불렸다고 한다. 이는 결코 아름다운 동요가 아니라 잔혹한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동요에서 당시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스탈린 아버지, 이걸 보세요

집단농장은 정말 정말 멋지다나요

오두막은 망가졌고, 헛간은 꼴랑 내려앉았죠

말은 몽땅 지쳐서 주저앉았죠

오두막에는 망치와 낫이

헛간에는 죽음과 굶주림이 있대요

소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고, 돼지도 몽땅 사라졌대요

꼴랑 벽에 걸린 스탈린 아버지 사진만 있대요

아빠 엄마는 집단농장에 계세요

불쌍한 아이는 혼자 울면서 걸어간대요

빵도 없어요, 기름기도 없어요

공산당이 모조리 쓸어갔어요

친절함도 부드러움도 쓸려갔어요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어요

당원은 아버지를 때리고 밟고

우릴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버리죠


1937년과 1938년 사이 대공포 시대 소련 서부 지역은 살육과 매장이 곳곳에 자행되었다. 일명 폴란드 박멸 작전으로 내무인민위원회 전담은 갑자기 마을에 나타나 지정된 숫자의 사람을 잡아들이고, 고문과 자백을 강요한 뒤 처형을 집행했다. 

체포된 남편의 아내들은 음식과 깨끗한 속옷을 들고 매일 의례적으로 면회를 갔다. 간수들은 더럽혀진 속옷을 건네주었다. 더럽혀진 속옷은 남편이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기에, 아내들은 기쁜 마음으로 속옷을 받았다. 간혹 남편들이 몰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 남편은 아내에게 보낸 속옷에 이렇게 적었다. “감옥생활이 너무 힘들어. 난 죄가 없는데.” 어떤 날은 속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 이튿날에는 속옷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남편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음을 의미했다. 


1941년 레닌그라드 봉쇄가 있었던 겨울의 기온은 혹독했는데 사전에 비축해둔 식량과 땔감, 물이 떨어지자 10년 전 우크라이나의 기근의 상황이 이 곳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레닌그라드 포위 당시 소녀였던 반다 즈비예리예바는 훗날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며 그녀를 향한 사랑과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는 참 아름다운 분이었어요. 그분의 얼굴은 모나리자와도 견줄만했을 겁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아 그리스 여신상을 만들 만큼 예술가적 기질이 충만한 물리학자였다. 온 가족이 배고픔에 쓰러져가던 1941년 말,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구할 배급 카드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반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낫을 든 채 그녀 곁에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저항했고 어머니를, 아니면 “그녀의 모습만 하고 있던, 그녀의 그림자”를 떨쳐냈다. 즈비예리예바는 어머니의 행동을 자신을 구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했다. 자신을 빨리 죽여줌으로써 굶주림에 더는 고통받지 않게 해주려고 그랬으리라. 이튿날 그녀의 아버지가 먹을거리를 가지고 돌아왔지만, 어머니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불과 몇 시간 뒤 어머니는 숨이 멎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시신을 묻을 수 있을 만큼 땅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그녀의 시신을 바느질한 담요로 감싸 부엌에 놓아두었다. 아파트가 너무나 추웠기에 어머니의 시신이 썩는 일은 없었다. 봄이 되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전쟁에서 밀리게 된 히틀러는 유대인 절멸에 대한 계획을 실천해 나간다. 


