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2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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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 2권은 1권보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다.


초반에는 한나라 초기 공신들이나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이 나온다. 물론 왕에게 아첨했거나 전투에서 공은 세우는데애만 목적이 있어 비판을 받을 만한 인물들도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창이나 역생, 육가, 유경은 호(好) 쪽에 가깝다면 부관, 근흡, 주설은 한나라 고조 곁에서 신하로 봉호를 받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숙손통은 초한 전투 때 항우를 따랐다가 유방에게 투항한 사람이고 계포도 그 싸움에서 유방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장수였는데 나중에 유방에게 투항했다.

이 중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인물들은 직언과 간언을 한 아래와 같은 이들이었다.

역이기(역생)은 출신이 가난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낮추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유방을 처음 만났을 때 예의가 없다고 한 방 먹였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 때 패공은 침상에 걸터 앉은 채 발을 씻고 있는 상태였다. "진실로 사람들을 모으고 의병들을 합쳐서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자 하신다면 걸터앉은 자세로 나이든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패공은 바로 발 씻던 것을 그만두고 의관을 정제하고 상석에서 그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역생은 관직에 등용되었고 사신으로 제나라 왕과 재상을 상대로 협상해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꿇리지 않고 지략과 담대함을 보여 설득해서 이익을 얻어내었다.

원앙은 강직한 성품으로 간언을 많이 하였다. 강후 주발이 황제 앞에서도 위아래 구분을 못하고 교만함을 보이자 그가 공신이지 사직의 신하는 아니라며 따끔히 일침을 가했고 회남왕이 시무의 태자의 모반에 연루되자 그를 촉 땅으로 보냈을 때 강직한 성품에 문제가 될까 염려된다고 간언했다(결국 회남왕은 가는 길에 병을 얻어 죽었다). 이에 마음 아파하는 황제를 보며 회남왕의 세 아들을 왕으로 삼게 하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권세를 누렸지만 그만큼 질시를 많이 받았을 것을 짐작케 한다. 최후도 정적이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 법 집행을 맡고 있었던(정위) 신하다. 문제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다 어떤 사람이 갑작스레 다리 아래에서 뛰어나와 놀라는 상황이 발생했다. 장석지는 그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벌금형에 내렸는데 황제는 "이놈이 내 말을 놀라게 했고. 내 말이 온순하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말 같았으면 나를 떨어뜨려 다치게 하였을 것이오. 그런데 벌금형?" 그 말에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법은 한쪽으로 기울면 백성은 그들의 손과 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라는 말로 폐하를 납득시켰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오늘날 한국의 법을 실행하고 집행하는 이들은 공정하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순리 열전'과 '혹리 열전'에서는 순리(청렴한 관리)와 혹리(포악한 관리)를 비교함으로써 관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당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리 태도 지침서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무제 때 중앙 집권이 강화되면서 관리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전쟁으로 나라는 혼란한데 지나치게 엄격한 법을 적용하면서 관리들이 뒷주머니를 차고 도적이 횡행하였으며 농민 봉기가 폭증하였다. 법령과 형벌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적당한지,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인상깊게 본 주제들을 묶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면 한나라 주변의 땅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흉노 열전'은 개인적으로 사마천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흉노 정벌은 한 무제의 치적으로 주로 이야기되지만 사마천은 기본적으로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포함되어 있지만 무제가 관리를 잘못 기용했다는 비판도 들어가 있다(물론 이 때 활약을 한 위청, 곽거병 장군 같은 인물도 있다).
'남월 열전'은 진나라 말기에 조타가 자칭 왕이라고 나섰던 곳인데 무제 때 한나라에 편입되는 남월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동월 열전'은 남월의 동쪽이라고 해서 동월 지역인데 지금의 복건성 지방의 이야기다. 진나라 말 반란 세력이 들고 일어설 때 이 지역도 반기를 들었고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할 때 이 지역에 왕을 봉하게 되었다.
'조선 열전'은 기자 조선에 연결되는 이야기로 위만이 평양에 들어가면서 한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남이 열전'은 '서이'와 '남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운남성, 귀주성, 사천성 등 서남쪽인데 중원에서 먼 데다 소수 민족으로 중국 전체에서도 멸시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어서 문화적으로 황무지라 여기기도 한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고 부락의 개수도 많다. 한 무제 때 확장 정책을 이 곳도 피해갈 수 없었다.
'대원 열전'은 지금의 티베트 분지 지역으로 한혈마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인데 한무제가 이광리를 보내 정벌의 대상으로 삼은 곳이다. 장건의 서역 행로와 겹치기 때문에 관련하여 읽을 수 있다.
이 열전들의 특징은 이 곳 땅과 사람들의 특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를 공부할 때 중원은 사실 영역의 범위가 넓지 않은데 진/한나라를 둘러싼 다양한 지역의 땅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인 듯하다(물론 오류도 있겠지만).

