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가 말했다.
"아무튼 얼마나 시체를 묻었는지 자동차가 가는데 땅이 흐물흐물 떠가는 듯 하더라는 게야." - P432

장고봉 사건은 6월 11일 소련군 침입으로 시작되었다. 보도기관은 그 사건에 대하여 일주일을 침묵했다. 지면 한 구석에작은 활자로 보도된 것이 17일, 소련의 불법월경이란 눈에 잘띄지도 않는 기사였다. 그렇게 시작해서 차츰 신문은 사건을크게 다뤄나갔다. 19일에서부터 장고봉사건은 단연 톱기사로연일 계속되었고, 외교적 해결책에 광분하는 일본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왜 일주일 동안 그 사건은 보도되지 않았는가. 손톱만 한 사건, 없는 것도 만들어서 대서특필 침략의 구실로 삼던 일본으로서는 예외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사악하기가 뱀 같고 늑대같이 포악해지지만 상대가 강하다 싶으면 순식간에 쥐새끼로 표변하는 습성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 할 수 있겠으나 여하튼 일본의 고민이 얼마나 심대(大)하였나 단적으로 설명이 된다. - P440

지난 정월 16일 일본이 발표한 제국정부 성명이란 확대파, 그러니까 중일전쟁에서 응징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승리로 내민 것이라기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기분, 하야시의 말대로 자만심에 밀리어 이도 저도 할 수 없이 내던져진 주사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남경 함락 후 전선의 확대가 불가피해진 일본은 내심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띄운 것이 화평이라는 기구미국과 영국에 중재해줄 것을 은근히 요망했다. 물론 화평교섭을 마다할 나라는 없을 테지만,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는 시카고연설에서 일본을 전염병환자로 - P447

규정짓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본을 격리하여야 한다. 그런 극언을 한 바 있었으며 비연맹국(聯盟國)이라는 이유로 일본이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연맹 총회는 중국의 일본략 제소(訴)를 받아들여 9개국 조약체결국회의(條約結國會議)에 안건을 내놓는 등, 소련처럼 직접적인 군사원조는 아니했으나 분명히 중국 편에서 방자한 일본에 치를 떠는 영미를 믿을 수 없었던 일본은 중재 역할을 독일에게 가져가는데 문제는상대, 장개석이 응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것은 원상복귀 이외는 없었다. 갖은 지랄을 다한 일본의 모든 행동이 도로(徒勞)로끝나는 그 조건이나마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사정, 그러나 그들이 첫째 봉착한 것은 정부나 군부 이상으로 전쟁에들떠 있는 국민에게 뭐라 할 것인가, 총동원하여 전쟁의 열기로 몰아붙여 놓은 국민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있는가. 남경함락후 전승에 취한 국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일장기행렬, 등불행렬로 법석을 떨고 있었으니, 그러는 동안 각 파의 반목과 대립은오기를 자극하고 고조시키면서 화평조건은 차츰 강경한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P448

결국 제국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들 스스로 내놓은 화평안을 그들 자신이 막았고 일본은 비극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그 후안무치한제국정부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국정부는 남경공략 후 계속 중국 국민정부의 반성에 최후의기회를 주기 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민정부는 제국의진의를 모르고 함부로 항쟁을 책동했으며 안으로는 도탄에 빠진인민의 괴로움을 무시하고 밖으로는 동아전국(東亞全局)의 화평을1 원치 않았다. 하여 제국정부는 이후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제국과 진실로 제휴하기에 족한 신흥 지나정권의 성립발전을 기대하며 이들과 양국 국교를 조정하여 갱생 신지나설에 협력하기로 한다. 물론 제국은 지나의 영토와 주권을 위시하여 재지 열국의 권익을 존중하는 방침에는 추호 변함이 없을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동아 화평에 대한 제국의 책임은 보다 무겁다. 정부는 국민이 이 중대한 임무수행을 위해 한층 더 분발해줄것을 기망(望)하여 마지않는다. - P449

"신문도 그렇고 천황주권설을 들고나와 미노베 박사에게 시비를 건 어학자 우에스기라는 작자도 그렇고,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그렇다 치고 자유주의 자본주의도 통과가 안 되는, 오로지 군도(軍刀)와 황도(皇道)뿐인 세상, 군신(軍神)이 대신(天照大위로 올라갈까 무섭네." - P457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잠들거나 깨어 있을 밤은 서산에 태 - P484

양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해가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다. 동굴 깊은 곳의 눈먼 귀뚜라미처럼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온다. 전쟁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눈먼 귀뚜라미처럼 도시라는 크나큰 동굴 속을 끊임없이 오고 간다.
‘내가 가는 곳은 무엇이냐. 히토미를 그리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길인가. 도피와 망각의 길인가. 무라카미 선배는 삶의 목표가 없어졌다 하고 말했다. 나는 뭐라 말했나? 목표가 없기론다 마찬가지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그래왔을 거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해서 옛날의 사람들은 그렇게들 돌을 많이 쌓았는가. 엄살이지 엄살, 나도 엄살이긴 매일반이다.
눈먼 귀뚜라미는 생존을 위해 오고 간다. 호두(虎頭)의 그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죽어갔다. 생존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끌려간 그들의 생존을 말살한 채찍과 총구는 무엇이냐! 운명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채찍을 휘두를 때 총구에서 불을 뿜을 때 그들, 또 다른 눈먼 귀뚜라미의 무리는 생존을 구가하고미래를 약속한다. 인간이여! 그대들은 초인을 기다리고가? 인간의 최고목표는 과연 무엇이냐? 초인을 만나는 것이냐, 초인이 되는 것이냐.‘ - P485

‘오늘의 지식인의 진실이란 거의 그런 상태가 아닌가. 논리와행동의 도랑은 넓고 깊어서 결국 지식인들은 가랑이가 찢어지고 마는 잉여물에 불과한 거야.‘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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