“러시아 중부” 나치 친위대 상급 장교 및 경찰 지휘를 맡은 이는 벨라루스에서 여성 및 아이를 죽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느 독일인(오스트리아인) 경찰은 부인에게 쓴 편지에서 10월의 첫째 날 벌어진 유대인 사살 작전에 대한 자신의 심경과 경험을 밝히고 있다. “처음으로 총구를 당겼을 때, 내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소. 허나 누구나 이내 익숙해지는 법이지. 열 번째가 되자 나는 수많은 여자, 어린이, 심지어 갓난아이까지 차분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조준 사살하게 되었다오. 내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은 이 무리들을 살려두면 이들이 분명 내가 그들에게 했던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집에 있는 우리 두 젖먹이에게 그 못지않은 짓을 하리라는 것이었소. 우리가 그들에게 선사한 죽음은 게페우GPU 교도소의 수천만 명이 겪은 지옥 같은 고통에 비하면, 오히려 고통 없이 빠르게 죽여주는 아름다운 것이었소. 젖먹이들은 큰 원을 그리듯 공중으로 내던져졌는데, 우리는 그들의 몸뚱어리가 구덩이나 물에 떨어지기 전에 사격, 말 그대로 공중에서 갈가리 찢어버렸소.” 1941년 10월의 둘째 그리고 셋째 날, 독일인들은 (우크라이나 보조 경찰 인력의 도움을 받아) 모길료프의 남성, 여성, 아이 2273명을 사살했다. 그달 19일 또 다른 3726명이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독일 경찰들은 유대인 경찰들에게 특정 시간까지 주어진 장소에 유대인들을 끌어모으라고 지시했다. 먼저, 유대인들을 꾀어내기 위해 흔히 해당 장소로 나오면 음식을 내준다거나 좀더 유리한 “동부” 노동 인력으로 배정되었다는 등의 거짓 약속들이 주어진다. 그러고는 끌어모으기 작업이 진행되는 며칠 동안, 독일인 및 유대인 경찰들은 특정 구역 혹은 가옥들을 봉쇄하고 강제력을 동원해 해당 구역에 있는 사람들을 집합지로 몰아간다. 어린아이, 임신부, 장애인, 나이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았다. 베우제츠 수용소에 이동한 그들은 먼저 살균 소독을 위해 어떤 건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살균 소독 후 돌려줄 테니 입고 있던 옷가지와 귀중품을 내놓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다음이자 마지막 단계에서, 그들은 발가벗은 채 이내 엔진 배기가스(일산화탄소가 들어 있는)로 가득 차게 될 정체불명의 방으로 들어간다. 베우제츠에 내린 유대인들 중 겨우 2~3명만이 목숨을 건졌고, 나머지 약 43만4508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스탈린은 소비에트 공산주의 하에 집단화 정책으로 특히 우크라이나에 기근을 불러와 대참사를 일으켰으며 부농 및 소수 민족을 대량 학살하는 일을 저질렀고 히틀러는 유대인을 절멸하는 것으로 나치 숭배와 전쟁 승리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나치와 소련을 비인간화하여 몰아 그들을 가해자로 규정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너무 단순하고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이 말에 동의했다. 


범죄자를 단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따라서 그의 존재가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는 편리하다. 경제의 중요성과 정치의 복잡성을 무시해버리고, 그런 요인들이 사실상 역사의 죄인들이자 나중에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할 자들과 매한가지라고 치부해버리면 더 편안할 수 있다. 더 유혹적이 될 만한 것은, 적어도 오늘날 서구인들에게는, 희생자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들이 블러드랜드의 범죄자와 방관자들이 대면해야 했던 역사적 배경과 같은 배경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희생자와 자기 자신의 동일시는 스스로는 범죄자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기억을 지우는 일에 방조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해자의 행위에 집중하여 사건의 실체를 돌아보지 못하고 정작 버려지거나 지워진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죽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숫자가 아닌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죽은 사람들은 기억된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기억할 힘이 있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판단한다. 나중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들의 죽음의 이유를 정한다. 의미가 살육 행위에서 나온다면, 문제는 더 많은 살육은 더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각각의 사망 기록은 하나의 독특한 삶에 대해 그 존재를 제시하지만, 내용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 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대규모 학살에 심층 조사를 실시한 경우는 홀로코스트로, 570만 명의 유대인이 죽었고 그 가운데 540만 명이 독일의 손에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숫자도, 다른 숫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만 추상적인 ‘570만’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하나의 570만 배’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은 뭐랄까, 한 사람의 유대인이 570만 번 죽었다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 기억될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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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9-18 0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숫자로 말할 때가 많기는 하죠 한사람 한사람을 알면 전쟁 같은 거 일으키려 하지 않을지도 모를 텐데 싶네요 그렇게 해도 전쟁을 일으킬 사람 있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보다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으면 좋을 텐데... 한사람이 많은 사람을 이끌면, 히틀러처럼... 그런 것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기도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자기 생각이나 마음을 지키기 어렵기는 하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9-18 09:06   좋아요 2 | URL
이 책을 보면 기근으로 굶주려서 죽거나 수용소에 끌려가 죽거나 그런 세세한 사연들이 여럿 나옵니다. 그래서 읽는 게 괴롭기도 했는데 보통 우리가 전쟁사 하면 가해자에 주목하거나 전투의 면면만 살펴보기 쉬워서 주목하기 어렵죠. 그런 면에서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3-09-18 1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베를린 함락>도 만만치 않네요. 붉은 군대가 복수한다고 독일 여성들 강간하는 장면이 너무 생생하.......-_- 독일 여성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소련의 어린 소녀들한테도... 하....... 전쟁.

거리의화가 2023-09-18 10:38   좋아요 2 | URL
사실 이 책에도 그런 장면들이 여럿 나오는데 올릴까 하다가 비참해서 넘겼는데 <베를린 함락>은 더 할 듯한 예감이... 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도 떠올랐습니다. 우크라이나가 그 때도 많은 피해를 입었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슬프네요 진짜ㅜㅜ

잠자냥 2023-09-18 10:45   좋아요 2 | URL
x놈들.. 전쟁은 남자놈들이 벌여놓구 피해는 여성과 아이들이 고스란히... 하.....(쌍욕했다가 화가님 서재라서 지움요 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9-18 10:57   좋아요 2 | URL
전쟁하면 피해는 약자들만 받는 구조기 때문에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욕은 저도 하면서 읽었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