의술과 점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편작 창공 열전'의 편작과 창공은 명의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특히 편작은 진나라 때 전설적인 명의였고 침을 놓는 일, 탕약을 짓는 일 모두에 뛰어났다고 한다. 창공은 편작에 영향을 받았고 그에 버금가는 명의였으나 편작의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둔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 편은 이 시기 한의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당시 실제 환자의 상태로 맥을 짚고 병명을 진단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놀라웠다.

이어서 '일자 열전'과 '귀책 열전'도 흥미로웠는데 바로 점술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 역사에서 점술 기록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인데 아마도 고대 사람들은 하늘, 거북이 등껍질, 시초 등으로 운을 점치면서 미래에 대한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자'는 하늘의 상태를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귀책'은 거북 껍질과 시초로 점을 치는 것이다. 일자는 한나라 때 아주 성행했고 귀책은 은/주 나라에서 성행했다(갑골 문자를 생각해보셔도)

협객과 장사꾼 이야기도 있다. 사마천은 둘을 모두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협객 이야기는 '유협 열전'에 실려 있다. 사마천이 생각하는 협객은 내가 생각하는 협객보다 범위가 더 컸다. 통치 계층의 악행을 도와 개인의 영달을 취하는 자도 협객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정의의 편에 서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만 협객이라고 생각했었다. 협객(유협)은 춘추전국시대 혼란한 사회상을 타고 일제히 터져 나왔지만 진한 통일기가 되면 타도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존재가 되었다.
장사꾼 이야기는 '화식 열전'에 실려 있다. 돈을 버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수단으로 벌어들인 것이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다양한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마천이 상업을 나쁘게 보지 않았고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장려되던 시기에 이런 주장은 파격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중국 전역의 나라 별로 땅의 특성에 따라(습기, 바람 등) 어떤 산업이 발달했는지 기술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로써 중국 진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음의 역사로 넘어가려고 한다. 넓은 땅,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가 여전히 필독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 그리고 사기 열전이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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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02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 이야기를 담았네요 역사책 하면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더 많기도 하잖아요 사마천 열전은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어서 더 재미있겠습니다 그렇게 쓰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2 12: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있어요. 사람들 사는 것은 지금과 비슷하구나 느낄 수가 있어요. 특히 관리들의 자세를 보면서 정권의 수뇌부들이 좀 보고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울목 2023-05-05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한나라를 위해 대책을 세운 사람은 조착이었지만 누명을 씌운 사람은 원앙이었다.그리고 오초칠국의 난으로다급하니 조착의 온 집안을 몰살시킨이는 한경제였다. 한경제는 오초칠국의 난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그 아들 한무제와 아울러 잔혹한 황제였다.황제는 강후 주발과 그 아들 주아부는 한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음에도 그만한 대접을 하지 않았다.
장석지는 한문제에게 말을 놀래킨자를 그 자리에서 처형했으면 그것으로 끝났다는 말도 했기에 반은 잘하고 반은 잘못한것이다. 애당초 처형할만한 잘못이 아님에도 장석지 본인이 판결하기전에 황제가 처형했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인명을 경시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전진왕 부견은 비수대전의 패배로 비난받지만 인명을 소중히 한 사람였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기에 그 최후는 너무 안타까왔다. 후연의 모용수도 그 신하에게 과거 부견이 대해준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라고하였으니말이다.
역사에서 나라가 혼란스러울때 그나마 나라를 나라답게지탱하는 것은 법을 판결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정의로움으로만 있는 사람인줄 알았던 좌파정권때의 사람들을 보면 공자가 말을 교활하게 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는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박근혜정권시절에 그 다음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서 우파를 털고 그다음엔 다시 우파가 정권을 잡아서 운동권 사기꾼 좌파를 털어서 서로 혼이 나야만 선을 넘는 짓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의 좌파를 보면 전태일 열사나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사후에 만나면 과연 떳떳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김유신장군과 그 부인은 패배하고 살아남은 원술을 만나지 않았는데, 뇌물을 받은 아들을 둔 김대중대통령은 5.18영령들을 바라보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여담으로 고위직의 여성분이 정권이 바뀐후에 제자들을 초대해서 지난정권의 김**님의 자식인 김~~의 교육을 어머님이 잘못시킨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한다.세월이 흘러 고위직 여성분의 아들 셋이 전부 뇌물관련하여 문제가 생기자 ,그때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지 아들들은‘하며 빈정대었다한다.
 

지금의 복자는 천지를 본받고 사계절을 모방하며, 인의에 순응하여 책점치는 시초을 나눠 화를 정하고 식을 돌려 기산木를 바로잡은 뒤에야 비로소 천지의 이해제와 일의 성패를 말합니다. - P775

왕들은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것을 결정할 때마다 복서를 참고하고 시초나 귀갑甲으로 결단을 내렸는데, 이것은 바꿀 수 없는 도道규칙이다. - P785

"바깥 징조는 남 일이고 안 징조는 자기 일이다. 바깥 징조는 여자일이고 안 징조는 남자 일이다. 머리를 숙이는 것은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다. 큰 균열은 몸으로, 작은 균열은 가지로 판단한다. 그것은대체로 이렇다. 환자는 발이 오므라들면 살고 펴지면 죽는다. 오는사람은 발이 펴지면 오고 오므라들면 오지 않는다. 가는 사람은 발이 오므라들면 가서는 안 되고 펴지면 가야 한다. 구하는 것은 발이펴지면 뜻대로 되고 오므라들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감옥에 갇힌사람은 발이 오므라들면 풀려나지 못하고 펴지면 풀려난다. 환자를점친 경우 발이 펴졌는데도 죽는 것은 안이 높고 밖이 낮기 때문이다." - P834

이런 것으로 미루어볼때 부유해지는 데에는 정해진 직업이 없고, 재물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모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기왓장 부서지듯 흩어진다. 천금의 부자는 한 도읍의 군주에 맞먹고 기만 글을 가진 부자는 왕과즐거움을 같이한다. 그들이야말로 어씩 이른바 소봉이라고 할만한 자들인가? 아닌가?" - P863

『춘추』는옳고 그름을 분별하므로 사람을 다스리는 일에 대한 서술이 뛰어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기』는 사람을 절도 있게 하고, 『악경』은사람의 마음을 화합시켜 주며, 『서경』은 사실을 말하고, 『시경』은감정을 표현하여 전하며, 『역경』은 변화에 대해 말하고, 『춘추』는도의를 가르칩니다.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바른 데로 이끄는 것으로 『춘추』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 P878

지금 나는 기록하는 벼슬인 사관이 되었으면서도 밝고 거룩한 천자의 덕을 버려둔 채 기록하지 않고 공신功臣과 세가世家와 현대부賢大夫의 업적을 없앤 채 기술하지 않았으니, 선친께서 남긴 말씀을 어긴 것으로 이보다 큰 죄는 없습니다. 나는 이른바 지난 일들을 적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간추려 정리하려 할 뿐 창작하려는 게 아닙니다. - P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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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p

공손홍은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다.

신이 듣건대 천하에는 변하지 않는 도가 다섯 가지 있고, 이것을 실행하는 방법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군신, 부자, 형제, 부부, 장유의 순서 이 다섯 가지는 천하의 변하지 않는 도입니다. 그리고 지, 인, 용勇이 세 가지는 천하에 변하지 않는 덕으로 그것을 실행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실행에 힘쓰는 것은 인에 가깝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에 가까우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에 가깝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알면 스스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알게 되고, 스스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안 뒤라야 남을 다스릴 줄 알게 됩니다. 천하에는 자기 자신도 다스릴 수 없으면서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백대가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는 원리입니다. - P428

지금 중국은 개 짖는 소리에 놀랄 일이없을 만큼 태평스러운데, 나라 밖 먼 곳의 수비에 얽매여 국가를 황폐시키는 것은 백성을 자식처럼 여겨야 하는 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끝없는욕망을 실천하기 위해서 마음껏 행동하여 흉노와 원한을 맺는 것은 변경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 아닙니다. - P440

천자는 이렇게 말했다.
"동월은 좁고 험한 곳이 많으며, 민월은 사람들이 사나워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이 많다."
그러고는 군리에게 조서를 내려 그곳 백성을 모두 장강과 회수 사이로 옮겨 살게 했다. 동월 땅은 마침내 텅 비게 되었다. - P477

천자가 말했다.
"장수가 진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산을 보내 우거에게 투항을권하도록 했다. 그때 우거는 태자를 한나라에 보내기로 했는데,
위산이 일관되게 과감히 처리하지 못하고 좌장군과 계책이 서로라 마침내 항복 약속을 망치고 말았다. 이제 두 장군이 적의 왕검성을 포위했으나 또 의견을 달리하고 있어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있다." - P485

그들은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 발뒤꿈치를 들고 사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포악한 자도 여기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데, 하물며 성스러운 천자가 어찌 그대로 둘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북쪽으로 군대를출동시켜 강한 오랑캐를 치고, 남쪽으로 사자를 보내 강한 월나라를 꾸짖은 것입니다. 그러자 사방이 덕에 감화되고, 물고기가 물의 흐름을따르듯 우러러보며 작호爵號를 받기 원하는 서이와 남이의 군주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말수와 약수에 관소를 두고 장가강을경계로 삼았으며, 영산을 뚫어 길을 열고 손수孫의 원천에 다리를놓았습니다. 도덕의 길을 세우고 인의의 전통을 드리워 은혜를 널리 베풀고, 먼 곳 백성을 어루만져 소원한 자가 막히지 않게 하며, 막혀 미개한 자들에게 광명의 빛을 얻게 함으로써 한편으로 군사들을 움직이지않을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토벌을 그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먼 곳과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며 안과 밖을 안락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이 또한 즐거운 일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백성을 어려움 속에서 구제하고 고상한 미덕을 받들어 말세의 쇠미한 형세를[본래 상태로 되돌려 놓고주나라의 끊어진 사업을 잇는 것, 이것은 천자가 서둘러 해야 될 일입니다. 설령 백성을 수고롭게 할지라도 어찌 그칠 수 있겠습니까? - P532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많았습니다. 주옥과 황금과 비단을 나누어 제후와 종실과 대신들에게 뇌물로 주었으나, [외척] 두씨氏만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계책이 정해지고 모의가 이루어지자 군사를 일으켜 서쪽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대량大梁에서깨지고 호보狐父에서 패하여 쫓겨 달아나 동쪽 단도丹徒에 이르렀으나 월나라 사람에게 사로잡혀 자신은 죽고 제사도 끊어져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저 오나라와 초나라의 무리로도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로 천도天道를 거스르고 때를 알지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왕의 군사와 백성은 오나라와 초나라의10분의 1도 안 되고, 천하는 오나라와 초나라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보다 만 배나 안정되어 있습니다. - P570

"폐하께서는 속으로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풀려고합니다. 그렇게 해서야 어떻게요와 순의 정치를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효무제는 아무 말 없이 화가 나서 낯빛이 바뀌더니 조회를 끝냈다. 공경은 모두 급암을 걱정했다. 효무제는 조정에서 돌아와 좌우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급암의 우직함은 너무 심하다." - P603

구경들은 그저 자기 직책만 지키고 있을 뿐 천자의 과실을 바로잡아 줄만한 능력이 없었는데, 어찌 법령 이외의 일을 연구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 열 사람 중에서 청렴한 자는 모범으로 삼을 만하며, 탐욕스럽고 더러운 자는 경계로 삼을 만하다. 그들의 방책과 모략은 후세 사람들을 가르쳤고 간사하고 사악한 일을 금지시켰다. 이열 명의 모든 행위도 적절하게 어울려 소박함 속에 문무의 자질을 겸하고 있었다. 그들은 참혹하기는 하나 그 지위에 알맞은 인물이었다. - P674

지금 유협의 경우는 그 행위가 비록 정의에 부합되지는 않아도 그들의 말에 믿음이 있고 행동은 과감하며, 한번 승낙한 일은 반드시성의를 다해 실천하고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닥친 위급함속으로 뛰어든다. 그들은 생사와 존망을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않고, 그 덕을 자랑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 P711

(그러나] 시정 협객들의 경우는 오로지 행실을 닦고 절개를 지켜온 천하에 명성을 떨쳤으니 현명하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유가와 묵가에서는 모두이들을 배척하고 버려 책에 기록하지 않았다. 진나라 이전의 서민협객에 대해서는 사라져 알 길이 없다. 나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들은 바로는 한나라가 일어난 뒤로 주가, 전중田仲, 왕공王公, 극맹劇孟, 곽해郭解 같은 협객이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당시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기도 했으나 개인의 품덕, 청렴, 겸양 면에서는 칭찬할 만하다. - P714

태사공은 말한다.
"천도天道는 넓고 넓다. 어찌 위대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육예뿐만 아니라 은미한 말 속에도 이치에 맞는 것이 있어 이것으로 얽힌것을 풀 수 있다." - P735

전하는 말에 "자산産공교公孫이 정나라를 다스리자 백성은그를 속일 수 없었고, 자천구복자제齊이 선보單父를 다스리자백성은 차마 그를 속일 수 없었으며, 서문표가 업현을 다스리자 감히 그를 속이지 못했다."라고 하는데, 이 세 사람의 재능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날까? 그것은 다스리는 길을 아는 사람이라면 마땅히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 P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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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가 말했다.
"아무튼 얼마나 시체를 묻었는지 자동차가 가는데 땅이 흐물흐물 떠가는 듯 하더라는 게야." - P432

장고봉 사건은 6월 11일 소련군 침입으로 시작되었다. 보도기관은 그 사건에 대하여 일주일을 침묵했다. 지면 한 구석에작은 활자로 보도된 것이 17일, 소련의 불법월경이란 눈에 잘띄지도 않는 기사였다. 그렇게 시작해서 차츰 신문은 사건을크게 다뤄나갔다. 19일에서부터 장고봉사건은 단연 톱기사로연일 계속되었고, 외교적 해결책에 광분하는 일본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왜 일주일 동안 그 사건은 보도되지 않았는가. 손톱만 한 사건, 없는 것도 만들어서 대서특필 침략의 구실로 삼던 일본으로서는 예외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사악하기가 뱀 같고 늑대같이 포악해지지만 상대가 강하다 싶으면 순식간에 쥐새끼로 표변하는 습성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 할 수 있겠으나 여하튼 일본의 고민이 얼마나 심대(大)하였나 단적으로 설명이 된다. - P440

지난 정월 16일 일본이 발표한 제국정부 성명이란 확대파, 그러니까 중일전쟁에서 응징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승리로 내민 것이라기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기분, 하야시의 말대로 자만심에 밀리어 이도 저도 할 수 없이 내던져진 주사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남경 함락 후 전선의 확대가 불가피해진 일본은 내심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띄운 것이 화평이라는 기구미국과 영국에 중재해줄 것을 은근히 요망했다. 물론 화평교섭을 마다할 나라는 없을 테지만,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는 시카고연설에서 일본을 전염병환자로 - P447

규정짓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본을 격리하여야 한다. 그런 극언을 한 바 있었으며 비연맹국(聯盟國)이라는 이유로 일본이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연맹 총회는 중국의 일본략 제소(訴)를 받아들여 9개국 조약체결국회의(條約結國會議)에 안건을 내놓는 등, 소련처럼 직접적인 군사원조는 아니했으나 분명히 중국 편에서 방자한 일본에 치를 떠는 영미를 믿을 수 없었던 일본은 중재 역할을 독일에게 가져가는데 문제는상대, 장개석이 응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것은 원상복귀 이외는 없었다. 갖은 지랄을 다한 일본의 모든 행동이 도로(徒勞)로끝나는 그 조건이나마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사정, 그러나 그들이 첫째 봉착한 것은 정부나 군부 이상으로 전쟁에들떠 있는 국민에게 뭐라 할 것인가, 총동원하여 전쟁의 열기로 몰아붙여 놓은 국민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있는가. 남경함락후 전승에 취한 국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일장기행렬, 등불행렬로 법석을 떨고 있었으니, 그러는 동안 각 파의 반목과 대립은오기를 자극하고 고조시키면서 화평조건은 차츰 강경한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P448

결국 제국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들 스스로 내놓은 화평안을 그들 자신이 막았고 일본은 비극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그 후안무치한제국정부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국정부는 남경공략 후 계속 중국 국민정부의 반성에 최후의기회를 주기 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민정부는 제국의진의를 모르고 함부로 항쟁을 책동했으며 안으로는 도탄에 빠진인민의 괴로움을 무시하고 밖으로는 동아전국(東亞全局)의 화평을1 원치 않았다. 하여 제국정부는 이후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제국과 진실로 제휴하기에 족한 신흥 지나정권의 성립발전을 기대하며 이들과 양국 국교를 조정하여 갱생 신지나설에 협력하기로 한다. 물론 제국은 지나의 영토와 주권을 위시하여 재지 열국의 권익을 존중하는 방침에는 추호 변함이 없을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동아 화평에 대한 제국의 책임은 보다 무겁다. 정부는 국민이 이 중대한 임무수행을 위해 한층 더 분발해줄것을 기망(望)하여 마지않는다. - P449

"신문도 그렇고 천황주권설을 들고나와 미노베 박사에게 시비를 건 어학자 우에스기라는 작자도 그렇고,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그렇다 치고 자유주의 자본주의도 통과가 안 되는, 오로지 군도(軍刀)와 황도(皇道)뿐인 세상, 군신(軍神)이 대신(天照大위로 올라갈까 무섭네." - P457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잠들거나 깨어 있을 밤은 서산에 태 - P484

양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해가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다. 동굴 깊은 곳의 눈먼 귀뚜라미처럼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온다. 전쟁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눈먼 귀뚜라미처럼 도시라는 크나큰 동굴 속을 끊임없이 오고 간다.
‘내가 가는 곳은 무엇이냐. 히토미를 그리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길인가. 도피와 망각의 길인가. 무라카미 선배는 삶의 목표가 없어졌다 하고 말했다. 나는 뭐라 말했나? 목표가 없기론다 마찬가지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그래왔을 거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해서 옛날의 사람들은 그렇게들 돌을 많이 쌓았는가. 엄살이지 엄살, 나도 엄살이긴 매일반이다.
눈먼 귀뚜라미는 생존을 위해 오고 간다. 호두(虎頭)의 그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죽어갔다. 생존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끌려간 그들의 생존을 말살한 채찍과 총구는 무엇이냐! 운명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채찍을 휘두를 때 총구에서 불을 뿜을 때 그들, 또 다른 눈먼 귀뚜라미의 무리는 생존을 구가하고미래를 약속한다. 인간이여! 그대들은 초인을 기다리고가? 인간의 최고목표는 과연 무엇이냐? 초인을 만나는 것이냐, 초인이 되는 것이냐.‘ - P485

‘오늘의 지식인의 진실이란 거의 그런 상태가 아닌가. 논리와행동의 도랑은 넓고 깊어서 결국 지식인들은 가랑이가 찢어지고 마는 잉여물에 불과한 거야.‘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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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0p

등공이 말했다.
"조조는 제후들의 세력이 강대해지면 통제할 수 없을까 봐 염려하여 그들의 봉토를 줄이도록 요청해 나라의 존엄을 높이려고 했던것입니다. 이것은 만세에 걸친 이익을 도모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겨우 시행되었을 때 조조는 느닷없이 극형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안으로는 충성스러운 신하의 입을 막고, 밖으로는제후들을 위해서 그들의 원수를 갚아 준 꼴입니다. 신은 그것이 폐하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경제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있다가 말했다.
"공의 말이 옳소. 나도 후회스럽소." - P148

"이놈이 직접 내 말을 놀라게 했소. 내 말이 온순하였기 망정이지다른 말 같았으면 나를 떨어뜨려 다치게 하였을 것이오. 그런데 정위는 그놈의 죄가 벌금형에 해당된다고 말하시오?"
장석지가 말했다.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법에 의하면 이와 같이 하면 되는데, 고쳐서 더 무거운 벌로 다스린다면 백성이 법을 믿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황상께서 그 자리에서 그를 베어 버리라고 하셨으면 그만입니다만, 지금 그를 [이미]정위에게 넘기셨습니다. 정위는 천하의 법을 공정하게 다스리는 자인데 한쪽으로 기울면 천하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다 제각기 법을 무겁게도 하고 가볍게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은 그들ㅣ의 손과 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살피시기 바랍니다."
황상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정위의 판결이 옳소." - P158

만석군 집안은 효행과신중함으로 각 군과 국에 이름을 드날렸다. 제나라와 노나라의 성실하고 신의 있는 행동을 일삼는 유생들도 모두 그에 미치지 못함을인정하였다. - P171

"나는 비밀스럽게 전해 오는 의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늙어 그대에게 전해 주고 싶으니, 그대는 누설하지 마시오."
편작이 말했다.
"삼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상군은 품속에서 약을 꺼내 편작에게 주며 말했다.
"이 약을 땅에 떨어지지 않은 물에 타서 마신 뒤 삼십 일이 지나면 반드시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러고는 비밀스럽게 전해 오는 의서를 꺼내 모두 편작에게 주고는 홀연히 사라졌으니 보통 사람이 아닌 듯하다. 편작이 장군의 말대로 약을 먹은 지 삼십 일이 지나자 담장 너머 저편에 숨어 있는 - P205

사람이 보였다. 이러한 능력으로 환자를 보니 오장 속 질병의 뿌리가 훤히 보이므로 겉으로는 맥을 짚어 진찰하는 척만 할 뿐이었다. - P206

편작의 이름은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편작은 한단을 지나갈때 그곳에서는 부인들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의사가되었고, [주나라 천자가 머물던] 낙양을 지날 때는 주나라 사람들이노인을 공경한다는 말을 듣고 귓병과 눈병과 중풍 등 노인병 의사가되었으며, 함양으로 들어올 때는 진秦나라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소아과 의사가 되어 각 지역 사람들의 풍속에맞추어 의료 과목을 바꾸었다. 진나라의 태의령太醫令의약 행정의 최고담당자 이혜수는 자신의 의술이 편작만 못함을 알고 사람을 보내편작을 찔러 죽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상에서 맥법에 관해 말하는사람들은 모두 편작의 이론과 방법을 따르고 있다. - P215

태사공은 말한다.
"오왕 유비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버지가 강등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왕이 되자 부세를 가볍게 하고 그 무리를 부려서 산과바다의 이익을 마음대로 거둬들였다. 반역의 싹은 그 아들에게서 텄다. 그 아들이 황태자와 장기를 두다가 길을 다툰 데서 재앙이 발생하여 근본을 멸망시키게 되었다. 월나라와 가까이 지내며 한나라 종실을 전복시키려다가 끝내는 멸망했다. 조조는 국가의 먼 앞날을 염려하여 계책을 세웠다가 도리어 자신이 화를 입었고, 원앙은 권모에능하고 유세를 잘하여 처음에는 총애를 받았으나 훗날 치욕을 당하였다. 그래서 옛날에 제후의 땅은 사방 백 리를 넘지 않고, 산과 바 - P280

다가 있는 곳에는 제후를 봉하지 않았다. ‘오랑캐를 가까이하여 친족을 멀리하지 말라.‘ 라고 한 것은 아마도 오나라 같은 경우를 두고말한 것이고, ‘권모에 앞장서지 말라. 도리어 재앙을 입게 된다.‘라고 한 것은 원앙과 조조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 P281

한안국의 사람됨은 원대한 지략이 많아 그 지모는 세상의 흐름에따라 영합하기에 충분했으며 충성심이 두터웠다. 그는 재물을 좋아하고 탐하기는 하였으나, 자신보다 청렴결백하고 현명한 선비들을추천하였다. 양나라에서는 호수, 장고臧固, 질타到他를 추천하였는데 모두 천하의 이름난 선비였다. 이 때문에 선비들은 그를 칭찬하고 앙모하였으며, 천자까지도 그야말로 나라를 다스릴 만한 역량있는 재목으로 여겼다. - P321

어느 날 이광이 사냥을 나갔다가 풀숲에 있는 돌을 호랑이로 잘못보고 활을 쏘았더니 그 화살촉이 돌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세히보니 돌덩어리이므로 한 번 더 쏘았으나 화살촉이 박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이광은 자신이 부임한 군에 호랑이가 있다는 소리를들으면 언제나 직접 나가서 활로 쏘곤 하였다. 우북평에 있을 때 이광의 화살을 맞은 호랑이가 달려들어 그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결국이광이 호랑이를 쏘아 죽인 적도 있었다.
이광은 청렴하여 상을 받으면 그것을 번번이 부하들에게 나눠 주고, 음식도 군사들과 함께 먹었다. 이광은 죽을 때까지 사십여 년에걸쳐 봉록 2000석을 받는 관직에 있었으나 전에는 남아 있는 재물이 없었으며, 끝까지 집안의 재산에 대해서는 말하는 일이 없었다. - P333

이 무렵에는 진秦나라와 진나라가 강국이었다. 진晉나라 문공은융적을 쫓아내 하서 지방의 은수와 낙수 사이에 살게 했는데 그들을 적적赤, 백적이라고 불렀다.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유여를 얻어 서울의 여덟 나라를 진나라에 복속시켰다. 그래서 농隴 서쪽에는 면저緜諸와 곤융親戎과 적翟과 - P350

원의 융적이 있고, 기산과 양산과 경수와 칠수漆木 북쪽에는의거義渠와 대려大霧와 오지烏氏와 구연衍의 융족이 있었다. 그리고 진나라 북쪽에는 임호林胡와 누번樓煩의 융족이 있으며, 연나라북쪽에는 동호東胡와 산융이 있었다. 이들은 각각 계곡에 흩어져 살며 저마다 군장君長이 있었다. 가끔 백여 개의 융족이 모이기도 하였지만 아무도 하나로 통일하지는 못했다. - P351

"세속 사람들이 흉노를 말하는데 이들은한때의 권세를 얻기 위해 힘써 아첨하여 자기 주장이 채택되도록 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서로흉노와 한나라를 고려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걱정한다. 장수들은 중국이 광대한 것만을 믿고 의기충천했으며, 남의 주인된 자천자는 그들의 의견에 따라 전략을 결정했으므로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요堯는 현명했지만 사업을 일으켜 성공하지 못하고 우禹의 도움을 받고야 구주九州가 편안해졌다. 만일 성천자聖天子의 위업을 일으키려 한다면 오직 장군이나 대신을 가려서임명하는 데 달렸을 뿐이다. 오직 장군이나 대신을 가려서 임명하는데 달렸을 뿐이다." - P390

중항열은 선우가 한나라에 편지를 보낼 때는 서판을 한 자 두 치크기로 쓰게 하고 봉인封印도 모두 한나라보다 넓고 크고 길게 하도록 하였으며, 그 문구도 거만하게 이렇게 쓰게 했다.
천지가 낳으시고 일월이 세워 주신 흉노의 대선우는 삼가 묻노니 한나라 황제께서는 무양하십니까? 그리고 보내는 물품은 ………이고, 용건은 ……입니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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